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002화
리드미컬하게 당기는 방아쇠에 맞춰 순조롭게 진행되는 순간.
마지막 한 마리의 고블린을 남기고 방아쇠를 당긴 총기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탄 걸림.
무기고 능력을 통해 수리가 되기는 하였으나 현재 들고 있는 소총은 너무나도 오래된 무기였다.
무기고의 능력으로 내구도까지 완벽하게 수리되는 것은 아닌 듯.
한 마리의 고블린이 칼을 들고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그 순간, 노후화된 K2가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젠장, 젠장!”
눈이 풀린 고블린은 침을 흘리며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턱! 턱! 턱! 철컹, 철컹, 철컹.
‘제발, 제발!!’
연신 탄알집을 치고 노리쇠를 당겼다 놓았다.
걸린 탄알을 빼기 위해 노력이었지만.
이미 고블린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고블린의 피비린내가 풍기는 칼날이 코끝을 스치려는 순간.
“돼…… 됐다!”
텅!
걸려 있던 탄약이 빠지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탄약이 발사됐다.
조준할 경황이 없던 찰나의 순간, 튕겨 나온 총알은 고블린의 머리를 관통했고.
눈앞의 고블린은 녹색의 액체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코인.
“후욱, 후욱…… 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예상치 못한 아찔한 상황에 머리가 핑 돌았지만.
이내 긴장이 풀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 * *
정신을 차린 뒤 도착한 장소는 행정반.
이곳까지 오는 동안 더 이상 고블린은 보이지 않았고, 떨어져 있던 코인들은 전부 주머니에 채워 넣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기에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총구를 거둬들였다.
혹시 숨어 있는 고블린이 있을까 하여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다행히 어떠한 생명체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이곳에 있었네.”
열쇠와 함께 묶어진 꼬리표에 쓰여 있는 ‘PX 예비용’, PX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 열쇠를 찾을 수 있었다.
“후, PX까진 또 어떻게 가야 하냐…….”
이곳에서 PX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블린을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이미 이틀가량 음식은커녕 물 한 잔도 마시지 못하였다.
과도한 긴장과 계속되는 육체적인 활동에 열량은 빠르게 소모되었고.
육체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들이 괴뢰군 인지, 새로운 살상 병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들에게 죽든, 굶어 죽든 식량이 있는 PX까지 가지 못한다면 결국엔 죽을 것이 분명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열음.
누군가 연사하는 듯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 * *
[아시안게임 사격 최연소 이민혁 출격,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AG 사격 세계 신기록 보유 이민혁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
[최연소 국가 대표 이민혁. 한국 사격 史 새로 쓸 것인가?]
쏟아지는 기사들.
최연소 국가 대표 타이틀과 국내 대회를 통한 세계신기록 보유자.
아시아 게임에 출전하는 영광을 얻은 민혁은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사격계의 신동, 사격계의 최고 기대주였다.
-코치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퉁퉁 부은 눈을 숨기며 애써 덤덤하게 인사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코치는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줄 수 없었다.
[최연소 사격 국가 대표 이민혁 메달 無.]
[아시안게임 이민혁 실력 논란.]
국민의 성원과 기대는 분노와 조롱으로 변해 있었고, 어린 민혁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경기 당일 예고도 없이 일어난 불의의 사고.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사격이었기에 민혁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온 국민이 바라보는 가운데 터무니없는 점수를 기록하였고, 그 어떤 핑계도 통할 리 만무하였다.
-민혁아, 앞으로 어쩔 생각이냐?
-……사격, 그만두겠습니다.
심각한 트라우마. 그날의 기억은 총을 들 때마다 떠올랐고, 어린 민혁은 이겨내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는 총을 잡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 * *
텅! 텅!
총알은 정확히 머리를 관통했고 고블린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모든 고블린이 쓰러진 것을 확인한 후, 소음기를 장착한 소총을 거두었다.
“거, 거기 누구 있습니까?”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외쳤다.
힐끔 쳐다본 장소에는 내가 죽인 고블린 두 마리 외에도 꽤 많은 수의 고블린이 쓰러져 있었다.
