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57화
“이것 좀 드세요.”
채비를 모두 마친 후 떠나기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때.
한석이 다가와 손가락으로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잠깐 앉아도 되죠?”
“네, 그럼요.”
“다들 긴장되는지 말이 없어서요. 아 참, 지금까지 먹은 게 없는데 괜찮으세요? 이거라도.”
다들 피곤에 지쳐 힘들어 보였기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나에게 온 모양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며 권하였다.
“던전 탐사 오기 전에 미리 구해 놓은 육포에요. 입에 맞으실 거예요.”
“아, 예. 감사합니다.”
심하게 긴장을 해서인가.
이곳에 들어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었지만, 그동안 먹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한석이 건네준 육포를 받아들자 그제서야 공복감이 밀려왔고, 감사 인사를 건네며 받아들었다.
“후, 세상이 변해도 사는 건 쉽지 않네요.”
그가 준 육포를 우물거리고 있던 와중 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넸다.
한숨을 길게 내쉬는 그를 계속해서 바라보자, 이내 다시 그가 말을 이어갔다.
“민혁 씨는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 군인이었죠?”
그 누구라고 군복을 입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기에 숨길 이유는 없었다.
“네.”
“명찰에, 마크에, 너무 화려한데. 전역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나 봐요?”
“전역 당일…… 그렇게 됐습니다.”
“…….”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아졌다.
한석 또한 분위기를 읽은 듯 아무런 말 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 또한 대한민국의 남성이었기에 전역 날 전역을 하지 못한 아픔에 대해서 크게 공감을 해주는 듯하였다.
“저는 의경 출신이긴 하지만 그 상실감 왠지 알 것 같네요…… 사회에 나가면 원래는 무엇을 하려고 했어요?”
“……저는.”
그의 질문에 입을 떼려는 순간 다시 한번 한석이 질문했다.
“생각 안 해봤죠? 다들 그래요.”
“……한석 씨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동물원에서 일했어요. 실제 세상이 변하기 전에 직업도 사육사였어요. 동물들을 엄청 좋아해서요.”
현재 그가 조련사의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의미 없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계속해서 한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한석의 시선이 고정된 것은 얌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피노였다.
작고 귀엽지만, 매우 똑똑해 말을 잘 알아듣고 생김새 또한 독특해 동물에 관심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좋아할 만했다.
“만져 보셔도 돼요. 이 녀석 물거나 하지 않거든요.”
좀 전에도 피노를 만져봐도 되냐는 그의 물음이 있었기에, 그가 피노에게 관심을 표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닌 듯 그의 시선은 피노에게 떨어질 줄 몰랐고, 아무래도 주인인 나의 눈치를 보는 듯하였다.
워낙 순하고 말을 잘 듣는 피노였기에 그에게 만져도 된다고 한 것이었다.
“저, 정말요? 피, 피노야~”
“끼유욱.”
한석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쁜 표정으로 피노를 향해 다가갔다.
현지의 품을 제외하고는 나 역시 피노를 안으려 할 때면 버둥거리는 탓에 포기하였지만, 한석의 직업이 사육사였다는 말에 왠지 궁금함이 몰려들었다.
확실히 일반인과는 다르게 요령 있게 피노와 놀아주는 한석.
그가 피노를 안는 것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떠오는 것이 있었다.
“혹시, 피노가 어떤 동물인지 아시나요?”
피노의 정체.
생김새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 모습과는 완전하게 달랐다.
무엇보다 알에서 태어났기에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좋은 검을 얻었던 신우를 보며 처음에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활발하고 발랄한 피노의 모습에 모두 떨쳐버린 이후였다.
하지만 왠지 전문가가 앞에 있자, 혹여나 알까 하여 물어본 것이었다.
“음, 글쎄요. 생김새를 보면 개나 고양잇과 같기는 한데…… 몸은 작지만 곰 같기도 하고, 코도 길어지면 코끼리의 그것과 비슷하고, 눈은 코뿔소 같기도 하고, 발은 호랑이에 꼬리는 황소의 꼬리와 비슷하기도 하고…….”
“……네? 장난치시는 건가요?”
“……하하. 죄송해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귀여우면 됐죠.”
민망한 듯 대충 웃음으로 무마시키는 한석을 보며 실망했지만, 상관없었다.
피노의 정체를 알게 될까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찌 됐든 같이 여행을 하는 파트너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피노가 무엇이든 상관은 없었다.
“그나저나 피노 이 녀석 아무것도 먹질 않는데, 문제가 있을까요?”
“먹지를 않아요?”
“네, 태어난 후부터 무언가 먹는 걸 본 적이 없어서요.”
“음, 그건 심각한데…….”
