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어다니는 무기고-41화 (41/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41화

“허억, 허억. 뭐야 이 자식들.”

보이지 않던 곳에서 전투를 치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을 모두 해치운 듯 그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요!”

다급한 현지의 외침이었지만 우리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발소리가 다가오는 소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주위가 점점 밝아졌다.

우리를 발견한 어린아이가 소리쳤다.

“어! 저기 군인 아저씨들이 있어요!”

‘아직 20대 초반인데 아저씨라니…….’

순간 울컥했지만 더는 다가오지 못하게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살이 찐 것처럼 보이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근육량이 상당해 보이는 아저씨와 어린아이, 그리고 주변을 밝히는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여성이 그룹을 이루고 있었다.

‘가족?’

첫인상은 가족, 남편과 아내 그리고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가족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 병장님.”

“계속 견제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로 소곤거렸다.

신우의 검은 그들을 견제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들의 동료가 있을 것을 대비해 주위를 살피며 총구를 돌리지 않았다.

어린아이와 여성이 있다고 하여 안심하거나 얕잡아 볼 수는 없다.

신체적인 조건이나 약세한 점은 스킬이 무엇인가에 따라 얼마든지 역전시킬 수 있다.

그건 피차 마찬가지인 듯 그들 역시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들, 혹시 저희를 구해주러 오신 건가요?”

어림도 없는 소리. 돌발적으로 앞으로 나오며 질문하는 아이를 남자가 가로막았다.

그들 또한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세상이 변한 뒤 서로의 경험은 다르겠지만 느낀 것은 비슷할 터.

처음 본 인간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어색한 침묵만이 지속되었다.

“끄어어억!”

“끼이이익익!”

그때 주위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주위의 시체들이 하나둘 시뻘건 눈을 뜨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누워 있던 시체들은 전부 좀비였고, 그 수는 한눈에 가늠하기 어려웠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좀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들 것이 뻔하였지만, 총구를 돌릴 수 없었다.

그건 저들도 마찬가지였고, 남자가 제안을 걸어왔다.

“이봐, 형씨들 일단 좀비들부터 해결하는 게 어때”

“……좋습니다.”

이미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좀비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억, 이 녀석들 부대 앞의 녀석들보다 강합니다.”

나 역시 느끼고 있었다.

마탄 한 방이면 순두부처럼 으깨지던 좀비들은 급소를 정확히 노렸음에도 쉽게 죽지 않았다.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한들 다 같은 녀석들이 아닌 듯 몬스터들은 더욱더 단단하고 민첩했다.

“으윽!”

공격력 역시 대폭 증가하여, 흠집조차 낼 수 없던 좀비들의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탕! 탕!

급소를 정확히 맞춰 마탄을 두 번 이상 쏴야 죽음을 맞이했다.

“머리를 베지 말고, 왼쪽 눈을 노려요!!”

“예!”

푹!!

좀비는 엄청난 높이를 점프하며 다가오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입 주변이 썩어 문드러져 인간은 벌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입을 벌렸고, 혀가 없고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그들의 입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두려울 법도 햇것만 신우의 날카로운 검은 엄청난 속도로 좀비의 왼쪽 눈에 정확히 찔러 넣었다.

이에 질세라 순식간에 대열을 갖추며 방아쇠를 당겼다.

근접 공격이 장점인 신우의 흐름이 끊겨 공백이 생기면 여지없이 나의 총알이 좀비를 향해 날아갔다.

꽤 오랜 시간 같이 지낸 것이 허송세월은 아니었는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적재적소에 공격하며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연우야, 방어벽!”

“네!”

좀비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공격하는 와중에도 인간들에게 절대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스킬을 활용하는지 궁금한 것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공격을 받게 된다면 매우 위험하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들 역시 지금까지 살아남게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투박하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좀비들을 사냥했고, 좀비의 머리만을 노리며 공격하는 것을 보아하니 몬스터에 대한 경험이 많아 보였다.

이미 인간의 수준을 탈피한 엄청난 완력으로 좀비들을 깨부수는 남자와 그 뒤에서 빛을 발사하는 여자, 무엇보다 어린아이의 스킬이 인상적이었다.

