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28화
몰라보게 늠름해진 수인들을 비장하게 바라보았다.
환골탈태, 처음 만났던 초라한 그들이 아닌 완전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자 때가 온 것이 느껴졌다.
위기를 느낀 리자드맨들은 낮에도 서식지인 물에서 나오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 밤, 리자드맨들을 습격해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저. 저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수인들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수인들은 강해졌고 리자드맨의 숫자는 확연히 줄어 대략 50마리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에 대규모 전투를 치른다고 하면 보나 마나 패배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수를 많이 줄였다고는 해도 아직까진 전력에서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 사실이었고, 녀석들의 서식지인 호수는 리자드맨들에게는 전투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형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전투는커녕 움직임조차도 힘든 것이 분명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는 오랑캐로 다스리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늘 밤, 리자드맨들은 웨어울프들과 전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수인들은 명령에 따라 주변의 웨어울프와 늑대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리자드맨들은 여전히 물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들킬 염려가 없었으며, 주변을 배회하는 늑대들은 주위에 수도 없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라이칸스로프가 죽어 지도자를 잃은 웨어울프들 또한 목적을 잃은 채 더 이상 무리를 이루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 종종 보이었다.
“웨어울프들이 죽지 않게 돌멩이를 던져 리자드맨의 서식지 근처까지 유인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녁이 되기 전까지 100마리 이상은 유인해야 합니다. 서두릅시다.”
웨어울프들을 유인하는 수인들을 보니 처음 만났을 때의 한심한 모습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수인의 특성을 살려 매우 민첩한 몸놀림으로 웨어울프를 유인하고 또 유인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수많은 웨어울프가 리자드맨의 서식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는 서식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며 매복을 하며 숨어 있었다.
“이곳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제가 신호를 하면 기습을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누구든 리자드맨이나 웨어울프에 들키게 된다면 작전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숨을 죽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격용 총을 어깨에 견착한 뒤 리자드맨의 경비병을 조준했다.
아음속탄이 아닌 일반적인 탄.
녀석들이 눈치채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에 굳이 소음을 없애는 아음속탄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철컥.
탕!!
“크으악!!”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경비를 서고 있던 리자드맨에 명중하자 동료들을 깨우기 위함인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물에서 잠을 자고 있던 리자드맨들이 하나둘씩 눈을 뜨며 물속에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세를 낮춰 몸을 숨기며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와중 재빨리 리자드맨 근처에 구슬을 던졌다.
리자드맨들을 향해 던진 것은 던전에서 라이칸스로프를 사냥하여 얻은 라이칸스로프의 영혼석.
죽은 그의 영혼을 불러와 소환하는 아이템이다.
던져진 영혼석은 땅에 닿음과 동시에 깨지며 하얀 연기가 땅에서 피어올랐다.
하얀 연기 속에서 웨어울프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크며 흉악하게 생긴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오. 오오. 그와아악!”
새빨간 눈을 부라리며 본인보다도 거대한 몽둥이로 땅을 연신 내려치며 포효하는 라이칸스로프.
유인하여 모아둔 웨어울프들과 늑대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그의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캬아아앗!”
리자드맨들은 몰려드는 웨어울프들과 늑대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를 보며 그들이 공격해 온 것으로 확신한 듯하였다.
분노한 리자드맨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웨어울프 역시 공격해 오는 리자드맨들을 향해 무모할 정도로 공격을 하며 달려가고 있었다.
아비규환.
리자드맨들과 라이칸스로프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로로로!! 크아아!”
라이칸스로프가 이끄는 수십 마리의 웨어울프와 50마리 정도의 소수이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강한 리자드맨들의 전투는 그 누가 유리하다고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리자드맨이 큰 입을 벌려 공격하면 웨어울프 네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밀려들어 공격하는 웨어울프의 공격에 리자드맨 역시 점점 피해가 누적되며 목숨을 잃고 있었다.
“크아아악!!”
오랜 시간 리자드맨과 웨어울프들의 전투가 이어졌지만,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리자드맨의 공격에 라이칸스로프가 전투 중 목숨을 잃게 되었다.
많은 숫자로 싸우던 웨어울프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그 수가 줄어들었고 심지어 라이칸스로프가 죽자 도망치는 웨어울프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자드맨들 역시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한 번의 공격에 수많은 웨어울프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계속되는 공격에 리자드맨도 몇 마리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생명력이 얼마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갑시다! 모두 섬멸합시다!”
“네!”
이때를 노리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와 리자드맨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어 서로 데미지가 상당할 때 약해진 그들을 모두를 공격해 일망타진!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다 실속은 모두 챙기는 방법이었다.
“갑시다!”
“우오오오!!!”
큰소리로 외치며 앞장서자 수인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에 모두가 내지르는 함성에 한참 전투에 몰두하고 있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쳐다보았으나 상관없었다.
오랜 전투에 그들은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며 굳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길 수 있을 듯한 상태였기 때문.
충분히 휴식을 취한 최적의 몸 상태를 한 우리를 이길 수는 없다.
“크르르르!!”
“겁먹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도 쓰러질 녀석들입니다!!”
“예!!!”
이빨을 드러낸 리자드맨들에 수인들이 잠시 주춤한 듯싶었으나 이내 곧 몬스터들을 무차별적으로 강타하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약해진 리자드맨들은 신우의 공격 한방에 쓰러졌고 총알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시체만 남아 있을 정도였다.
