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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22화 (22/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22화

마을을 빠져나오자 빛이 쏟아져 내렸다.

강렬한 빛은 순간 눈 안으로 빨려 들어와 온통 흰색의 실루엣만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에 적응한 눈에 들어오는 녹색의 풍경.

“여기…… 여기가 마을 밖이라고?”

바닥에 무수하게 펼쳐진 녹색의 잔디와 푸르른 나무들은 너무나도 거대하게 자라 있었으며.

빛은 피부가 따가울 만큼 강렬했다.

부대를 왕래하며 차를 통해 수도 없이 지났던 거리였으나 단 한 번도 이런 풍경을 본 기억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리저리 둘러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낯선 풍경.

지저귀는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시원한 바람이 잔디를 훑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그 모습은 마치 콘크리트 위에 핀 꽃처럼 낯설었다.

* * *

다다다…… 다다다…… 드르륵.

“어! 이 병장님 됐습니다!”

“시동 켜졌어?”

우우우웅~

“아, 젠장.”

신우가 짜증이 솟구친 듯 핸들을 내리쳤다. 잠시 걸리나 싶더니 곧바로 꺼지는 시동.

성격만큼은 한없이 온순했던 신우조차 화가 많이 났는지 핸들에 머리를 박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딸깍, 쾅!

“이놈도 꽝인가 보네?”

“죄송합니다…….”

“허, 네가 왜 죄송해 인마. 고생했다. 이 주변은 깔끔히 정리했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이동하자.”

“네, 알겠습니다…….”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옆자리에 앉자 풀이 죽어 있는 신우.

덤덤하게 대답을 하였지만 나 역시 답답함을 숨길 수는 없었기에 그저 눈을 감아버렸다.

벌크 좀비와 봄버 그리고 여타 좀비들이 가득했던 마을에서 빠져나온 지도 벌써 며칠이나 지나고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풀숲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당장은 마을에서 챙겨둔 식량들을 아주 조금씩 섭취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식량은 점차 바닥 날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우연히 발견한 도로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매끈하게 정돈되어 있던 도로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솟아나며 깨지고 갈라졌으며, 도로 위를 시끄럽게 달리던 차들은 그 용도가 무색하게 멈춰 있었다.

마을만 빠져나가면 어디든 안전한 장소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변해버린 세상.

이곳까지 오는 동안 사람 한 명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몬스터라는 존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든 돌아다니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그때 들려오는 몬스터의 소리.

자동차에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발견하지는 못한 듯 그저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생명체.

마치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그 몸집은 두 배는 더 거대한 몬스터였다.

“야, 어쩔래? 내가 갈까? 네가 갈래?”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오호, 괜찮겠어?”

“……스트레스나 풀고 오겠습니다.”

“저 녀석 약점은 알고 있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털컥.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다가가는 신우.

신속하게 거대한 늑대의 뒤로 다가가 자신의 단검을 찔러 넣었다.

검에 묻은 액체를 털어내며 차로 돌아오는 녀석.

너무나도 능숙하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살생을 하고 돌아오는 신우의 모습에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능숙하네? 어디를 가도 살아남겠는데?”

“하하, 이 병장님에 비하면 멀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군인, 아니 청년이었던 우리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생존을 위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몬스터라는 존재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으로 변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보다 이 병장님, 스킬이라는 것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거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응, 유용하지. 정보창!”

[이름-이민혁]

[직업-플레이어-군인]

[보유 스킬]

[내 손 안의 무기고 LV3-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 개조할 수 있습니다.]

[방탄 피부 LV2-피부로 일반적인 총탄이나 파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치지 않는 체력 LV2-육체적인 활동에 있어서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그 효과가 증가합니다.]

탱크 좀비를 사냥하고 얻은 스킬인 ‘지치지 않는 체력’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작명 센스였으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말 그대로 달리거나 오랜 시간 걸어도 전보다 쉽게 지치지 않았고, 그 효과가 상당해 코인을 이용해 레벨을 올려둔 상태였다.

“아 참, 너 스킬 새로 생겼다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스킬을 부러워하는 신우를 보며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으나, 이내 실수를 알아챘다.

그 역시 탱크 좀비를 상대하던 도중 승봉의 스킬인 ‘식자재 탐구’를 습득하였다.

플레이어를 살해하면 그 플레이어의 스킬 중 하나를 무작위로 획득할 수 있는 것과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플레이어를 살해한다면 페널티를 얻는다는 정보.

