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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50화 (50/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50화

우연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주점으로 들어온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모르고 주점에 간 것이었지만, 이곳 주민들에게 주점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소로 사용되는 듯하였다.

‘저 사람도 그렇고, 저 사람도…….’

주점 안을 살펴보자 그제야 어딘가 어색한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면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거나 식사를 하는 듯하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티가 났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정보를 얻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도 서슴없이 풀어 누군가에게 알려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귀한 정보나 돈이 될 만한 정보까지 풀지 않는 듯하였지만, 이곳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정보를 듣고 있는 모습 또한 다른 주점의 누군가 보기에는 티가 많이 났겠지만, 그 누구도 무어라 말하지 않는 이유였다.

우리를 도와주었던 노인, 그의 이름은 심현섭으로 마을의 실질적인 수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로 추정되었다.

평판이 좋은 듯 이곳저곳에서 그의 칭찬은 마르지 않았고, 변화된 세상에 빠르게 적응해 사람들을 지켜주고 이곳을 이 정도까지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유능한 인물이었다.

“민혁 씨, 역시 그 할아버지, 대단한 사람이었나 봐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곳저곳에서 그 노인 이야기는 빠지지 않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 넓은 곳에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도, 도대체 그분이 누굽니까?”

현지와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리자, 자초지종을 모르는 신우가 궁금한 듯 끼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우가 약탈자들에게 잡혀 있을 때 우리 또한 잠깐 본 노인이었기에, 지금까지 설명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그게 누구냐면…… 쉿! 잠깐만!”

신우에게 그에 대해 설명하려는 찰나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취하며 귀를 기울였다.

잔뜩 기대한 신우의 표정이 실망으로 번졌다.

“용병들뿐만이 아니네. 근처의 마을에서도 속속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어허,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려는 것인가.?”

“음…… 분명 예사롭지는 않네. 자네한테만 말하는 거지만.”

“뭐,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건가?”

“두 번째 메인 퀘스트 때문이라는 말이 있네.”

“뭐…… 뭐잇!! 그거 정말 큰일 아닌가!!”

그 순간 주점의 일대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숨 막히는 정적.

왁자지껄 했던 그 곳의 모두의 얼굴에서 그늘과 함께 걱정과 불안이 피어났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지금껏 살아남았던 모두에게는 ‘메인 퀘스트’ 그것은 예견된 재앙과도 맞먹는 의미를 가졌다.

이미 경험해 본 바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그중에는 가족, 친구, 이웃 등 밀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잠시나마 잊고 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이 모두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떠오른 것이었다.

“이, 이 병장님. 저 얘기…….”

“…….”

“두 번째 메인 퀘스트라니…….”

“예측 가능한 것이었어. 첫 번째가 있는 이상, 두 번째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우선 우리가 할 일을 하자. 고민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 * *

“그분이 직접 오시다니 의외네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예상했던 일이니…….”

“…….”

트럭에 타고 있던 김성곤이 말을 걸었으나, 주현은 묵묵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차 안의 그 누구도 버릇없다고 생각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평소에 워낙 말수가 없고 과묵한 그녀에게 익숙해져 있는 탓이었다.

‘본인의 위치 때문이겠지…….’

주현의 아름다운 외모와 전투 감각,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은 일찍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그녀의 명성과 인기는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무엇이든 알고 싶어 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퍼져 나가면서 곤란한 상황들이 생겨났다.

작은 행동, 작은 말 한마디는 금방 와전되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눈덩이처럼 불어나 오해의 싹을 피웠다.

몇 번이나 그런 상황을 겪으며 점점 더 말을 아끼게 된 것이었다.

“어…… 저기!”

창문을 바라보던 주현이 입을 열자 트럭 안의 모두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은 듯, 트롤들에 둘러싸여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잘 싸우기는 하는데, 트롤들이 너무 많구먼…… 저 친구들. 쯧쯧쯧”

“코인이라도 벌기 위해 나온 것일까요?”

“쯧쯧. 고작 세 명 이서 나오다니, 하필 트롤을 만난 것도 운이 없구만…….”

모두가 혀를 차며 안타까운 듯 한마디씩 거들기가 끝나기도 전에 주현은 달리고 있던 트럭 밖으로 뛰어나갔다.

“주, 주현 님…….”

트럭 안의 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슉, 슉, 슉.

주현의 발이 축지법을 하듯 공중에서 공기를 발로 차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엄청난 속도로 꽤 멀리 있던 트롤들에 도착한 건 단지 몇 초.

단숨에 트롤들에 당해 쓰러진 남자 앞을 가로막았다.

“윈드 블레이드”

주현이 스킬을 외치며 검을 찌르듯 앞으로 내밀자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왔다.

검 끝에서 시작된 바람은 주위의 모든 트롤들을 찢어 버렸다.

