걸어다니는 무기고 064화
“더더 러러 운운 언언 데데 드드!!!”
집중된 화염의 공격에 괴로운 듯 소리치는 키메라.
지금까지 상대해 온 머미나 좀비와는 완전히 다른 몬스터였다.
외관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수많은 몬스터 또는 생물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
강력한 짐승의 이빨, 거대한 사자의 몸집은 폭발적인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온몸에 부분적으로 리자드맨의 피부를 가진 키메라는 집중된 화염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리자드맨은 늪지에 사는 몬스터로 화염 데미지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의 짓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리자드맨의 피부를 이식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크크 르르 아아!”
두꺼운 피부에 부러진 화살을 꽂은 키메라는 높이 뛰어올라 의 전투대형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언데드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골 병사와 구울 들을 물어뜯으며 공격.
하지만 무엇보다 이 당황한 것은 키메라의 거대한 이빨.
키메라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데스 오라에 의해 계속해서 살아나는 언데드들을 이길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키메라에게 당한 해골 병사와 구울 들은 부활하지 않았다.
신성력이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오는 키메라의 이빨은 완전한 언데드들의 극강 카운터.
언데드를 죽이기 위한 살상 병기를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젠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데드들은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었지만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키메라의 거대한 앞발과 이빨이 한번 휩쓸고 가면 순식간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해골들이 쓸려 나갔다.
이미 마나가 모두 떨어져 연속적인 화살만을 날리고 있는 스켈레톤들. 하지만 키메라에게 효과는 전혀 없었다.
약점이 없는 것인가?
언데드로서 키메라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분명 저런 종류의 몬스터의 약점은······.’
“모두 뒤로 빠져 원거리 공격으로 엄호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민혁이 달려가 키메라의 몸통에 칼을 내밀었다.
자그마한 흠집만 남길 뿐 작은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는 두꺼운 피부.
명령을 받은 스켈레톤과 해골들은 뒤로 물러 민혁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공격해 온 해골을 자신의 적으로 인식한 키메라는 민혁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견제하기 시작했다.
일대일 전투.
언데드 부하들이 후방으로 빠지며 가운데 키메라와 민혁만이 대치하였다. 마치 서로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장면.
키메라가 먼저 뒷발을 강하게 차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키메라의 이빨을 순식간에 옆으로 회전하며 피한 후, 베는 형태의 검에서 찌르는 형태로 파지법을 바꾸었다.
이후 방향을 돌려 다시 한번 거대한 입을 벌리며 공격해 오는 키메라.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인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민혁은 키메라가 커다란 입을 벌리며 자신의 가까이 다가오자 오히려 앞으로 전진하였다.
그리고는 키메라의 목구멍을 향해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마치 총검술을 연상케 하는 찌르기 형태의 공격이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부정(不正)의 신성검을 얻었습니다.]
남아 있는 왼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검을 들어 올렸다.
키메라의 입속에 검을 찔러 넣는 순간 닫혀 버린 이빨에 의해 바스러져 버린 오른팔.
신성력이 깃든 이빨에 의해 언데드의 힘에도 불구하고 재생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이템 확인!”
[부정(不正)의 신성검]
[언데드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성력이 강하게 깃들어진 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언데드의 몸속에 존재하여 그 힘은 매우 크게 떨어졌으나 검 날에서 미약하게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수-미약한 신성력. 언데드 착용 가능.]
‘이것 때문에 키메라에 신성력이…… 도대체 누가.’
아무리 봐도 언데드 몬스터로 보이는 키메라에게 미약한 신성력이 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고의적으로 언데드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몬스터.
하필 상대를 잘못 만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을 테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남은 것은 이건가…… 어떻게 한담.”
퀘스트를 완료하였고 아이템을 모두 회수했다.
새로 생긴 스킬까지 확인하였으나 남아 있는 것은 키메라의 시체.
살아 있을 때의 모습 역시 괴기스러울 정도였는데, 생명력을 잃고 움직이지 않는 그것의 모습은 더욱 혐오스러웠다.
“시체 흡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육체를 얻기 위해서는 아자토스를 쓰러뜨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물론, 고민의 여지도 없이 시체 흡수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으나, 시체가 된 그것에 손을 가져다 대고 싶지 않았다.
아자토스에 의해 소환되면서 수많은 종류의 언데드를 보고 경험했었기에 면역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던 민혁이 보기에도 충격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후…… 어쩔 수 없지. 시체 흡수!”
크게 심호흡을 한 이 키메라의 시체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두며 외쳤다.
[시체 흡수에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증가하였습니다.]
[민첩이 증가하였습니다.]
[체력이 증가하였습니다.]
[마나가 증가하였습니다.]
[지혜가 증가하였습니다.]
[…….]
[화염 속성 내성이 1% 증가하였습니다.]
[시체의 기억의 조각을 얻었습니다.]
