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44화
“하지만 제 동료는 ‘악인이 된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어째서…….”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자네들이 늦는다면 결국 그렇게 될걸세.”
“그게, 무슨…….”
“그들은 플레이어들을 납치해서 가둬 놓고 서로 전투를 시킨다네. 누군가 죽을 때까지 말이야.”
“……능력을 빼앗기 위해서입니까?”
“맞네.”
“그럼 어서 빨리…… 어째서 괜찮다고 한 겁니까?”
“당장은 괜찮을걸세. 자세의 동료 말곤 아직 잡혀 있는 사람이나 수인은 없거든.”
“……? 그럼 이미.”
“맞네, 어제 그들은 사람들의 능력을 빼앗았어. 그러니 자네 동료의 능력을 빼앗고 싶어도 ‘악인이 된 플레이어’로 만들 방법이 당장은 없네. 물론 그렇다고 안전하진 않을걸세, 그들은…… 어떤가? 그래도 동료를 구하러 갈 텐가? 자네들이 간다고 하면 그들의 위치를 알려주겠네.”
“……그전에 한가지. 어째서 저희한테 그런 정보를 주는 겁니까? 또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지도”
“음, 그렇구먼. 아까도 말했다시피 가까운 곳에 우리의 마을이 있다네. 약탈자 녀석들이 주는 피해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항상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네. 어서 빨리 해결하고자 하지만, 어찌 됐건 그들 또한 우리 마을의 사람들이었으니 꺼려지는 것도…….”
“……그래서 외부인인 저희를 이용하겠다는 겁니까?”
“……부정하지는 않겠네. 자네들이 실패한다고 해도…….”
“상관없겠군요.”
“맞네.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야 손 안 데고 코를 풀 수 있는 격이니 사양할 게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째서 그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저희의 무얼 믿고요.”
“지금까지 모습이 변하지 않고 살아 있는 그것만으로도 자네들이 강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네. 인성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라면 방금 말했다시피 상관없는 부분일세.”
“…….”
“어떤가. 약탈자들을 처리해 주겠는가? 음…… 그렇지 혹여나 원하는 게 있는가?”
“원하는 거 라면?”
“보상이네, 보상. 자네들도 퀘스트를 해보지 않았나? 나는 지금 퀘스트를 의뢰하는 것이네 원하는 보상이 있는가?”
“…….”
갑작스레 원하는 보상이 있냐 물어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어 현지를 바라보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요. 마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게 강한데 직접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무리 생각해도…….”
“음…… 그렇군. 자네들은 모르는 건가? 마나를 다루는 법을.”
“……무, 무슨 얘깁니까! 마나를 다루는 법이라니!”
순간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며 되묻자 그는 잠시 놀란 듯하였으나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것이네.”
그가 품 안에서 꺼내 든 것은 푸른빛을 띠는 작은 돌멩이였다.
어딘가 특별해 보이지만 어디서든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자 그가 설명을 이었다.
“마정석이란 물건이네. 이것이 있으면 마나의 양을 늘려 무한히는 아니어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네.”
“……그, 그 마정석은 어디에서 얻은 것입니까?”
“화이트라는 단체에게서 받았다네.”
“……화이트…….”
들어본 적이 있었다.
구조 물품을 뿌리고 다니는 알 수 없는 단체.
대피소의 포스터를 뿌렸으나 존재하지 않던 그곳이었다.
“세상이 변하던 그 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의 마을에 나타난 그들이었네.”
“…….”
“그러고는 이 마정석과 몬스터, 그리고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 대해서 알려주었지. 그 덕분에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네.”
“……그런, 어떤.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도 모르네. 정보를 주고는 홀연히 떠나 버렸어.”
“…….”
“관심이 있나 보군. 어떤가. 약탈자들을 처리해 주면 이 마정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겠네.”
“……좋습니다.”
노인의 제안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빼앗긴 가방과 신우를 구출하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했고 무엇보다 그들의 정보와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마정석까지 준다고 하였으니 내린 결론이었다.
현지 역시 모든 대화를 골똘히 들으며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바로 떠나겠습니다.”
* * *
“현지 씨는 오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요. 저도 가겠어요…….”
아침이 밝아옴과 동시에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안색이 어두운 현지를 보며 제안을 하였지만, 그녀 역시 완강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 먼 길을 지나 발자국이 향한 것은 낡고 허름한 폐공장이었다.
도저히 생활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 그 안에는 얼핏얼핏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이었다.
“오늘 그 이벤트를 한다면서?”
“아, 그 얼빵한 녀석? 하하 볼 만하겠구만.”
공장의 입구들 지고 있는 두 수인.
가면을 써 자신들의 얼굴을 가린 그들은 어디서 구한 것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총을 하나씩 손에 든 채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인가? 대피소를 습격한 자들이.’
현지와 함께 나무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황상 저들이 신우와 우리의 물건을 가져간 것으로 보였다.
또한, 저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 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들이 들고 있는 총기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우가 납치되었던 장소에 있던 총탄의 자국들을 보았기에 더더욱 확신을 두게 되었다.
‘노인의 말은 맞는 것 같아…… 이제 곧 밤이야. 일단 확인이 되면…….’
우리를 구해주긴 하였으나 처음 만난 노인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기에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그들이 약탈자가 맞는지는 전부 직접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되면 은신 반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저곳으로 들어간다.
폐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풀숲에 몸을 숨긴 채 밤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털썩.
나무에 몸을 기대며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의 휴식, 스킬 덕분에 육체적인 피로는 줄었지만, 정신적인 피로까지는 어떻게 하지 못했다.
한 번에 몰아치는 사건, 사고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저들이 얼마나 강할지 모른다. 최대한 강해져야 해.’
