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어다니는 무기고-30화 (30/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30화

옆을 바라보자 신우가 화살에 스친 팔을 붙잡으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옷을 찢어 응급조치해 두었으나 많이 괴로운 듯하였다.

“화살엔 독이라도 묻힌 겁니까?”

“……네”

현지는 질문에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신우의 상처 주변으로 검게 물든 핏줄들이 보였기에 일반적인 상처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그곳에 가면 확실히 치료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분명 완벽하게 치료해 주실 거예요…….”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잠시만요. 여기 보이세요?”

앞장을 서며 길을 안내하던 현지가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가 허공에 손가락질하며 무언가를 가리켰다.

자세히 바라보자 희미하게 보이는 실.

트랩을 설치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몬스터들 때문에 설치해 놓은 함정이에요. 여기만 넘으면 저희 그룹이 머무는 곳이에요. 걸리지 않게 조심해서 넘어오세요.”

그녀가 먼저 실에 걸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넘어갔다.

우리 또한 그녀를 따라 실을 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걸어가니 사람들이 움직이는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 가 대피소?”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몬스터를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초라한 울타리와 그 안을 초라한 텐트들이 듬성듬성 채우고 있었다.

도시도 마을도 아닌 그저 허허벌판에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망한 표정인데요?”

“아, 아닙니다. 텐트촌 같고 좋네요…….”

“하하, 그런가요? 어쩔 수 없었어요. 원래 살던 도시는 이미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했거든요. 이곳도 모두가 힘을 보태서 겨우 일궈냈어요.”

피난민이 모인 것 같은 초라한 마을. 멀리서 보아도 대피소의 모습은 확실해 보였기에 그녀를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렸다.

완전한 안전에 대비해 그녀를 계속 견제할 수도 있었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대피소 사람들에게 굳이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만약에 사태에 완벽한 대비를 해 두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대피소는 확실한 것 같네요. 총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요. 제가 잘못한 건데요, 뭘. 따라오세요. 어서 치료부터 하죠.”

그녀를 따라 입구에 다다르자 두 명의 남자가 앞을 막아섰다. 경비를 서고 있는 듯 입구의 양옆을 막고 있는 그들은 농기구를 들고 있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 괭이를 든 남자가 현지에게 말을 걸어왔다.

“왔구나! 그 폭발 소리는 뭐였어?”

“응, 글쎄…….”

“음, 그래…… 근데 뒤에 분들은……?”

경비를 서고 있던 남자가 신우와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하였다.

군복을 입고 있기 때문인지, 외부자를 경계하는 것인지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는 현지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괜찮을 거야. 그것보다 어서 빨리 선도 아저씨를 만나 봐야 해”

“그래, 현지 너니까 믿고 보내줄게.”

* * *

경비를 지나 대피소로 들어오니 더욱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어디에서 구했는지 하나같이 낡고 찢어진 텐트와 그 주변에 하나같이 암울한 표정을 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 모두 인사를 건네며 지나가는 현지에게는 친절한 미소를 머금었다.

뒤에 있는 우리에게 경계를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꽤 평판이 좋은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모두 좋은 분들인데. 얼마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대놓고 경계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그녀도 느꼈는지 미안해하며 말하였다.

몬스터의 습격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순간 그녀를 쳐다보자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여기에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모두 비슷해 보이는 가지각색의 텐트들을 지나 꽤 넓어 보이는 군청색의 텐트 앞에 멈춰 섰다.

어디에서 구한 건지 다른 조그만 텐트들과 다르게 크고 넓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선오 아저씨,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환자가 있어요.”

“흠, 흠 그래. 들어와라.”

텐트에 노크할 수 없기 때문일까.

현지가 소리치자 그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 남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따라 들어오라는 손짓에 그녀의 뒤를 따라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꽤 넓은 내부에 놀라기도 잠시, 의료용 시설 정도로 이용되고 있는 듯, 누워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진찰이라도 하는 듯 살펴보고 있는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음, 현지 왔구나. 환자가 있다고?”

“네, 제가 이분들을 몬스터로 착각해서…….”

현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곤 우리를 소개했다.

그녀가 옆으로 살짝 비키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백발의 머리에 희끗희끗한 흰색의 수염 그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주름이 많지 않은 중년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흰색의 의사 가운을 입은 그가 말하였다.

“환자는 그분인가? 잠시 보도록 하지.”

“아, 예!”

팔을 감싸며 고통스러운 듯 찡그리고 있는 신우를 보며 다가왔다.

지혈을 위해 상처에 단단히 묶어두었던 천을 풀며 관찰하기 시작하는 남자.

신우의 상처를 보던 그가 옆에 있던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현지의 화살을 맞은 건가? 음, 그런데도 이 정도 상처라니, 방어 계열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가?”

“……치료하는 데 있어서 알아야 할 내용입니까?”

“허허허, 아닐세. 내가 무례했구먼. 우리가 잘못한 것인데 미안하네.”

웃으며 머쓱해 하던 그가 다시 신우의 상처를 보기 시작했다.

상처를 보기만 한 것으로 스킬을 유추하는 그는 적어도 나보다는 변화한 세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지 못했고, 현지와 마찬가지로 역시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신우의 치료와 대피소를 알고 있다는 말에 따라오기는 하였으나.

