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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53화 (53/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53화

끼이익-

더 이상 남은 마정석이 없다는 이야기에 넋이 나가 있을 무렵,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모습의 남성이 들어왔다.

“미안하네. 내 늦었구만.”

“여, 영감님…….”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난 그는 현섭.

약탈자를 물리쳐 주면 마정석을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한 그 노인이었다.

그는 이대근과 매우 친한 사이인 듯 익숙하게 안부를 건네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사정을 모두 들은 것인지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다가왔다.

“음, 미안하게 됐구만. 마정석이 남아 있는 게 없다니…….”

“……그럼. 저는?”

“내 약속한 것이니 안 줄 수도 없고, 음…….”

그는 고민하는 듯 눈치를 힐끔 보더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옳거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네.”

“네? 어떤?”

“직접 구하는 것일세!!”

“……예?!”

황당함에 빤히 쳐다보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해하라는 듯이 어깨를 토닥였다.

“자네와 약속한 것은 마정석을 주기로 했던 거 아닌가? 두 개나 줬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

“허허허. 걱정하지 말게. 그래도 내 그리 야박한 인간은 아닐세.”

“그럼 직접 구하라는 말은 어떤?”

“말 그대로네. 자네가 직접 구하면 되는 것이야.”

“……제가 그 방법을 알면…….”

“마정석이 있는 던전을 알고 있네.”

“네? 던전이라면?”

“맞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인스턴스 던전. 우리는 줄여서 그냥 ‘던전’이라고 부르고 있다네.”

“던전에서 마정석이 나온다는 말입니까?”

“아닐세. 안타까운 일이지만, 초창기에 우리 마을 사람 중 던전에 갔다가 목숨을 잃은 자가 있었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마정석을 가지고 오라는 말입니까?”

“맞네.”

“누군가 이미 가지고 가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아직 그곳에 있는 건 확실하네. 인기가 많던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는데 그 누구도 그곳에서 마정석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네.”

“그럼 간단하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며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는 것은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였다.

그곳에 들어가 돌멩이 하나 주워오는 것쯤 문제도 아니었다.

어째서 그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흔쾌히 승낙하려는 순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간단하지 않을 수 있네. 그곳은 지금 출입을 막아놓은 던전이네.”

“출입을 금지…… 시켜요?”

“언젠가부터 최저로 등급을 매겨놓았던 그곳의 몬스터들의 수준이 크게 늘어났네.”

“몬스터가 강해졌다는 겁니까?”

“……우리는 몬스터가 마정석을 얻은 것이라 추측하고 있네, 그래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그곳의 출입을 막아둔 것이네.”

“……몬스터가 마나를 사용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직접 한 이야기니 틀림없을 걸세.”

“…….”

“그곳에 가서 마정석을 얻은 녀석을 물리친 후. 녀석의 배를 갈라 마정석을 채취해 오면 된다네.”

“배를 갈라야 하나요……?”

“아마 그럴 걸세. 우리는 녀석이 마정석을 우연히 삼킨 것으로 추측하고 있네.”

“……우연히 흘린 마정석을 우연히 먹었는데, 하필 녀석이 마나를 활용할 줄 아는 녀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네요.”

“허허허, 자네 주변을 둘러보게 말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나?”

“좋습니다. 방법이 없으니. 제가 가겠습니다.”

“알겠네. 내 특별히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놓겠네. 출입증을 보여주면 통과시켜 줄 걸세.”

* * *

수련을 결심한 현지와 신우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을뿐더러 그들이 수련을 받는 동안 나 역시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곧바로 노인을 찾기 위해 왔던 마을의 중앙 건물로 이동했다.

“던전에 같이 가실 치료 계열 스킬을 가지신 분, 구합니다!”

“방어 계열 스킬 가지신 탱커분 모집합니다!”

저번에는 그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살펴보니 그룹원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런 식으로 그룹원을 구하는구나.’

원하는 조건의 그룹원을 큰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을 지나 한번 쫓겨난 적이 있던 중앙 건물에 들어왔다.

건물의 앞에서 직접 사람을 구하는 그룹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한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중앙 건물의 1층을 통해 전단지를 붙여 그룹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마을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능력이나 스킬에 따라 수준 차이가 매우 심하고 대부분의 원하는 구성원이 달랐기에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전단지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전단지에는 던전의 정보와 아이템배분 원하는 직업군 등 상세한 정보가 적혀 있어서 쉽게 원하는 그룹을 찾을 수 있었다.

‘전단지의 수수료는 1시간에 50코인…… 세상이 변해도 세금을 뜯는 방법은 더욱 진화하는구나.’

전단지를 천천히 읽어보며 게시판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전단지가 있었지만, 원하는 내용을 매우 상세하게 적어놓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스킬 레벨 5 이상. 전투 계열. 빠른 모집]

“어, 이거 딱 인데, 어디 보자.”

화르르륵.

원하는 전단지를 찾아 손에 잡으려 하자 그 순간 불꽃이 타오르며 타버렸다.

