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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31화 (31/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31화

“저도 가겠어요!”

그때 안절부절못하며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현지가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놀라 쳐다본 그녀의 표정은 확고했다.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걸요. 제가 살던 마을이기도 했고. 제겐 생명체를 탐색하는 능력도 있으니 도움이 될 거예요.”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거절할 수 없이 그녀는 단호히 말하였다.

“이 병장님, 저도 가겠습니다.”

그때 신우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나와 현지가 약을 구하러 가는 동안 자신이 편하게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자네는 안 되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던 약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으나, 짐이 될 뿐이네.”

“아닙니다. 저는…… 으아악”

짐이 될 거라는 말에 발끈하는 신우의 팔을 그가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신우가 참지 못한 듯 신음을 토해냈다.

나 역시 순간 움찔하였으나 침착하게 그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고통스러워서 말하기도 힘들 정도 아닌가.”

“…….”

“무엇보다 자네가 움직이면 독이 더 빠르게 퍼져 나갈 걸세. 그렇게 된다면 약을 가져온다고 한들 무용지물이겠지.”

“…….”

“신우야, 마음은 알겠는데 이곳에서 쉬고 있어.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그럼에도 신우는 미안한 마음을 떨치긴 힘들었는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그 약들은 꼭 필요하네. 회복 포션을 만들 재료들도 떨어져 가고 있고. 그것들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테지. 대피소의 사냥을 전담하고 있는 청년들을 몇 명 붙여주겠네.”

“예, 감사합니다.”

“바로 가면 좋겠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졌네. 오늘은 푹 쉬었다가 내일 출발하도록 하게. 지금 간다고 한들 길 찾는 것도 어려울 게 분명하네.”

“예.”

“현지야, 네가 이분들을 빈 텐트로 안내하렴.”

“네, 아저씨.”

그렇게 내일 떠나기로 일단락하며, 텐트의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저녁 시간인가 봅니다. 우리 대피소는 모두 같이 식사를 합니다. 일단 식사를 먼저 하도록 하죠.”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대피소에 오는 모든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갑니다.”

식사한다며 그의 뒤를 따라간 곳은 대피소의 중앙이었다.

그곳에만 텐트가 설치되지 않았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던 장소였다.

배식을 위해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인지 식사를 배분하는 사람들 앞에 각자의 그릇을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식사는 물 조금과 감자와 쌀을 섞어 만든 주먹밥이었다.

감사하다며 배식을 받는 사람들 뒤에 다가가 줄을 섰다.

* * *

“나는 장선오라고 하네.”

식판에 받아온 음식을 한술 뜨려는 순간 그가 말을 건네왔다.

“자네들은 복장을 보아하니 군인 같은데 맞나?”

“……그랬었죠. 아저씨는 약사라고 했었나요?”

“허허, 나 또한 그랬었다네.”

한차례의 대화를 주고받은 후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이곳이 대피소라면. 그쪽이 화이트인가요?”

“허허, 요즘 들어 그런 오해를 많이 받는구먼. 머리와 수염 색깔 때문인가?”

“아닌 겁니까?”

“자네들도 구호 물품을 봤나 보군. 미안하지만 여기는 그곳이 아니라네.”

“예?”

“음…… 무어라 말해야 할지. 그곳은 없는 장소였다네. 우리 역시 처음에 화이트…… 그곳이 적힌 장소를 찾아다녔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네…….”

구호 물품 속 약도에 적혀 있던 대피소가 이곳이 아니라는 장선오의 말.

그의 말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의 상황을 보고 나니 만약 그 장소가 있다고 한들 비슷한 처지 일터.

그곳이라고 한들 더 특별하다거나 좋은 시설이 몰려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자네들처럼 구호 물품 속 포스터를 통해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네.”

“그들은 어떻게 했나요?”

“이곳을 보고 실망하며 떠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곳에 정착했다네.”

“원한다면 전부 받아 주시는 겁니까?”

