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34화
식료품 창고를 빠져나가려 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나갈 수 없었다.
아마 그 이유는 홀로그램을 통해 설명되고 있는 인스턴스 던전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였다.
‘이곳을 나가려면 저 녀석들을 전부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더는 놀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미 라이칸스로프가 있던 던전을 경험해 본 마당에 조건이 있는 던전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일 뿐.
상황 판단이 끝나자 곧바로 저 거대한 바퀴벌레들을 사냥할 방법을 갈구했다.
프스스슷스스스-
픗스슷스스슷-
거대 바퀴벌레들은 점점 날갯짓을 멈추며 다시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지간히도 싫은지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그녀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둥그런 표면에 윤기 나는 검은 몸체, 긴 실 모양의 더듬이, 수도 없이 많은 가시돌기가 자라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여섯 개의 다리까지.
거대해진 녀석들의 생김새는 너무나도 세세하게 보였다.
나 역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그녀가 이러고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샤샤샤샥-
은밀하게 움직이지만, 몸집이 커진 만큼 그 소리도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퀴벌레가 빛으로 향하는 나방과는 반대로 빛을 피하는 음성 주광성 벌레인 것.
본능적으로 빛을 피하는 바퀴벌레들은 사방을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손전등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고 있었다.
“현지 씨, 일어나 봐요. 일단 여기를 나가긴 해야죠.”
“……네. 죄송해요.”
손전등으로 바퀴벌레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불빛을 비추며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발로 툭 찼다.
현지는 움찔하며 서서히 움직였다. 두려움을 떨쳐 버리진 못한 것 같았지만, 자신의 행동이 민폐라고 여겼는지 사과를 하며 일어났다.
아직은 불빛을 피해 공격하지 않는 바퀴벌레들이었지만,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었다.
빛을 비추면 그 자리에 멈추며 움직이지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는 계속해서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앞에 있는 벌레들을 한 번에 처리할 아이디어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녀를 불렀다.
“일단 이거 쓰시고 활 드세요. 손전등 잠시 가지고 계시고요.”
현지에게 건네준 것은 무기고에서 꺼낸 방독면.
밀폐된 장소에서 화염 방사기를 쓰게 되면 중독에 대비하여 미리 만들어둔 방독면이었다.
나 역시 방독면을 착용한 뒤 등의 연료통과 연결된 방사기를 치켜들었다.
양손으로 들어야 하는 방사기 탓에 손전등을 들고 있을 수 없었기에 현지가 손전등을 이용해 주변을 견제하고 있었다.
생존력이 강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알려진 바퀴벌레들답게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것을 알았는지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급소가 보이지 않는 바퀴벌레들이었기에 어떤 무기가 통하고 통하지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태워 버리면 되는 것이다.
치이이익-화아아아악!!!
방사기에서 가스가 넓게 분출되며 뿜어져 나오자 공격성을 드러내는 바퀴벌레들.
하지만 가스에 점화된 불꽃이 옮겨붙으며 화염이 분사되기 시작했다.
픗스스스스-
피하려는 듯 빠르게 날아올랐지만 넓게 뿜어져 나오는 불꽃을 피할 수는 없다.
거대 바퀴벌레들의 날개에 스치기만 하여도 불은 옮겨붙었고,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녀석들 덕에 순식간에 수많은 바퀴벌레에게 전염되기 시작했다.
“이얏!”
주위가 불꽃으로 인해 환해지기 시작하자 현지가 손전등을 집어넣은 채 보조하기 시작하였다.
공격을 위해 이빨을 드러내는 바퀴들은 여지없이 방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이 휩쓸었고, 빈틈을 노리려는 녀석들에게는 현지의 화살이 날아갔다.
타탁. 타탁. 타탁.
연기는 자욱해졌고 건물의 내부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퀴벌레들의 몸과 그들의 몸에 지니고 있던 알들에는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온몸에 불을 붙이고 돌아다니는 녀석들 탓에 사방에 불꽃으로 가득했지만 어째서인지 뜨겁지 않았다.
자세히 바라보니 어딘가 이상한 불의 흐름.
우리의 주변의 불꽃들은 모두 내가 메고 있는 등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피해를 주는 불꽃들이 가방에 흡수되며 전혀 피해를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째서……?’
이해하기 힘든 현상에 곧바로 가방을 내려 확인하였다.
가방에 든 것이라곤 약간의 식량과 물, 십자가 목걸이 그리고 ‘알 수 없는 알’이 전부였다.
“그 거대한 알은 뭔가요?”
알은 나를 불에서 보호하려는 듯 빨아들였고, 그것을 본 현지가 질문한 것이었다.
‘불을 흡수해? 부화의 증조인가……? 정보 확인.’
[알 수 없는 알]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희귀한 알. 생명 에너지가 가득 차면 부화한다.]
