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42화
현지의 탐색 스킬이 향하는 방향도, 이동할 수 있는 장소도 이곳이 유일했다.
도시의 실루엣이 있던 방향과도 일치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모두가 동의하자 곧바로 지하철 선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인스턴트 던전-선로에 입장하였습니다.]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 던전을 나갈 수 없습니다.]
[임무-반대편 입구에 도착]
그 순간 홀로그램이 던전 입장을 알려왔다.
던전의 존재야 이미 알고 있었기에, 몬스터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긴장하긴 하였으나 놀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민철과 그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던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인상을 찡그리거나, 주변을 살필 뿐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동합시다.”
던전을 나가기 위한 임무도 반대편에 도착하는 것이었고, 몬스터가 있을 것도 예상하였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곧바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끼에에엑!!!”
얼마 이동하지 않아 좀비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 수는 다섯 마리, 생각보다 적은 수에 안심하며 총구를 든 순간.
좀비 한 마리가 공중 부양을 했다.
“뭐야?!”
그 자리 그대로 공중으로 높이 뜬 좀비를 따라 총구도 같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 뒤에 커다랗게 보이는 급소를 뜻하는 빛.
으드득. 으드득.
“고…… 꼽등이?”
거대한 꼽등이가 좀비의 머리를 씹고 있었다.
툭.
머리가 사라지며 몸만 남은 좀비가 그대로 떨어졌다.
빛이 닿지 않아 뒤에 있던 거대 꼽등이를 보지 못하고, 잡아먹히는 좀비가 공중에 뜨는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타당! 탕! 탕! 탕! 탕!
모두 끔찍한 그 광경에 넋을 놓고 있을 때, 공격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끼에에엑!!!”
“끄로아아아아!”
순식간에 달려드는 좀비들과 엄청난 높이를 뛰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버리는 꼽등이.
거대한 꼽등이의 소름 끼치는 시선이 전부 느껴졌지만, 먼저 앞에 있는 좀비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마! 일단 좀비부터 죽여!”
신우의 검이 좀비의 머리를 꿰뚫고, 민철의 주먹이 마무리했다.
신아영이 빛을 발사하면 타이밍에 맞춰 곧바로 마탄이 향했다.
“온다!!”
“끼아아오오옥!”
그 순간 움직이지 않던 꼽등이가 우리를 향해 점프했다.
꼽등이를 막은 것은 거대한 벽.
지켜보고 있던 연우가 달려드는 녀석을 보고 곧바로 벽을 세워 막아낸 것이었다.
그사이 모든 좀비를 죽이고 남아 있는 것은 저 녀석 한 마리가 전부였다.
탕! 탕! 탕! 탕!
모든 공격은 거대 꼽등이에게 이어졌고, 녀석은 쓰러지며 죽었다.
푸슈우우우우욱-
“모두 뒤로 비켜!!”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안심한 그때, 죽은 꼽등이의 사체에서 흰색의 기다란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듯 사정없이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는 생명체.
그것의 정체는 연가시였다.
화아아악!!! 타닥, 타닥. 타닥.
꼽등이의 시체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화염 방사기를 꺼내 들고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화염과 함께 거대 꼽등이의 사체와 엄청난 길이의 연가시가 불에 타 쪼그라들며 죽었다.
* * *
끝이 보이지 않는 선로에서는 계속해서 좀비와 거대한 벌레들이 등장했다.
계속되는 전투에 모두가 지쳐 더는 이동하기에는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자 사방에 방어벽을 깔고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방어벽 안에서 쉬기 위해 자리를 잡자, 어색하게 서로 떨어지며 앉았다.
서로 믿지 못하였기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동.
그들은 허기가 졌는지 배를 채우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벽에 등을 기대었다.
“군인 아저씨.”
눈을 감기 무섭게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연우가 감자 세 개를 양손에 든 채 건네고 있었다.
“어…… 이게 뭐야?”
“감자요!”
그것을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는 민철과 아영을 바라보자 괜찮다며 받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아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잠깐만 이거 받아.”
감자를 받자 배꼽에 손을 얹으며 인사했다.
연가시가 나타났을 때를 이야기하는 듯하였다.
구해주려고 한 행동보단 그저 나를 위해 한 행동이었기에 왠지 모를 미안함과 그 때문에 소중한 식량을 가지고 온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다.
세상이 변한 뒤 점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는 성격을 반성하며, 연우에게 초콜릿과 사탕을 쥐여주었다.
“어! 감사합니다.”
초콜릿과 사탕을 받자, 기뻐하며 다시 한번 인사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쉬고 있는 신우에게 받은 감자 절반과 함께 남은 초콜릿과 사탕을 건네주었다.
“내 몫만 줬어. 이건 너 먹어. 현지 씨도 여기요.”
* * *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계속해서 이동했다.
선로를 이동하는 동안 특별한 몬스터는 나오지 않았고, 모두 힘을 합쳐 조금씩 계속해서 앞으로 나갔다.
잠시지만 휴식을 취하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목적지가 하나뿐인 이 선로를 지나면 어디가 나오는 것일까.
