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51화
이곳에서 노인을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여 곧바로 온 것이었다.
범상치 않은 노인이었기에 어느 정도 강자일 거라 예상은 하였으나 마을의 규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왠지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이 어색하였다.
“이제는 빨리 마정석만 받았으면 좋겠는데…….”
중얼거리며 중앙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의 건물 안은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한쪽에는 각종 난이도의 퀘스트 전단지가 가득 붙여져 사람들이 자유롭게 퀘스트를 골라 떼어가고 있었다.
다른 한 편에는 줄을 길게 늘어져 서 있는 사람들.
마치 은행처럼 여러 개의 카운터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던전 출입증을 일찍 사기 위해 온 것으로 보였다.
“개미굴 던전 출입증 3장이요”
“개미굴 던전은 이미 정원이 초과었네요.”
인기 있는 던전일수록 빠르게 정원이 초과하였고, 정원이 초과하면 출입증을 판매하지 않았다.
인기 있는 던전이란, 아무래도 코인과 보상인 아이템이 많이 드랍되고 상대적으로 약한 몬스터들이 나오는 던전들로 보였다.
일찍이 그런 던전들의 출입증을 사서 사냥을 하면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새롭게 발견된 던전이나 신생 던전을 발견하여 사냥한다면 빠르게 코인이나 아이템을 독점하여 크게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강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이 검증되지 않은 던전들은 피하였다.
새롭거나 신생 던전을 모험가들이 발견할 경우 대부분 마을에 신고하여 포상금을 받는 쪽을 택하였고, 대박을 위해 직접 탐험을 하는 자 중에는 목숨을 잃은 경우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었어? 다른 마을에서 찾아왔다던데?”
“응, 지금 현자님과 회담 중이래.”
카운터에 줄을 서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중앙 건물에 들어왔으나 노인을 찾기는 어려워 보였기에, 카운터에 물어보기 위해 줄을 선 것이었다.
꽤 길게 늘어진 줄에 지루하던 차에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 없는 척 귀를 기울였다.
“주현 님도 왔다며, 한번 보고 싶다 그렇게 아름다우시다던데.”
“말도 마, 여신이 내려온 줄 알았어.”
듣고 있던 나 역시 그녀의 얼굴이 궁금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주현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하였지만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생명력이 거의 떨어진 그때 눈앞이 흐려지고 피에 가려 실루엣만 본 것이 전부였다.
실루엣을 본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욱 보고 싶다는 갈증이 더해졌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시간이 지나 줄이 점차 줄어들고, 차례가 되자 카운터의 직원이 응대했다.
카운터의 여성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웃는 얼굴을 하며 응대해 주었다.
“심현섭이라는 노인분을 만나고 싶은데요!”
당당한 대답과 동시에 일대가 조용해졌다.
그와 동시에 곤란한 듯 애매하게 인상을 찡그리는 카운터의 직원.
“저 사람 뭐라는 거야?”
“웃기는 놈이네, 현섭 님을 만나겠다니.”
“마을에 처음 왔나 본데?”
‘뭐지…… 실수한 건가……?’
주위에서는 힐끔힐끔 쳐다보며 속닥거리는 사람들.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비꼬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위의 반응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생각외의 반응에 저 멀리 있던 신우와 현지를 바라보았지만, 구경을 하던 녀석들은 일행이 아닌 척 시선을 외면했다.
“죄송하지만, 나가주셔야겠습니다.”
당황하며 수습할 새도 없이, 경비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다가와 문을 가리키며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경비원들의 태도는 매우 공손하였지만, 여차하면 무력을 써 강제로 나가게 할 모양새로 칼집을 매만지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 * *
“……이제 어찌해야 하나…….”
반강제적으로 건물에서 나온 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곳에 오면 당연히 노인을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상황이 꼬여 버린 것이다.
그때 건물 안에 있던 신우와 현지가 그제야 뒤따라 나오며 다가왔다.
“너…… 너네……!”
“하하, 이 병장님 그 현섭이라는 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냈어요.”
“네?”
배신감에 따지려고 하려는 찰난 웃음으로 무마하는 신우와 현지가 정보를 들어온 듯하였다.
“그분은 건물의 2층에 있대요.”
빌딩이라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꽤 규모가 있는 건물인 만큼 층마다 용도가 다른 듯하였다.
1층에서는 인스턴트 던전의 출입이나 정보, 퀘스트 등을 관리하는 듯하였고, 2층부터가 마을의 중역들이 회의를 하는 데 사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들어갈 수는 없는 모양이에요.”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건물만을 바라보던 차에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건물의 살짝 열려 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저 정도 창문이면 피노가 들어갈 수 있겠는데?”
무작정 건물 밖에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찌 됐든 그 노인에게 우리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하면 되기에 든 생각이었다.
창문의 열린 틈은 사람은 못 지나갈 만큼 작은 공간이었지만, 몸집이 작은 피노라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피노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노인에게 우리가 도착한 것만 알려준다면 되는 것이었다.
