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36화
“음…… 건이가 그렇게 당했다니…….”
“…….”
거대 벌레들에 당한 박건과 그의 일행에 대한 소식을 알리자 장선오의 표정이 굳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에 현지와 나 모두 같이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런 우리를 다독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겠지…… 자네들이라도 무사히 다녀와서 다행이네…… 그럼 약품은……?”
“네. 무사히 가져왔습니다.”
“음, 틀림없네. 내가 숨겨둔 약품들이야. 우선 자네 친구부터 해결하도록 하세.”
약이 든 보따리를 넘겨주자 곧바로 그것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보따리를 뒤지며 그가 약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자, 먹어보게.”
장선오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약을 제조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워 있던 신우에게 약을 건네줬다.
“자네 독을 해독시켜 줄 약이라네. 이걸 먹고 2~3일 있으면 해독이 될걸세.”
“예, 감사합니다.”
“아닐세. 약을 구해온 자네 친구 덕분이네.”
신우는 그의 말에 나와 현지를 보며 고개를 숙였고, 입속에 약을 털어 넣었다.
“으윽.”
“좀 쓸 걸세.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해독이 빠르게 될 거야. 한숨 자도록 하게.”
“예…….”
* * *
“현지 씨, 감사해요.”
신우의 중독이 빠르게 완화되는 것을 확인하자 안심이 되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현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아니에요. 다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걸요. 죄송해요.”
하지만 현지는 풀이 죽으며 자책했고, 미안함에 어쩔 줄 몰랐다.
“…….”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와중 그녀가 말을 이끌었다.
“텐트로 안내해 드릴게요. 저번에 머물렀던 곳을 쓰시면 될 거예요. 피곤하실 텐데 동료분이 회복되는 동안 그곳에서 쉬세요.”
“아, 네. 그럼 현지 씨는……?”
“저는 바로 사냥을 나가봐야 될 것 같아요.”
“사냥이요?”
“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사냥 조거든요. 이번 일로 사냥 조도 4명이나 공백이 생겼고…… 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그녀가 말하는 사냥 조는 대피소에서 그들이 맡은 역할을 말하는 듯하였다.
대피소의 사람들은 각자의 특기를 살려 생존하였기에, 말 그대로 그들은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생활하는 것이었다.
대피소 주변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 코인을 모으는 일.
변해 버린 세상에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그들이었으나, 사냥 조였던 박건 일행의 부재로 인해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네? 민혁 씨도요?”
“네. 방해가 되진 않겠죠?”
“아뇨.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긴 한데…… 어째서…….”
“가만히 있긴 근질거려서요.”
* * *
“이쪽은 저와 같은 사냥 조에 속한 분들이에요.”
잠시 준비를 하고 온다는 현지의 말에 대피소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가왔다.
현지는 잠시 자신의 뒤에 있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 다시 앞으로 나왔다.
“이쪽은 경아. 이쪽은 지혁.”
상황을 미리 설명한 듯 그들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현지는 한 명 한 명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대피소에 들어와 만난 사이로 각자의 사정으로 이곳에서 사냥을 하는 듯 보였다.
“민혁 님은 총기를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현지를 비롯해 모두가 알 수 없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
질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직설적으로 대답한 것이었으나, 반응은 썰렁했다.
솔직히 직업을 말한다고 하여도 상관은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단호한 대답이었다.
“그, 그렇죠…… 함부로 능력은 발설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죠. 하하”
“…….”
머쓱함에 뒷머리만 긁자 지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침묵을 깨며 모두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때 현지가 주먹을 내뻗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요?”
분위기를 풀려는 듯. 장난치듯 양 주먹을 번갈아 내뻗으며 그룹을 주도하는 현지.
물론 거기 있는 모두가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붕대?’
대피소를 빠져나와 본격적인 사냥에 들어가기 전, 현지가 양손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어디 다쳤어요?”
“네? 이거요? 하하. 아니요.”
불쑥 들어온 질문에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그녀.
이내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원, 투, 훅, 투, 원, 투!”
엄청난 높이를 점프하며 다가와 이빨을 들이대는 거대한 늑대.
그 모습이 무서울 법도 하건만 현지의 주먹이 엄청난 속도로 늑대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래, 이거야! 역시 손맛이지!!”
이에 질세라 순식간에 대열을 갖춘 지혁과 경아의 보조.
현지의 연계 공격이 끊겨 공백이 생기면 여지없이 지혁의 화살이 늑대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마치 기도라도 하듯 뒤에 떨어진 경아는 뒤떨어져 두 손을 모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같이 사냥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다는 듯이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어때요?”
“대단한데요?”
우쭐하며 주먹을 치켜드는 현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의 스킬을 이용한 듯 몬스터의 급소를 정확하고 집요하게 공격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대단해 보였다.
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공격이며, 바로 앞의 몬스터를 보며 기죽지 않는 대담함까지.
그녀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활은 어떻게 하고…….”
“아, 컴파운드 보우요? 사실 그건 지혁이한테 빌린 거였어요.”
그녀의 대답에 옆에 서 있던 지혁을 바라보자, 보란 듯이 들고 있던 활을 보여주었다.
