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20화
“왜 그러는가?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불쾌한 듯 승봉이 물었다.
“……혹시 그 이마에 점은……?”
“…….”
인상을 한껏 찌푸린 그는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물어보는 건가?”
무언가 싸한 기분이 들어 물어본 질문에 그는 당황한듯하였으나,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정돈하며 이마의 점을 가렸다.
“……아닙니다. 왠지…….”
“흠흠, 그나저나 마을 입구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좀비들이 있네. 자네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해독제가 없으면 이 마을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걸세.”
“네. 어서 나눠주시지요.”
“다만…….”
“……문제가 있습니까?”
“아닐세. 해독제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가지고 있는 재료로는 두당 2개가 최선이었네.”
왠지 석연찮은 기분이 들어 이마의 점에 관해 물어보려는 찰나, 승봉은 해독제를 꺼내 들었다.
한 사람당 두 개의 해독제, 그에 말에 따르면 마을에서 해독제의 재료는 구하는 것은 이제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바로 마을을 나가실 겁니까?”
“음, 조금 쉬었다가 나가고 싶기는 하네만. 언제 저 괴물 같은 놈들이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빨리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럼 곧장 마을을 빠져나가도록 하죠.”
“알겠네.”
마을에서 굳이 챙길 만한 물건도 없었기에 곧장 마을을 빠져나가기로 합의를 하며 길을 따라 마을의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건가?”
“왜 그러십니까? 뭐 있습니까?”
옆에서 걷고 있는 신우에게 물었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엇이 보이냐는 그의 대답에 그제야 눈치를 챘다.
시야석 반지를 끼고 있어 나에게는 보이지만 너무 멀리 있는 신우에게는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멀리 무언가 희미한 보랏빛의 덩어리 몇 개가 보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덩어리들.
마침내 완전히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메인 퀘스트-‘무기의 중요성 2’를 시작합니다.]
[벌크 좀비 사냥-미완료 0/1]
[봄버 좀비 사냥-미완료 0/10]
[퀘스트를 통해 얻은 무기 외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퀘스트의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거대한 녀석은 걸어오고 있었다.
온몸이 부패한 듯 뚱뚱하게 부풀어 오른 좀비 네 마리와 3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근육질의 좀비가 그것이었다.
“끄로아아아아아!!!!!”
화가 많이 나 보이는 근육질의 좀비가 포효하자 뚱뚱하게 부푼 좀비들이 그를 피하듯 주위로 퍼져 나갔다.
도망치기도 전에 근육질의 좀비는 뚱뚱한 좀비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고 우리를 향해 투척했다.
“저게…… 설마, 봄버랑 벌크……?”
“……맞네.”
김승봉 그가 말한 대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좀비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것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봄버와 벌크, 정황상 저들의 등장과 동시에 나타난 퀘스트 내용으로 보아 저들의 이름으로 추측되었다.
“저 커다란 놈이 벌크이고, 뚱뚱한 놈이 봄버인가…… 어…… 어…… 피해!”
얼굴은 여타 다른 좀비들과 다름이 없었지만 비대하게 큰 근육과 단단해 보이는 몸을 가진 좀비, 벌크로 추측되는 그 몬스터는 옆에 있던 뚱뚱한 좀비를 한 손으로 던져 버렸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뚱뚱한 좀비는 순식간에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콰쾅! 쾅쾅!!!
봄버(bomber), 폭격기라는 그 이름처럼 땅에 닿는 그 순간 자신을 폭발시키며 온갖 부산물과 피를 터뜨렸다.
뚱뚱한 몸은 살이 찐 것이 아닌 유독 가스로 가득 찬 내부 때문이었는지, 위험해 보이는 녹색의 연기 또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허억, 괜찮아?”
“예, 가까스로 피했습니다.”
“나, 나도 괜찮네.”
봄버가 날아오는 순간 몸을 던져 피할 수 있었던 상황.
승봉이 인상을 쓰며 가리킨 장소에는 콘크리트 바닥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좀비의 부산물과 기분 나쁜 액체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그곳은 폭발이 일어난 장소였다.
“도망도 못 가겠는데?”
벌크 좀비가 봄버를 던진 건 우리를 맞추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가 노린 것은 우리의 뒤쪽, 그 덕분에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도망치기에 유일한 길목이었던 그곳은 어느새 보랏빛의 연기로 가득 채워졌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가 아스팔트 위에 외로이 피어 있던 식물에 닿자 순식간에 바스라 지며 썩어 버렸다.
도저히 맨몸으로 지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연기.
심지어 그 연기는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며 우리를 벌크 좀비 쪽으로 조여가고 있었다.
연기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승봉이 다급하게 외쳤다.
“해독제! 해독제를 당장 마셔!!”
