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03화
기절한 신우를 억지로 부축한 채 건물의 1층까지 내려왔다.
PX인 창고까지 거리는 100m. 하지만 연병장의 몬스터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무언가 분주히 움직이기는 하였으나 그저 그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 다른 곳으로 이동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 자식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방법이 없을까…… 하다못해 시선만이라도.’
지금은 얌전해 보이는 몬스터들이었으나, PX에 들어가기 위해 이동하는 것을 본다면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을 보기만 해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녀석들이었으며, 심지어 인기척이나 소리만 들어도 흥분하며 달려들었다.
“어! 소리? 혹시…….”
그때 번뜩이는 생각.
“무기고!”
[내 손 안의 무기고를 활성화하였습니다.]
오른손을 활짝 펴자 그 위로 작은 컨테이너 모양의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무기고를 통해 K2 소총의 소음기를 제작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섬광탄 제작 가능해?”
[KE-180 섬광 폭음탄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요구 코인 1개.]
연병장의 몬스터들을 따돌리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섬광탄.
적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살상 수류탄이었다.
일반적인 수류탄과 달리 살상 능력이 없지만, 순간적으로 섬광과 폭음을 내뿜어 일시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마비시켜 적을 순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무기.
소리에 민감한 저 녀석들에겐 완전히 상극인 무기가 분명하였다.
“섬광탄 2개 제조해 줘!”
[KE-180 섬광 폭음탄을 두 개 제작합니다.]
그동안 고블린을 통해 얻은 코인 두 개를 홀로그램 속으로 집어넣자 사라지며 기계음이 들려왔다.
몇 초나 지났을까, 제작이 완료됨과 동시에 무기고에서 섬광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머니 속의 PX 열쇠를 매만지며 안전하게 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소총을 한쪽 어깨에 멘 채 신우를 부축하며 건물의 밖으로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아직 몬스터들은 우리를 눈치를 채지 못한 듯하였다.
“여기 잠시만 누워 있어라.”
이 상태로 몬스터들을 상대할순 없었기에 조심스레 신우를 내려놓아야 했고.
최대한 인기척을 줄이며 건물의 외벽에 신우를 내리려는 그 순간.
“끼끽끼끼!!”
“끼끼끼끽!!”
우리를 발견한 듯 순식간에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빠르게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에 다급함이 밀려들었고.
등줄기에 서늘함이 느껴졌다.
퍽.
조심스럽게 몸을 눕혀주던 신우를 내팽개치듯 놓아준 후 뒤로 돌았다.
곧장 안전핀을 뽑아 들며 앞을 바라보자 몬스터들은 빠른 속도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있는 힘껏 섬광탄을 던졌다.
슈우우욱-
섬광탄은 모여 있는 몬스터들 사이로 정확히 날아갔고.
곧장 하나 더 꺼내 들었다.
“하나 더! 선물이다. 이 새끼들!!”
불발탄을 염려해 여분의 섬광탄을 만들어 두었기에.
다시 한번 안전핀을 뽑아 들며 남아 있던 섬광탄을 투척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귀를 막은 후 뒤로 돌아 눈을 감을 잡았다.
몇 초나 지났을까.
슈우우욱 펑! 펑!!! 띠-
귀를 막았음에도 연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폭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귀 바로 옆에서 총알 5~6발을 발포하는 것과 맞먹는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고.
소리가 일시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을 넘어 방향감각과 균형 감각이 상실되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윽, 가자!”
하지만 미적거릴 시간은 없었기에 곧바로 정신을 다잡았다.
누워 있는 신우의 몸을 일으켜 세워 업은 뒤 최대한 빠르게 PX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끄이이익!!!!!!!!!”
달려가는 와중에도 고통 어린 포효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연병장을 가득 메운 몬스터들은 섬광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일제히 그것을 쳐다보았고, 그 순간 뿜어져 나온 강력한 섬광에 완전히 시각을 상실하였다.
인간보다 시각과 청력이 발달한 그들에게 그 효과는 상당했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시간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섬광탄은 살상 무기가 아니었기에, 시각과 청각을 제한시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유지되는 것이었으며, 시간이 지나면 원상 복구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이 서두르기 시작했다.
