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04화
하늘을 가득히 메운 하얀 빛.
눈이 부시다 못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은 피할 수도 없이 강렬했다.
‘섬광? 섬광탄이 터진 것인가?’
곧이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중심을 잡을 수도 없이 흔들리는 몸은 더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지진……? 아니면 설마 몬스터가……!’
“……님…….”
“……장…… 님”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그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아아악!”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지만,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 병장님!”
“야! 너 뭐 하는 거야. 후레시 치워!”
잠에 빠져 있는 동안 깨어난 듯 입 주변에 과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신우가 휴대용 손전등을 앞에 들고 있다.
“이 병장님, 죽은 줄 알았습니다.”
자고 있던 것을 죽은 줄 알고 눈에 손전등을 비추며 몸을 흔들어 깨웠다는 녀석.
진심으로 걱정을 했는지 눈에는 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입에 부스러기나 닦고 말해 인마”
“하하, 이게 언제…….”
민망해하며 입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고 다시 물어보는 녀석.
“병장님, 오늘 전역 날 아니십니까? 날짜는 맞는데 전역 처리가 된 겁니까?”
“몰라 새꺄.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야? 저 괴물 같은 것은 다 뭐고.”
질문에 급격히 안색이 어두워지는 신우.
들고 있던 과자를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소대원들은? 소대원들은 다 어디 갔어?”
“저 그게…… 소대장님, 김 일병, 하 병장까지 소대원 전부 저 녀석들한테 당했습니다. 제 눈으로 봤습니다.”
“뭐? 다 죽었다고?”
“……네”
나 역시 부대를 돌아다니는 동안 시체가 된 익숙한 얼굴들을 종종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사실로 밝혀지니 그 충격은 배가 되었다.
순간 일어나는 두통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야기했다.
“저 녀석들은 어디서 나타난 건데? 군대잖아. 무기도 있고, 훈련된 병사들만 가득한데 어떻게…….”
쾅-
말을 하면서도 점점 커지는 분노.
신우가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며 화가나 땅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을 삭였다.
“……부대 곳곳에 어느 순간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예. 이 병장님 복귀 전날 부대 곳곳에 갑작스럽게…… 비상이 걸렸고 모두 총을 들고 나가 저것들을 쏘기 시작했는데…….”
[서브 퀘스트-‘동료를 구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우편으로 도착하였습니다.]
신우가 말을 하는 와중에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짐과 동시에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퀘스트 완료를 알려주는 홀로그램과 그 옆에 표시된 편지 모양의 아이콘까지.
신우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홀로그램은 나를 제외한 다른 이에게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갑자기 홀로그램 같은 것이 펼쳐졌습니다. 이상한 기계음과 함께.”
이어서 신우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몬스터들이었지만, 모두 신속하게 대처하였다고 한다.
군대는 모든 병력과 무기를 총동원하였고 몬스터들은 우후죽순 쓰러졌다.
하지만 우세한 상황이 이어졌던 것은 아주 잠시.
“그때 총알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뭐? 총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롭니다. 총알도 포도 녀석에겐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럼, 너는. 너는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군대의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몬스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눈앞에 신우는 멀쩡하게 살아 있다.
무언가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하여 한 질문이었다.
“저, 저는 숨어 있었습니다…….”
“뭐……? 다들 싸우고 있을 때 너는 숨어 있었다고?”
“…….”
비겁한 그의 행동에 화가 났지만 나무라지 않았다.
당시 현장엔 나 역시 없었고 자신의 판단이었을 테니.
그저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퀘, 퀘스트가 나왔습니다.”
“응?”
“무기가 통하지 않는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나자 숨어 있으라는 퀘스트가 나타났습니다.”
퀘스트가 등장했다는 신우.
평소였다면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 역시 퀘스트가 등장했었고 그것을 계기로 그를 구한 것이었다.
“너한테만 숨으라는 퀘스트가 나온 거야?”
“……모두한테 나왔지만, 말도 안 된다고…….”
