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45화
“자, 배팅을 시작하지”
“우아아아아!!”
“이번에는 안 되지! 난 그리즐리에 하겠어!”
“다시 믿는다! 얼빡이!!”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가 큰소리로 외치자, 주위의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동시에 펼쳐지는 홀로그램.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 속으로 자신의 코인을 집어넣었다.
‘코인을 이용해 도박하는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코인을 연신 흔들며 신우와 그리즐리를 향해 배팅하고 있었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얼싸안고 즐거워하는 그들을 보며 역겨움이 밀려들었으나 아직은 행동할 수 없다.
‘저 녀석이 두목이란 녀석인가?’
중심에서 배팅을 외치던 남자.
오크를 연상케 하는 큰 덩치에 험악해 보이는 인상, 그의 옆에는 대비되는 작은 몸집의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하는 사람들.
한눈에 보아도 그들의 서열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단순한 권력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 제기랄 저 족제비 새끼는 어째서 두목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거야?”
“어떤 상처도 한 번에 회복시키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나 봐. 두목 마음에 완전히 든 거겠지.”
“아니, 그래도 우리가 처음부터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어쩌겠냐. 스킬이 깡패지 뭐”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내가 있을 거라곤 꿈에도 모른 채, 바로 앞에서 속삭였다.
남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들이었으나, 당당하게 귀를 기울이며 모두 엿들었다.
‘처음부터 함께한 사람들…….’
세상이 변하고 몬스터가 생겨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처음부터 악인은 아니었겠지만 변화된 세상에 나쁜 의미로 빨리 적응해 버린 자들.
페널티로 표적이 될 것이 두려워 먼저 빼앗는 것을 선택한 자들이다.
살아남기 위해 식량과 물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진 자들에게 빼앗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빼앗으며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세상이 변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을 제한하고 있던 사회라는 울타리는 무너졌고, 그들의 한번 무너진 도덕성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타락해 인간 이하의 행동을 저지르는 약탈자가 된 것이었다.
“배팅이 완료됐으니 시작하지!”
두목이 소리치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크로아아아!”
“이야앗!”
마치 서커스라도 하듯 과장된 몸짓으로 그들은 포박을 내리쳤다.
속박하던 쇠사슬이 끊어지자 신우를 향해 그리즐리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크로로로!”
거대한 앞발을 들어 신우의 어깨를 깊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린 신우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황한 그리즐리를 향해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와아아아아!!”
“저 녀석 대단하잖아!!”
다시 한번 쏟아지는 환호성.
그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신우의 고유 스킬인 발도를 사용한 공격이 분명했다.
아마 내가 없는 사이 스킬을 성장시킨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곰의 형상을 한 몬스터는 단 한방에 신우의 발아래 쓰러졌다.
‘저들은 대부분은 추가적인 스킬을 얻지 못한 것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는 사람들을 보며 확신이 들었다.
모두 함께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저들의 성장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수인이나 인간을 사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능력은 두목이 독차지한 것으로 보였다.
‘숫자만 많은 허수아비…….’
겨우 스킬이 추가된 것뿐이지만 그들과 차이는 명확하다.
자신들보다 강한 적을 상대하기 포기한 채 능력을 빼앗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고 유흥을 위하여 싸움을 붙이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약탈자들.
신우를 구하는 것을 넘어 저들을 살려둘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만 마무리하고 이 새끼 감옥에 넣어놔!”
그들만의 행사가 끝이 난 듯 마무리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날이 밝아오려 하자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모두를 주목시키며 앞으로 다가갔다.
퍽!
“죽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라. 꼬맹이”
그는 천천히 울타리로 들어와 정강이를 걷어찼다.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쓰러지며 신음만 흘리고 있는 신우를 주위에서 달려와 쓰러진 신우의 몸을 쇠사슬로 묶으며 데리고 나갔다.
신우를 데려가는 약탈자들을 따라 감옥으로 쓰고 있는 듯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들에게 들킬 순 없었기에 그저 숨을 죽인 채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많이 다쳤는데요. 상처가 깊어요.”
“젠장, 귀찮게 됐구먼. 족제비 불러와!”
