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59화
“삐걱, 삐걱.”
온몸의 세포까지 끌어올려 간신히 힘을 주자 앙상한 손가락의 뼈마디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젖 먹던 모든 힘을 쏟아부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 하나를 겨우 움직이는 일.
그나마도 누군가 매우 가까이에서 확인하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여기는……?’
인스턴트 던전의 내부.
분명 찬미와 한석, 시은, 채영까지 같이 있던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한 채 눈을 돌려 살펴본 그곳에는 녹슨 장검을 든 스켈레톤이 하릴없이 돌아다닐 뿐이었다.
“끌끌낄끼.”
“킬킬킬.”
스켈레톤들은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동굴 벽에 기대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 있는 나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지나갔다.
어째서인지, 그저 누워 있는 시체라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지끈거려 오는 머리.
두통에 머리를 쥐어짜고 싶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해골?’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그저 앞을 바라보던 그때, 스켈레톤들이 질질 끌며 들고 있던 녹슨 장검에 어렴풋이 비춘 나의 모습이 비쳤다.
‘어떻게 된 거지……?’
혼잣말을 할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을 만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 눈치챌 수 있었다.
완벽했던 전역복의 핏은 어디 가고 헐렁한 군복에 앙상한 뼈마디, 눈알조차 없는 해골바가지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주에 걸린 것인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 수많은 추측을 해보았지만,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나는 아무런 힘이 없는 해골이 되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정보창!’
[이름-이민혁]
[직업-스켈레톤][저주]
[보유 스킬]
[내 손 안의 무기고 LV1-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할 수 있습니다.]
[시체 흡수 LV1 (특별)-마정석에 각인된 스킬. 언데드 종족만이 사용 가능]
다행히 속으로 되뇌기만 해도 눈앞에 펼쳐지는 홀로그램.
하지만 그 정보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보유한 스킬 목록 역시 한심한 정도.
그동안 코인을 쏟아부어 올려두었던 그 스킬 레벨도.
죽을 고비를 넘어가며 획득했던 서브 스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얻었던 스킬들도 코인을 이용해 향상시켰던 스킬들도 전부 초기화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의 스킬창에서는 본적이 없는 스킬이었다.
‘시체 흡수? 뭐야 이건. 이런 스킬이 존재했나?’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단 한 번 본 적이 있던 이 스킬.
‘특별’이란 설명이 붙은 스킬의 설명을 천천히 읽어 보고 나자 그제야 확실히 생각이 났다.
‘그래…… 마정석, 마정석을 얻으려다…….’
스킬의 설명을 읽어 보니 어찌 됐든 마정석을 획득하기는 한 것 같았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몸이 이렇게 변해 버렸으니…… 하지만 스켈레톤의 공격은 스킬이 아니었나…….’
상대해 본 적이 있던 스켈레톤은 분명 자신의 갈비뼈를 뽑아 날리는 공격이나 자신의 해골 던지는 형태의 공격을 했었다.
자신을 희생해 공격하는 것 치곤 그 효과가 뛰어나진 않았기에 그 스킬들이 없다고 한들 아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의아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금 있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이었겠지만.
[퀘스트-육체 얻기 1]
[스킬을 이용하여 시체를 흡수하라!]
[난이도-D]
그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퀘스트창.
‘메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을 것을 보아하니 꼭 해결할 필요는 없어 보였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체를 흡수해?
어림도 없는 소리.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뿐더러 주위에 돌아다니는 건 뼈다귀뿐 육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용 또한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내 앞에 싸늘하게 쓰러져 있는 것은 자신보다도 커다란 로브를 뒤집어쓴 해골뿐인 시체.
해골 병사들을 소환하고 골렘을 소환하던, 분명 마정석을 소지하고 있던 그 시체였다.
그제서야 서서히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피노의 도움으로 골렘과 해골들을 전부 해치운 후 마정석을 손에 쥘 일만 남아 있었다.
마정석을 얻기 위해 녀석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녀석이 나를 붙잡았고.
그 해골 녀석은 음침한 목소리로 무언가…… 나에게 무언가를 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이 타들어 가듯 고통에 몸부림쳤고, 이내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살과 근육이 썩어들고 몸속의 장기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저주를 내린다고 했지…… 이게 그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상황을 받아들였다.
저주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로브를 두른 해골의 저주로 인해 나 또한 해골이 된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 수 없었다.
원래의 나의 몸이 아닌 일개 해골. 스켈레톤 따위가 된 것인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각에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헛, 벌이라도 받는 것인가.’
헛웃음이 났다.
살아남기 위해 지금껏 몸부림쳤던 모든 게 헛수고였던 것인가…….
신우와 현지는…….
찬미와 한석, 채영, 시은은 무사히 빠져나간 것인가…….
