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56화
“으, 으악!!”
순식간에 날아간 한석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한석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고, 채영은 그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한걸음에 다가갔다.
쿵. 쿵. 쿵.
온몸이 철이나 돌 따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물.
움직이는 것조차 위압감이 드는 저 녀석을 단순한 공격으로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총알이나 화살이 먹히지 않았기에 꺼내 든 것은 유탄발사기였다.
K2에 미리 장착해 두었던 유탄발사기에 일자형 버튼을 눌러 잠금을 해제하고 총열을 통째로 정면으로 밀어서 약실을 개방한 뒤 그 안에 유탄을 넣은 뒤 다시 총열을 당겨 닫았다.
철컥.
정상적으로 유탄이 장전되는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묵직하지만,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현지가 있었다면 녀석의 약점을 탐지할 수 있었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더군다나 마정석을 이용해 더욱 화려하고 빠르게 전투를 하는 이들 역시 속수무책.
지금 당장 믿을 것은 이 무기들뿐이었다.
‘이거라면…….’
퐁~
그순간 다시 한번 주먹을 내뻗으려는 골렘을 향해 K2 소총의 탄창을 손잡이처럼 잡고 발사기 밑에 달려 있는 방아쇠를 당겼다.
K2 소총의 손잡이와 달리 탄알집은 너비가 넓고 네모 넓적하여 손아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방아쇠를 거의 손가락 끄트머리로 당기게 되어 불편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발사되는 유탄.
쿠궁쿵쿵.
정확히 날아간 40㎜ 유탄은 거대한 덩어리에 직격했고, 그 순간 각각의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거대한 돌덩이들이 분리되며 떨어졌다.
강한 폭발음과 충격파가 사방에 울리며 먼지를 흩뿌려 댔다.
‘공격이 통했어……!’
어느새 어느 정도 회복을 마친 한석과 채영, 그리고 찬미와 시은까지 강한 유탄의 효과에 놀란 듯 일제히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치웠…… 나?”
두두두두두.
쿵. 쿵. 쿵.
모두 긴장감을 유지한 채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은 그때, 한석이 널브러진 돌덩이들을 보며 작게 혼잣말을 했다.
그 순간 마치 자석이 서로를 끌어당기듯, 요란스럽게 흔들리던 그것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엄청난 크기에 걸맞게 무게 또한 상당한 듯 돌덩이 하나하나가 붙을 때마다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완전히 합체한 그것은 처음 만났던 온전한 골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 도망가요!!”
모두가 멍하니 믿기 힘든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찬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어떤 표정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그 돌덩이는 느리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뿜으며 우리를 향해 천천히 이동했고, 팔의 형상을 한 그것을 다시 한번 우리를 향해 내뻗으려 들어 올렸다.
으쩌저저적.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렘의 반대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둥. 둥.
마치 우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 있듯 골렘은 도망가는 우리를 향해 육중한 몸을 이동했고, 녀석이 한 발 한 발 지면에 닿을 때마다 지면이 흔들리고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속도가 느려요! 충분히 도망갈 수 있어요! 쉬지 말고 뛰어요!”
가장 선두에서 달려가던 채영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우리와 골렘을 확인했고, 그녀의 말대로였다.
매우 강력하고 거대한 몸집으로 파괴력을 가진 녀석의 가장 큰 단점은 속도가 현저하게 느리다는 것이었고, 도망을 마음먹고 달리는 우리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굳이 채영이처럼 눈으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동을 위해 지면에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약 3초 정도의 간격이 있었기에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였다.
* * *
“허억, 허억, 자, 잠시만요. 더 이상 쫓아오지 않고 있어요.”
얼마나 달렸을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앞을 바라보며 한참을 달리던 그때, 숨이 가쁜 듯 신음을 토해내며 한석이 저 뒤에서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뒤를 바라보자, 거대한 위압감을 내뿜던 그 돌덩이는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빠른 속도로 도망을 쳐서 따돌린 것인지, 그저 골렘이 우리를 잡는 것을 포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더 이상 위협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일단, 휴식을 좀 취하죠.”
주위에는 어떠한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고, 위협이 될 만한 무엇도 없어 보였다.
모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제야 하나둘 모여들었고, 자리에 털썩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하죠? 입구는 저 녀석이 막고 있어서 그쪽으로는 나가지 못할 것 같은데…….”
“…….”
