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어다니는 무기고-54화 (54/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54화

“이, 이걸 어디에서…… 틀림없는 현섭 님의 인장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퀘스트를 진행하시는 건가요?”

“……네. 뭐 비슷합니다. 정식 퀘스트는 아니고 물건을 조금 가져올 게 있습니다.”

“무, 무엇을 가져오는 건가요? 저희도 알 수 있을까요?”

“뭐, 상관없겠죠. 마정석을 가져와야 합니다.”

“……잠시 상의를 조금 해봐도 되겠죠?”

“네. 그러세요.”

그들은 민혁을 뒤로한 채 빠르게 모여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해골 병사 던전의 몬스터들 수준이 급격하게 올라갔다던데. 괜찮을까?”

“그래, 마나를 사용하는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

“아! 그럼 마정석을 가져와야 한다는 게!”

그들은 무언가 깨달은 듯 그제야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해골 병사 던전은 전에도 몇 번 가봤으니 민혁 님과 같이 가볼까요?”

“무엇보다 현섭 님 정도의 인물에게 퀘스트라니, 엄청난 게 나올지도 몰라요!”

“음…… 그럴까 여차하면 시은 님도 있으니까…….”

최찬미가 옆에 후드를 쓴 여성을 힐끔 쳐다보자,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채영과 최찬미가 가까이 다가왔다.

“결정했습니다.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준비를 한 후 30분 후에 바로 던전으로 출발할게요.”

“네, 저기…… 후드 쓴 저분도 일행인가요?”

“아, 네 시은 님이세요. 이 분도 마을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껏 혼자서 여기까지 헤쳐나오신 분이에요.”

“호, 혼자서 말입니까? 안녕하세요. 민혁이라고 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후드를 푹 눌러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시은은 간단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건방진 것인지 숫기가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고수의 아우라를 풍겼기에 어떠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곧장 던전을 향해 떠나려는 찰나 찬미가 다가와 무언가 질문했다.

“현섭 님과는 어떤 사이인가요?”

“어쩌다 만난 사이입니다. 저도 두 번밖에 안 봤습니다.”

“아…….”

무언가 기대한 듯 그녀의 질문에 모두가 시선이 집중되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나온 대답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듯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그 던전에 있다는 마정석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가요?”

“특별한 능력이요?”

“네. 마정석을 구한다는 게 기존의 마정석과 교체하려는 게 아닌가 해서요. 굳이 교체하려고 한다면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아, 사용하려는 건 맞는데. 저는 마정석이 없습니다.”

“아, 네…… 네?”

“네?”

“네?”

그 순간 이동하고 있던 모두가 일제히 뒤에 있던 나를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 * *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려는 게 분명해요. 모두 힘을 모아 헤쳐나가야 합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보요. 섣불리 선포하면 혼란이 가속될 뿐이오.”

심현섭을 대신하여 마을의 대표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이대근이 언성을 높이며 주장하자 곧바로 반대편의 사내가 턱을 괴며 반박하였다.

남쪽 마을의 수장이었다.

차가운 외모에 얇은 눈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열을 내는 이대근이 귀찮은 듯 쳐다보았다.

“이봐 애송이, 예전에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될 때와 현상이 똑같다니까? 말을 못 알아듣나?”

“하하하, 어르신 노망이라도 드신 거 아닙니까? 그저 몬스터들이 생겨났을 뿐입니다!”

“뭐라고!? 네놈이 죽고 싶은 것이냐?”

“두 분 다 그만하시지요.”

이대근이 책상을 발로 차며 검을 뽑아 들자, 회의를 주도하던 그가 중재를 하였다.

그 역시 어느 쪽 편을 들어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메인 퀘스트가 시작한다면 당연히 모두가 연맹을 맺어 헤쳐나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대륙 전체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 분명했다.

대륙 전체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급속도로 강해지기 시작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아직은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대, 대근 님! 큰일입니다.”

“회의 중이다. 무슨 일이냐!”

회의장의 문이 벌컥 열리며 급하게 한 사내가 뛰어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며 급한 일인 듯 숨도 고르지 못하고 이야기하였다.

“마, 마을에 몬스터 떼가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뭐? 몬스터들이야 병사들이 해치우면 그만 아니냐?”

“그, 그게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수십, 수백 마리나 됩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골렘으로 추정되는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마을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골렘이라고?!”

* * *

[인스턴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시너지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적용 중인 시너지 - 마법사(2) 최대 마나 15% 증가 해당 직업군에만 적용]

[군인(1/2)]

[단검(0/1)]

“민혁 님은 일단 앞으로 나서지 마세요. 제가 보호해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해골 병사여 나의 동료가 되라!”

한석이 해골 병사에게 스킬을 쓰자 아군이 되었다.

조련사인 한석의 특수한 스킬로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만능은 아닌 듯 스킬에 성공할 때 보다 실패할 경우가 많았지만 한 번에 두 마리의 몬스터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듯하였다.

“땅의 여신이여, 악의 무리를 처단할 힘을! 속박!”

슈슈슉-

해골 병사들이 느린 걸음으로 검을 질질 끌며 다가오자 최찬미가 마법 주문을 외쳤다.

땅에서 나무줄기가 솟구쳐 해골 병사들을 순식간에 감싸 움직임을 봉쇄했다.

뒤이어 후드를 깊게 눌러쓴 시은이 한 번에 세 개의 화살을 장전하여 명중시켰다.

‘한 번에 세 마리를 처리하다니…… 지금껏 혼자 살아남았다는 게 거짓은 아니구나.’

