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49화
덜컹, 덜컹.
누워 있는 와중에 흔들리는 몸. 누군가 소리치자 점점 더 빠르게 이동하는 듯 속도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투박한 엔진 소리가 들려오고 거친 땅을 구르는 바퀴 소리, 사람들의 잡담하는 소리가 들려오며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거의 다 온 것 같구만.”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론가 이동 중인 트럭 안에 가득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가지런히 앉아 있는 신우와 현지.
‘어떻게 된 거지?’
당황스러웠다.
분명 트롤 무리에게 당해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이 났으나 그 이후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병장님! 일어나셨습니까?”
“민혁 씨!!”
“일어났구먼그래.”
“어…… 어. 여기는……?”
“허허허, 나는 강성곤이라 하네. 반갑네.”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해소되었다.
깨어난 것을 보고 한 남자가 말을 걸어 온 것이다.
자신을 강성곤이라 밝힌 남자는 악수를 청하며 넉살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에 온 후 많은 사람을 만나 본 것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봐도 매우 강한 느낌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강성곤뿐만이 아닌 트럭 안의 모두가 매우 강해 보이는 무기들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험상궂은 외모와 큰 덩치는 마치 조직폭력배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허허, 너무 긴장하지 말게. 생긴 건이래도 나쁜 사람들은 아니야!”
“이분들이 구해주셨습니다.”
“네, 정말 위험했어요!”
긴장된 것이 티가 났는지 강성곤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미 많은 대화를 나눴는지 신우와 현지 모두 그들과 친해진 것으로 보였다.
“트롤들에 당한 것은 기억이 나는가?”
“아, 네 저를 구해주신 건가요?”
“음,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고 주현 님이 자네를 구해줬지”
“주현…… 님이라면……?”
그 순간 어렴풋이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람 같은 속도로 다가와 한 번의 기술로 트롤들을 없애버린 엄청난 실력자.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자세하게 보진 못했지만 한 번도 본적도 느껴본 적 없던 아름다운 움직임이었다.
“그렇군요…… 조금씩 기억이 납니다.”
“주현 님이 조금만 늦었어도 자네는 세상에 없을 걸 세. 우리가 자세를 봤을 때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어.”
“……감사합니다.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민혁을 구해준 뒤 포션으로 즉시 치료를 해준 것이었다. 생명의 은인이었기에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먼저 떠나셨네, 우리처럼 한가한 분이 아니셔서 말이지”
“그렇군요.”
“곧 마을에 도착하니, 만나게 되면 인사라도 하게. 좋아하실 거야”
“……마을이라면?”
“곧 마을에 도착하네.”
전투 중 부상이 심해 포션으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마을로 이동하던 트럭은 그동안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을 한 것이다.
“그나저나 자들끼리 그곳에선 무얼 하고 있었나? 모험이라도 한 것인가?”
“마을까지 이동하려 했습니다.”
“허허허, 보기와 다르게 배짱이 있구먼그래”
강성곤은 트롤들을 상대하며 마을까지 가려고 했던 우리가 신기한 듯하였다.
“배짱은 무슨 무모한 것이지!”
옆에서 듣고 있던 동료로 보이는 사내가 말을 거들었다.
“새겨듣게, 비범한 자가 무리를 하면 도전이지만, 무모한 자가 무리를 하면 죽게 되는 것이야. 자네는 도전한 게 아니라 무리를 한 것이야!”
“…….”
“자만해선 안 되네,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도록 해. 이번처럼 운 좋게 살아나는 일은 흔치 않아.”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만 믿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 되자 죽을 위기에 처했고 도움이 없었다면 이곳에 없었을 것이었다.
훈계한 그는 반성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자, 만족한 듯 자신을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이름은 김낙현,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몸 구석구석의 상처를 보면 그동안 꽤 많은 전투를 한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낙현 역시 훈계하였으나 민혁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하였다.
“자네 둘은 군인인가?”
김낙현이 질문을 하자 마차에 있던 사람들 모두 궁금하였는지 집중하였다.
혼자서 트롤과 트롤의 영역을 지나려 했다는 것이 보통 자신감이 없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신우와 나의 복장이 평범치는 않았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음, 휴가라도 나왔던 것인가. 이곳 근처에 부대라면…….”
“세상이 변한 그 시기에 부대에서 나왔습니다.”
“부대? 이 근처에 부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부터 서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자네 단 셋이서 말인가??”
