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48화
현지의 안내에 따라 걷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마주치는 몬스터를 사냥하며 이동했다.
몬스터들을 피해 이동할 수도 있었으나, 몬스터들을 일일이 피해 가다 보면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전투 경험을 최대한 경험을 쌓으려는 의도였다.
언제 어디서든 적이 나타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힘이 있는 자가 권력을 가지는 세계,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인간이나 몬스터 또는 수인이라 할지라도 위협이 되는 적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어디를 가나 똑같지…….’
사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익숙했다.
힘 있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세계가 변하기 전과 방식은 달랐으나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힘을 가지는 방식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힘으로 바뀌었을 뿐.
생각하기에 비슷한 점이 많이 있었다.
“스킬 확인!”
[보유 스킬]
[내 손 안의 무기고 LV4-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 개조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어떠한 무기도 사용 또는 조종할 수 있습니다.]
[방탄 피부 LV3-피부로 일반적인 총탄이나 파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내구력이 높아집니다.]
[지치지 않는 체력 LV4-육체적인 활동에 있어서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그 효과가 증가합니다.]
[끈질긴 생명력 LV3-치명적인 상처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물과 식량을 오랜 시간 섭취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그 효과가 증가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홀로그램을 통해 펼쳐지는 스킬을 살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몬스터를 사냥하며 쌓여 있던 코인들을 이용해 스킬의 레벨을 어느 정도 올려두었고 웬만한 몬스터는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다.
현지가 동료로 들어오면서 팀의 전력 또한 늘어났고, 시너지 효과 또한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었기에 큰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크부터 웨어울프, 리자드맨, 약탈자등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있었고, 더 이상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는 없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이 피어났다.
“어느 쪽으로 가면 되는 거야?”
“네. 잠시만요.”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의 갈림길이 나타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현지에게 질문했다.
그녀는 곧바로 약도를 슬쩍 확인하고는 탐지 스킬을 사용하는 듯 땅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음, 어느 쪽으로 가도 마을이 나오기는 할 것 같아요.”
“어느 쪽이 더 빠른가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는 확인한 듯 고개를 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말을 가로챈 신우의 질문에도 이제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른쪽으로 가면 더 빠르게 갈 수는 있는데, 몬스터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것 같아요. 왼쪽으로 가면 몬스터는 비교적 없지만 돌아서 가게 돼서 일주일 정도 더 시간이 소모될 것 같고요.”
“음…… 안전한 길이냐, 빠른 길이냐…… 오른쪽으로 가죠!”
왼쪽 길로 돌아서 가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안전하기보다는 위험하긴 하지만 그냥 돌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까지 사냥해 온 몬스터들과 계속되는 승리로 인해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수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현지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중 저 멀리서 몬스터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이 병장님, 몬스터입니다!”
“전투 준비해!”
“얼마나 강한지 일단 한번 볼까?”
주위에 녀석 외에는 다른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곧바로 K2 소총을 장전하자 현지는 글러브를 신우는 검을 움켜쥐며 준비에 돌입한 것이다.
“캬아아아아아!!.”
울부짖는 녀석이 먼저 공격을 해 오도록 기다리며 무심하지만 세세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저 녀석을 해치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에 몬스터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서 녀석의 공격 패턴을 읽으려는 행동이었다.
‘무섭게도 생겼군.’
“저 녀석은 트롤이라는 녀석이에요. 생명력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때 녀석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현지였다.
탐지 스킬을 성장시키며 강화된 능력으로 자세하진 않지만, 몬스터의 대략적인 정보 또한 알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트롤은 무섭게 생긴 정도가 아니었다.
웨어울프보다도 몸집이 거대했으며 튀어나온 턱과 물개처럼 길게 뻗은 송곳니, 소도 한 방에 때려 잡을법한 근육이 덮고 있는 청록색의 피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을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우당탕탕!
눈이 마주친 순간 트롤은 터질 듯한 이두박근에 힘을 주며 거대한 몽둥이를 움켜 들더니 순식간에 덤벼오기 시작했다.
큰 덩치에 비해 매우 빠른 몸놀림을 보여주는 공격이었다.
“온다! 준비해!”
챙!! 챙!
아무런 기술 없이 단조롭게 크게 날아오는 트롤의 몽둥이를 막는 것은 신우였다.
그에게 녀석의 공격을 막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신우의 검과 트롤의 검이 연신 부딪히자 사방으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트롤의 몽둥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며 서로 검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려 하였으나 신우가 트롤의 힘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젠장, 이얏!”
근접전으로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맞대고 있던 검을 튕겨 트롤이 잠시 주춤한 사이, 트롤의 머리를 내리쳐 스턴에 빠지게 한 후 백스텝으로 뒤로 물러났다.
트롤이 스턴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동안, 검을 높게 들어 트롤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강타한 순간 스턴이 풀리며 다시 공격해 오는 녀석.
고요한 장소에서 오직 검과 몽둥이가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날카롭게 날아오는 무기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마가 약점입니다!”
그사이 트롤의 약점을 찾아낸 현지가 소리쳤고, 녀석의 이마를 조준했다.
탕!!
“키아아아악!!!”
“젠장.”