그리고 이미 플레이어를 살해한 후 악인이 된 플레이어를 살해할 때는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는 정보까지 알게 된 사실이었다.

물론 이 모든 정보는 승봉의 이해하기 힘든 선택으로 알게 된 내용이었으며, 아직 죄책감을 씻어내지 못한 신우에게는 금기시되는 내용이었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모든 플레이어의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퀘스트 완료 시점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이, 이 병장님!”

“으, 응.”

신우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만 뜬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마 모든 플레이어에게 나타났을 것으로 파악되는 메시지와 함께 무언가 도착한 듯 우편 모양의 홀로그램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우, 우와!! 3성짜리 검입니다!!”

보상을 클릭해 확인하려고 한 순간, 옆에 있던 신우가 검은색의 검집을 가진 꽤 멋스러운 도(刀)를 꺼내 들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자 칼날 또한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흑도(黑刀)를 얻은 것이었다.

신우가 얻은 보상을 보곤 한껏 기대감에 부풀며 우편을 클릭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 보상]

“이…… 이게 뭐지……? 알……?”

메인 퀘스트의 보상이라 적힌 우편에서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닌 알이었다.

일반적인 크기로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크기의 알.

타조의 알보다도 약간 더 큰 알은 껍질이 마치 철로 만든 비늘처럼 덮여 있었다.

“이 병장님…… 보상으로 나온 게 이것입니까?”

“……응.”

“머…… 멋진 알입니다.”

“……정보 확인.”

[알 수 없는 알]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희귀한 알. 생명 에너지가 가득 차면 부화한다.]

[생명 에너지-0%]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고……? 생명 에너지는 또 뭐야…….’

혹시나 하여 정보를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신우처럼 엄청나게 좋은 무기가 나오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실망으로 가득 찼다.

“이걸 또 어떻게 들고 다녀야 하나…….”

생각보다 크기가 크고 무게도 있는 알은 가지고 다니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것보다 우선 물이나 식량을 찾아보자…….”

“…….”

“지금까지야 마을에서 얻은 식량들로 버텼지만, 물이 완전히 떨어져서 문제야. 내일은 식수를 위주로 찾아보자.”

“네, 알겠습니다. 설마, 이 많은 차 중에 물병 하나 없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배낭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초코바 두 개와 식수 한 병뿐이었다.

음식이야 비정상적으로 자라 있는 나무들의 열매를 따 먹으면 되니 문제가 없었지만 걱정되는 것은 다름이 아닌 물이었다.

처음 발견할 때부터 물을 마시지 못해 탈수로 쓰러진 신우가 걱정되었다.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하자.”

“네 .알겠습니다.”

* * *

차 시트지만 오랜만에 푹신한 매트에서 잠이 들어서였을까, 깊은 잠에 빠졌었는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아침이 밝아온 듯 앞 유리를 통해 따스한 햇볕이 비춰왔다.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아침의 여유.

지저귀는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 새…… 소리?

“크르르르르!”

“컹! 컹! 컹!”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살짝 눈알만 굴려 둘러보았다.

신우와 내가 탄 자동차를 완전히 포위한 거대한 늑대들.

그 수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몬스터가 자동차의 사이사이 그리고 그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녀석들.

거대한 늑대들에게 들키는 순간 난처하게 될 것은 분명하였기에,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게 아주 천천히 운전석의 의자를 젖힌 채 자는 신우를 목소리를 낮춰 깨우기 시작했다.

“신우야, 신우야.”

“음냐…… 거기는…… 안 돼…….”

“이 새끼, 무슨 꿈을…… 강신우!”

“이, 일병 강. 신…….”

“쉿! 쉿. 목소리 낮춰.”

깊게 잠이 든 신우는 잠꼬대까지 하며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급하게 일어나며 관등성명을 대려 하다 영문도 모른 채 몸을 낮추고는 눈을 비볐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하고 있자 밖을 둘러보더니 금방 상황 파악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했다.

“이 병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모르겠다. 대규모로 이동 중인 거 같은데…….”

“차에서 물을 찾는 건 그른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런 것 같다.”

거대한 늑대, 그들이 대규모 이동 중이었는지 먹이를 찾아 이곳에 오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건 이곳에서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차 속에 몸을 숨긴 채 힐끔힐끔 그들을 살펴보았지만, 녀석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병장님,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사실 생각이 있기는 한데…….”

“생각 말씀이십니까? 빨리 해치워 버리지 말입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뭐든 할 자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신호 주면 차에서 나와서 도로 아래로 달려가.”

“……그게 끝입니까?”

“응, 왜?”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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