그곳 역시 전혀 새로운 장소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이동을 하면 할수록 이곳으로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 아닐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곳에 도착하면 변하기 전의 세상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이 들면서도, 반면에 더욱 살아남기 힘든 곳이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선로의 끝은 다가오고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선로의 끝에 다다르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며 홀로그램이 반겨주었다.
민철과 연우, 아영 역시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한층 표정이 밝아졌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민철이 앞으로 나오며 악수를 건넸다.
“고맙네. 자네들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 꼭 살아남게나.”
“기회가 된다면…….”
이미 헤어짐을 약속하고 만난 사이였기에 그들과는 그렇게 갈라졌다.
* * *
“덥다…….”
현지의 안내에 따라 계속해서 걸어갔지만, 완전히 다른 환경.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무척이나 습하고 더운 날씨.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사람도 몬스터도 보이지 않는 장소.
그나마 그녀가 없었다면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잠시 나무에 기대 체력을 회복한 후 서서히 일어나 출발하였다.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후…… 이 숲, 끝이 없네…….”
걸어도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숲.
심지어 이동할수록 빽빽해지는 나무들 때문에 위를 보아도 하늘조차 확인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주위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나무들뿐.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저쪽에, 사람들의 흔적이 보여요.”
“사람들의 흔적이요? 제가 올라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여차!”
지칠 대로 지친 순간 계속해서 탐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던 현지가 무언가를 보고 소리쳤다.
동시에 신우는 나무 위를 기어올라 무언가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어! 저게 뭐지? 마을?”
나무 아래에서 내려다보자 보이는 독특한 풍경의 마을.
통나무로 만들어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진 울타리 앞에 경비병 두 명이 신우의 눈에 뜨인 것이었다.
“마침 잘 됐다.”
나무에서 내려온 신우는 곧장 마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물과 식량이 떨어져 고민하던 차에 우리에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과 같은 상황.
“누구냐! 더는 다가오지 마라!”
우리가 다가오자 인기척을 느낀 경비가 막아섰다.
가까이 다가간 순간 깜짝 놀랐다. 창을 내밀며 막아선 그들의 생김새 때문.
멀리서 보았을 땐 눈치채지 못하였으나 가까이에서 살펴본 그들은 인간으로 보기 어려운 외형.
‘수인?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 건가…….’
이미 수인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기에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바라보고 있는 민혁에게 다시 한번 창을 들이밀었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였다.
“숲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마을에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요?”
경비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질문하였다.
“숲에서 길을 잃었다니? 숲에는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민혁 역시 경비병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숲에 어떻게 들어오다니…….’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
이럴 때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지.
“저희는 서울로 가는 중입니다. 역을 빠져나와 걷는 와중에 이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을 빠져나왔고? 잠시만 기다리게”
잠시 회의라도 하는 듯 쑥덕거리던 경비병들. 이내 곧 누군가에게 보고를 위한 것인지 경비 중 한 명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가 다가왔다.
“들어오도록 하게. 대표님께서 뵙고 싶다고 하신다.”
경비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예상했던 대로 그다지 크지 않은 작은 마을.
약 20에서 30채 정도의 작은 집들이 모여 있었다.
숲속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룬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마을.
하지만 마을의 나무들은 시들시들하였다. 푸르른 나뭇잎이 아닌 마른 나무들. 왠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가 피어나는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의 대부분이 뾰족한 귀를 가진 수인족으로 보였다.
그들은 낯선 이가 마을에 들어온 것이 신기한 것인지 수군거리며 하던 것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시네. 들어가 보게.”
경비의 안내에 멈춰선 곳은 마을의 중앙.
수백 아니, 수천 년은 된 것 같은 커다란 나무 아래 있는 집이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가장 생명력이 넘치며 싱싱해 보이는 거대한 나무.
경비의 안내를 따라 나무 아래의 집으로 들어갔다.
“반갑네, 여행을 하는 자라고?”
집으로 들어가자 마을의 대표인 듯 반겨주는 수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품기는 그녀는 자리에 앉으라는 듯이 손짓하였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테이블인 듯 양쪽에 소파가 놓여 있다. 다가가 앉자 차를 내려온 듯 찻잔을 가져온 그녀가 맞은편에 앉았다.
“마을에서 직접 키운 차라네. 향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그녀가 앞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처음 맡아보는 향긋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 나왔다.
“선로를 빠져나와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데, 맞나?”
“길을 잃은 와중에 발견하였습니다. 물과 식량이 떨어져서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알겠네, 물과 식량을 조금이지만 챙겨 주도록 하겠네.”
장로는 무언가 고민하는 듯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부탁이 있네.”
-띠링!
[퀘스트-숲의 위기]
숲의 수인들은 힘을 모아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함께 마을을 가꾸고 일구어가며 숲에 몸을 숨긴 채 살아가던 마을의 수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원인을 파악하라!
장로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보았다.
하지만 목적이 있었다.
현재도 계속해서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해 초조한 상황. 안타까운 상황이었으나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내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였어. 생각보다 이곳에서 꽤 많이 떨어져 있으니 물과 식량을 조금이지만 챙겨 주겠네.”
부탁을 거절하였으나 그녀는 나무라지 않았다. 사정을 간략하게 들은 그녀는 이해해 주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