곧바로 방아쇠를 당겨 녀석의 이마를 정확하게 맞췄으나 잠시 주춤할 뿐 계속해서 공격을 퍼붓는 모습.
총알이 피부를 뚫을 만큼 단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현지의 말대로 생명력이 높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마탄을 사용할게, 빈틈을 만들어줘!”
“네, 알겠습니다!”
“죽어랏!!”
신우와 현지 그리고 트롤이 서로 맞고 때리며 싸우기도 잠시, 트롤의 큰 움직임은 눈에 금세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우의 검이 트롤의 가슴을 베어내고 현지의 어퍼컷이 턱을 때린 순간, 트롤의 이마에 그대로 푸른빛의 마탄을 꽂아 넣었다.
메시지창과 함께 들려오는 거대한 땅 울림.
쿵. 쿵. 쿵.
쿵. 쿵. 쿵.
“크…… 크라라라라!!”
“키아아아악!”
수십 마리의 트롤 무리가 우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어, 어떡해요”
현지가 걱정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트롤들은 점점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고 저 많은 녀석을 상대할 만한 마나와 체력은 없었다.
“…….”
몰려오는 트롤들을 보고 있자니 절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트롤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스킬 덕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발밑의 트롤 시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트롤들은 족히 스무 마리.
어느 누가 봐도 동족의 복수를 위해 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도망갈 수 있을까?’
찰나의 순간에 수만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결론은 불가능.
동료가 죽는 것을 본 이상 트롤들은 지구 끝까지 쫓아올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트롤들의 서식지.
처음 와본 우리보다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치지 않는 트롤들의 체력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싸울 수밖에 없다.”
싸우는 방법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싸운다고 하여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마탄을 사용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거라 판단하지 못할 정도의 수였다.
“후…… 하필 이때…….”
시간이 오래 걸렸어도 돌아서 가는 거였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곳을 돌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후회를 해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후우우! 다른 방법이 없다. 이야아앗!”
신우는 검을 두 손으로 고쳐 잡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트롤들이 눈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 더는 지체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선제공격을 시도한 것이었다.
검을 세워 머리 위로 높게 쳐들어 달려오는 트롤의 머리를 내려쳤다.
빠르게 달려가며 내려친 검은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어찌할 새도 없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트롤.
하지만 주위에 트롤들은 많이 있었고 신우의 공격은 좋은 도발이 될 뿐이었다.
맨 앞에 있던 녀석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자 옆에 있던 트롤이 내리쳤다.
지체하지 않고 검을 가로로 눕혀 머리 위로 올려 공격을 막아냈다.
“크아아아!”
눈앞에 보이는 트롤들의 공격을 빠르게 막고 강하게 내리쳤다.
하지만 흥분한 트롤들이 마구 소리를 치며 우리의 곁으로 달려들었고, 모든 공격을 막기에는 무리였다.
트롤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막고 있었으나, 치명상을 피했을 뿐 계속해서 칼에 살이 베이기며 데미지가 누적되었다.
수많은 트롤들의 계속된 공격을 막지는 못하였다.
단지 죽을 시간을 늘릴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마나가 다 떨어졌어요…….”
계속되는 전투에 얼마 지나지 않아 탐지 스킬을 사용하던 현지 또한 마나가 전부 떨어졌다.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신우 역시 의미 없는 검만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나 또한 계속해서 총알을 낭비할 뿐, 계속되는 총질에 화가 난 트롤은 나의 곁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려치는 트롤의 무기.
“이 병장님!!!”
“민혁 씨……!”
“여기서…… 죽는 건가.”
눈앞이 점점 흐릿해 지고 있었다.
쉴 틈 없는 트롤들의 공격에 온몸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베인 상처에서 계속해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으며 움직일수록 상처들은 벌어졌다.
더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다리는 속절없이 떨리기 시작했고 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생명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고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생명력은 거의 남지 않았고, 눈앞은 흐려졌다. 피가 흘러내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더는 눈 뜰 힘조차 낼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눈을 감았고 몸은 땅으로 떨어졌다.
슉- 슉- 슉-
“윈드 블레이드”
“누…… 누구…… 으아악”
“으아아악!”
“도…… 도망…… 아악”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죽음을 기다리던 순간 들려오는 바람 소리.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바람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고 트롤들의 공격이 일순간에 멈추었다.
떨리는 눈을 간신히 떴지만 흐릿한 형체(形體)만이 보일 뿐이었다.
여성인 듯 긴 머릿결을 휘날리는 형체는 트롤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작은, 속삭이는 듯한 중얼거림이 들린 후 트롤로 보이는 청록색의 형체(形體)들이 모두 쓰러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모든 트롤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했다.
“괜…… 괜찮으세요……?”
생명력이 바닥이나 눈이 감기고 있었다. 눈이 감기는 것을 막고자 안간힘을 써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보려 하였다.
떨리는 눈에 들어온 형체(形體)는 점점 다가왔다.
앞에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그녀를 보았다.
또렷이 볼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
긴 생머리를 한 그녀는 걱정이 되는 듯 안절부절못하며 급하게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천…… 천사…… 인가요?”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르고 마지막 힘을 다해 입을 열었고, 그대로 다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