분명 지금까지 현지가 사용하고 있었던 활.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종종 활을 빌려서 사용하였고, 거대 벌레들을 대적할 때 역시 가까이에서 전투를 치를 수 없을 거라는 판단에 활을 빌려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활 솜씨가 좋지는 않았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였지만, 형편없던 그녀의 활 솜씨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어떠세요? 이제 같이해 볼래요?”
지혁과 경아가 늑대를 사냥하고 있는 동안 뒤쪽에 멀뚱멀뚱 서 있던 나에게도 다가왔다.
지금까지 사냥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들이 늑대 잡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었기에 이제부터 동참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사냥하는 동안 구경을 하게 한 것은 그들의 나름대로 배려였다.
“늑대는 위험하긴 하지만 저희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겨도 곧바로 선오 아저씨에게 가면 될 거예요.”
“…….”
이 정도 몬스터쯤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현지는 알고 있음에도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뒤에서 킥킥대며 웃기만 할 뿐.
그들에게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사코 괜찮다며 사냥에 참여하겠다고 말하였지만, 초보자의 패기, 남자의 자존심 정도로 생각한 그들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완고한 그들의 태도에 그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도움은 됐어. 어렵지는 않겠는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그들을 이길 수 없어 구경만 하였지만, 늑대의 움직임과 일정한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무작정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보이는 일정한 규칙.
늑대가 공격할 때에는 앞발이나 이빨을 사용하였고, 어느 정도 데미지가 들어오면 한 바퀴 돌며 꼬리를 이용한 공격을 하면서 뒤로 빠졌다.
다시 공격해 올 때는 이빨만을 이용한 공격.
매번 같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패턴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민혁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방어마법을 집중해 줄게요.”
“맞아요. 민혁 씨가 위험에 처하면 활로 견제해 줄 테니 너무 겁먹지 말아요.”
늑대를 빤히 바라보며 패턴을 분석하는 것을 보며 한 마디씩 거드는 그들.
사냥에 경험이 없다고 판단하여 늑대에게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지혁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늑대를 유인하였다.
지혁이 활시위를 당겨 멀리 있는 곳까지 화살을 날리자 순식간에 달려오기 시작하는 거대한 늑대.
그르르르, 컹! 컹!
“온다! 준비해!”
현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앞을 가로막자 늑대가 커다란 앞발을 들어 올렸다
늑대가 앞발을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 백스텝을 이용하여 공격을 피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맞춰 시작되는 총공격!
“더블샷!”
“어퍼컷!”
“성스러운 가호!”
순식간에 쏟아붓는 공격에 잠시 주춤하는 늑대.
나 또한 빠른 속도로 어깨에 K2 소총을 견착하고 있었다.
“피해!”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은 늑대를 보며 뒤로 빠지며 소리쳤다.
늑대가 한 바퀴 돌며 꼬리로 공격할 것을 예측하고 한 행동이었다.
예상한 그대로 꼬리를 이용해 공격해오는 늑대.
순간 피하지 못한 현지를 공격한 늑대가 유유히 뒤로 빠졌다.
그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늑대의 이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뜸과 동시에 늑대가 선홍색의 피를 공중에 흩뿌리며 쓰러졌다.
“와, 축하해요. 치명타 뜬 거 맞죠?”
“저는 치명타 데미지 들어간 거 처음 봤어요! 복권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치 신기한 일이라도 겪은 듯 상기돼 보이는 지혁과 경아가 뛰어왔다.
“치명타요?”
“네! 급소를 정확히 맞췄네요. 대단한데요?”
그들이 말하는 치명타란 몬스터의 급소를 정확히 맞췄을 경우 치명적인 데미지를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지의 스킬을 통해 급소를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이렇게 놀라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아 입을 떼려는 순간.
“지혁이는 급소를 알고 있어도 지금까지 한 번도 정확히 급소를 맞춘 적이 없어요.”
“무, 무슨 소리야! 이건 운이 좋았을 뿐이야.”
경아는 눈을 흘기며 약을 올리듯 말하였고, 당황한 듯 지혁이 발끈했다.
* * *
-크아악
늑대가 고통스러워하며 달려들려는 그때, 여지없이 현지의 어퍼컷이 작렬했다.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늑대.
그제야 모두가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바로 시작할 수 있죠?”
“네…… 네? 벌써요? 얼마 쉬지도 못했는데.”
“벌써, 몇 시간 째…….”
함께 그룹을 이뤄 사냥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서로 익숙해지며 점점 더 잘 맞아가는 호흡.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냥의 효율은 물론, 빠른 속도로 코인이 쌓여가고 있었다.
“민혁 씨 방금도 치명타 터진 거 맞죠?”
“그런 거 같은데요?”
“네? 또요?”
“어떻게 매번 치명타가 떠?”
서로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며 사냥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사냥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라지고 있었던 것.
현지와 지혁의 공격에는 어느 정도 버티는 늑대였지만 민혁이 공격하는 족족 크게 고통스러워했다.
처음에는 단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지만 계속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원들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치명타 공격. 민혁의 공격의 7할 이상이 치명타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