이미 한번 그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일까.
그는 생각보다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미리 받은 해독제는 두 개였다.
그의 능력으로 해독제를 무한정 만들 수 있었지만, 문제는 재료. 해독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에 제약이 있었기에 총 6개의 해독제를 만들어온 것이었다.
그의 외침에 벌써 하나씩의 해독제를 마셨고, 이제 각자 하나씩의 해독제가 남아 있었다.
“무, 무기가 안 꺼내집니다!”
자신의 주 무기인 단검이 꺼내지지 않자 다급한 신우가 소리쳤다.
나 역시 녀석들을 본 순간 무기고를 통해 총기를 꺼내려 하였으나 꺼내지지 않았다.
[메인 퀘스트-‘무기의 중요성 2’를 시작합니다.]
[벌크 좀비 사냥-미완료 0/1]
[봄버 좀비 사냥-미완료 0/5]
[퀘스트를 통해 얻은 무기 외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퀘스트 창이 생성된 그 순간 달려든 녀석들 때문에 자세하게 읽지 못한 문구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퀘스트를 통해 얻은 무기, 즉 머스킷과 빠루, 클리버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젠장, 퀘스트 제목 한번 잘 지었구만.”
“그냥 상대하기도 힘든 녀석들을 상대로 퀘스트라니, 빌어먹을!”
퀘스트 내용에 흥분한 승봉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칼인 클리버를 꺼내 들었다.
“저 녀석들을 상대해 본 적이 있다고 했죠. 어떤 식으로 공격합니까?”
“보이는 그대로네. 저 근육질 좀비가 저 폭탄 같은 녀석을 던져서 공격한다네.”
“그워어어억!!!!!”
그때 더는 지켜만 보고 있지 않겠다는 듯 벌크 좀비가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했다.
동물이 자신의 몸을 부풀리며 위엄을 과시하듯, 거대한 가슴 근육을 열어젖히며 포효하는 녀석.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녀석이라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닐 터.
철컥, 철컥, 탕!!
틱, 틱.
재빨리 탄약을 넣어 머리를 조준했으나 총알은 통하지 않았다.
머리조차 단단한 녀석은 그저 따가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총알도 안 통하는 녀석이라니…….”
벌크 좀비 역시 오크와 마찬가지로 총알이 통하지 않는 상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시너지 효과가…….’
[적용 중인 시너지-단검(1) 아군의 체력과 마나 10% 증가.]
[적용 중인 시너지-군인(2) 이동 속도 15% 증가. 군인 직업에만 적용.]
재빠르게 적용 중인 시너지 효과를 살펴보자 다행히 단검의 효과가 적용 중이었다.
신우가 빠루를 들고 있었지만, 승봉이 들고 있는 클리버, 일명 중식도가 단검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녀석이 한 방에 죽지 않는다면 마탄을 사용한 후 공격을 이어갈 수 없었기에 위험이 너무 컸다.
더욱이 저들의 숫자는 한 마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탄을 사용하여 한 마리를 죽인다 해도 다른 녀석에게 당해 버린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철컥, 탕! 철컥, 탕! 탕!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으나, 벌크 좀비는 빗발치는 총알을 맨몸으로 뚫으며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어어어억!”
총알을 많이 맞았기 때문인지.
이미 화가 많이 나 보이는 녀석은 자신의 머리통보다도 큰 주먹을 휘둘렀다.
“으헛.”
퍽-
“우웩!”
피한다고 피했으나 둔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엄청난 속도의 주먹이 복부를 강타했다.
순간 내장이 파열된 듯한 고통이 올라오며 피를 토해냈다.
스킬인 방탄 피부 덕분에 피해가 경감되어 이 정도 피해에 미쳤으나, 마치 덤프트럭을 복부에 그대로 꽂은 것 같은 그 고통은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복부를 맞아 주춤한 사이 자신의 거대한 이빨을 이용해 팔을 물었고, 그대로 날려 버렸다.
“으악……!”
온몸의 고통도 잠시, 벌크 좀비에게 물린 팔에 녀석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겨 있었다.
마치 썩어들어가듯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피부.
지체하지 않고 남아 있던 해독제를 마시자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 이 병장님!!”
“괘, 괜찮아. 그것보다 시선을 좀 끌어줘! ”
“네! 알겠습니다!”
“알겠네!”
더 이상 다른 방도는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았고 해독제도 더는 없었기에 결국은 마탄을 사용하려 하였다.
그사이 승봉과 신우는 벌크 좀비에게 다가가 시선을 끄는 사이 벌크 좀비의 머리를 조준했다.
정신을 집중시키며 총구에 푸른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그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탕!!!
온몸의 기가 빠지는 듯한 정신적인 충격이 강타한 그 순간.
“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