저주…….
저주라면 푸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일단 무엇보다 움직일 수 있어야 해.’
그나마 다행인 건 로브를 쓴 해골의 위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스켈레톤이 된 후 생성된 퀘스트.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퀘스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일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육체를 얻어라…….’
퀘스트의 내용을 보면 아마 완료보상으로 육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 것이다.
무엇보다 시체 흡수, 이 스킬은 로브를 쓰고 있던 그 해골이 사용했던 스킬이 분명했다.
자신의 부하에게 스킬을 사용하자 대상이 사라지고 온몸이 자신의 해골이 원상복구 되었던 그 스킬이었다.
꺼림칙하긴 하였으나 별다른 방도는 없어 보였다.
달그락, 달그락.
안간힘을 다하여 손가락을 그의 시체에 가져다 두었다.
‘시체 흡수!’
[시체 흡수에 성공하였습니다.]
[네크로맨서의 시체를 흡수하였습니다.]
[스킬-해골 병사 소환을 배웠습니다.]
[네크로맨서로 직업이 변경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시체가 누워 있던 해골이 흔적도 없이 흡수되었다.
무언가 몸속으로 빨려들어 오는 이상한 기분.
이후 연속적으로 메시지창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딱! 딱! 됐……다…….”
전에 비하면 완전한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 것이었다.
해골밖에 없는 턱이 움직이며 부딪히는 소리가 매우 거슬렸지만, 말하는 것 또한 가능하였다.
“딱. 딱. 정…… 보…… 창!”
[이름-이민혁]
[직업-스켈레톤-네크로맨서][저주]
[보유 스킬]
[내 손 안의 무기고 LV1-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할 수 있습니다.]
[시체 흡수 LV1 (특별)-마정석에 각인된 스킬. 언데드 종족만이 사용 가능]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네크로맨서의 직업을 얻게 된 것이었다.
네크로맨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였지만, 대충이나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시체를 조종하고 폭파시키는 대규모의 군대. 죽어도 다시 살아나 공격하는 정말 상대하는 데 있어서 짜증 나기 그지없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경우였다.
마나만 충분하다면 죽여도 죽지 않는,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엄청난 군대를 얻을 수 있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직업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마정석을 얻었다.
그리고 무기고 스킬 또한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잘 활용한다면 엄청난 이점이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선은 저주를 푼다면 말이지…….’
시체 흡수를 잘 이용한다면, 나의 군대. 나만을 위해 복종하는 언데드 부하들. 이들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퀘스트를 해결하고 육체를 얻거나 저주를 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해골을 달그락거리며 동굴을 빠져나왔다.
콰광쾅쾅! 콰광!
새카만 먹구름으로 가득 메워진 하늘이 분노라도 하듯 무수한 벼락이 내려치고 있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둠이 깔린 분위기는 음산함이 가득했다.
“딱……! 아…… 메인 퀘스트!”
그 순간 메인 퀘스트에 대해 생각이 났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일주일 뒤에 시작된다고 했던 그 퀘스트가 설마 지나진 않았을지, 이런 모습에서 한 번 더 페널티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이 몰려들었다.
[메인 퀘스트-다가오는 전쟁을 진행합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다가오는 전쟁]
[모든 몬스터는 동시에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퀘스트는 3일 후에 진행되며 그 안에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그룹의 인원수에 맞게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약간이지만 분명 퀘스트의 내용이 변했어…….’
걱정스러운 맘에 퀘스트를 열어 확인하자 그 내용이 조금이지만 변해 있었다.
플레이어로 지칭되어 있던 용어가 몬스터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단어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남은 기간이 3일이라는 것.
일주일 남아 있던 기간을 생각해 보면 이 상태로 4일이라는 시간 동안 정신을 잃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긴 이 모습으로 전쟁을 한다면 인간의 편에 서기는 어렵겠지.’
당연히 인간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지만, 지금의 뼈다귀밖에 없는 해골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언데드가 분명해 보였다.
괜히 인간의 편에 섰다가 몬스터로 착각하여 공격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역시 인간의 편에 서야겠지?’
하지만 당장의 변한 퀘스트의 내용은 몬스터의 입장에서 적혀 있었고, 그 내용을 유추해보았을 때 전쟁에서 몬스터의 편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후, 일단은 생각하지 말자…… 저주를 풀거나 몸을 얻는 것이 먼저야…….’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고민한들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지상의 모든 언데드여, 나 아자토스가 명령한다. 인간과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나를 위해 싸우고 또 싸워라!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할 음침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자토스? 아자토스라면 분명…….’
[아자토스에 의해 소환됩니다.]
‘뭐?’
생각할 틈도 없이, 동굴 앞의 서 있던 민혁은 블랙홀에 빨려가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