“예. 어쩌다 보니.”
“그럼 자들을 보았을 때 트롤이 한 마리 쓰러져 있던데 그것은 자네들이 잡은 건가?”
“네, 맞습니다. 갑자기 녀석이 몰려들지만 않았어도…….”
“음…… 그래도 셋 다 마나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가 보구만. 마정석을 초반에 구했나 보구만. 운 좋게도 말이야.”
“……? 저희 셋 다 마정석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듣기는 했지만…….”
“뭐…… 뭐잇……!!”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해준 것이었지만 트럭 안에 있던 그들은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충격에 빠졌다.
트롤들에 죽을 뻔하긴 하였으나, 말에 따르면 부대에서 나온 그때부터 이곳까지 이동했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생존하기도 급급했던 그 시기부터, 이 정도의 소수 인원으로 이동을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것이었고.
무엇보다 마정석 없이 트롤을 쓰러뜨리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이 무언가 질문을 쏟아 내려고 하기 직전, 운전하던 남자가 도착을 알렸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진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 역시 어째서인지 신기한 듯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차에서 하차했다.
트럭 안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내리자 곧바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성문이었다.
현대적인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성문.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그 성문을 중심으로 거대한 벽이 펼쳐졌다.
“……우와!”
“몬스터를 막기 위해서 만든 것이겠죠?”
그 크기에 압도된 듯 마을 전체를 막고 있는 거대한 성벽을 본 신우는 입이 벌어졌고.
현지와 나는 이미 노인이 순식간에 집을 만드는 능력을 본 이후였기에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때 트럭 안에 있던 사내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언젠가 또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하지.”
“네, 감사했습니다.”
강성곤과 김낙현 외에도 트럭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그들이 먼저 마을을 향해 들어갔다.
곧장 열린 성문을 통해 입장해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한 뒤 처음 보는 꽤 거대한 규모의 마을.
부대 앞의 마을이나 3층의 수인족, 대피소 숲속의 작은 마을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규모의 마을이었기에 왠지 모를 설렘이 공존했다.
“자자, 쌉니다! 싸요!”
“장비템, 잡템 모두 판매합니다. 보고 가세요~”
마을 곳곳에서 시장이 열렸고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서로 아이템을 판매하며 구매하고 있었다.
굳이 시장이 아니어도 도시엔 다양한 상점들 역시 많이 있었다.
사람들이 흥정하고 자유롭게 떠드는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수인족들이나 대피소의 사람들을 만나보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일상적인 모습에 왠지 모를 향수를 느끼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마을의 풍경은 꽤 아름다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우와 현지 또한 같은 마음인 듯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병장님, 저기 복장이 특이합니다.”
“조, 조용히 좀 말해.”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며 걷다 보니 사람들이 입고 있는 복장에 저절로 눈이 갔다.
단단해 보이는 철갑옷을 입은 사내부터, 가벼워 보이는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사람까지, 마치 코스프레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변했으니 복장도 변한 것일까요?”
“몬스터에게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저런 복장들이 유리하겠네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독특한 복장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사회에서는 정장이나 청바지, 티셔츠, 외투 등의 가벼운 복장들을 입었지만, 이제는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세상이었으니 생존을 위해 복장 또한 변화한 것이었다.
‘그래, 노인의 복장도 평범하지는 않았지.’
“와, 멋있다! 저 무기는 엄청 강해 보입니다!”
물론, 복장만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화려하고 강해 보이는 무기를 착용한 사람들이 마을에 종종 눈에 띄었다.
“우와! 마법으로 건물을 수리하네!”
노인이 보여준 적이 있는 마법과 비슷한 마법.
빈터에 몇 명의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마법 진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자 깨진 유리창과 무너진 잔해들이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 원상복구 되고 있었다.
그들이 힘을 모아 사용하는 스킬의 규모와 화려함에 넋이 나가 쳐다보게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자주 보이는 광경이 아닌 듯 모여서 구경을 하며 신기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이 넓은 곳에서 영감을 어떻게 찾나.”
어느 정도 마을 구경을 하고 나자 든 생각이었다.
노인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으나 마을 자체가 너무 넓었다.
이 근방을 대표하는 마을인 만큼 규모와 인구가 말도 못 하게 컸고, 이곳에서 사람 한 명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워 보였다.
꼬르륵-
“이 병장님, 여기 주점이 있습니다.”
“주점? 하지만 돈이…….”