“그 때문에 이곳도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지. 물론! 공짜는 아니라네.”

“공짜가 아니라면…… 돈을 받는 겁니까?”

“돈? 허허허.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먼. 인제 와서 돈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무엇이 그리도 웃기는지 먹고 있던 음식을 급하게 넘기며 호탕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세상이 변해 버린 지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에겐 백만 원, 천만 원보다 물 한 병, 빵 한 조각을 더욱 필요로 했다.

“그럼 무엇을 받는단 말입니까?”

“재능을 받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 그 능력에 맞게 사냥, 경비, 생산, 의료 등등 마을을 위해 활용하게 하는 거라네.”

장선오는 먹고 있던 감자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이 음식. 이것들 또한 그들의 스킬을 통해서 재배한 거라네. 재밌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감자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100일 이상이 걸리는 데 반해 스킬을 이용하면 단 3일도 걸리지 않는다네.”

“스킬…….”

“놀랐는가? 세상은 변화했네. 변화된 세상에서 스킬은 절대적이라네. 어떤 스킬을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야! 아무리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스킬이라도 전부 사용할 곳이 있지, 말 그대로 사람이 자산인 것이네”

“…….”

“무엇보다 시너지. 자네도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그 효과는 수십, 수백 배 더 강력하고 유용해지지. 인원이 많을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어! 절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라네!!”

차분하게 말을 하던 장선오는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듯 그 목소리가 높아졌다.

웅변이라도 하듯 침을 튀겨가며 제 생각을 토해내는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자네, 마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

“…….”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네. 원래는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기 때문이지.”

“그것에 대해 알고 계신다는 겁니까?”

“글쎄…… 나는 기(氣)의 한 종류 정도라 생각하고 있다네.”

“기……?”

“맞네, 사람이 가진 기운 말일세. 물론 육체적인 기보다는 정신적인 기에 가까울 테지.”

“…….”

“자네도 플레이어이니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거라네. 스킬을 사용하고 난 후 온 정신이 빨려 버린 듯 몽롱하고 혼미해진 적이 있지 않나?”

“……!”

“놀란 표정이군. 자네만 그런 게 아니라네. 모두가 느끼는 것이지. 나는 그 상태를 마나를 전부 소진했을 때 나타난다고 보고 있네. 본인이 가진 마나를 스킬을 통해 전부 사용했을 경우 버티기 힘들 정도의 정신적인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일시적이지만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이네.”

이어 그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는 행동이었다.

“그 말은 즉, 아무리 강한 스킬이 있다고 한들. 마나가 부족하거나 적다면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사용하더라도 전투 불능상태에 빠져 당하고 말 것이라는 뜻이네.”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거의 모든 사람의 마나는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이었다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일세.”

“…….”

“나는 이 마나가 앞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믿고 있네.”

“……?”

“모르겠다는 눈빛이군. 잘 생각해 보게. 아까도 말했다시피 시너지 효과는 생존에 필수적이네. 사람들은 모이게 될 것이고. 그룹을 넘어, 도시, 국가 단위까지 빠르게 커질 것이 분명하네. 수십 개의 새로운 국가가 생겨나겠지. 그럼 그들이 무얼 하겠나?”

“……전쟁?”

“그래, 맞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네. 결국, 전쟁이 일어날 테지. 이미 국가의 단위가 되는 순간 수천 명의 사람이 있을 테고 그때가 되면 시너지 효과의 의미는 퇴색될 것이야. 결국, 전쟁의 승패는 마나. 마나를 더욱더 효율적이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쪽이 승리를 쟁취할 것이네.”

* * *

“이봐, 너 방해하거나 발목 잡지 말라고. 몬스터를 사냥해 봤는지 모르겠는데 얼 타고 있으면 뒤지든 말든 두고 갈 테니까 그것만 알아두라고.”

“…….”

리더라도 되는 듯 그가 앞으로 나와 충고했다.