개인적인 정보를 흘릴 생각도 없거니와 여차하면 제압할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음…… 상처가 많이 벌어졌어. 중독 증상도 심각하고.”

혼잣말인 듯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뒤를 돌아 무언가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어서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 거냐는 의미로 현지를 바라보자 그녀가 대답했다.

“선오 아저씨는 약사에요.”

“……약사요?”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며 반문하자, 무언가를 제조하고 있던 그가 힐끔 쳐다보았다.

약사라니.

의료에 지식이 없는 내가 보아도 화살에 찢긴 신우의 피부는 약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그때 그가 무언가를 완성한 듯 비커를 들고 다가왔다.

“일반적인 약은 아니네. 이쪽에 앉아 보겠나?”

빨간색의 액체가 든 병을 들고 신우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그의 말에 괜찮겠냐는 의미로 신우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신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보며 그의 앞에 있는 의자에 자리했다.

“고통스러울 수 있다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참도록 하게.”

그렇게 말한 그는 찢긴 신우의 팔에 빨간색의 액체들을 흘려 부었다.

“으아아악!!!”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듯 신우가 비명을 질러댔고.

그가 신우에게 해를 가했다는 생각에 무기를 꺼내려 하였다.

“다됐네, 직접 보게.”

그 순간 그의 말에 신우의 상처를 쳐다보았고.

빨간색의 액체를 뿌린 상처가 순식간에 달라붙으며 아물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 이건.”

“스킬이라네. 백번 말하는 것보다는 자네가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말게나.”

“…….”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누군가 이런 일을 설명했다면 믿을 수 없었겠으나 지금 내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자 모든 것이 납득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포션’이라고 부르고 있다네. 자네 친구에게 사용한 것은 상처 회복 포션이네.”

“……치료가 완전히 된 겁니까?”

빨간색의 액체가 든 비커를 들며 설명하는 그를 보며 다시 한번 되물었다.

신우의 팔의 상처는 깨끗하고 완전히 아물었으나 검은색의 올라온 핏줄만큼은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애석하게도 아니라네. 이건 독에 의한 중독 현상으로 보이는데…….”

“네? 중독은 치료를 할 수 없는 겁니까?”

“아니라네. 중독 포션을 사용하면 된다네.”

“그럼 뭐 하는 겁니까. 그 포션인가 뭔가로 어서 치료해 주지 않고요.”

잠시 뜸을 들인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사실, 그 재료가 부족하다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이 독은 몸을 천천히 굳게 하는 독이라네. 지금은 팔의 10% 정도밖에 중독되지 않았지만, 점점 퍼져나가면 결국은 죽을걸세.”

“이 독에 대해 잘 알고 있군요.”

“……내가 현지에게 만들어준 독이니까…… 몬스터를 쉽게 사냥하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준 거였는데 사람에게도 통할 줄 몰랐네…….”

“그런 것을 물어본 게 아닙니다.”

결국은 죽게 될 거라는 그의 말에 신우는 고개를 떨구었고, 옆에서 듣고 있던 현지 역시 안절부절못하며 자리를 맴돌았다.

해결책을 말하라는 압박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독이 온몸으로 퍼지기 전에 팔을 잘라낸다면 살 수 있을걸세. 회복 포션으로 즉시 치료를 할 수도 있고 말이야.”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음…….”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한 그의 해결책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양손으로 검을 사용하는 신우의 팔을 잘라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바짓가랑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되물었다.

“사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네.”

“예……? 뭡니까! 그 방법이란 게!”

“자네 중독 포션을 제조할 재료를 구해온다면 내가 제조할 수 있네. 그럼 팔을 자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겠지.”

“……그 재료가 뭡니까? 몬스터의 눈알이나 심장 같은 것을 뽑아오면 되는 겁니까?”

회복 포션의 믿기 힘든 효력을 목격해서일까, 제조하기 위해 특별한 아이템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답한 것이었다.

“아닐세. 일반적인 약을 구해오면 된다네. 내 스킬은 약을 조합해서 포션을 제작하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그 재료들만 있다면 누구든 포션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다네. 어떤 원리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나의 스킬이 아니면 효력이 없다네. 내가 만들지 않으면 그저 약을 남용하는 것밖엔 되지 않을 테지.”

혹시나 하여 물어본 질문이었다.

재료를 조합해 만든다는 포션. 그 재료들과 만드는 방법만 안다면 누구든 만들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 약이 어디에 있습니까”

“근처에 도시가 있다네. 우리가 빠져나온 곳이지.”

“……문제가 뭡니까.”

“그곳은 너무 위험해. 거대한 몬스터들이 사방에 널려 있네. 오히려 자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네.”

“……약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겁니까?”

“맞네. 내가 운영하던 약국이 있어. 그곳에 필요한 재료들은 전부 있네.”

“……시간은 얼마나 있습니까”

“3일, 3일 안에 중독 포션을 마시지 않으면 온몸으로 독이 퍼져 나갈 걸세. 그전에는 팔을 잘라내야 해.”

“…….”

잠시 고민하며 신우를 쳐다보았다.

낙심한 듯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녀석.

그의 팔에는 검은 핏줄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