주위에 보이는 몬스터들의 시체들.
저들이 해치운 것으로 보였기에 그마저도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스킬창!”
[보유 스킬]
[내 손 안의 무기고 LV4-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 개조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어떠한 무기도 사용 또는 조종할 수 있습니다.]
[방탄 피부 LV3-피부로 일반적인 총탄이나 파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내구력이 높아집니다.]
[지치지 않는 체력 LV4-육체적인 활동에 있어서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그 효과가 증가합니다.]
[끈질긴 생명력 LV3-치명적인 상처에도 쉽게 쓰려지지 않습니다. 물과 식량을 오랜 시간 섭취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그 효과가 증가합니다.]
지금까지 사냥을 통해 차곡차곡 쌓여 있던 코인을 전부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데 사용하였다.
단지 스킬의 레벨이 증가한 것만으로 육체 능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보는 어떠한 무기도 사용 또는 조종할 수 있습니다.]
내 손안의 무기고를 레벨업 시키자 생겨난 문구였다.
다른 스킬들에 비해 4배 이상의 코인을 요구하는 스킬들로 인해 코인은 바닥이 났으나 분명 크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 * *
“현지 씨는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세요. 제가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저, 저도…….”
“아뇨. 저들이 수는 얼마나 되는지, 신우는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오겠습니다. 같이 가는 것은 위험해요.”
“하지만…… 민혁 씨라도 안전한 건…….”
“저는 이게, 있으니 괜찮습니다.”
[아이템 효과에 의하여 은신이 발동됩니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루핀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완전히 투명해진 몸을 확인하며 풀숲을 빠져나와 폐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새 교대를 해 달라진 공장 앞의 수인들.
철저하게 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나의 모습도 기척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지나 안쪽으로 유유히 지나갔다.
* * *
“크르르르, 컹! 컹!”
“으으…… 이 병장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눈앞의 거대한 늑대, 아니, 늑대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몬스터는 눈앞의 신우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짖고 있었다.
늑대의 완전히 맛이 가버린 빨간 눈동자는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으며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쇠사슬의 목줄이 없다면 당장에라도 달려오고 싶은 듯 몸부림쳤다.
“죽여!!”
“얼빵이 너한테 1,000코인 걸었다! 무조건 이겨라!!”
“아무나 죽어라!!!”
“빨리 시작해!!”
주위에서 쏟아지는 욕설과 응원.
둥그렇게 만들어 놓은 울타리와 기둥마다 묶여 있는 고블린 좀비들, 그 안의 신우와 늑대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끼끼끼엑!”
“끼에에엑!!”
철컹, 철컹.
주위를 완전하게 포위한 고블린 좀비들은 눈앞에 보이는 생명체를 공격하고 싶어 안달했고, 그로 인해 울타리가 부서질 듯 쇳소리가 요동쳤다.
마치 격투기를 관람하듯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들은 이곳을 콜로세움이라 불렀다.
뚜벅. 뚜벅.
그때 몬스터의 목줄을 잡고 있던 남자가 신우에게 다가왔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의 남자는 더욱 인상을 구기며 공장에서 주운 듯한 쇠파이프를 건넸다.
“이봐, 얼뜨기. 너한테 10,000코인 걸었다. 무조건 이겨라.”
“…….”
“여기서 지면, 살아남아도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이 새끼야.”
협박하듯 신우에게 속삭인 남자는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가 줄을 끊은 후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크르르, 컹! 컹!!”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하는 늑대.
* * *
“끼끽끼끽끼!”
“끄로오오오!”
“크르르르르르!”
은신으로 몸을 숨겨 폐공장으로 들어온 민혁은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울음소리에 반응했다.
반쯤 열린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우우우”
“……와아아아! 잘…… 한다!”
방음이 되지 않는지 조금씩 들려오는 사람들의 외침.
어째서인지 시끌벅적한 위층에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는 듯하였다.
끼이익.
‘……왜 이런 짓을.’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철장 안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잡아 온 것인지 그 종류도 수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뚜벅. 뚜벅.
“하하, 대단한데?”
“그러게 말이야. 의외야, 처음부터 바로 죽어버릴 것 같았는데.”
그때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누군가의 소리에 재빨리 몸을 숨겼다.
은신의 효과에 의해 굳이 몸을 숨길 필요는 없었으나, 아직 익숙하지 않아 본능적으로 행동한 것이었다.
철컹. 철컹. 탁.
대머리의 사내와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두 사내는 몬스터가 갇힌 철문을 열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녀석이 데려온 그놈인가?”
“고럼, 그놈이 무려 두목이 직접 잡아 온 놈이여”
술을 마신 건지 진한 알코올 향과 빨개진 얼굴을 한 그들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몬스터를 고르고 있는 귀를 쫑긋 새웠다.
“얌마, 조심해라. 취한 거 아니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축제인데 실수했다간 큰일 난다.”
“이 씨! 취하긴 누가 취해! 흠흠.”
“그나저나 이번 놈 능력도 두목이 먹는 거야? 벌써 몇 명째야.”
“글쎄, 아무래도 그러지 않을까? 검을 쓰는 놈이라던데 탐낼 만한 능력이잖아. 이거 잡어. 이놈으로 데려가자.”
“그리즐리? 난이도가 너무 갑자기 뛴 거 아니야? 그 얼빡이가 상대나 되려나?”
“크크크, 한번 보자고. 그 얼빡이가 잘하나 못하나.”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거대한 곰의 모습을 한 그리즐리를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쇠사슬로 온몸이 칭칭 감겼음에도 버거운 듯 낑낑거리는 그들을 나 역시 뒤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