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29화
부우우우웅~
투두두두두, 투둑, 투투투투.
끼익-
“젠장”
한참을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곧 멈춰 버렸다.
도로의 한가운데서 시동이 꺼지자 뒤에 타고 있던 신우가 내려와 오토바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타이어가 완전히 나갔습니다.”
“후, 그래 무리도 아니지. 도로가 이 모양이니…….”
사실, 도로라 부르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거대한 나무와 식물들이 사방에 자라났고, 그것들로 인해 잘 포장된 도로들은 갈라지고 부서졌다.
촌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온 세상이 변하였고,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향은 이쪽이 맞는데, 걸어야 하나?”
마을에서 얻은 얇은 종이로 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주위의 수많은 나무와 식물들이 지형을 변형시켜 알아볼 수 없는 길.
그저 방향밖에 참고할 수 없는 허울뿐인 지도였다.
“날도 어두워지고 있고, 더 가기에는 힘들 거야. 어차피 쉬어야 하니. 일단 쉴 곳을 찾아보고 생각하자.”
“네, 알겠습니다.”
“주변에 안전한 곳이 있나 찾아보자.”
“이 병장님, 저기 계곡이 있습니다!”
“뭐?”
쉴 만한 곳이 있나 지도를 펼쳐보려던 와중에 신우가 소리쳤다.
혹시나 하여 지도를 확인해 봤지만, 이곳에 계곡 따위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계곡이…… 있네…….”
하지만 신우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분명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했다.
“푸하!”
신우는 오랜만에 씻는 것이 즐거운지 물놀이를 하며 첨벙거렸다.
나 역시 몸을 깨끗이 씻은 뒤 개운하게 앉아 몸을 말리고 있었다.
“얌마 감기 걸려, 적당히 하고 몸이나 말려라.”
“예, 알겠습니다!”
씻지 못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이제는 찝찝함을 넘어 피부병이 올라올 지경에 이르러 드디어 씻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타닥. 타닥. 타닥.
마음이 편안해지는 모닥불 소리.
그동안 흘려온 땀과 온갖 몬스터의 피, 부산물이 묻은 군복 역시 깨끗이 빨아 널어두었다.
그 옆에 앉아 있자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기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으나, 몸을 씻었다는 이 작은 행동 하나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병장님! 이 물 깨끗해 보이지 않습니까? 담아 가는 게 어떻습니까?”
“이 물? 식수로 사용하자고? 기생충이나 미생물 같은 것이 많지 않을까………?”
“아…… 듣고 보니 그렇지 말입니다.”
“아냐, 일단 담아둬. 끓여서 마시면 죽기야 하겠어?”
“아! 역시 기발하시지 말입니다!”
신우가 가방에 버리지 않고 두었던 빈 생수통을 꺼내 물을 담았다.
그런 신우를 보며 나 역시 빈 병을 꺼내 계곡으로 다가갔다.
꼬로록. 꼬로록.
계곡물에 페트병의 입구를 기울여 물을 담자 빠르게 들어왔다.
신우가 순식간에 반쯤 차올라 찰랑거리는 페트병을 보여주며 이야기했다.
“이 병장님, 물고기도 있습니다!”
“……이거 끓인다고 식수로 마셔도 되려나?”
“물고기도 살지 않습니까! 물이 깨끗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이 정도만 담아 두자, 어차피 물을 끓일 만한 냄비도 없어.”
“네, 알겠습니다.”
페트병의 뚜껑을 꽉 닫아 내려놓은 뒤 모닥불에 몸을 말리기 위해 다가갔다.
오랫동안 물속에 있던 신우 역시 한기를 느꼈는지 뒤따라와 나란히 앉았다.
몸을 데우기 위함인지 연신 손을 비비는 녀석.
“이 병장님, 승봉 아저씨가 했던 이야기 기억나십니까?”
“응? 승…… 봉 아저씨?”
“……네. 대피소 이야기 말입니다.”
“글쎄…….”
“만약, 정말 대피소가 존재한다면…….”
말끝을 흐리는 신우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신우가 말하는 대피소란 부대 앞의 마을에서 만났던 김승봉, 그가 말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가 구조 물자를 얻어 그 안에 들어 있었다는 포스터. White라는 마크가 적힌 포스터에는 대피소가 존재한다고 쓰여 있었다.
지도도 오토바이도 사용하기 어려운 지금, 대피소라도 찾는 게 어떻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 화이트라는 게 도대체 뭔지 아시겠습니까?”
“글쎄, 나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인데…… 구호물자를 뿌렸다는 걸 보면 구호 단체나 외국 기업 아닐까?”
“그렇다는 건 아직 세상이 망해 버린 것은 아니겠…….”
-슉!
“으, 으악!”
“신우야!”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우리를 겨냥한 듯 뒤에서 날아온 화살은 무방비 상태인 신우의 왼쪽 팔을 스쳤다.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토해내는 신우.
갑작스러운 공격에 곧장 저격 소총을 꺼내 곧바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조준했다.
‘몬스터인가?’
몸을 숨긴 듯 보이지 않는 화살의 주인. 저격 소총을 어깨에 견착한 채 신우의 상처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독?’
고통스러운 듯 상처를 감싸며 괴로워하는 신우의 팔은 어딘가 이상했다.
상처의 주위가 검게 물들었고, 그 주변의 혈관들이 마치 썩어가듯 보였던 것이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일반적인 몬스터 따위가 아닌 최소 보스급의 몬스터.