“…….”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채영이 물었지만,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가 골렘을 피해 달아난 것은 내부였고,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한들 녀석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웠기 때문이다.
“입구로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무엇보다 골렘을 쓰러뜨린다고 한들, 들어온 입구를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바로는, 인스턴스 던전의 특성상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든 생각이었다.
그들 역시 인스턴스 던전을 경험한 적이 있는 듯 내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석 씨는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던데, 뭐 아는 정보 있나요?”
모두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한석을 향해 질문하였다.
항상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피노에게 관심이 있는 듯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였으며, 무엇보다 예전 이곳의 약도를 구해올 만큼 이곳에 대해 가장 정보가 많아 보였기에 그에게 질문 한 것이었다.
“글쎄요…… 이 던전이라면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지만, 이런 비밀 공간까지는…….”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자신감 없는 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그가 의식한 듯 입을 열었다.
“아!”
“……?”
갑작스러운 그의 단말마의 외침에 놀라 모두가 한석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예전에, 그러니까 세상이 변하기 전에 납골당이었던 거로 알고 있어요.”
“…….”
“아주 큰 납골당이요…… 표정이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무언가 해결방안을 제시할 줄 알았던 만큼 표정에서 티가 났는지 그가 되물었다.
그가 말한 대로 납골당, 즉 인스턴스 던전에서 해골 종류의 몬스터들이 나온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정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진 곳은 시은이었다.
해골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던 ‘본버닝’을 혼자서 쓰러뜨릴 만큼 강력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녀.
비밀이 많아 보이지만 시은의 강력함을 직접 본 만큼 왠지 그녀라면 골렘 정도는 간단하게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여 본 것이었다.
“…….”
생각에 빠져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나의 시선을 느낀 듯 시은이 내 쪽을 쳐다보았으나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 순간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도움을 줄 생각은 없는 건가…….’
사실 우리가 골렘에게 당하던 그 순간부터 그녀가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지켜보았지만, 그녀 또한 잘 몰랐는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무언가 사정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어 보였다.
“역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 말은?”
“출구를 찾아봅시다.”
아무리 고민해 봤자 해결방법은 없었다.
결국, 이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출구를 찾는 것이 유일해 보였다.
어떤 인스턴스 던전이든 출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어딘가에 반듯이 출구가 있을 것은 확실해 보였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보스 몬스터가 있지 않을까요……?”
“…….”
보스 몬스터, 항상 던전의 출구에는 일반 몬스터보다 더욱 강한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골렘이 던전 안의 일반 몬스터였다면, 보스 몬스터는 골렘보다 더욱 강력할 것은 분명했고, 골렘조차 상대하지 못한 우리가 과연 그것을 물리칠 수 있을지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우선 휴식을 취하면서 정비를 하고 출발합시다.”
* * *
출구를 찾자는 의견에 서로가 갑론을박하던 그들은 회의 끝에 결국 모두 동의하였다.
그들 또한 뾰족한 수가 없었고, 나가기 위해서는 그 경우의 수 말고는 보이지 않았기에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 가지고 있는 코인들은 전부 스킬을 올려 두도록 하죠.”
“네…… 코인을 아낄 상황은 아닌 것 같네요.”
의견이 하나로 모이자 그제야 하나둘 행동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두가 강해지는 것이었다.
가장 빠르고 손쉽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는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것.
가지고 있는 코인을 소모하여 스킬의 레벨을 올림으로서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모두가 코인이 필요했기에 마을에서는 화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스킬의 레벨의 올리기 위해서는 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스킬을 향상시키면 시킬수록 더더욱 많은 코인이 요구되었고, 때문에 일정량의 코인만을 자신의 스킬에 투자하고 일상생활을 위해 코인을 모아두는 경향이 있었다.
“하…… 어떻게 모은 코인들인데…….”
그 때문에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는 그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메인 퀘스트-다가오는 전쟁을 진행합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다가오는 전쟁]
[모든 플레이어는 동시에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퀘스트는 7일 후에 진행되며 그 안에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그룹의 인원수에 맞게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
그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지며 예상치못한 퀘스트가 나타났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등장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전쟁.”
무엇보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의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전쟁.
단 두 글자만으로도 경각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겪어본 이상 퀘스트 실패로 인한 페널티의 심각성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퀘스트 실패 시 전과 같은 페널티를 받게 될지는 의문이었으나,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메인 퀘스트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어서 빨리 여기를 나가야 할 이유가 간절했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화를 입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빨리 준비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