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14화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이야기한 그는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무슨.”
“처음 능력이 생겼을 때야 서로 도와가며 좀비들을 사냥하고 그랬지. 그때야 지금처럼 저 녀석들이 많지도 않았고, 얼마 가지 않아 그중에 두각을 드러내는 녀석들이 생겼지. 나중에는 그 녀석들 중심으로 마을을 빠져나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네. 당연하지 않은가? 밖에 저런 녀석들이 돌아다니는데 이곳에 누가 있고 싶어 하겠는가?”
“……마을을 빠져나간 겁니까?”
“음…… 빠져나간 자도 있지.”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곳에 처음 나타난 좀비들은 저렇게 많지 않았어. 지금이야 보시다시피 이 정도지만.”
“그들이 마을 사람들을 미끼로 이용해서 빠져나갔다는 말입니까?”
“그건 자네들 상상에 맡기겠네.”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면서도 분노한 듯한 남자의 표정에 더는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 * *
“신우야 문 잘 막아, 혹시라도 뚫리면 네가 다 상대해야 한다.”
“너, 너무하십니다.”
“하하, 그러면 잘 막으면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밤이 다가오며 조금씩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곧 밤이 되면 다시 좀비들이 들끓기 시작할 것이다.
그전에 모텔로 돌아와 신우와 함께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했다.
밤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최대한 잘 막았습니다.”
“그래, 이제 슬슬 시작해 보자.”
신우는 모텔의 유리로 된 문을 잠근 뒤 카운터 안에 있던 의자를 이용해 입구를 봉쇄했다.
그런 신우를 바라보며 무기고를 열어 소음기가 장착된 자동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함께 2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작한다. 귀 막아!”
계단 입구에 선 채로 안전핀을 제거하며 신우를 보며 소리쳤다.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준비되었다는 신우의 수신호를 받음과 동시에 복도를 향해 섬광탄을 던지며 눈과 귀를 막으며 뒤로 돌아섰다.
펑! 삐-
몇 초 지나자 느껴지는 빛과 폭음.
복도의 중간으로 굴러간 섬광탄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듯 눈과 귀를 막았음에도 그 효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어어어~”
그리고 예상대로 불쾌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섬광탄의 빛과 소리가 멎어들 기를 기다린 후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이동했다.
철컥, 철컥.
누군가 잠가버린 문고리는 열리지 않았다. 소리가 들려오는 출처는 문 앞에 적인 203호라 적인 방이었다.
고개를 까닥이며 신호를 주자 곧바로 신우가 다가와 문고리를 그대로 절단시켰다.
쾅! 슉! 슉!
그 즉시 문을 발로 차며 진입하여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미 몸통이 잘리고도 살아 움직이는 좀비 한 마리와 목에 살점이 뜯긴 좀비 한 마리.
소리에 반응하며 다가오는 녀석들의 머리통에 정확히 총알을 꽂아 넣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림잡아 예측 가능한 두 마리의 좀비는 나의 손에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2층은 이 녀석들이 전부인가?”
“이 병장님, 이쪽에도 소리가 들립니다.”
“알았어, 바로 갈게!”
우리가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닌, 모텔에 숨어 있는 좀비들을 정리하는 것.
당분간 모텔을 거점으로 삼기로 했기에,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위협이 될 만한 좀비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제 2층은 완전히 정리된 것 같습니다.”
“바로 올라가자.”
* * *
모텔 내의 모든 좀비를 제거한 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방은 처음부터 묵었던 306호의 방.
새벽이 다가오며 공기가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밖에서는 앓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내 손 안의 무기고를 활성화하였습니다.]
무기고를 펼치자 손바닥 크기로 펼쳐지는 조그마한 홀로그램.
“저격 소총이 뭐가 있을까…….”
[PGG-1, M-24, DRAGUNOV, VARRET…….]
무기고에 보관 중인 목록을 펼쳐보며 적당한 총기를 찾기 시작했다.
3성 무기와 2성 무기, 그리고 1성 무기까지 목록은 별에 따른 종류 외에도 라이플이나 저격용 총 등의 종류에 따라서도 분류할 수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음…… 뭐가 좋으려나.”
[볼트 액션식, 세미 오토식, 풀 오토식, 대물 저격총]
“볼트 액션식으로 해야겠다.”
결정과 동시에 무기고에 손을 넣어 저격 총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사용했던 K2와는 또 다른 그립감의 총기.
노리쇠를 당겨 탄피의 배출과 장전을 수동으로 하는 장전 방식인 볼트 액션식 저격총이었다.
꽤 많은 총기 중 볼트 액션식 저격용 총을 선택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약실 외에 총열이 총 어느 곳에도 닿지 않는 구조인 프리플로팅 배럴(Free-floating barrel).
즉,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구조를 가졌으며 저격용 총답게 긴 사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K2의 잔 고장으로 고생했던 만큼 대중적으로 내구성이 좋다는 인식이 있는 무기였기에 더욱 끌렸다.