행정반의 열쇠를 찾는 도중 귀를 때리는 듯한 날카로운 연사음이 들려왔고, 누군가의 발포음을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쏘지 말아 주십시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고블린의 그것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총과 함께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모퉁이를 빠져나왔다.
“가, 갑니다? 쏘시면 안 됩니다!”
역시 반대편에는 군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힐끔 쳐다보며 다시 모퉁이 쪽으로 몸을 숨기는 남자.
다가가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그는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끼끽끽끼끽.”
움직이지 못하는 와중에도 적의를 보이는 녀석들.
무자비하게 난사한 듯 보이는 총알로 인해 온몸에 바람구멍이 뚫린 고블린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쓰러져 있는 고블린을 지나 남자를 향해 점점 더 다가갔다.
“더…… 더 이상 다가오지 마!”
모퉁이에 다다르자 숨어 있던 그가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나와 같은 K2 소총이 들려 있다.
“어…… 어? 너는 강신우?”
“이, 이 병장님? 일병 강! 신! 우…….”
털썩-
총을 겨누며 경고하고 있던 남자는 온몸에 힘이 풀린 듯 쓰러졌다.
빡빡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일병 마크를 달고 있는 그는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내가 속해 있던 소대의 소대원 중 한 명.
소위 말하는 짬 차이, 나의 군 생활이 끝나갈 시기에 들어온 강신우와는 특별한 접점이 없었기에 친해지기에는 어색한, 단둘이 있기에는 서먹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는 복귀 후 처음 보는 살아 있는 인간이었고 더군다나 같은 소대의 익숙한 얼굴에 반가움이 다 가기도 전.
“시, 신우야! 일어나! 신우야!”
쓰러진 신우는 오랜 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듯 입술과 피부가 푸석푸석하게 갈라져 있다.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고 혀는 마르고 말라 침조차 나오지 않았다.
꽤 위험한 수준의 탈수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완전히 의식을 잃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그의 이마에 한쪽 손을 댄 후 밑쪽으로 밀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턱뼈 부분을 들어 목을 젖혀 기도를 확보했다.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수분이 부족해 쓰러진 신우를 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응급조치를 취하긴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되지 않는다.
탈진한 사람을 가장 이른 시간에 회복시키는 방법은 수액을 맞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쓰러진 그를 데리고 의무실에 데려간다 한들 군의관이 있을 리 만무했고, 수액의 유무조차 알 수 없다.
수액이 있다 한들 의료 지식이 없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하기는 어려웠으며.
심지어 나 역시 경미한 탈수 증상을 느끼고 있었다.
“매점…… PX로 바로 가야 해.”
이번에도 역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PX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수돗물은 이미 오염되어 마실 수 없었고, 물이 있을 만한 장소에는 전부 고블린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가지 않은 가장 확실한 장소는 항상 식수와 음료, 과자 등이 구비되어 있는 군용 매점 말고는 없어 보였다.
창문을 통해 밖을 슬쩍 확인했다.
위병소 앞에 조그마한 건물의 형태로 있는 부대 안의 PX.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에서 연병장을 가로질러야 한다.
“젠장.”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얼마나 밟히고 파였는지 흙먼지만이 가득한 넓은 운동장.
그런 연병장을 기괴한 생물체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모습을 한 생물들은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듯 마음껏 연병장을 활보하고 다녔다.
다시 한번 기절해 있는 신우를 쳐다보았다.
‘안타깝지만, 데리고 가기에는…….’
[서브 퀘스트-‘동료를 구하라!’가 발생하였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도 물도 아닌 든든한 동료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이 남자는 든든한 동료가 될 수도, 몬스터들의 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난이도-D]
[보상-초심자의 보급 상자]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때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하지만 아직도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현상.
“서브…… 퀘스트? 보상?”
처음 고블린을 사살했을 때 보았던 퀘스트 창이 다시 한번 등장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무언가 달랐다.
퀘스트 앞에 붙어 있는 ‘서브’라는 것과 보상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선택을 할 수 있는 듯 나의 의견을 물어보는 홀로그램까지.
신우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라, 생겨난 서브 퀘스트.
마치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들킨 듯 뜨끔하였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좀만 참아라, 신우야.”
[서브 퀘스트-‘동료를 구하라!’를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