‘방어 계열 스킬인가?’

어린아이가 손을 뻗자 땅에서 단단해 보이는 벽이 솟아났다.

실제로 그 벽에 가로막힌 좀비들은 공격하기 위해 안달하였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그들은 벽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사냥을 이어나갔다.

지금이야 내 무기들을 이용하면 간단히 그 벽을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그가 스킬을 성장시킨다면 장담할 수 없다. 너무나도 탐이 나는 인재.

“계속해서 몰려옵니다!”

다급한 신우의 외침에 주변을 둘러보니 더욱더 많은 좀비가 몰려오고 있었다.

계속되는 물량 공세에도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좀비들을 사냥하면 할수록 일정한 패턴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

그들은 무작정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공격해 올 때는 손톱이나 이빨을 사용하였고, 한번 공격을 받으면 주춤거리며 뒤로 빠지며 다른 좀비와 위치를 변경했다.

지금까지 무작정 공격을 해오던 좀비들과는 다르게 지능이 조금 생긴 것이다.

다시 공격해 올 때는 더욱 강한 이빨만을 이용한 공격, 매번 패턴이 똑같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신우야 좀비들을 죽이는 것보다 둘러싸이지 않도록 주의해.”

“네, 알겠습니다.”

“군인 아저씨들, 제가 도와줄게요!”

좀비들을 사냥하는 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녀석들과 지능적으로 움직이는 좀비들에 의해 점점 둘러싸이기 시작했고.

그 순간 우리의 삼면에 벽이 솟아났다.

돌파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우리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아이가 스킬을 사용해 도움을 준 것이었다.

“전부 죽여!”

확실히 벽으로 인해 한쪽으로 좀비들이 쏠리게 되자 사냥은 더욱더 수월하게 진행됐다.

양옆과 뒤로 접근하지 못하게 되자 전방을 향해 공격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 없이 모든 좀비를 죽이던, 우리가 죽던 끊임없이 계속되는 데스 게임이 시작됐다.

“크라아아아아아아아!!!”

“온다!”

“발도!!”

눈앞의 좀비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자, 신우가 전방에 있는 모든 녀석의 머리통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고통을 호소하며 뒤로 빠지려는 녀석들, 하지만 총알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타당! 탕! 탕! 탕! 탕!

순식간에 쏟아지는 총알에 목숨을 잃고 쓰러지는 좀비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지치는 기색도 없이 점점 더 요령이 붙기 시작했다.

“피해!”

탕! 탕!

곧바로 좀비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대며 마탄을 밀어 넣었다.

눈의 빨간 빛을 잃으며 좀비의 머리가 그대로 떨어졌다.

“괜찮아?”

“네, 문제없습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신우는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좀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마지막 좀비만이 남아 있었다.

탕!

곧바로 마지막 남은 좀비의 머리를 겨냥했고, 끝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억, 허억. 끝났습니다.”

“그래…….”

숨을 고르며 신우가 이야기하였다.

눈앞에 가득 쌓인 좀비들의 시체를 보며 대답하는 순간, 감싸고 있던 벽이 사라지며 그들이 다가왔다.

척.

반사적으로 총구를 겨냥했지만, 개의치 않는 듯 남자는 앞으로 나왔다.

“이해하네, 나도 총이 있었다면 자네들을 견제하고 있을 테지.”

“…….”

“제안하고 싶은 게 있네.”

“제안이라면?”

“이동하려고 하는 거면 동행하는 게 어떤가?”

“그 이유는?”

“자네들도 조금 전의 상황을 보지 않았나. 솔직히 자네들 없이 우리만 있었다면 장담하지 못하네, 마찬가지 아닌가?”

“…….”

“입이 무거운 친구구만. 우리와 계속 함께하자는 것은 아니네. 우리도 자네들을 믿지는 못하고, 자네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곳을 나갈 때까지만 일시적인 동맹을 맺자는 제안이네.”

“……좋습니다. 단, 거슬리는 행동을 할 시에는 목숨을 장담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네.”

신우를 흘끔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단독적인 결정이었으나, 신우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제안을 수락한 것은 그들이 도움이 될 것이 확신했기 때문.