“끼끾끼끼끼!”
“젠장, 왜 이렇게 미끄러워!”
힐끔 쳐다본 몬스터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려 PX의 건물 앞에 도착했고.
예비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려고 하였다.
틱. 틱.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손에 땀이 나며 열쇠 구멍에 계속해서 빗나갔고, 몬스터들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틱. 틱. 철컥!
“돼, 됐다!”
미끄러지며 빗나가던 열쇠 구멍에 정확히 들어가는 예비 열쇠.
다급하게 열쇠를 돌리자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에에에에엑!!”
그 순간 들려온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수많은 몬스터가 이미 코앞까지 달려와 있다.
“끼에엑아아아악!!!”
그들의 광기 어린 시선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으윽, 젠장 빨리!”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몬스터들의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모든 감각이 쭈뼛 스며 다급함을 넘어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조심스럽게 옮기던 신우의 다리를 밀어 넣듯 잡아끌었다.
“끼에에엑!!”
시간이 갈수록 기괴한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쾅!
철컥, 철컥!
촉박함에 신우를 던지듯 밀어 넣은 후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신속하게 문의 잠금장치를 남김없이 전부 채워 넣기 시작했다.
“끼에엑!! 쾅! 쾅! 쾅!”
“허억, 허억.”
잠금장치를 모두 채움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문에 부딪히며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고블린들은 문을 부술 기세로 돌진했고.
혹여나 문이 부서질까 두려워 몸을 밀착한 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지능이 낮은 고블린들의 특징으로 보였다.
눈에 보이는 인간은 무조건 살육하려 들지만, 반대로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자신을 공격한 대상일지라도 기억하지 못한다.
매우 얇은 문 하나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그때, 소리가 완전히 멈추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 허허.”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앞에 펼쳐진 PX의 익숙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항상 길게 늘어진 줄이 귀찮아 잘 가지 않던 PX.
줄이 없을 때 우연히 가더라도 남아 있는 건 평소 행보관이나 나이가 지긋한 부사관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라도 감지덕지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곧장 계산대 옆에 놓인 음료수 냉장고로 향했다.
몬스터들의 영향인지 전원이 내려가 있는 냉장고는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안은 생수와 음료로 가득했다.
500㎖ 생수와 이온 음료를 집어 들어 다시 탈수 증상으로 쓰러져 있는 신우에게로 다가갔다.
“소금이 있으면 좋을 텐데, PX에서 소금까지는 무리겠지.”
치익-딱!
탈수 증상에는 물에 소금, 설탕을 조금 넣어 지속해서 마시게 하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나트륨 함량이 너무 낮아 탈수 치료에는 부적절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
이온 음료를 신우의 기도를 확보한 후 아주 조금씩 흘려 보냈다.
쓰러진 환자에게 입을 통해 물을 넣는 것은 위험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주 소량을 지속해서 흘려 보내 수분을 공급해 주자 신우의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꼬르륵~
그런 신우를 바라보자 안심이 되었는지 잊고 있던 허기가 돌아왔다.
벌컥! 벌컥! 와그작! 와그작!
매대에 진열해 놓은 것이 무엇이 있는지 쭉 살펴본 뒤.
물과 음료, 과자를 가리지 않고 PX의 음식들을 마음껏 섭취하기 시작했다.
“꺼어억~ 후…… 이제야 피가 도는 것 같네.”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음식을 보자마자 식욕이 폭발했고, 배가 터지도록 과자를 밀어 넣었다.
빵빵하게 배를 채운 후 힘겹게 몸을 이끌며 계산대 옆에 몸을 기대며 앉았다.
“하아암~”
늘어지게 나오는 하품.
배가 부르고, 이곳이 안전하다고 판단되어서였을까.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복귀한 후 아직 잠을 한숨도 못 잤네. 잠깐만 눈 좀 붙일까.”
마지막으로 누워 있는 신우에게 물을 준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스르르 눈을 감자마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