피노의 정체를 파악하진 못했으나 어찌 됐든 그가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던 것은 피노가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음식을 건네봐도 그 무엇도 입에 넣지 않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억지로 먹여보려 시도도 하였지만, 그 또한 바로 뱉어내곤 했던 것이다.
“몸에 이상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혹시 먹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태어난 지가 얼마 안 돼서…….”
“음, 아뇨.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거예요. 혹시 피노가 좋아하는 게 있어요? 좋아하는 행위를 하면서 음식 먹이는 걸 시도해 보면…….”
“피노가 좋아하는 거요?”
왠지 동물 병원에라도 온 듯 진지하게 상담해 주는 한석을 보며 생각을 해보았다.
피노가 좋아하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이 녀석, 총기를 좋아하긴 해요.”
“……네?”
피노가 좋아하는 것, 당장 떠오르는 것은 내가 가진 총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태어난 그 날부터, 총기만 보면 졸래졸래 따라오고 잠시 한눈판 사이에 총구에 입을 넣고 있는 듯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위험해서 보이면 그 즉시 빼앗고 있긴 한데, 이 녀석 주인을 닮았는지 총기들만 보면 환장합니다. 하하하”
“음…… 혹시.”
“네?”
“아, 아닙니다. 그래도 총기는 위험하니 피하는 게 좋겠네요.”
한석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내 말끝을 흐리며 주의를 주었다.
총기를 좋아하는 피노였지만, 위험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수긍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휴식은 이제 다 취한 것 같은데 모두 출발하실까요?”
“네, 출발하죠. 준비 다 됐습니다.”
“저두요.”
멀지는 않지만 각자 흩어져서 눈을 감고 있거나 명상을 하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잠깐의 짧은 휴식이었지만, 그동안 긴장을 해서인지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고, 다들 한층 가벼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길이 단순해서 나가는 길을 찾는 것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나와 대화를 하기 이전에 주변을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한석은 아무래도 길을 찾기 위함이었던 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가 말한 대로 입구에서 만났던 골렘을 제외하고는 주변에는 몬스터도 없었을뿐더러 길 또한 좁고 단순해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역시, 문제는…….”
채영이 말끝을 흐리며 작게 혼잣말을 했지만,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
출구를 지키고 있을 보스 몬스터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사히 나갈 수 있게 기도해야죠…….”
찬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그럼 출발합시다. 혹여나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모두 긴장하세요.”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앞으로 나아가자 모두가 발소리를 죽이며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사방을 자신들만의 무기를 들어 올린 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것이었다.
* * *
“여기가…… 끝이에요.”
주변을 샅샅이 경계하며 이동했지만, 그 어디에도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길을 따라 끝에 도달했고, 남은 장소는 이곳이 마지막이었다.
그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이곳으로 나가면 출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도…….’
모두 준비가 되었냐는 의미로 얼굴을 쳐다보자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신호로 앞으로 나아갔고, 그곳엔 엄청나게 넓은 거대한 공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공사 현장을 유추시키는 거대한 철덩어리들과 깨진 유골함들이 사방팔방에 난잡하게 위치하고 있는 장소.
그 건너편엔 출구로 보이는 입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저기, 저기가 출구 같아요!!”
매우 넓은 장소였지만 그 어디에도 몬스터로 보이는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기에, 입구를 발견한 찬미가 흥분한 듯 소리쳤다.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기세로 달려가려는 그녀를 다급하게 붙잡으며 제지했다.
“자, 잠시만요. 저기…….”
손목을 붙잡자 그녀 또한 이상함을 느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모두의 시선은 한곳으로 쏠려 있었고, 그녀 또한 그곳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
거대한 철덩어리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듯, 천천히 걸어 나온 그것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이곳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몬스터인가……?”
“사람?”
분명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은 자신의 몸보다도 두 배는 커 보이는 로브를 뒤집어쓴 채, 얼굴을 가리고 있어 그 모습을 자세히 확인할 수 없었다.
어떠한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은 채 맨손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 정체를 확인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워 보였다.
“저기…… 저기요!”
채영이 용기를 내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고,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오오라가 그의 몸에서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모, 모두. 전투 준비!!”
왠지 모를 위압감에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했고, 다급한 외침에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흩어지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나 또한 유탄발사기가 장착된 K2 소총을 녀석을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행동이나 분위기, 모습은 평범하지 않았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온몸이 쭈뼛거릴 정도였다.
“여차하면 제가 공격을 시도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총공격 부탁합니다.”
“네.”
“예. 알겠습니다.”
정보가 없었기에, 녀석이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에 총공격을 쏟아부을 계획을 미리 짜둔 상태였다.
녀석의 모습을 세세하게 관찰하며 유탄발사기에 방아쇠에 손을 두려는 그 순간.
거대한 철덩어리들을 향해 놈의 손끝에서 오오라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