“네!”
그리즐리에게 당한 신우의 어깨 상처를 살펴보던 그들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더 상관으로 보인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명령하자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뛰쳐나갔다.
그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까 두목이라는 자 옆에 있던 왜소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상처가 깊다고?”
“예, 예.”
그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억지로 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듯 목소리를 내리깔며 질문하였다.
조금 전과는 정반대의 자세로 오히려 공손하게 대답한 그는 고개까지 숙여 가며 쩔쩔매며 대답했다.
“음, 안 되지 안 돼! 두목이 신경을 쓰라고 했던 녀석 아닌가!”
“네, 맞습니다.”
“비켜, 내가 볼 테니.”
기분이 언짢은 듯 소리친 그는 기분 나쁘게 비키라는 손짓을 하였다.
앞으로 나온 그는 신우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 두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 되었네, 겨우 이런 일로 다시는 부르는 일 없도록 하게. 귀찮게 말이야.”
“네, 네. 죄송합니다.”
순식간에 깊었던 신우의 상처는 차오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치료가 되었다.
보고도 믿기 힘든 현상에 놀라기도 잠시.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이곳을 빠져나갔다.
“……젠장. 저 능력만 아니면.”
“괜찮으십니까.”
그가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사내가 분한 듯 주먹을 움켜쥐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가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넸다.
“저, 족제비 자식…… 확 죽이고 빼앗아버릴까?”
“예…… 예? 하지만 저희끼리 능력을 빼앗는 건 금지이지 않습니까.”
“후, 저 능력만 있으면 나도…….”
“…….”
“에잇, 네놈 때문에. 나가자!”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그는 엄한 신우의 머리통에 린치를 가하고는 자신의 동료와 함께 자리를 빠져나갔다.
“신우야, 신우야”
쇠사슬에 묶인 채 몬스터들과 함께 갇혀 있는 신우.
은신을 유지한 채 밖에서 감시하고 있는 녀석들을 확인하고는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불렀다.
“끼긱끼끼끼!”
“컹컹! 컹컹! 크로아앙”
“신우야, 나야!”
모습이나 기척을 느끼진 못하지만, 소리가 들려오자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짖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하는 녀석.
“이, 이 병장님?”
“그래, 어떻게 된 거야?”
“저, 그게…….”
“잠깐, 쉿!”
“뭐야? 왜 갑자기 짖어?”
감옥 앞을 지키고 있던 사내가 갑작스러운 소란에 안으로 들어왔다.
눈치껏 침묵을 유지하는 신우와 계속해서 짖고 있는 몬스터들.
주위를 쓱 훑어본 그는 가만히 있는 신우를 확인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없어. 날이 밝으면 은신을 유지할 수 없어. 그 두목이라는 자 능력이 뭔지 알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 손에 검이 닿자 사용할 수 없게 녹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신체 능력 강화 스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손에 닿은 무기가 녹아버렸단 말이지…… 그래, 다가오는 밤에 큰 소란이 날 거야. 신호를 줄 테니까 그때 뛰쳐나와! 할 수 있겠어?”
“네, 알겠습니다.”
“우리의 짐들은, 어디에 있어?”
“위치, 제가 확인했습니다. 제가 챙겨서 가겠습니다.”
“그래, 미안하다. 곧바로 구해주고 싶지만, 저들의 수가 너무 많…….”
“이 병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이 병장님을 믿습니다.”
“어? 어…… 그래. 조금만 참아.”
조금씩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잡혀 있는 신우를 뒤로 한 채 폐공장을 빠져나왔다.
당장에라도 구출해 주고 싶었지만, 은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약탈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대부분이 추가된 스킬이 없다고는 하여도 그들은 오랜 시간 살아남은 베테랑 플레이어였다.
코인이 허락하는 한 어느 선 이상까지는 성장시켰을 플레이어들이었기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 * *
“현지 씨, 녀석들 숫자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쉽지 않겠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다 도울게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지와 만나 폐공장에서 멀리 떨어져 나왔다.
