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26화
“…….”
“후각이 발달하며 몬스터들의 위치를 더욱더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더욱더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은 어떻고요, 저기 있는 어린아이도 철근을 구부릴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즉”
“예, 맞습니다. 모습뿐만이 아닌 몬스터처럼 강해진 것입니다.”
“음, 그래서 웨어울프들에게 복수를 하러 간 것이었습니까?”
“복…… 수라는 감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녀석들의 터는 저희 마을과 너무나도 가까웠으니까요.”
노인의 이야기는 믿기 힘들 만큼 다소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으나,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와 신우 모두가 그들을 보았고 지금 역시도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렇군요. 힘이 생기고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저희가 방해한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두 분에게는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사실, 저희는 며칠 전부터 던전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네?”
“힘이 생겼다고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용기가 없었지요. ”
“…….”
“마을 사람들 그 누구도 선뜻 던전의 입구를 열지 못하고 그저 그 앞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웨어울프들의 냄새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희가 온 것을 알고 있었군요?”
“예, 빠르게 사라지는 웨어울프들의 냄새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결국 라이칸스로프까지 사라진 그 순간 모두가 희열을 느꼈습니다.”
노인은 그 순간을 다시금 생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짜릿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쪽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혹시 두 분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이름이요?”
“네, 저희 마을의 은인분들의 성함을 알고 싶습니다.”
“못 알려드릴 것도 없지요. 사실 여기 대놓고 쓰여 있긴 합니다만. 저는 이민혁이고 이 친구는 강신우입니다.”
전역복을 입고 있었으나 어찌 됐든 신우와 나 모두 군복을 입고 있었기에, 명찰을 가리키며 정식으로 소개를 하였다.
“네, 민혁 님 신우 님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하 사실 명찰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여쭤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하하…….”
“사실…….”
“예?”
“염치 불고하고 두 분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부…… 부탁이요?”
어떤 부탁을 하려는 것인지 우물쭈물하는 노인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사실.”
노인이 입을 열려고 하자 자신의 몸보다도 큰 접시를 연신 낑낑거리며 옮기고 있던 꼬마 아이가 접시를 내려두고 쪼르르 달려와 울먹였다.
“저희 부모님을 구해주세요.”
[서브 퀘스트-‘수인족 마을의 주민 구하기’가 발생하였습니다.]
[리자드맨을 처치하기 위해 떠난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중에는 수인족 아이 민주의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다. 민주의 부모님과 포로로 잡힌 수인족을 구출하라.]
[난이도-C]
[보상-민주에게 직접 수령]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꼬마 아이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눈앞에 퀘스트 창이 생성됐다.
‘수인족?’
수인(獸人), 말 그대로 짐승 인간이라는 의미로 페널티로 인해 변해 버린 마을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였다.
천천히 퀘스트의 내용을 읽어내려 가자 알 수 있는 것은 리자드맨이라는 몬스터에게 마을 사람들의 일부가 잡혀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그 사람들을 구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네가 민주구나?”
“네…… 부모님을 구해주세요…….”
난감한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신우를 바라보았지만, 눈길을 피하는 녀석.
그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던 꼬마 아이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이걸 드릴게요…… 퀘스트를 완료하고 보상으로 받은 물건이에요.”
“네가 퀘스트를 완료했다고……?”
“네…….”
민주가 건넨 것은 꽃 따위를 엮어서 만든 반지였다.
[꽃반지]
[착용 제한-플레이어]
[특수 효과-최대 마나 30% 증가]
“……!”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았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에 아이템 정보를 살펴봄과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상 이상으로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아이템.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마나를 증가시켜 주는 아이템이었다.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기술이라고 한다면 다름 아닌 마탄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나를 필요로 하는 마탄의 경우에는 그 수치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의 마나가 부족하여 마음껏 사용할 수 없었다.
단검의 시너지 효과인 마나 10% 증가를 통한 경우에만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었지만, 신우가 단검보다 강한 무기인 흑도를 얻게 된 후, 마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우가 무기를 그때마다 교체해야 하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신우의 전력이 약해질 뿐만이 아닌 번거로운 상황까지, 이 반지가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단검의 시너지 효과보다도 마나의 증가 폭이 큰 30%, 내가 찾던 아이템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 병장님, 그래도 역시 너무 위험합니다. 리자드맨이 어떤 몬스터인지도 모르고…….”
“신우야.”
“네.”