물론, 연사가 안 되는 단점이 있기는 하였으나 원거리에서도 적을 맞힐 수 있는 정밀함이 더 중요했기에 굳이 상관은 없었다.
좀비들을 먼 거리에서 사냥하는 데 있어서 연사로 갈겨대는 화력보다는 조용하고 정교한 스나이핑이 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좀비를 사냥하기 위해 고른 장소는 모텔의 옥상.
방 안에서도 저격할 수 있었지만, 사각지대로 인한 시야의 방해가 문제였다.
옥상을 통해 사방의 시야가 확보되었고, 어디서든 위치를 잡을 수 있었기에 고른 장소였다.
“이 병장님, 저는 여기에 자리 잡으면 되겠습니까?”
“응?”
신우가 허리엔 칼집을 찬 채 스코프와 소음기를 장착한 K2를 들고 질문하였다.
옥상의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나를 쳐다보았다.
예상치 못한 질문.
“너도…… 총을 사용하려고……?”
“예! 제가 칼을 들고 나갈 순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해맑게 웃고 있는 신우였지만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과거 고블린을 저격하던 모습이 생각이 났기 때문.
지금은 그때보다 사거리는 더욱 멀어졌으며 시야도 잘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그렇다면 신우의 저격 실력이 늘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잠시만. K2 놓고 이거 들어볼래?”
“저격용 총 아닙니까?”
무기고에서 저격총을 꺼내 신우에게 건네주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들고 있던 K2를 내려놓은 신우는 저격총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나 역시 저격총을 소지한 채로 시너지 효과 목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너지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적용 중인 시너지-군인(2) 이동 속도 15% 증가. 군인 직업에만 적용.]
[단검(0/1)]
[저격총(2/3)]
혹시나 하여 목록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적용되지 않은 시너지 효과.
부대를 빠져나오며 직업이 군인으로 변한 이후 계속해서 적용되고 있는 군인효과만이 적용되고 있었다.
신우에게 저격총을 건네준 것은 저격을 위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여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인원수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음…… 그럼 총기 내려놓고 다시 단검으로 들어봐.”
“단검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한 신우는 다시 한번 총기를 내려놓고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시너지 효과 창이 다시 변화하였다.
[시너지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적용 중인 시너지-단검(1) 아군의 체력과 마나 10% 증가.]
[적용 중인 시너지-군인(2) 이동 속도 15% 증가. 군인 직업에만 적용.]
[저격총(1/3)]
“응? 동시에 적용이 되는구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부대에 나온 이후 신우는 계속해서 총기를 사용했기에 단검을 사용할 일이 없었으며, 라이플을 들고 있을 때는 어떠한 시너지 효과도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직업 시너지와 무기에 따른 시너지가 나눠진 건가 본데.”
“제 생각도 같습니다.”
현재까지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이것이 전부였다.
구성원의 직업에 따라 시너지가 발생하고, 들고 있는 무기에 따라 시너지가 발생 된다.
두 개의 시너지 효과는 중복할 수 있다.
어떤 효과, 얼마나 많은 시너지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아직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지만, 인원이 많아진다면 생존에 유리하리라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였다.
‘인원이 많을수록 생존에 유리하다라…….’
구성원의 인원이 늘어날수록 시너지 효과가 증가할 것이며, 같은 구원의 숫자라도 어떤 시너지를 받느냐에 따라 그 그룹의 효율은 극과 극으로 갈릴 것이다.
잠시 생각을 하는 동안 무심코 앞을 바라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신우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아, 신우야 저격은 내가 할 테니까. 너는 단검을 들고 문을 감시해 줘.”
“그럼, 이 병장님 혼자 너무 힘드시지 않습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아니. 마탄을 사용해 보려고 그래. 실험해 볼 것도 있고.”
“아, 시너지 효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응, 저번에 오크처럼 마탄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녀석이 나오지 않는다는 확신도 없고, 우리 둘 다 집중하고 있을 때 좀비가 덮치면 어떡하냐? 네가 지키고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다.”
“아! 역시. 생각이 깊으십니다. 제가 좀비들 못 들어오게 지키고 있겠습니다!”
자신을 인정해 준 것이 기쁜 신우가 총기를 내려놓았다.
이어서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문 앞을 지키기 위해 이동하였다.
고집 피우지 않고 순순히 말을 따라주는 신우를 보며 그제야 안심하고 자리를 잡으며 세팅을 시작했다.
우리가 좀비를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마을을 나가기 위해서 좀비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점과 마을에 머무는 동안 위협이 된다는 것.
무엇보다 변해버린 세상을 완전히 인지하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미쳐 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몬스터보다 강해져야 했으며, 강해지기 위해서는 저 몬스터들을 죽여 코인을 많이 모아야 했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게 될 거라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었다.
‘후우.’
호흡을 내뱉으며 조준경을 통해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가로등이나 가게의 불빛 하나 없는 완전한 어둠.
희미한 달빛만이 천천히 움직이는 좀비들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단 마탄을 버틸 수 있는지부터 실험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