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06화
사주 경계를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없다. 들어와.”
내 말에 안심했는지 신우가 긴장했던 표정을 풀며 들어왔다.
PX의 옥상에 있는 것이라곤 구석에 있는 작은 종이컵 하나.
담배를 피우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는지 그 안에는 꽁초가 가득했다.
“끼긱!”
그때 몬스터의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순간 몸을 낮춘 후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두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신우 역시 내 행동을 따라 하며 동시에 함께 몸을 낮추고는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
한동안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고 얼어 있었다.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신우를 향해 눈짓했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신우.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몸을 낮춘 채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연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옥상의 풍경.
그곳에는 신우를 데리고 들어올 때와 다름없는, 아니 오히려 더 많아져 보이는 몬스터들이 가득하였다.
“저 녀석들도 밤에는 잠을 자나 봅니다.”
신우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연병장을 가득 채운 몬스터들은 모두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목표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스코프를 이용해 자세히 바라보자 확실히 그들이 자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자는 모습마저 일반적이지 않은 괴기스러운 몬스터들.
그때 스코프를 이용해 관찰하던 신우가 무언가 발견한 듯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신우, 강신우. 왜 그래?”
“이…… 이 병장님 2시 방향에 저 녀석입니다.”
“응?”
“무기가 통하지 않고 소대원들을 다 죽인 녀석 말입니다.”
신우는 트라우마가 떠올랐는지 온몸을 벌벌 떨며, 분노하듯 얼굴이 시뻘게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잠시, 스코프를 2시 방향으로 돌려 그것의 모습을 확인했다.
스코프에 한쪽 눈을 가져다 대자 작은 렌즈를 통해 확대된 그것의 모습이 보였다.
고블린보다 갑절은 큰 덩치에 단단해 보이는 청록색의 피부.
조물주가 돼지의 면상을 만들다 던져 버린 듯 우악스러운 그 외모는 신우가 두려움에 떠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신우야, 저 자식한테는 총알이나 무기가 안 통한다. 그 말이지?”
“네, 어떤 무기도 안 통했습니다.”
“저 녀석한테 소대원들이 모두 당했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제자리에 선 채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
총구를 녀석에게 조준한 채 호흡을 멈추었다.
스코프를 통해 바라보는 민혁의 시선은 그 녀석의 머리통에 꽂혀 있다.
늦은 새벽 시간 감수성이 예민해진 것이었을까, 아니면 믿기지 않는 현재 상황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강상병, 말은 안 듣지만, 열심히 했던 김일병, 아버지같이 잘 챙겨주었던 소대장님까지 살아생전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
“이…… 이 병장님.”
“후…… 알아, 인마.”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미 총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
그런 녀석을 향해 복수심에 불타 공격한다고 하여도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조준하고 있자, 혹여나 총을 쏴버릴까 걱정하는 신우의 부름에 총을 거둬들였다.
“지금 몇 시지?”
“현재 시각 03시 24분입니다.”
“오늘은 저 녀석들이 몇 시에 일어나는지 확인만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질문에 신우는 손목에 찬 거대한 전자시계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이어지는 독단적인 결정에 불만을 제기할 법도 하지만,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 * *
“무기고!”
[내 손 안의 무기고를 활성화했습니다.]
[마탄(魔彈)의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자동 권총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스킬을 활성화하자 곧바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손안에 펼쳐진 홀로그램 속으로 손을 집어넣자 자동 권총 한 자루와 평범해 보이는 탄약이 딸려 나왔다.
“어!”
우선 자동 권총을 집어 들자 깜짝 놀랄 만한 총의 그립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엄청나게 편안한 손안의 감각이 느껴졌다.
사격 선수 출신이었기에 웬만한 일반인보다 많은 총기를 다뤄 보았지만 이만한 감각을 가져다주는 총기를 본 적은 없었다.
“아이템 확인!”
[자동 권총]
[등급 : ★]
[사용자에게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제작된 자동 권총. 짧은 길이와 가벼운 무게가 특징이다.]
“생각보다 더 좋은데?”
마음에 드는 권총을 얻어 흡족한 미소를 띠며 이곳저곳 조준을 해보며 사격 자세를 취해보았다.
소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동 권총을 제작한 것은 다름이 아닌 비상용.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전투 중 소총이 고장 나거나 소총을 꺼내기 어려울 만큼 긴박한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다.
고블린과의 전투 중 너무나도 오래된 K2 덕분에 한번 위기에 빠졌던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당시에는 다행히 별다른 위험 없이 해결되었지만 그런 상황이 또 닥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어디 그럼 이제 이 마탄이란 녀석을…….”
[마탄(魔彈)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나가 부족합니다.]
“뭐……?”
마탄을 사용하려고 하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생성되었다.
“……후…….”
기대를 한 만큼 실망도 큰 법.
한숨을 내쉬며 마탄을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더 시도해 볼 법도 하였으나, 마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모든 볼일을 마친 뒤 시계를 바라보았다.
현재 시각은 01시 정각.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신우야 가자!”
신우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따라왔다.
도착한 장소는 어제와 같은 PX의 옥상.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럽게 바닥에 엎드리며 어깨에 견착한 후 엎드려 쏴 자세를 취했다.
신우 또한 어제 이후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자연스럽게 옆에서 자세를 따라 취하였다.
그런 모습에 왠지 모를 기특함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이 병장님.”
“응?”
스코프를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고블린을 조준하는 와중에 옆에서 신우가 말을 걸어왔다.
“근데, 저 녀석들 사냥을 왜 하는 겁니까?”
“응? 내가 말 안 했나?”
“말 안 해주셨지 말입니다.”
훅 들어오는 근본적인 질문. 가장 편한 사격 자세를 찾기 위해 꼼지락거리던 와중에 총구를 거두며 신우를 보고 마주 앉았다. 전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
“너 이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버틸 거 같냐?”
“자,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볼 때는 PX의 식량으로 길어야 일주일. 짧으면 5일 정도밖에 못 버틸 거라고 본다.”
“…….”
“물론 그것도 저기 있는 저 자식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을 때의 가정이지만.”
“구, 군대나 경찰이 구하러 오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만…… 여기도 군대였다는 거 잊지 마,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소식조차 없는 걸 보면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생각한다.”
“설마…… 전 세계에 저런 녀석들이 나타났다는 말씀이십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신우는 절망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더 좋게 이야기해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최선의 상황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럼, 이 병장님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우선 저 녀석들 숫자를 줄인다. 그것뿐이야.”
“자, 잘 못 들었습니다?”
“저 녀석들 숫자를 줄여야 기회를 봐서 도망을 가든, 다른 식량 창고를 찾든지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네 말대로 세상 전체에 저런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면 살려면 어떻게 하겠냐?”
“먼저 죽여야 합니다?”
“그래, 사격 연습이나 한다고 생각해. 이제 총기 들어라”
“네.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엎드리며 사격 자세를 취하였다.
총기를 들어 서 있는 채로 잠들어 있는 고블린을 향해 조준했다.
숨을 들이마신 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숨을 내쉬며 폐를 비운다.
숨을 내뱉으며 가장 편안하고 공기의 흐름이 적은 그 순간 아주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손가락을 당기기 시작했다.
슉!
털썩.
그 순간 흔들림 없이 발사된 총알이 자고 있는 고블린의 머리통을 명중했다.
그리고는 쥐죽은 듯 조용하게 쓰러지는 고블린.
슉!
“끼기긱!”
슉! 슉!
“끼에엑!!!”
슉! 슉! 슉!
침착하게 다음 타깃을 조준하려는 그 순간,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함께 고블린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에 반응하며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