“피노, 노인에게 다녀올 수 있겠어?”
“끄응?”
현지의 품에서 놀고 있던 피노에게 물어보니,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녀석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어…… 심현섭이라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영감님인데…….”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현지가 열심히 노인의 생김새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피노 또한 노인을 본 적이 없었기에 전혀 알아먹지 못했다.
“아! 편지, 편지를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요?”
“편지라면?”
“피노가 냄새를 잘 맡으니까 편지의 냄새를 따라가라고 하면 되잖아요!”
“아!”
그때 현지가 생각난 듯 소리쳤다.
냄새를 따라가라는 아이디어.
피노의 주인은 나였지만, 현지가 계속해서 피노와 붙어 있어서인지 나보다 피노를 더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어찌 됐든 그녀의 의견에 따라 품속에서 노인의 편지를 꺼내 피노에게 냄새를 맡게 해주었다.
“피노야, 이 냄새를 찾아가면 돼. 찾을 수 있겠어……?”
“끄웅, 끄웅.”
그제야 알겠다는 듯 피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노가 노인을 찾을 수 있을지는 걱정되었지만, 시도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노인에게 편지를 작성해 피노의 몸에 소지하게 한 뒤, 부탁하자 천천히 달려갔다.
“그럼, 피노 부탁할게.”
* * *
“음, 세 마을이 협력하자는 말인가?”
“네,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다음 메인 퀘스트가 시작될지 모른 다라…….”
회의실의 안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가운데 테이블을 기준으로 상석에는 심현섭이 앉아 있으며 오른쪽에는 주현과 용병들, 왼쪽에는 마을의 중역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은 회의장을 가득 채웠고, 누구 하나 섣불리 일을 열지 않았다.
“두 번째 퀘스트라니 말도 안 됩니다!”
“만에 하나 두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된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당장 대비해야 합니다.”
회의장에 앉아 있는 모두가 이 근방에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강자들이었으나, 흥분하여 소리쳤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공포는 온전했고, 회의장의 사람들 모두 경험해 보았던 것이었다.
다음 메인 퀘스트가 시작된다면 막대한 손해를 입을 것은 분명했다.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물론 죽을 뻔한 적도 많이 있었기에 더욱이 메인 퀘스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심현섭 역시 마찬가지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시작할 때와 징조가….”
“끼잉, 끼잉.”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며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 갑작스레 들려오는 낑낑거리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은 바로 피노였다.
“몬스터인가?”
“강아지? 누구야! 애완동물을 데리고 온 거야?”
“어?! 어떻게?”
갑작스러운 피노의 등장에 회의장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 그때…… 그…….’
주현은 피노를 보자 한눈에 알아보았다.
민혁이 트롤에 당해 쓰러져 있을 때 그를 구하기 위해 피노가 연신 핥으며 낑낑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전장의 여신이라 불리는 주현이었지만 워낙 귀여운 것을 좋아하였기에 낑낑거리는 피노를 보며 쓰다듬어 보고 싶었지만 긴박한 상황에 그럴 수 없어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그 쓰러져 있던 사람과 같이 있던 피노가 이곳에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의아한 것도 잠시, 중요한 직책으로 온 만큼 체통을 지켜야 해서 쓰다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졌다.
“허허, 이제야 왔나 보고만.”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던 심현섭이 어디선가 들어온 피노의 등에 묶어둔 편지를 보자 실소를 머금으며 반가워했다.
그는 회의 중인 이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피노의 등에 새로운 편지를 묶어주었다.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구나, 지금은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직접 나갈 수가 없구나. 이 편지를 전해주려무나.”
편지를 읽은 후 새로운 편지를 작성 후 피노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민혁을 만나기 위해 나가기에는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곳뿐만 아니라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일이었기에 대비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 * *
중앙 건물 앞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피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 피노가 건물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던 차에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를 등에 묶은 피노가 사람들 틈에 섞여 다가오고 있었다.
“피노, 수고했어. 고마워”
“끄르르.”
피노의 머리를 쓰 해주며 받아 온 편지를 받아 살펴보았다.
빨간 인장으로 동봉되어 있는 편지.
마을의 수장 또는 대표인 심현섭을 상징하는 인장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했네. 약속대로 약탈자들을 소탕했다는 것은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네. 현재는 만나러 가기가 곤란하니 잠시 이곳에 먼저 가 있으면 찾아가도록 하겠네. 서신을 동봉하니 이곳에 찾아가 전해주면 약속했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네.]
짧은 메모와 함께 서신이 동봉되어 있었다.
약속했던 보상, 즉 이곳을 찾아가면 마나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해준다는 마정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바쁜 일이 있는 듯 노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목적은 마정석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를 보지 않아도 마정석만 얻게 된다면 아쉬울 게 없었기에 곧장 신우와 현지와 함께 편지에 적힌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