“일단 들어가 보시지 말입니다.”
이런 주점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 부터가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허기가 진 신우 녀석이 현지와 나를 막무가내로 그곳을 향해 끌고 갔다.
나 역시 허기가 지기도 했고, 주점으로 가면 혹시 노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못 이기는 척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꽤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며 밥과 술을 마시고 있었고 구석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주방장 스페셜-2,000코인]
[…….]
[멧돼지 고기 정식-300코인]
[사슴고기 정식-340코인]]
구석에 자리를 잡은 후 메뉴판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기존에 쓰던 메뉴판에 스티커를 이용해 덮혀져 있는 가격표들이 눈에 띄었다.
“코인을 화폐로 쓰는 모양입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원’이 아닌 ‘코인’으로 표시된 가격을 신우와 현지 역시 발견한 듯하였다.
그때 다가오는 여성.
“뭐로 드릴까요?”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 들려온 소리에 쳐다보니, 주점의 종업원으로 보이는 자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그녀는 우리를 쓱 보더니 무언가 알아차린 듯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곳에 처음 오신 모양이네요. 세 명이면 이걸로 시키세요.”
“아, 예. 이…… 이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맥주는?”
“석 잔 부탁합니다.”
“……돈은 있으시죠. 손님? 화폐는 코인입니다.”
“네.”
왠지 어수룩하고 꾀죄죄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혹시나 돈이 없을까 하여 한 질문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과 복장이 달랐기에 한눈에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 병장님 이곳에선 몬스터만 잡아도 생활할 수 있겠습니다.”
“음, 확실히.”
그동안 몬스터를 잡은 후 나온 코인을 착실히 주웠기에 든 생각이었다.
시장에서는 자신에게 쓸모없는 아이템들을 판매하는 것을 보고 돈이 된다는 것도 확인했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팔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전기는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요?
현지 또한 신기한 듯 가게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질문했다.
확실히 가게 안은 밝았고 따뜻했다.
지금까지 전기나 수도, 가스 등 몬스터들이 생겨남과 동시에 당연하게 여겼던 시스템들이 붕괴되었기에 든 생각으로 보였다.
“이것도 다 스킬로 해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음…….”
일리가 있었다.
신우의 말대로 스킬이란 공격적인 면모에만 국한되지 않았기에 생활이나 편의 시설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턱-
“맛있게 드슈.”
한참 가게를 둘러보던 그때 주문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접시에 가득 담긴 고기와 채소볶음과 볶음밥 등 너무나도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음식들이었다.
테이블 가득 음식들이 올려졌고 마지막으로 맥주까지 테이블로 옮겨졌다.
“우, 우와…… 꿀꺽…….”
“조미료가 가득한 음식입니다. 이 얼마 만에…….”
심호흡하며 냄새를 맡아본 것만으로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
신우와 현지 역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조리된 음식에 감격한 듯하였다.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들이었고, 지금까지 사냥하며 고기를 불에 익혀 먹는 수준으로 배를 채웠을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 각종 조미료와 함께 요리된 음식들은 정신을 잃을 만큼 그리웠던 것이었다.
* * *
“그거 들었는가? 주현 님이 우리 마을에 왔다 더구만”
“주현? 그 용병단의 대표, 전투의 여신 말인가?”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자 주점 안의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자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주현이라면 역시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트롤 무리에게서 쓰러진 우리를 도와준 생명의 은인.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주현 님이 무슨 일로 우리 마을까지 왔다는가?”
“주현 외에도 용병들이 같이 왔다더구만.”
“용병이라면……?”
“김성곤과 김낙현까지 왔다더구만”
“김성곤과 김낙현? 최상위 용병들 아닌가? 전쟁이라도 하려는 겐가?”
그들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조금 의외였다.
트럭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고 나름 우리를 챙겨준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용병? 의뢰를 받고 전투를 해주는 것이가? 용병이라니 엄청 강한 사람들이었구나…….’
모두 강해 보이기 했지만, 최상위 용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다시 한번 새삼 놀랐다.
“예끼! 이 사람아 정보가 이렇게 느려서야.”
“허허, 던전에 있다가 이제 돌아왔지 않은가. 어서 말해주세. 다른 마을 용병들이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우리를 이끌고 있는 현섭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왔다더군.”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다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그들의 입에서 현섭의 이름이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현섭, 그것은 분명 그 노인의 이름이었다.
그 노인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절망하던 차에 귀한 정보였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