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47화
피는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두목은 이미 죽었다.
전투의 승리를 알리듯 연속적으로 홀로그램이 올라갔지만,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신우의 팔을 지혈하기 위해 옷을 찢으려 하였다.
“시, 신우 씨 팔이…….”
“젠장. 이걸로 지혈될 수준이 아니야…….”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 환부는 천으로 지혈할 수준이 아니었다.
당장 출혈을 막는 것이 시급하였기에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화약! 화약으로 상처를 지지는 것이었다.
한시가 급했기에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신우야 좀만 참아! 간다!!”
잘려 나간 환부를 지지려는 그 순간.
덜컥.
숨어 있던 약탈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보았던 왜소했던 사내, 족제비라 불리던 그자였다.
몰래 도망칠 생각이었는지 살금살금 이동하던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총기를 들어 그를 조준했고, 그는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까딱.
“내, 내가 고쳐주겠네!”
대화할 필요도 없이, 총구를 유지한 채 고개를 까딱이자 그가 신속하게 달려왔다.
무어라 요구하기도 전에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신우의 팔을 고치기 시작했다.
확실히 눈치가 빠르고 사리 판단이 빠른 자,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위험한 인간이다.
“하하,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네. 누가 공격했나 했더니 자네 동료였구먼.”
스킬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그는 입을 쉬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이미 분위기를 읽은 듯 나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 자네가 구해주러 올 줄 알았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네. 나도 약탈자에게 잡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네.”
“…….”
“내가 자네 치료해 주었던 거 기억하는가? 허허 그때 내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자신의 동료들인 약탈자가 모두 죽었기에,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하는지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이미 은신을 통해 잠입하여 그가 이 모든 일에 원흉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쏴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신우의 팔을 고친 이후에도 늦지 않는다.
쏴아아아아-
그의 손에 푸른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하며 떨어진 팔을 붙이자, 마치 거짓말처럼 녹아버린 부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우의 팔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확실히 엄청난 능력, 그 누구라도 탐낼 만한 엄청난 능력임은 틀림없다.
“완전하게 회복시켰네. 대단하지 않은가? 어떤가. 나도 자네들의 여정에 끼워주지 않겠나? 틀림없이 엄청난 도움…… 컥!”
그 순간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어필하던 그의 심장에 단검이 박혔다.
“……이자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피 묻은 단검을 뽑아내며 신우가 말하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신우는 단검을 꺼내 들어 그를 찔렀다.
어차피 그를 죽일 생각은 변함이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신우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단호한 표정.
감옥에서의 경험이 그를 변화 시킨 것이었다.
* * *
어느새 지옥 같던 어둠이 지나가고 햇빛이 우리를 비추었다.
피비린내 가득한 시체들을 뒤로 한 채 뒤늦게 메시지창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일단 이것부터 확인해 볼까? 정보 확인!’
[알 수 없는 알]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희귀한 알. 생명 에너지가 가득 차면 부화한다.]
[생명 에너지-100%]
“엇!”
신우가 가져온 배낭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 재빨리 확인하였다.
두목을 쓰러뜨림과 동시에 생명 에너지가 가득 찬 듯 알에서 빛이 나오며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둥.
진동하며 요란스럽게 흔들리는 알을 지켜보았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을뿐더러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만큼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 갔다.
애를 태우듯 아주 조금씩 알의 껍데기가 바스러지며 그 안의 생명체가 꾸물거렸다.
“이 병장님! 알이 부화하는 겁니까?”
“으, 응.”
“그 알은 뭐에요??”
자리에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알을 바라보고 있자 신우와 현지도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었고, 그 순간 알이 완전히 부화하였다.
“끄로로”
커다란 알 그 안에 있던 작은 생명체가 울음소리를 내며 기어 나왔다.
눈을 뜨려는 듯 자신의 작은 앞발을 그루밍하며 연신 눈을 비비는 녀석.
익숙하지만 독특한 녀석의 모습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 너무 귀엽다. 뭐에요? 고양이예요?”
“그게…….”
“강아지 아닙니까? 강아지”
작고 귀여운 생명체에 어쩔 줄 모르며 좋아하는 현지와 무엇인지 궁금한 듯 이곳저곳 살펴보는 신우가 질문을 해왔지만.
나 역시 이 녀석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마치 고양이 같기도 하고 강아지 같기도 한 생명체.
몸집은 작지만 날카로운 눈매에 솜방망이 같은 발, 그리고 기다란 꼬리까지.
‘정보 확인!’
[알 수 없음]
알 수 없는 알에서 태어난 조그마한 생명체는 그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녀석이었다.
“끄르르!”
신우의 검처럼 대단한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기에 실망하려던 찰나, 알에서 나온 녀석이 다가와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꺄, 너무 귀엽다. 주인을 알아보네요?”
“이 병장님, 이름 지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응? 이름?”
“예, 이제 같이 다닐 거 아닙니까? 이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맞아요. 이름 지어주세요.”
신우의 말에 현지 또한 동조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녀석의 생김새를 다시 한번 천천히 살펴보며 생각한 이름.
“피노!”
“피노요?”