겨우 전투를 같이했다는 이유로 제안을 수락할 만큼 감정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서 불빛을 비추는 저들의 능력과 방어벽을 세우는 능력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들 역시 전투를 하는 우리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 터.

피차 같은 생각이니 서로의 이득만을 취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다른 낌새가 보인다면, 바로…….’

어린아이를 쏘고 싶진 않았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잠깐이나마 잘 부탁하네, 나는 김민철, 여기는 신아영, 이 아이는 연우라고 하네.”

“예, 저는 민혁, 신우, 그리고 현지라고 합니다.”

서로의 이름만을 교환할 뿐, 어떠한 정보도 밝히지 않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특히 서로의 능력에 관해서는 본 것을 바탕으로 추측만 할 뿐 절대 물어보거나 발설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렇게 하라거나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모두가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 * *

그들과 이곳을 빠져나갈 때까지만 협력을 약속한 뒤, 지하철역의 모든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곳에 식량들이 있는지 나눠서 살펴보고 가죠.”

어차피 이동하려는 가장 큰 이유도 식량을 찾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급하게 이동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의 제안에 민철은 상의하며 속삭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더는 이곳에서 좀비들은 안 나오는 것 같고. 근데 자네들 불빛이 없어도 괜찮겠나?”

“잠깐은 손전등이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럼 한 시간 뒤에 여기서 만나기로 합세. 시계는 가지고 있나?”

“예. 있습니다.”

신우를 바라보자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여주었다.

그들과 잠시 헤어지며 지하철역 파밍을 시작했다.

“일단 여기부터. 손전등 들어봐.”

“예.”

우선으로 현지가 안내해 주는 장소들을 향해 나아갔다.

신우에게 손전등을 맡긴 뒤 빠루를 꺼내 들어 음료 자판기를 뜯기 시작했다.

으득, 으득. 쾅.

“전부 챙기자.”

이미 누군가 시도를 했는지, 자판기의 겉은 부서지고 찌그러져 있었지만, 내부에는 음료수와 물들이 남아 있었다.

파손되며 투입구에서 걸린 상태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음료와 물을 가방에 담으며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음식이나 분식 등을 파는 가게들은 많이 있었지만, 현지의 스킬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미 모두 털렸다는 의미였기에, 확인할 필요도 없이 지나쳤다.

“여기에요. 어서요!”

“네? 여기는 옷 가게…….”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기에 곧바로 들어가 식량을 찾기 시작했다.

현지를 따라가니 굳게 잠겨 있는 계산대 밑에 작은 서랍.

곧바로 빠루를 이용해 서랍을 열자 간식을 모아둔 것으로 보이는 초코바와 사탕 몇 개가 들어 있다.

그런 식으로 빠르게 곳곳을 누비다 보니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만족할 정도의 식량을 찾고 나자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약속된 장소로 돌아가자 그들은 투덜거리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에이, 시간만 버렸네. 이미 전부 털어가고 없어. 자네들은 건진 것 좀 있나?”

“똑같죠, 뭐. 바로 이동하죠.”

“그러자고.”

은근슬쩍 떠보는 민철의 말을 돌리며 곧바로 하나밖에 없는 승강장을 향해 내려갔다.

계단을 통해 이동하자 보이는 것은 멈춰 있는 지하철이었다.

“쾅! 쾅! 끄에에엑!”

“쾅! 끼이이이엑!!

그리고 굳게 닫혀 있는 지하철 안에 갇혀 있는 좀비들, 우리를 발견하자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들려 했다.

“일단, 저 녀석들이 안 보이는 데로 피합시다.”

소리를 내는 좀비들에 의해 하나둘 집중되기 시작하자, 곧바로 제안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문은 닫혀 있었으나, 갑자기 열리거나 좀비들이 몰려 부서질 염려가 있었기에 녀석들이 우리를 보지 못하도록 이동한 것이었다.

어차피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을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기에 멈춰 있는 지하철을 지나 선로 앞에 섰다.

“이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은데…….”

“길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는 것 같구만. 꼭 누군가 이곳으로 가라고 정해놓은 것 같이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