그 순간 다시 민혁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 * *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를 통해 비춰왔다. 평화로운 아침.
평범한 가정집의 아침 풍경.
요리를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과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한 듯 아직 일어나지 못한 아버지.
“수민아, 아버지 깨워라. 밥 먹자.”
온 집안에 퍼진 된장국의 향기와 도마 소리에 잠이 깨 거실로 나온 아이였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다정하게 이야기하자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는 곧바로 침실의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아빠, 밥 먹어요. 밥! 밥!”
“어, 어 그래. 나 일어났다. 그만 흔들어······.”
장난치듯 자고 있는 아버지의 몸을 흔들기 시작하자, 비몽사몽 잠에서 깬 남자가 아이를 저지하였다.
어지러운 듯 머리를 부여잡은 남자는 아직까지 흔들고 있는 아이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워 부엌으로 나온다.
“당신, 어제 또 밤새 연구소에 있었잖아요. 좀 쉬어가면서 해요.”
“으…… 응. 연구가 이제 곧 끝나가. 이번 연구만 끝나면 몇 달간 푹 쉴 수 있을 거야.”
아내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 곤란한 듯 남자가 대답했다.
“아빠! 아빠는 몬스터 연구한다 했지? 몬스터랑 싸우기도 해?”
“응? 아니. 아빠는 몬스터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 사람들이 싸우거나 다치지 않도록.”
“몬스터를 얌전하게 해?”
아이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듯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민이 오늘 아빠 연구소에 놀러 가 볼래? 재밌는 게 많이 있는데.”
“응! 갈래. 갈래.”
“여보!”
아버지의 제안에 이미 신이나 주체할 수 없는 아이.
밥을 먹다 말고 깜짝 놀라 제지하려 하는 아내였으나 잔뜩 기대에 부푼 아이를 이제 와서 못 가게 할 수는 없었다.
“하…… 하……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째려보는 아내의 눈빛에 당황스러운 남편은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하였다.
“아빠 연구소는 왜 지하에 있어?”
“모든 연구소가 그런 건 아니고, 우리는 몬스터를 연구해서 안전상의 이유로 지하에 만든 거야.”
대화하며 손을 꼭 잡고 작은 건물 안의 지하실로 내려가는 아이와 남자.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자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 온다.
“박사님, 어서 오세요.”
“어? 박사님, 딸이에요? 너무 귀엽다.”
연구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듯 남자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해오던 연구원들은 아이를 보자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수민아, 인사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수줍음이 많은 듯 아버지의 다리 뒤에 숨은 아이는 쭈뼛쭈뼛 인사를 한 후 다시 아버지의 바지를 꼭 쥐고 있다.
이내 곧, 수줍던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연구소를 놀이터 삼아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거 리자드맨 아니에요? 우와~”
“언니, 언니. 여기 사자가 왜 있어요?”
“아빠! 여기 좀 봐, 구울이야! 구울!”
동물원에 오기라도 한 듯 신이 난 아이의 모습은 귀찮기는커녕 연구원들 모두를 절로 미소 짓게 하였다.
몬스터를 연구하는 연구소에는 투명한 유리로 제작된 공간 안에 수많은 종류의 동물과 몬스터가 각각 들어 있었다.
연구에 성과가 있는 듯 대부분의 몬스터는 본능을 잃은 채 온순하기 짝이 없었다.
“아빠…… 아빠 어두워졌어, 무서워.”
“응? 무슨 소리니 어두워지다니, 어! 정말이네? 불이 나갔나?”
남자는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연구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두려움을 토로하며 다가오자 그제야 눈치를 챈 것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싸늘한 기운과 어둠이 연구소 안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소의 사람들 모두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자 연구소의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났다.
[인간 박사여.]
검은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해골.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마법사의 로브를 뒤집어쓴 채 앙상한 해골의 뼈마디가 드러난 손가락에는 빨간색의 커다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뒤이어 등장하는 수많은 언데드.
[나의 종이 여기에도 있구나.]
투명한 유리에 갇힌 구울을 보자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어떤 몬스터의 공격에도 깨지지 않게 특수한 재질로 만든 유리였으나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깨져 버렸다.
“이야야야앗! 이거나 받아라!”
누구나 두려움에 떨 상황이었으나, 연구원 중 한 명이 그 순간 앞으로 나오며 가스를 분사하였다.
자신들의 가장 자신 있는 발명품이자, 연구의 성과. 어떤 몬스터든 소량만으로 잠들게 만드는 가스였다.
[어리석지만 용기 있는 인간이여! 마음에 드는구나.]
엄청난 양의 가스에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끄덕하지 않은 해골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순식간에 연구원의 살과 근육이 분해되며 해골만 남은 앙상한 육체가 되었다.
[나, 아자토스가 그대를 찾아왔다. 어디에 있는가 박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