자신을 박건이라 소개한 그와 그의 옆에 서 있는 네 명의 사내는 어젯밤 장선오가 붙여준다고 했던 대피소의 청년들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들은 그들끼리 둘러앉아 무언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텃세라면 텃세라 할 수 있는, 나를 제외한 그들끼리 도시에 들어가기 전 작전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따로 없구먼.’

현지가 신경이 쓰였는지 연신 힐끔거렸으나, 그녀 역시 주도권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무언가 실랑이를 벌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녀석들.

현지를 제외한 다섯 명의 사내들이 포위하듯 나를 둘러쌓았다. 그리고 뒤에는 그들을 말리다 실패한 현지가 뒤를 돌아서 있었다,

“너 총기를 쓴다고? 그럼 총이 있다는 말이잖아. 우리한테 넘겨줘야겠는데?”

하나같이 건들거리며 껄렁거리는 녀석들.

고작 숫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여유롭게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싫다면?”

“그럼 강제로라도 내놓아야…….”

한눈에 봐도 양아치의 인상을 풍기는 박건이라는 사내는 협박이 통하지 않자 주먹을 휘두르려 하였다.

방탄 피부가 있는 이상 주먹에 맞는다고 데미지가 있지는 않겠지만. 굳이 입 아프게 설교할 필요가 없었다.

더 큰 자극을 주는 것.

“약을 가지러 가는 데 이렇게 많이 필요한가?”

“…….”

그가 주먹을 올리려고 하는 순간 나의 자동 권총은 이미 그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듯 거북이처럼 목을 앞으로 빼며 얼어버린 녀석.

주위의 사내들 역시 당황하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였다.

탕!

“으, 아악!!”

“상대를 봐가며 덤벼야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자신의 오른 다리를 감싸 안은 채 누워 있는 박건.

자신만만했던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피가 흥건한 박건을 그저 넋이 나가 쳐다보고 있는 주위의 동료들. 나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으, 으악!”

총알이 관통한 그의 다리를 짓밟자 괴로움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되는 매질.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양아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신 덤비지 못하도록 확실히 서열 정리를 해두는 것이었다.

‘네놈들 생각 따위 다 보인다고.’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김현지를 제외한 녀석들은 나에게 적개심을 보였고, 기껏해야 서열 정리 따위를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도를 지나친 그들의 행동에 적당히 넘어갈 수 없었다.

* * *

각각 총과 활을 다루는 나와 현지는 뒤에, 기껏해야 근력 강화 정도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대피소의 다섯 명은 앞에 위치하여 이동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론 그런 이유였으나, 나를 피하려는 의도였다.

어느새 장선오에게 쪼르르 달려가 치료를 받고 온 박건은 겉으로는 더 싹수없게 굴었지만, 절대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도시 입구에 다다르자 보이는 나무 한 그루.

잎사귀 하나 없이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앙상한 나무 앞에는 도시가 펼쳐졌다.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고 했죠?”

“네, 세상이 변하기 전에 살던 고향이에요.”

“어떤 몬스터들이 있는 거죠?”

“벌레 같은 녀석들이에요.”

“…….”

“아니, 욕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벌레요. 벌레. 엄청나게 커다란 벌레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해요.”

“이봐, 그만 떠들고 빨리 와! 후딱 처리하고 가자!”

어느새 거리가 벌어졌는지 박건은 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빨리 오라는 그의 재촉에 그를 쳐다보는 순간.

그의 옆에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저 나무 뭔가…….’

우리를 기다리는 박건의 옆에 있는 가늘고 긴 원통형의 나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거기서 피해!!”

그 순간 현지가 박건을 향해 소리쳤다.

“뭐?”

서걱!

그 순간 박건의 머리가 잘려 나가며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목 위로는 완전히 사라져 힘없이 쓰러지는 몸통.

으드득. 으드득.

박건의 머리를 씹고 있는 건 나무.

아니, 나무로 위장한 거대한 대벌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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