“우리가 도와주자.”
“……예?”
민주에게 들리지 않도록 속삭이던 신우가 당황한 듯 눈을 깜박였다.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은 듯한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평소에 나였다면 절대 수락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너, 이 조그만 꼬마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부탁을 하는데,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겠어. 불쌍하지도 않니?”
“…….”
“이런 모습으로 변한다면 성인이라도 버티기 어려울 거야, 더군다나 부모님까지 납치가 당하다니. 정말로 네가 이 아이의 부탁을 거절하고 발 뻗고 잘 수 있겠어?”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는 쏙 뺀 채 신우를 나무라자, 고개를 푹 숙인 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더는 생각해 낼 핑곗거리가 없어 잠시 주춤한 사이 신우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그동안 이 병장님을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었다니. 저도 당연히 마음속으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어, 어………?”
“두려움에 외면하려 했던 제가 한심합니다. 저도 당연히 돕겠습니다!”
“그, 그래. 그러자.”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 * *
수인족 마을에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며 전후 사정에 대해 듣게 되었다.
촌장과 민주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을 사람 중 일부는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웨어울프가 아닌 리자드맨 사냥을 해야 했고, 그중 민주의 부모님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을 근처에 웨어울프도 있고 리자드맨도 있다니…… 운수가 썩 좋아 보이는 마을은 아니구만.’
마을 사람들이 리자드맨 사냥을 위해 나가던 날, 부모님이 걱정된 민주가 그들의 뒤를 몰래 뒤쫓았고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리자드맨에 쳐들어간 그 날 대부분은 죽임을 당했고, 몇 명이 남아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안내하는 민주를 따라 리자드맨 서식지를 향해 곧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었으나 자신들의 마을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수인족인 마을 사람들 열 명과도 함께였다.
“리자드맨과 전투가 시작되면 챙겨 주기 힘들 수도 있어, 무슨 일이 생기면 빨리 도망가야 한다.”
옆을 돌아보자 민주는 어디에서 가지고 온 것인지 어울리지 않는 사시미 칼를 들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린 민주에게는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았지만, 리자드맨의 서식지를 알고 있는 자는 민주 외에는 없었다.
또한, 부모님을 구하는 데 따라오고 싶다며 완고하게 고집을 부려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네!”
“민주야, 혹시 리자드맨이 몇 마리 정도 있는지 아니?“
“음…… 대략 200마리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200마리라…… 쉽지 않겠는데.’
“밤에는 물에 들어가 있다가, 아침이 되면 밖으로 나와요.”
“응?”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물에 있을 때 빼고는 대부분 낮에는 각자 활동해요.”
“어…… 꽤 잘 알고 있구나……?”
“네…… 몰래 숨어서 자주 왔었어요…….”
리자드맨의 서식지에 맨몸으로 혼자 찾아가 염탐을 지속해서 한 모양이었다.
리자드맨에 끌려간 부모님이 걱정되어 한 행동이었겠지만 생각보다 겁이 없고 당돌한 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럼 끌려간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봤니?”
“네, 모두 같이 있어요.”
“그래? 묶여 있거나 철장 같은 곳에 갇혀 있는 거야?”
“아니요. 모두 자유롭게 있어요.”
“뭐? 하지만…… 그럼 어째서 도망가지 않는 거야?”
“호수의 중앙에 있는 육지에 모두 잡혀 있거든요.”
“…….”
자유롭게 풀어져 있는데도 도망치지 않았다는 의아함은 민주의 대답을 듣고 나자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물속에서 자유로운 리자드맨 들이 마을 사람들을 호수의 중앙에 있는 장소로 일일이 옮겨놓았다는 것이었다.
사방이 물이기에 도망칠 수 없고 헤엄을 친다 한들 리자드맨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밤에는 물속에서 잠을 자고 낮에 도망을 치려고 시도한들 물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완전한 감옥이 분명했다.
‘몬스터 주제에 지능이 그렇게 높다니…….’
웨어울프만 해도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던 참이었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몬스터들은 고블린이나 오크, 좀비, 늑대 등 강력한 힘을 가졌으나 지능은 높지 않고 단순했다.
그랬기에 결국 몬스터는 짐승의 수준이고 생각했던 고정 관념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잡아먹을 거예요.”
“……응?”
“숨어 있을 때 들었어요. 리자드맨은 죽기 직전의 인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우리가 꼭 구출해 낼 거야, 걱정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