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11화
부대를 빠져나와 가게들이 모여 있는 상가로 이동했다.
도시와는 많이 떨어진 탓에 유흥과는 거리가 먼 식당이나 모텔만이 즐비한 거리.
그마저도 군인들과 군인의 가족들을 상대로 장사하였기에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높은 가격이 문제였으나 휴가나 외출을 나온 장병들이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기에 활기를 띠었던 거리였다.
“이 병장님, 여기가…… 맞습니까?”
“……어…… 어 그런 거 같은데?”
그 거리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는 한적했다.
조용함을 넘어 고요한 거리는 낮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곳곳에 파손된 가게의 유리와 사람의 피가 굳은 것으로 보이는 얼룩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 또는 몬스터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어!”
그 순간 느껴지는 인기척.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지켜보고 있던 눈동자가 자취를 감췄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블라인드. 가게의 주인인지 살아남은 주민인지 사람이 없지는 않아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저기,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어.”
똑. 똑. 똑.
“저기요, 여쭤볼 게 있습니다.”
“이상한 사람들 아닙니다. 잠시만요”
부대를 빠져나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살아남은 주민들을 찾아다녔다.
이따금 느껴지는 인기척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어째서인지 우리를 외면했다.
“이 병장님, 이곳도 문을 안 열어 줄 것 같습니다.”
“그래, 밤이 되기 전에 쉴 곳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어, 병장님! 저기 할아버지…….”
신우의 외침에 곧장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가게의 커튼 뒤로 재빠르게 숨는 그 할아버지는 분명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동네의 유일한 구멍가게의 주인인 할아버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는지 다 쓰러져가는 건물 역시 자주 애용했던 단골 구멍가게가 확실했다.
“방금 장 씨 할아버지 아닙니까?”
“맞아, 가보자 장 씨 할아버지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장 씨 할아버지.
부대 앞에서는 유일하게 담배나 과자, 기타 생활용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장소이었기에 장병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매일 장병들을 상대하며 항상 친절하고 아들같이 대해 주었던 그였기에.
그라면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쾅! 쾅! 쾅!
“할아버지! 저희, 부대의 장병들입니다.”
“어르신, 도움이 필요합니다.”
쾅! 쾅! 쾅!
“장 씨 할아버지!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저희 매번 가게에서 담배랑 과자 사 갔던 군인들입니다.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손으로 연신 노크를 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뒤에서 우리의 소리를 듣고 있을 장 씨 할아버지는 간절한 도움 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더군다나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
쾅! 쾅!
“할아버지 잠시만요, 여쭤볼 게 있습니다.”
짤랑, 짤랑.
끼이이익-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던 그때, 달려 있던 방울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 든 채로 모습을 드러낸 장 씨 할아버지.
“예끼, 녀석들아! 질문은 무슨 질문! 이곳에서 큰 소리 내지 말고 썩 꺼져!!”
쾅!
항상 친절함을 베풀던 장 씨 할아버지의 모습은 온 대간 데 사라지고 없었다.
손에 든 바구니의 소금을 뿌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어두워지고 있으니까 모텔에 가서 쉬고 내일 다시 물어보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비를 하지.”
“…….”
“뭐야? 왜 얼굴을 붉히냐?”
“모…… 모텔 말씀이십니까?”
“……아이 씨! 그런 장난치지 마. 소름 돋아 미친놈아.”
* * *
“계시나요……?”
“저기요?”
신우와 함께 도착한 곳은 모텔. 내가 부대에 복귀하기 전 머물렀던 그 모텔이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기에 모텔 안으로 들어왔지만, 계산대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곳곳에 무언가를 막기 위해 쌓인 가구들과 물건들과 여기저기 피가 굳은 얼룩들로 인해 대충이나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병장님, 여기 열쇠가 떨어져 있습니다!”
“열쇠? 어……? 이거.”
신우가 계산대 밑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웠다.
306호라 적힌 방의 키.
어렴풋한 기억이 맞는다면 복귀전 머물렀던 그 방과 같은 번호였다.
“일단 이걸로 올라서 좀 쉬자. 혹시 주인아저씨가…… 있다면 그때 사정을 이야기하면 되겠지.”
“네, 알겠습니다.”
오지 않는 주인아저씨를 기다리기에는 육체의 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
마을의 모습과 주민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이곳 역시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으로 보였다.
혹여나 주인아저씨가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면 살아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기에,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열쇠를 챙긴 뒤 곧바로 방으로 이동했다.
이곳 역시 전기가 끊어졌는지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와 잠겨 있던 방의 문을 열었다.
“……역시.”
방문을 열자 보이는 익숙한 방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사용한 일회용 칫솔과 일회용 면도기.
방바닥에 놓인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캔, 그리고 안주로 먹은 과자까지.
복귀전 내가 사용했던 방이 치워지지 않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솨아아-
그때 들려오는 물소리.
화장실에 있던 신우가 세면대의 물을 틀어본 것으로 보였다.
“뭐야? 물 나와?”
“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냄새도 이상하고 색깔도 이상합니다.”
“아…… 그래? 사용하지는 마. 오염된 물일 거야.”
“예, 알겠습니다.”
혹시나? 했던 기대감은 ‘역시나’로 바뀌었다.
완전히 망가져 버린 마을의 모습.
부대와 마찬가지로 건물이 부서지고 상수도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사람이 죽은 흔적들이 보인다.
하지만, 어디에도 시체는 보이지 않았고 날뛰고 있어야 할 몬스터라는 존재들이 보이지 않았다.
“정부나 다른 군대에서 모두 처리한 게 아니겠습니까?”
“몬스터들을……?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오랜만에 누워보는 푹신한 침대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와 신우 모두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몰려들었고. 침대에 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크어어어엉~ 푸우우우우~”
“크어어엉, 푸우우우우우~”
“으어엉어~”
“응어어엉~”
어느새 깊게 잠이 들어버린 신우의 코 고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이상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옆을 바라보니, 신우가 요란하게 잠을 자고 있다.
알 수 없는 신음은 방이 아닌 복도 저 멀리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천천히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듯한 그 소리.
위험을 인지하여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레 신우를 깨웠다.
“신우야, 야, 일어나봐.”
“으으음, 쩝”
“야, 신우야.”
몸을 흔들어 깨우자 그제야 잠에서 깨는 녀석. 졸린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앞에서 아무런 말 하지 말라는 듯 검지를 입에 가져다 둔 상태였다.
“이…… 이 병장님…….”
“쉿…….”
“나, 낮에는 장난친 거였습니다…… 저…… 저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잠이 덜 깬 듯 헛소리를 지껄이는 녀석.
야심한 밤 자신을 조용히 깨우는 나를 오해한 듯하였다.
황당함에 벌레 보듯 쳐다보고 있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일로 와서 좀 봐봐”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를 살짝 벌려 밖을 조심스럽게 확인하자, 신우 또한 가까이 다가가 밖을 확인했다.
들어오지 않는 전기로 인해 밖은 칠흑같이 어두운 마을.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바라본 밖에는 누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으어어어어~”
알 수 없는 앓는 소리를 내며, 기괴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살점이 뜯어져 뼈와 장기 들이 튀어나온 그들은 정처 없이 밖을 걸어 다녔다.
“너는 저것들이 뭐로 보이냐?”
“……좀비 같습니다.”
“무기 챙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