“잘못 들었습니다?”
“잘 들은 거 맞아. 피노. 얘의 이름은 앞으로 피노야.”
현지와 신우의 반문에 피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기분이 좋은 듯 갸르르 소리를 내며 웃는 피노였다.
“너도 이름이 마음에 드는가 보구나. 피노!”
“어째서 피노입니까?”
“피노가 무슨 뜻이에요?”
이해를 못 하는 신우와 현지를 보며 피노의 코를 가리켰다.
“이 녀석 코가 조금 긴 것 같지 않아? 그래서 피노키노 할 때 피노.”
“……그러고 보니”
“엇! 정말이네요.”
그 말대로 피노의 코는 일반적인 고양이나 강아지에 비해 조금 긴 편이었다.
그것 외에도 마치 다른 동물들의 부위를 하나씩 합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녀석의 독특한 생김새였다.
* * *
“음…… 어째서 아무것도 먹질 않니?”
지나가던 사슴을 잡아 끼니를 해결하고 있던 와중 피노의 곁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하는 현지를 발견했다.
요리를 하는 신우를 지나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네…… 피노가 며칠째 아무것도 먹질 않네요.”
그녀의 대답에 바라본 피노는 동그란 눈망울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에서 부화한 피노는 어째서인지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나무에서 채취한 벌레부터 물, 고기, 심지어 풀까지 줘보았지만, 전혀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 이 녀석. 까다로운 건지 아무것도 먹질 않는 건지…….”
“걱정이에요. 어떤 동물인지도 알 수가 없으니 무얼 먹는지도 알 수가 없고…….”
“그러네요. 고양이나 강아지를 닮기는 했는데…… 사료만 먹는 걸까요? 하지만 구할 방법이 없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피노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아무 생각도 없는지 그저 밝은 울음소리를 내며 장난칠 뿐이었다.
나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 같기는 하였으나 피노는 현지를 매우 잘 따랐다.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녀석 때문에 계속해서 피노를 안고 다니는 현지였기에 내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기도 했다.
“우선 현지 씨부터 고기 좀 먹어요. 이 녀석은 배고프면 알아서 잘 먹겠죠.”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식사하러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자리에 앉아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적인 목표는 서울을 가는 것.
서울에 있는 가족들을 어서 빨리 찾아야 했기에 가장 우선적인 계획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
그에게 들은 마정석이란 물건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온 세계의 지형지물과 환경, 날씨가 변한 지금 어디에든 몬스터가 들끓었다.
서울까지 가는 도중 어떤 적, 얼마나 강한 몬스터를 만날 수 없는 지금.
그가 말한 마나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그 돌멩이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물건이었다.
신우나 현지, 나 또한 당장은 마나의 제약으로 인해 스킬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있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전력은 크게 증가할 것이 분명했다.
‘그 노인은 잘 있으려나?’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식사를 마친 듯, 배를 두드리는 신우와 피노를 안아 든 현지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
“네!”
“이 병장님,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음 우선 만나야 할 노인이 있어.”
“노인이요……?”
폐공장을 빠져나와 노인이 있던 숙소로 돌아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길을 기억해 두었던 현지가 안내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몬스터도 별로 만나지 않아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이 도착한 것이다.
“어르신, 저희 왔습니다.”
끼익-
그가 마법으로 소환했던 오두막집이 그대로 있었고, 집밖에는 인기척이 없었기에 집 안에 있을 거로 생각하여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디 가셨나?’
건물이 크지도 않았을뿐더러 집안에 가고 하나 없었기 때문에 들어감과 동시에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방 가운데 작은 쪽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네. 마을까지 오는 약도를 그려놓았으니 보상은 와서 받아 가도록 하게나.]
‘하긴 너무 오래 걸리긴 했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도시라 했었지……?”
도시에 관해서는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세계가 변하였지만, 발 빠르게 대처하고 적응하여 아직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장소였다.
변화에 따라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질서가 어지럽혀져 많은 도시와 마을들이 붕괴하였다고 한들, 멀쩡한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장소를 거쳐왔지만, 사람들은 제각각 빠르게 적응을 하고 있었기에 든 생각이었다.
도시로 이 근방에서는 가장 크고 상업적으로 발달한 도시라고 들었을 뿐.
직접 가본 적이 있는 도시는 아니었기에 더는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였다.
다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화이트.
알 수 없는 그 단체는 한 번씩 그 이름이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세계가 변한 그때 나타나 사람들을 도와주고 설명해 주었다.
수상하다 못해 좋지 않은 의심이 들 정도로 신경이 쓰이는 단체였다.
‘화이트라…….’
“이 병장님, 그럼 저희 도시로 가는 겁니까?”
“응, 잠시지만 휴식도 취하고. 그곳에 가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글쎄. 이 근방이라곤 했는데…….”
물론, 이 근방에 있다고는 하나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가는 방법이라고는 그가 두고 간 이 엉성한 약도뿐.
“아무래도 우리가 찾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이거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현지에게 들고 있던 약도를 건네주자 받아든 그녀가 유심히 그것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대충 그려지긴 했지만, 큰 지형지물들이 표시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출발하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