독을 사용하는 타입의 몬스터는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었기에 어디에서 나타난 녀석인지 알 수 없어도 쉽지 않은 상대인 건 확실해 보였다.
툭. 철컥. 철컥.
탄창을 꺼내 마탄으로 갈아 끼운 후 결합했다.
노리쇠를 장전한 후 다시 한번 적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먼저 공격을 걸어온 녀석을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 보이는 건 나무와 바위뿐.
분명 저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후…….”
숨을 내쉬며 호흡을 멈춘 뒤.
적이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며 집중했다.
부스럭.
그 순간 바위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고 곧바로 총구를 돌렸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자, 잠깐!!”
멈추는 손가락.
‘사람?’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여성이 걸어 나왔다.
긴 생머리에 한 손에는 활을 들고 있었다.
전통적인 활이 아닌 경기에서나 볼 법한 기계식 활인 컴파운드 보우가 그것이었다.
귀도 꼬리도 없는 것을 보아 사람인 것은 확실해 보였으나.
아무리 보아도 화살을 날린 건 저 여자가 확실해 보였기에 총구를 내릴 수는 없었다.
‘플레이어인가?’
수인들처럼 모습이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몬스터들 사냥할 실력은 된다는 의미였으며.
무엇보다 그녀가 어깨에 메고 있는 화살통 속 화살의 모양은 날아온 화살의 모양과 일치했다.
“누구냐! 어째서 공격을 했지?”
“…….”
총을 겨눈 채 질문하자, 여자가 무언가 대답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인지, 목소리가 작은 것인지 뻐금뻐금하는 입 모양은 보였으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 들리지 않는다. 크게 말해!”
그러자 몸을 90도로 접으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몬스터인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저 그녀를 겨냥했고 그대로 몇 분이 흘러갔다.
그렇게 잠시의 정적이 흘렀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그녀가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봐, 떨어져! 더 다가오면 쏜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가오는 움직임을 따라 총구가 이동했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허리를 숙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탕!
경고를 무시한 채 다가오는 그녀의 발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 당황한 듯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으나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다짜고짜 화살을 날리는 그녀를 믿을 수는 없었다.
“제, 제 화살에 맞으신 건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무기 버리고 땅에 엎드린 채로 뒷짐 지어! 마지막 경고다!”
피를 흘리며 팔을 부여잡고 있는 신우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당황한 듯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소리쳤고.
그제야 화살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뒷짐을 지며 엎드렸다.
총구를 유지한 채 천천히 다가가며 그녀의 행동을 관찰했다.
“가만히 있어! 허튼수작 부리지 마.”
툭!
그리고 내려놓은 화살을 발로 차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뜨렸다.
“으, 으윽. 이 병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적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았기에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신우가 만류하였으나 이쯤에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탐지 스킬을 사용했는데…… 당연히 몬스터일 거로 생각하고…… 죄송합니다.”
계속해서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는 모습, 그때 그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저희 그룹이 머무는 장소로 가시죠. 여기서 얼마 멀지 않습니다. 그룹에 치료를 해줄 만한 분이 계셔요.”
“……그룹이라면?”
“저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생활하고 있어요. 그곳으로 가면 상처를 치료해 주실 거예요.”
“피난소가 있다는 말입니까?”
“네, 맞아요…….”
순간 피난소가 있다는 그녀의 말에 놀라며 소리쳤다.
볼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보며 순간 너무 흥분했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서늘한 바람에 밑을 바라보았다.
“아…….”
눈에는 익숙한 무늬가 보였고.
그제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속옷 차림의 자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재빨리 아직 마르지 않아 축축한 군복을 허둥지둥 입기 시작했다.
“저는 김현지라고 해요.”
“아, 예.”
뒤에서 총구를 계속 겨냥당하면서도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녀가 플레이어인 것은 확실했기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몰라기에 한 행동이었으나 상황이 억울하지도 않은 듯 밝게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그녀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대피소가 있다는 말과 신우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그녀의 말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갈 만한 가치가 있었기에, 일단 따라가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뭘 하고 계셨던 건가요?”
“저희는 몸을 좀 씻으려고…….”
“그 계곡에서요? 물을 마시지는 않으셨죠?”
“네?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계곡 상류에 몬스터들 시체가 많이 있거든요. 깨끗해 보여도 마시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앞만 보며 걷는 것이 심심했는지 이따금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말에 출발하기 전 챙겨두었던 계곡물을 담아둔 페트병을 몰래 버리며 다시 뒤따라갔다.
“거기서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저는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어요.”
“탐색……?”
“위협이 될 만한 몬스터나 상황 등을 살펴보는 거죠. 조금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며칠 전에 도로 위에서 큰 폭발이 났었거든요.”
“……폭발이라면.”
“자세한 상황은 몰라요. 저희가 갔을 땐 이미 완전히 아비규환이었어요.”
“혹시 자동차가 모여 있는…… 곳입니까?”
“어?! 보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몬스터들은 완전히 잿더미에 차들도 전부 폭파되었고…… 혹시 몰라서요. 피난소에 그런 위험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살펴보고 있는 거였어요.”
“…….”
나의 질문에 현지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대피소의 안전을 대비해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폭발이 일어났던 장소가 여기와 가깝습니까?”
“음…… 가깝다고 하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렇게 멀지도 않아요.”
“그렇군요…….”
그녀의 대답에 실망감이 몰려왔다.
수인들의 마을에서 꽤 멀리 이동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부대를 빠져나온 장소 근처로 돌아왔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변해 버린 지형으로 지도를 통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에 일어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