시은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신경 쓰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위험한 순간에도 민혁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손발이 척척 잘 맞았기 때문에 무안할 지경이었다.

“이번에 좀 많은데? 열 마리가 한 번에 온다. 조심해!”

공격 자세를 취하며 앞으로 나오려 하자 한석이 손으로 살짝 막으려 하였다.

“민혁 님한테는 아직 무리에요. 뒤에 계시다가 몬스터의 생명력이 얼마 없을 때 공격하세요. 제가 몬스터들로 막아드릴 테니 겁내실 필요 없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온다! 대지의 여신이여 악의 무리를 처단할 힘을! 속박!”

던전을 들어오고부터 계속해서 이런 식이었다.

어째서인지 마정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부터 그들의 눈빛이 조금씩 변하더니 완전히 깍두기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취급…… 왠지 낯설지가 않은데…….’

순간 대피소에서 만났던 지혁과 경아가 생각이나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최찬미가 마법을 외치자 해골 병사들이 나무줄기에 꼼짝하지 못했다.

하지만 숫자가 많은 탓에 몇 마리의 해골 병사들이 속박에 걸리지 않고 걸어오고 있었다.

채영 쪽으로 해골 병사에 시은의 공격이 집중되자, 조련시킨 몬스터로 공격을 하고 있는 한석의 위치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이럴 땐, 이렇게 하면…….’

철컥, 철컥.

해골 병사가 한석을 내리치려는 순간 뒤에 있던 앞으로 나서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허공에서 휘둘러지는 순간, 불꽃이 피어오르며 화염의 궤적이 그려졌다.

궤적을 그린 총알은 그대로 눈앞의 해골 병사 두 마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불이 붙은 해골들에게 그대로 뛰어들었다.

탕. 탕. 탕.

다시 한번 불이 타오르고는 불꽃의 잔상을 그리며 해골 병사가 쓰러졌다.

“어……? 어! 어떻게…….”

“한석 님! 양쪽으로 공격 집중해 주시고 채영 님! 저한테 집중적으로 회복 몰아주세요!”

“네…… 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넋을 놓고 있던 그룹원들을 향해 민혁이 소리쳤다.

그대로 남은 해골 병사를 향해 돌격하였고 모두의 공격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공격을 피하며 물 흐르듯 순식간에 해골 병사들을 쓰러뜨리는 상황을 보며 모두 놀라고 있었다.

‘마정석 없이 싸울 수 있다니…….’

‘공격을 어떻게 저런 식으로…….’

‘적의 공격을 마치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아. 어떻게 피하는 거지?’

* * *

‘숨 돌릴 틈이 없어…….’

제대로 사냥을 시작하자 그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탱커 역할을 해왔던 한석이 본격적으로 탱커를 자처하고 나서기 시작했고, 몬스터들의 어그로 끌기를 담당했다.

몬스터들의 공격이 한석에게 집중되었지만, 숙달된 몬스터 조련으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고 약간의 피해를 받게 되었을 때는 채영이 그때그때 회복을 시켜주었다.

한석이 몬스터들에 어그로를 끌고 있을 동안 축복 버프를 받은 민혁과 최찬미와 시은의 원거리 공격을 통해 몬스터를 빠르게 해치울 수 있었다.

그룹의 효율이 증가하고 안정됨에 따라 사냥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예사롭지 않았는데, 체력도 회복 속도도 말도 안 돼. 현섭 님에게 특별한 아이템이라도 받은 것일까?’

한석 외에도 채영이나 최찬미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오늘 안에 던전 클리어까지 갈 수도 있겠는데요?”

최찬미가 신이 난 듯 억양을 높이며 이야기했다.

마정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미안함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내심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짐이 되기는커녕 그룹을 리드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예상보다 더욱 빨리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정석을 가진 몬스터는 보스방에 있다고 했죠?”

“네,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는 보스방에 있다고 들었어요.”

사냥에 익숙해지자 이제는 소수의 몬스터 무리는 대화를 하면서도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 * *

“잠깐 회복을 하고 움직이자.”

“그래, 좋아.”

털썩.

한 번도 쉬지 않고 사냥을 해서인지 모두 조금씩 지쳐 있었다.

주위의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나서 회복 겸 휴식을 취하기 위해 중간중간 쉬어주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처음 그룹 사냥을 하는 민혁은 알지 못했다.

그룹원들 역시 이런 빠른 사냥에 익숙지는 않았지만, 나쁠 것은 없었기에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체력이 약한 채영과 찬미가 더 이상은 힘들었는지 사냥이 끝나자마자 주저앉아 버렸다.

휴식을 취하기로 정해지자 시은은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고, 한석은 자연스레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제 곧 보스방에 도착할 거야.”

“이곳 보스 몬스터가 아마 해골 기사였나?”

“응, 맞아. 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니 우리 정도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어.”

“빨리 해치우고 전진하자!”

민혁을 제외한 그룹원들 모두 이곳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닌 듯했다.

실제로 던전에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쉬는 포인트나 몬스터들이 나오는 포인트를 구석구석 잘 알고 있었고, 지도까지 구한 한석을 보면 꽤나 치밀하게 준비한 듯하였다.

휴식이 끝나자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보스방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는지 더욱더 사냥에 속도를 올렸다.

쉴 새 없이 덤벼드는 몬스터를 체계적으로 공격하였다.

한석이 몬스터의 유인과 근접 공격을 담당했고, 그사이 찬미와 시은 그리고 민혁의 후방 지원 공격이 이어졌다.

사냥이 끝나면 채영이 회복을 시켜주었다.

한석이 말한 그대로 얼마 가지 않아 보스방으로 보이는 장소가 등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