전단지에 마법이 걸려 있는 것으로 그룹원 모집이 완료되면 이런 식으로 전단지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에이씨! 그룹 구하는 것도 쉽지 않네. 수수료가 아깝긴 해도…….”

구성된 그룹에 들어간다 하여도, 내가 원하는 던전은 확고했기에 그들이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조금 투자를 해서 빠르게 원하는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 더욱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곧장,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 차례가 다가와 카운터의 앞에 서자 인사를 건네 왔다.

어제는 분명 현섭을 찾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쫓아내던 직원이었지만, 나를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영업용 미소를 밝게 띄우고 있었다.

“그룹을 구하고 싶은데요.”

“네, 한 시간에 수수료 50코인입니다.”

“한 시간 하겠습니다.”

“네. 이거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50코인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자, 그녀가 회수하며 종이를 건네주었다.

그룹 모집의 이유, 원하는 구성원, 코인의 배분, 아이템의 배분 등 세세하게 나눠진 항목들을 체크하게 되어 있는 종이였다.

카운터의 한편에 놓인 펜을 이용해 하나하나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룹 모집의 이유는 사냥, 필드와 던전…… 던전에 체크, 코인 배분은 자율…….’

“여기 있습니다.”

“네, 바로 뒤편의 게시판에 모집 시작됩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 갱신하고 싶으시면 게시물에서 연장이 바로 가능합니다. 연장하지 않을 시 자동으로 게시물은 사라집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와의 대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다리고 있던 다음 사람이 급한 듯 빠르게 들어왔다.

‘곧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도 오질 않네…… 연장을 해야 하나…… 아니면 차라리 신우나 현지 씨가 수련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갈까…….’

부착했던 게시물에 적어놓았던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기도 벌써 한 시간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코인을 사용하면 금방 사람이 모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잠시, 단 한 명의 인원도 오지 않았다.

“인스턴스 던전의 이름을 안 적어놔서 그런가…….”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사냥을 진행할 던전을 적어놓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마을에서 금지시켜 놓은 던전이었기에 함부로 적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저기…… 요.”

차라리 신우와 현지를 기다렸다 가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자 사제복을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룹 구하는 게시물 보고 왔는데 저희와 함께 가시지 않을래요? 마침 저희가 딱 한 분이 부족하네요.”

“엇, 아, 예, 예. 안녕하세요.”

그녀의 뒤에는 세 명의 인원이 어색한 인사를 건네며 서 있었다.

“반가워요. 방어 마법과 치료 마법을 주로 수련한 채영이고, 이 친구는 땅 계열 속박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최찬미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민혁이라 하고 총기를 사용한 원거리 공격을 합니다.”

내가 자기소개를 하자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놀라 쳐다보며 이야기하였다.

“총을 사용하신다고요?”

“네? 아…….”

“아, 죄송합니다. 다짜고짜 흥분했네요. 제 이름은 한석. 직업은 조련사입니다.”

“조련사요?”

“생소하죠? 흔한 직업은 아니지만, 동물이나 몬스터를 길들여서 전투하는 직업입니다. 너무 강한 녀석들은 못 길들이지만 비슷한 수준이라면 어렵지 않게 길들일 수 있어요.

한석은 민혁의 반응이 처음이 아닌 듯 능숙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얌전하게 품 안에서 자고 있는 피노를 향해 시선이 이동하였다.

“그 친구는…… 애완동물인가요?”

“네. 뭐 비슷합니다.”

“마, 만져 봐도 될까요?”

그는 흥분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며 애원하는 표정으로 피노와 나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동물을 매우 좋아하는 듯한 그 모습에 허락하려는 그때 채영이라고 소개했던 그녀가 앞으로 나와 제지했다.

“죄송합니다. 곤란하시죠? 얘가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요. 그나저나 탐색할 던전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던데 어디로 가실 예정인가요?”

“해골 던전에 가려고 합니다.”

“…….”

나의 대답이 끝나자 모두 침묵하였다.

그룹을 모집하는 전단지를 보며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탐색할 던전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보며 새롭게 발견된 던전 또는 희귀한 던전을 발견한 누군가가 같이 갈 동료를 구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에 그들은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고, 표정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혹시, 마을에 온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어제 왔습니다.”

“……아!”

이쯤 되니 어색한 기류가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난감한 듯 난색을 표하는 무리는 어찌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러시죠?”

누구도 섣불리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자, 먼저 선수를 쳤다.

“……죄송합니다. 민혁 씨가 말씀하시는 해골 던전은 출입이 금지됐어요.”

“해골 던전이 인기가 있는 건 맞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요. 너무 오래된 정보를 들으신 것 같네요.”

채영이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나름 철저히 관찰하여 이곳까지 온 것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문제없습니다.”

“네?”

“허락을 맡았습니다.”

“허락을 맡았다는 게 무슨……?”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 이거면…….”

심현섭 그 노인이 작성해 주었던 그 출입증을 꺼내 그들에게 건네자, 채영이 받아들었다.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종이 쪼가리를 받아 든 그녀는 놀란 듯 동공이 커지며 그녀의 동료들에게 다급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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