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33화
예상대로 벌레의 모습을 한 몬스터들은 화염에 큰 피해를 받았다.
녀석들의 피부는 불길이 닿는 순간 속절없이 타올랐고, 온몸이 불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했다.
연료통을 등에 멘 채 양손에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방사기를 손에 들었다.
나는 앞에서 연료통과 방사기가 밸브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화염 방사기를, 뒤에 김현지는 컴파운드 보우를 든 채 나를 보조해 주었다.
그녀의 동료들이 했던 행동들로 나의 뒤를 맡기는 것에 거부감이 있기는 하였으나, 급소가 보이지 않는 그녀는 나에게 적대감이 없다는 의미였기에 문제는 없었다.
“끼아아아아오!”
앞쪽의 방아쇠를 당겨 점화를 시킨 뒤, 뒤쪽의 커다란 그립 형 방아쇠를 당기자 분사되는 연료.
곧바로 연료에 불이 붙으며 전방에 거대한 사마귀를 향해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온몸이 화염에 휩싸이며 새카맣게 쓰러지는 거대사마귀. 활활 타고 있는 자신의 동료를 본 거대사마귀들은 점점 우리를 향해 몰려들었다.
“피해요!”
지금까지 허투루 살아남은 게 아닌 듯 김현지의 상황 판단은 빨랐다.
탐지 스킬을 이용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사마귀를 발견하는 즉시 견제를 하며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대벌레의 입속에 공격한 것처럼 급소에 직접 화염 샷을 쏜 것은 아니었기에 한 번에 그들을 불태우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억, 허억, 더는 탐지 스킬은 무리에요.”
아까부터 식은땀을 흘리던 현지가 이제는 버티기 힘든 듯 거친 숨을 헐떡였다.
계속되는 전투에 체력이 바닥난 것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겐 체력 스킬이 있었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녀처럼 한순간 급격히 체력이 빠질 정도로 우리가 무리하진 않았다.
“두 마리 그쪽으로 가요. 조심하세요!!”
일반 화살로 변경하며 화살을 쏘던 그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급격한 체력 저하는 다름이 아닌 스킬 때문, 탐지 스킬을 사용하며 마나를 전부 소비한 것으로 보였다.
마치 게임에서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의 차이처럼, 나의 경우에는 자동으로 적용되는 스킬들에 어떠한 부담이 없었지만, 직접적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였다.
마나를 전부 소비해 그 한계에 다다르면 그녀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급격한 체력 저하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뒤로 빠져 있어요. 내가 처리할 테니.”
탐지를 사용할 수 없는 이상 그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바닥난 마나는 짧은 시간 휴식을 취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었기에, 뒤로 가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현지의 견제가 사라지자 화염을 뿜어대고 있는 나에게 몬스터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곧바로 방향을 틀어 나에게로 다가오는 녀석들.
중간에 합세한 거대사마귀 네 마리를 향해 달려갔다.
취이이이익-화아아아악!!!!
“끼이이익!!!!”
녀석들에게 달려간 이유는 사정거리 때문.
유효거리 20m에 최대 사거리 40m 지금까지 사용했던 총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거리였지만, 진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좌우로 총구를 이동시키며 뿜어져 나오는 열기.
뭉쳐 있던 네 마리의 거대사마귀들을 향해 사정없이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괴성을 지르는 녀석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불을 옮겨붙으며, 뒤엉켜 죽어갔다.
“뒤에 사마귀들이 합류했어요!! 수가 너무 많아요!!”
다급하게 소리치는 현지의 외침에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불 쇼를 하는 동안 너무 이목을 끌었는지 거대사마귀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스무 마리는 되어 보이는 수.
하지만 어느 정도 염두에 두었던 상황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내가 신호 주면 뛰어요!!”
뒤에 있는 현지에게 외친 후 꺼내 든 것은 소이 수류탄.
이름은 수류탄이지만 그 크기가 커 작동한 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위치에 놓고 작동시킨 다음 놔두고 가야 하는 무기였다.
그 때문에 각종 장비나 문서를 자폭시키거나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되곤 하였지만, 이름 그대로 불을 지를 때 사용하는 무기였기에 거대 벌레들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뛰어!!!”
사마귀들이 거의 다가오자 소이 수류탄을 작동시킨 후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30㎏ 정도 되는 화염 방사기의 연료통을 메고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이미 앞에 있던 현지를 지나쳤다.
그 위력을 모르기에 그저 뛰고 있는 그녀였지만 내가 이렇게 필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콰광쾅쾅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뒤에서 화염에 의해 느껴지기 시작하는 열기.
써마이트나 백린 등이 들어 있기에 2,000도 이상의 엄청난 고열을 내며 금속마저도 문제없이 불태우고 녹여 버리는 소이 수류탄의 위력이다.
순식간에 거대사마귀들을 불태우는 것을 넘어 완전히 녹여 버렸다.
“허억, 허억. 아니, 도대체…….”
“후, 잘 뛰네요?”