신우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화에 점점 풀이 죽으며 심란한 듯 입술만을 깨물었다.
그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울 것이 분명한데 너무 몰아세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기죽지 마. 어쩔 수 없었잖아.”
위로의 말을 건네며 어깨를 툭 치니, 금세 빵끗 웃어 보이는 녀석.
단순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금방금방 변하는 그의 감정 변화에 가만히 있어도 지칠 것만 같았다.
“아, 참! 너도 이거 생겼어? 상태창”
[이름-이민혁]
[직업-말년 병장]
[보유 스킬]
[내 손 안의 무기고-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할 수 있습니다.]
상태창을 외치자 현재 나의 정보가 적힌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하지만 신우에게는 보이지 않는지 멀뚱멀뚱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상태창이라는 게 생겼어. 게임도 아니고 말이지.”
“예! 저도 생겼습니다.”
“그래? 직업이 뭐야? 나는 말년 병장이래.”
“저랑은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뭔데? 일병? 군인?”
“아. 저기…… 그…….”
“왜? 아, 이것도 개인 정보라 안 알려주는 거야?”
“아, 아닙니다. 그것이…… 상태창!”
신우의 외침과 동시에 상태창이 펼쳐졌는지 그 역시 허공을 바라보며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얼굴을 들이밀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직업에 고문관이라 적혀 있습니다…….”
‘고문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총기 보관함의 열쇠를 가지고 휴가를 나간 후 혼나는 게 무섭다는 이유로 엄마를 데리고 복귀한 전설적인 인물.
알게 모르게 뒤에서는 다들 고문관이라 불리던 그가 바로 앞에 있는 강신우였다.
“……스킬, 스킬은 뭔데?”
“검객이라 쓰여 있습니다.”
“우, 우와 검객? 너 검도를 했었다고 하지 않았나?”
어색한 침묵 뒤 고문관이라는 신우의 직업을 언급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과거 신우가 전입해 온 당시에 사회에서 검도를 했었다는 신우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네, 그렇습니다.”
“오, 검도는 잘했어?”
“……저 그 우편으로 보상을 얻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안 열어 보십니까?”
곤란한 질문이었던 듯 대답을 회피하며 말을 돌리는 녀석.
어색하게 눈알을 굴리며 화제를 돌리는 녀석의 모습은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그가 말하는 보상.
퀘스트 완료를 알림과 동시에 우편을 통해 받은 보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거? 이게 뭔 줄 알고 열어…… 뭐가 나올지 알고.”
사실 우편을 받은 순간부터 궁금하였지만 열어보지 않고 있었다.
너무나도 생소한 방식이었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무엇이 등장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나름 안전하게 있었지만, 혹여나 밖에 있는 몬스터 같은 것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함부로 열어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도 열어보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네가 열어봤다고?”
“예. 숨어 있을 때 퀘스트 완료가 뜨면서 열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
고민하고 있자, 내용물이 궁금한 듯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물건이 나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있는 곳은 부대 안의 PX.
밖에는 몬스터가 가득하다.
현재는 풍족하게 마실 것과 먹을 것이 있었으나 언제 바닥나게 될지 알 수 없었고, 창고 역시 몬스터들에 의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다.
지금 당장은 안전한 것 같지만 이대로 오랜 시간을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알았어. 열어보자. 혹시 모르니까 조금 떨어져서 조준하고 있어 봐.”
“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신우에게 견제를 부탁하였다.
신이 난 듯 우렁차게 대답한 후 자신의 옆에 있는 소총을 집어 드는 녀석.
대충 앉은 채로 허공에 총구만을 향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 어처구니가 없다.
“너, 뭐 해?”
“……잘못 들었습니다?”
“……견착은 안 해? 아니 총알은 있고?”
“아! 총알 없습니다…….”
“……그냥 앉아 있어라.”
“네, 알겠습니다.”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참을 인’ 자를 세기며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편지 모양의 우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편에 초심자의 보급 상자를 보관 중입니다.]
[초심자의 보급 상자 열어 보시겠습니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