트롤 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강함.

한순간에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남지 않았다.

“누, 누구……?”

“저기…….”

갑작스러운 도움에 쓰러진 남자와 동료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는 어안이 벙벙한 듯 놀란 눈을 치켜들 뿐 멈춰 버렸다.

“괜…… 괜찮으세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그들을 지나 쓰러진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이미 생명력이 끝나가는 듯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떨리는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눈을 감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

‘누군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주현은 이 남자를 살리기 위해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힐을 통해 곧바로 회복시키면 위기는 넘길 수 있겠지만, 주현은 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트럭에 있는 동료를 데려오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쓰러진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이들 또한 치료 스킬을 가진 것으론 보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거다.’

가방을 뒤지던 주현이 찾은 것은 투명한 액체가 든 작은 병이었다.

아이템의 이름은 ‘요정의 눈물’. 메인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은 신비한 아이템이었다.

어떠한 상처도 즉시 치료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는 그것은 누구라도 탐낼 만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아이템을 주현은 단지 지나가다 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천…… 천사…… 인가요?”

다 죽어가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기도 잠시, 말이 끝나자마자 쓰러진 남자를 보고 곧바로 요정의 눈물을 그의 입속에 흘려 보냈다.

“저, 저기 무슨……!!”

그의 동료로 보이는 이가 당황한 듯 소리쳤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남자의 몸에선 곧바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상처들이 사라지며 회복되기 시작했다.

“민혁 씨…… 상처가…….”

“포션인가요?”

상처가 회복되는 것을 확인자 그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감사를 건네 왔다.

“가, 감사합니다.”

“…….”

부담스러운 정도로 허리를 숙여 가며 인사를 하는 그를 보며 당황하기도 잠시.

트럭 안의 사람들이 어느새 달려왔다.

“주현 님…… 설…… 설마…… 그것을 사용하신 건가요?”

그들은 쓰러진 남자 옆의 병을 본 것만으로도 ‘요정의 눈물’을 유추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큰 공을 세운 그녀는 함께 헤쳐 나간 이들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보상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부러움을 사는 아이템이 바로 그것이었다.

설명해 주지 않는 그녀였기에 자세한 효과를 알 수는 없었지만, 무엇보다 어떤 병이나 상처도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 그것.

그것을 처음 보는 죽어가는 이를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네.”

담담히 대답하는 주현이었지만, 황당하긴 해도 그 누구도 무어라 말할 수는 없었다.

말수가 없고 과묵한 주현이 표현은 못 하지만 전투를 할 때 위험에 처한 자신들을 돌봐주고 지켜주면서 얼마나 선하고 정이 많은지 알고 있었기 때문.

“허허허. 주현 님답네요. 그나저나 볼이 빨가신데 열이 있는 거 아닌가요?”

주현의 볼이 티가 날 정도로 빨개져 있었기에 한 질문이었다.

“……이분들을 마을까지 데려다주세요…… 저는 먼저 갈게요.”

쓰러진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현이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였다.

빨개진 얼굴의 화끈거림이 주현 자신에게까지 느껴졌다.

‘천사라니…….’

조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먼저 가버린 것이었다.

* * *

날이 밝자 곧바로 노인이 머물고 있다고 하는 건물을 찾아갔다.

마을의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그가 있다는 중앙에 가장 크게 우뚝 솟아 있는 건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거대한 은행이었던 건물을 스킬을 이용해 개조한 듯 익숙한 로고와 함께 건물 외벽에 붙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변화에 따라 은행의 화폐가 변하고 역할이 사라지고 나니 건물의 용도 또한 변한 것으로 보였다.

“다른 곳도 다 이런 식으로 변화했을까요?”

“음, 글쎄요.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은행이 없어진 것은 아쉽지 말입니다.”

“……나중에 다시 생기지 않을까요? 당장은 이공간 목걸이가 있고, 은행에서 사용할 자본이 없지만 그래도 훗날에는…….”

“음, 그나저나 이렇게 거대한 건물이라니…… 사람이 많아서 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신우와 현지가 건물 바로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건물에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

주점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 중앙 건물에서는 사람들의 퀘스트를 받아 해결하거나 퀘스트를 의뢰해 도움을 요청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인스턴스 던전의 출입이나, 새로운 인스턴스 던전을 발견하면 탐사를 한 후 인스턴스 던전의 등급과 적정 수준을 파악하는 등의 다양한 일들을 관리하였다.

새롭게 발견된 인스턴스 던전을 탐사하고 몬스터를 사냥하며 나오는 코인과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일반적인 생활이었기 때문에 중앙 건물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당연하게도 안전하게 사냥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공인한 인스턴스 던전의 정보가 필요했고, 인기 있는 인스턴스 던전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증을 따로 판매하였기에,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사람들이 가득한 것이었다.

‘노인이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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