불길에서 완전히 멀어지자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황당한 것인지, 놀란 것인지 말을 잊지 못하였다.
“도대체 뭘 한 거예요? 그것도 스킬이에요? 아니, 어떻게 그런 강력…….”
“하하하…….”
상대적으로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그녀 역시 이 정도 위력을 본 건 처음이었는지 질문을 해왔다.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 나 역시 그 위력에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사용한 소이 수류탄은 무기고를 통해 개조한 것이었다.
6개의 소이 수류탄을 합친 뒤 무기고를 통해 그 화력과 범위를 강화했다.
무리를 이루는 벌레들의 특성을 생각해 다수의 적에게 몰리거나 한 번에 그들을 처치하기 위해 만들어둔 것이었다.
‘아슬아슬했어…….’
그 화력이나 위력은 합격점이었으나, 달리는 것이 조금만 늦거나 터지는 시간이 조금만 빨랐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싫을 정도였다.
방금까지 있던 거리를 돌아보니 모든 것을 불태울 기세로 타오르고 있는 화염. 마치 지옥 같은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약국까지는 얼마나 남았나요?”
“……아, 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저기만 건너가면 되는데.”
약국까지 남은 건 한 블록.
다만, 그 중간에 타오르는 불길로 인해 지나갈 수 없었다.
광범위하게 퍼진 불꽃으로 인해 여기까지 느껴지는 열기에 그곳을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거 혹시 불 못 끄나요? 물이라도 뿌리면…….”
“아니요. 돌아서 가죠.”
소이 수류탄에 채워져 있던 것은 유류성 인화 물질이었다.
물을 끼얹는다고 해서 발화점 미만으로 온도가 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뿌린 물이 기화되어 부피가 팽창될 것이었다.
그러면 인화성 물질이 사방팔방으로 튀게 되고 불이 붙은 기름이 물 위에 둥둥 떠 사방으로 흘러 다니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불길이 더 거세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강한 화염을 만들기로 마음먹었고, 물속에 사는 벌레들까지 생각하고 만든 것이었기에 불을 끌 방법 따위는 준비해 두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길이 있었기에 불길을 피해 돌아서 가기로 했다.
골목에 몸을 숨긴 뒤 무기 점검을 하며 거대한 벌레들을 뚫고 나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저기 좀 봐요!”
몬스터들의 동태를 살피던 현지가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추며 불렀다.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확인하자 보이는 거대한 나방들.
그들은 방금 폭발로 일어난 불길로 이동하며 불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불타고 있었다.
빛을 향하여 움직이는 주광성 벌레인 나방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동해도 되겠는데요?”
“네, 바로 갑시다!”
거리에 몬스터가 거의 사라지자, 곧바로 뛰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나방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종종 거대한 벌레들이 다가오기는 하였으나, 견제만 하며 곧장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 보이는 약국의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연두색의 울타리가 무너졌지만 아직은 튼튼해 보이는 거대한 건물.
건물의 외벽에 걸린 간판에 각종 병원의 이름과 함께 맨 아래 1층.
약국이라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대놓고 있는데 남아 있는 게 있겠습니까?”
“저 벌레들 때문에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거예요.”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곳에 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황이 터지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곳이라 생각되었기에 질문하였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김현지.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 올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숨겨놨다고 했으니 반드시 있을 거예요,”
“그러길 바라야죠.”
무엇보다 장선오가 이곳을 빠져나오기 전, 생존에 필수적인 약들을 숨겨놓았다고 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약들보다는 식량들을 선택했고 다음에 가져오게 될 것을 예상해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네? 약국은 이쪽인데요?”
약국을 향해 들어가려 하자 현지가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아저씨가 나올 때 모든 입구는 폐쇄했다고 알려줬어요. 뒤쪽의 창고를 통해서 들어가야 해요.”
“……철저하네요.”
현지가 이미 장선오에게 창고의 위치를 들었는지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 약국의 뒤편에 있는 창고의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나도 깜깜한 내부.
외관상으론 창문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여기 맞아요?”
샤샤샥-
“네, 방금 뭔가…….”
샤사사사삭-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샤샤샤샤샥-
“너무 어두워서 안 보이는데…… 제가 손전등 켤게요.”
딸…… 칵!
샤샤샤샤샤샤샤삭-
낮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어두웠던 창고 안.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에 손전등을 켜보니 수십여 마리의 바퀴벌레가 창고 벽을 빈틈없이 메꾸고 있었다.
불빛을 본 그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생명체가 수십 개의 다리와 더듬이를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벽을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꺄아아아악!”
프스슷스스스스-
프스슷스스스슷스-
스슷스슷스슷-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거대 바퀴벌레를 본 현지가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그에 반응하며 사방팔방으로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녀석들.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광경에 다시 몸을 돌려 문을 열려는 순간 홀로그램과 함께 음성이 들려왔다.
[인스턴스 던전-창고에 입장하셨습니다.]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 던전을 나갈 수 없습니다.]
[임무-모든 몬스터 사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