[생명 에너지-52%]
하지만 아직 부화하기 위한 생명 에너지가 가득 차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어째서 이 불을 흡수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알 주변에 있으면 불에 대한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지 역시 그것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착 달라붙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끼에에에옛!!!”
하지만 몸에 불이 붙고, 다리가 완전히 타버리고 심지어 목이 잘려 몸밖에 남아 있지 않은 바퀴벌레들조차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상상 이상의 끈질긴 생명력.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래서는 끝이 없어…….”
통. 동도더러러러.
그때 저 멀리 무언가 떨어지며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퀴벌레에 붙어 있던 불이 상자에 옮겨붙으며 내용물이 쏟아진 것이었다.
창고였던 만큼 비상식량으로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통조림이 굴러가고 있었다.
혼자 들고 가기에는 상당해 보이는 양으로 피난을 갈 때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로 보였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말린 표고버섯 통조림.
‘저거다!’
뒤에서 열심히 화살을 날리고 있던 현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물 있어요?”
“있기는 한데…… 목마르세요?”
갑작스러운 뜬금없는 질문에 황당하다는 말투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저기 통조림 쪽으로 이동할 겁니다. 조심해서 따라붙으세요.”
“네. 알겠어요.”
무엇을 하려는지 영문도 모른 채 나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메고 있는 가방 속의 알이 없다면 그녀 역시 불에 피해를 받을 것이 뻔하였기에 단독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공격을 위해 달려드는 바퀴벌레들을 향해 화염을 분사하며 이동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것은 말린 표고버섯 통조림 세 통.
거대해진 녀석들의 치아는 통조림도 부숴버리는지 그나마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현지 씨, 물 좀 주세요.”
“지금요? 아…… 잠시만요.”
그녀가 바퀴벌레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는 와중에 물을 꺼내 주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화가 난 것인지 황당한 것인지 복잡 미묘한 표정.
의심은 하지만 거대 사마귀를 잡은 이후로 실력을 인정하며 딴죽을 걸지 않는 그녀였다.
“잠시 시간 좀 벌어주세요. 얼마 안 걸립니다.”
“……물 드시게요?”
“제가 신호 주면 뛰세요. 아까처럼. 바퀴벌레들은 무시하고 반대편을 향해 뛰면 됩니다.”
“설마 또…….”
그녀가 말을 잇기도 전에 소이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이 역시 무기고를 통해 개조를 완료한 소이 수류탄이었다.
남아 있던 소이 수류탄 3개를 모두 꺼내 아직 열지 않은 통조림 주위에 깔아두었다.
그리고 바로 전부 작동을 시킨 뒤 말린 표고버섯 통조림을 열어 물을 채워 넣었다.
“뛰세요!!!”
소리치자 활을 거두며 뛰기 시작하는 현지. 그녀 역시 이번에는 전속력으로 뛰고 있었다.
순식간에 달려오는 거대 바퀴벌레들이 향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거대 바퀴벌레들이 전부 향한 것은 물에 불리고 있는 표고버섯.
미친 듯이 그곳으로 향하는 녀석들의 피부에 쓸리고 부딪혔지만 무시하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끼리 쌓이고 쌓여 산을 이룬 순간!
콰광쾅쾅쾅!!! 쾅!!
뭉쳐 있던 소이 수류탄이 엄청난 화염과 폭음을 내뿜었다.
창문까지 깨지는 풍압에 현지를 보호하며 팔찌를 화염을 향해 내세웠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 듯 등 뒤를 향해 빨려 들어오는 화염, 그 덕분에 단순 찰과상과 타박상만 생겼을 뿐 불에 대한 피해를 받지 않았다.
다만, 직접적인 효과를 받지 못한 현지의 팔에는 경미한 화상을 입은 듯 빨개져 있었다.
하지만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바퀴벌레를 모으는 방법으로 평소 곰팡이를 좋아하는 바퀴벌레들이 물에 불린 버섯을 일종의 곰팡이로 인식해 환장하며 달려든다는 내용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표고버섯 통조림을 발견한 순간 그것이 떠올라 바로 적용한 것이었다.
“……후”
눈앞의 광경에 할 말을 잃고 한숨을 내뱉었다.
완전히 타버린 바퀴벌레들은 산산조각이 났음에도 아직 다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방독면을 쓰고 있지 않고 만약 그 냄새를 맡았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광경이었다.
치이이익! 화아아아악!!!
그럼에도 살아 있던 녀석들을 하나둘 없애기 시작했다.
완전히 타버리지 않은 이상 어떤 방식으로 든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었고, 화염 방사기와 현지의 탐지 스킬을 이용해 전부 제거해 나갔다.
[인스턴스 던전-창고를 완전히 정복하였습니다.]
[공략 참여자 전원에게 스킬-끈질긴 생명력이 추가됩니다.]
[공략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우편을 통해 보상 상자가 지급되었습니다.]
숨어 있던 바퀴벌레를 제거하고 나자 마지막을 알리듯 나타나는 홀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