그들에게 모습을 들킬 순 없었기에 꽤 먼 거리였지만 이동을 해 몸을 숨긴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폐공장의 경비는 2인 1조로 3시간에 한 번씩 교대를 하고 있었어요. 밤에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거나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이동은 없었고요. 그러니 교대 시간을 맞춰…….”
“후…….”
“왜, 왜 그러세요……?”
그녀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옆에 있던 현지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언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는지 그 모습을 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떤 무기를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수류탄? 크레모아? 아니야…… 뭐가 있을까 간단하면서도 신속하게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화기가…….’
“있다! 박격포!”
“네…… 네?”
생각에 빠져 있다 나도 모르게 소리치자 놀란 듯 현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봤다.
상당한 사거리에 믿을 만한 정확도와 강력한 화력, 빠른 연사속도와 엄폐물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무기.
지금 사용하기에 딱 좋은 박격포를 떠올린 것이었다.
“박격포…… 라뇨?”
“음…… 이겁니다. 무기고!”
대답대신 곧바로 무기고를 열어 투박한 쇳덩이들을 꺼내들었다.
쿵.
중량 18㎏에 길이만 98.7㎝의 적당하다면 적당한 크기의 박격포.
“너, 너무 무거워 보이는데요……?”
“이 정도면 가벼운 편입니다.”
박격포에 대해 모르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현지가 어떻게 이 쇳덩이들을 이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듯하였다.
어깨에 메고 다니던 누군가 듣는다면 대노하겠지만, 실제로 이 녀석은 60㎜ 박격포로 경(輕)박격포 분류되고 있으니 가벼운 편이 분명했다.
부대를 빠져나오기 전 챙겨나온 녀석으로 KM181, 분당 최대 30발을 포격할 수 있는 녀석이다.
‘사거리도 3500m 정도 되니 문제 없을 테지…….’
신기한 눈으로 쇳덩이를 살펴보는 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문제가 있다면 보통하나의 박격포1문 당 3명에서 4명이 운용되며 기본적으로 포수, 부포수, 1번 탄약수, 2번 탄약수까지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문제는 없겠지…… 포수가 겨냥대, 부포수가 포신, 탄약수가 포다리, 포판 들고 걸어다니는 게 힘든 것이니…… 무기고가 있으니 들고 뛰어다닐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래도…….
“현지 씨.”
“네?”
“현지 씨가 부포수를 좀 해줘야겠는데요.”
“네? 부포수요……? 그게 뭔데요?”
“장전하고, 고폭탄 발사만 하면됩니다.”
“……고…… 폭탄? 장전이요?”
“그…… 그게 뭔데요? 제가 괜히 실수라도 하면…….”
“괜찮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완벽히 알려 드릴 테니.”
* * *
“포탄 인계!”
이어플러그를 착용한 현지에게 약 4㎏의 고폭탄을 넘겨주자, 긴장한 듯한 그녀가 받아들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정석으로 가르칠 필요는 없었지만, 어찌 됐든 군복을 입고 있고 그녀가 실수라도 했다간 손목이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긴장하라는 의미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것이었다.
“하나포 고폭탄 하나발 발사! 삼 둘 하나 발사!”
“바…… 발사!”
푸우우웅!! 쾅!!!
말하기 무섭게 박격포에서 포탄이 발사되었다.
포탄이 발사되며 흔들리는 포체와 무시무시한 굉음.
정확히 목표한 위치를 박살을 내버리는 그 화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테스트 결과였다.
바짝 긴장한 현지 역시 빠르게 습득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래, 이 정도면…….’
은신을 이용해 만나고 온 신우의 말에 의하면 약탈자 보스의 대표적인 능력은 무기를 녹여 버리는 것이었다.
폐공장 안에 들어가 근접전을 벌일 경우 불리할 것은 물론이었고, 어디에서 튀어나와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지 알 수도 없었다.
밖에서 저격하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폐공장의 구조상 저격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럼 전부 박살 내버리지 뭐.”
그리고 마지막에 생각해 낸 방법이 공장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수류탄이나 크레모아를 이용할 계획이었으나, 그보다 확실한 대비책이 생겼다.
박격포, 그 위력을 마음껏 뽐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