수인들 역시 약해진 리자드맨들과 웨어울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민주야! 사람들과 같이 가서 잡혀간 사람들을 구해줘!”
“네!”
어느 정도 전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자 민주에게 지시를 내렸다.
민주 또한 수인답게 발달한 신체 능력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무엇보다 재능이 있었는지 다른 수인들 못지않게 매우 강해져 있었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미리 세워둔 계획대로 수영할 줄 아는 인원들이 거침없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수인 특유의 빠른 몸놀림으로 포로들이 있는 호수의 중앙까지 단번에 이동해 포로들을 구출하였다.
“네놈이 끝이다!”
탕!!!
마지막 남은 리자드맨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총알은 리자드맨의 이마를 정확히 강타했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생을 마감했다.
얼마 남지 않은 늑대들은 그대로 도망가기 시작했으나 녀석들을 쫓지는 않았다.
그렇게 전투에 승리하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침 민주가 잡혀갔던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며칠 동안이나 먹지 못했는지 하나같이 앙상하게 변해 있는 그들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들 역시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한 탓에 수인으로 변해 버린 모습으로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왔다.
같이 온 수인들 역시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고, 민주는 부모님으로 보이는 수인들을 꼭 껴안으며 울고 있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저희가 이겼습니다!”
들고 있던 라이플을 높이 들며 소리치자 모두가 소리를 치며 전투의 승리를 만끽하였다.
모두와 함께 마을로 돌아왔고, 마을에서는 또다시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가 열렸다.
“민혁 님, 신우 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마을의 영웅이십니다.”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서브 퀘스트-‘수인족 마을의 주민 구하기’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은 ‘민주’에게 직접 수령해야 합니다.]
계속되는 주민들의 감사 인사에 난감하던 찰나.
서브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홀로그램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약속했던 보상을 두 손으로 꼭 쥔 민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저희, 부모님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했던 반지에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민주가 건넨 볼품없는 반지.
꽃을 대충 엮어 만든 반지를 집어 들었다.
“그래, 고마워.”
[꽃반지]
[착용 제한-플레이어]
[특수 효과-최대 마나 30% 증가]
겉모습은 별로일 수 있으나, 그 효과는 대단했기에 곧바로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두 분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마을의 촌장에게 받은 질문이었다.
나와 신우는 이곳의 주민이 아니었기에 물어보는 것으로 보였다.
앞으로의 계획.
이 미쳐 버린 세상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묻는 말인 듯하였다.
“계획이 없으시면 저희 마을에 머무르셔도 좋습니다. 두 분이라면 모두가 좋아할 겁니다.”
“……아니요. 저희는 이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군요. 두 분이 특별히 가려고 하는 곳이 있으신지요?”
촌장의 질문에 옆에서 듣고 있던 신우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머문다고 하여도 나쁜 것은 없었다.
단 며칠이지만 지내본 결과 친절하고 좋은 주민들이 있었고, 몬스터들에 의해 망가진 농경지는 힘과 체력이 늘어난 수인들이라면 금방 복구시킬 것이다.
더는 몬스터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저희는 서울로 갈 겁니다.”
“서울이요?”
“네, 신우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가족이 있으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닙니다. 제안 주신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가족.
세상이 변한 뒤 단 한 순간도 가족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잘 지내고 있을지, 무사는 할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저 인구가 많은 서울은 안전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걸며,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이건 마을 분들이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을을 떠나기 전 리자드맨들이 들고 있었던 창들을 전부 꺼내 주었다.
웨어울프에 약탈당할 만큼 약한 수인들이었지만 함께 사냥하며 많이 성장해서 강해졌기 때문에 앞으로 더 노력할 것으로 생각하여 주는 선물이었다.
몬스터들이 쓰던 장비들이라 전부 녹이 슬고 이가 빠져 좋은 것들은 아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이것들을 전부 가져가기에는 쓸 곳도 없고 짐이 될 것이 뻔했기에 전부 나눠주고 가기로 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도움만 받다니…….”
“괜찮습니다. 받아 주세요.”
인사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을 보며 발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시만요!!”
다급한 목소리에 발길을 멈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연신 낑낑거리며 무언가를 끌고 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이건………?”
“두 분의 은혜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준비한 선물입니다. 서울까지 가기에는 부족하겠지만 기름도 전부 채워 넣었습니다.”
촌장이 땀을 삐질 거리며 끌고 온 것은 오토바이였다.
타고 가지고 오면 될 것을 아주 잠깐이지만 그마저도 기름을 아끼려고 한 것 같았다.
“다른 곳이야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미 멀쩡한 도로는…… 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더 쓸모가 있을 겁니다.”
“아니, 그래도…….”
너무 부담스러운 선물에 머뭇거리자 그가 다시 말하였다.
“어젯밤 두 분이 쉬고 계실 때, 마을 주민 모두가 회의해서 드리는 겁니다. 오토바이의 주인 역시 두 분께 드리자고 흔쾌히 허락했고요. 부디 받아 주시길.”
“……네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이것을 받지 않으면 대화가 끝이 날 기미가 안 보였으며, 마을 주민들 역시 어서 받으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못 이기는 척 오토바이를 받아들였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하, 감사합니다. 두 분은 저희 마을의 은인입니다. 언제든 저희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시 드려주세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주민들이 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