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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무기고-1화 (1/180)

걸어다니는 무기고 001화

대한민국의 군인이라면 단연코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순간은 전역 날일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지난 2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이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버텨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믿어지지 않는 상황.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전역을 축하해 주기 위한 소대원들의 깜짝 몰래카메라가 진행 중인 것인가?

“후, 말도 안 되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한 명 있기에도 협소한 공간 때문이었을까, 현재 상황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을까.

평소 뺑이를 치기 위해 애용하던 이 장소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으나 본능적으로 이곳으로 달려와 몸을 숨기고 있었다.

“끼이익, 끼끼익.”

근처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다시금 입을 막으며 숨을 죽였다.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저 고블린이란 녀석들은 이미 초토화된 부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꼼짝 못 하고 갇힌 신세.

딸…… 깍!

밖의 소리가 잠잠해지자 조심스럽게 오른손의 손전등을 작동시켰다.

달력에 불이 밝혀지며 빨갛게 동그라미 쳐진 오늘의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오늘…… 지금쯤 전역 신고를 하고 있어야 할 내가 왜…….”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부대를 점령한 고블린들에 대한 두려움과 전역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일 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천천히 생각해 보자.”

있는 휴가, 없는 휴가를 모으고 모아 떠난 말출.

산골짜기에 있는 부대 탓에 버스가 없어 복귀 하루 전 부대 앞에 도착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휴가 기간이 남았는데 복귀하고 싶은 군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텔을 잡고 전역이라는 시원섭섭한 기분에 혼자 술 한잔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 그 날따라 유난히 다르긴 했어.”

설렘 때문이었을까,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마을은 이상하리만큼 너무나도 조용했고.

복귀하던 당일에는 사람 한 명 마주치지 못했다.

완전히 잘 못 됐다는 것을 느낀 건 다름이 아니었다.

입초를 서고 있어야 할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입초를 서고 있어야 할 위병소 앞에는 끔찍한 핏자국과 소총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재 상황.

내가 숨어 있는 이곳은 생활관 옆 작은 창고였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꽤 많은 수의 고블린을 뚫고 지나와야 했다.

일반인을 넘어 군인이라고 한들 움직이는 생명체를 명중시키며 이동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이 틀림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실패한 사격 선수였다는 것.

“흥,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현재 가지고 있는 소총은 K2.

선수 시절 사용하던 종류의 총은 아니었으나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고블린을 죽인 후 남아 있던 총알은 7발.

아직 능력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당시에는 그 7발이 전부였다.

제한된 총알로 인해 가장 위협이 되는 고블린들만을 골라 정확히 조준해야 했다.

심지어 사격 훈련할 때의 고정된 표적이 아닌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괴물들, 그들을 실수 없이 제거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상태창!”

[이름-이민혁]

[직업-말년 병장]

[보유 스킬]

[내 손 안의 무기고-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현재 내 눈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

고블린이라는 녹색의 생물체를 죽이자 나타난 이것은 내가 마치 게임의 캐릭터가 되기라도 한 듯 나를 표시하고 있었다.

“무기고.”

오른손을 펼치자 손바닥 위로 작은 컨테이너 모양의 홀로그램이 생성된다.

그와 동시에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내 손 안의 무기고를 활성화했습니다.]

[무기고에 현재 K2, K2 전용 탄약 30발을 보관 중입니다.]

“…….”

손바닥 위의 홀로그램 속으로 모아두었던 탄피를 넣자 다시금 기계음이 들려온다.

[1개의 탄피 당 10개의 탄약으로 변환시킵니다.]

하루를 꼬박 새우며 숨어 있는 동안,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배워왔던 물리적 법칙이나 상식을 부정(否定)하는 이해 할 수 없는 스킬.

꽤 무겁고 크기도 큰 소총을 이 작은 홀로그램 속에 보관할 수 있었으며, 그동안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무기고 안에 소총을 보관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마치 새것처럼 말끔히 수리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탄피를 탄약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었던 탄피는 무기고를 통해 1개당 10개의 탄약으로 바꿀 수 있었다.

단, 한 번에 변환시킬 수 있는 탄피의 개수는 3개.

한 번에 변환시킬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였으나, 저 알 수 없는 괴물들을 피해 숨어 있는 지금 총알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안심이 되어 주었다.

꼬르륵.

고민하고 있던 그때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복귀 전날 술 한 잔 마신 후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급격히 몰려오는 허기. 배고픔을 인식하기 시작하자, 참기 힘든 공복감이 밀려왔다.

현재 입고 있는 복장은 말끔하지만, 휘황찬란하게 튜닝된 전역복.

사이좋게 지내던 1년 차 후임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다소 민망하긴 하였으나 이날만큼은 전역을 만끽하기 위해 입은 것이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은 오직 통신이 끊어진 휴대폰뿐.

민간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날만큼은 깔끔한 핏을 위해 주머니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주머니에는 어떠한 먹을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PX…… PX로 가면 먹을 것이 있지 않을까?”

숨을 장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며, 음식이 있을 만한 곳은 전부 고블린들이 점령한 것으로 보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이미 아수라장이 된 취사장도, 오염이 된 수돗물도 전부 확인했기에 그 어디에도 허기를 달래줄 장소는 없어 보였다.

그나마 멀쩡한 곳으로 보이는 장소 중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일 수 있는 음식이 있을 만한 곳은 PX, 지나오며 봤던 PX 건물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곳이라면 고블린들이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예비 열쇠. 그래! 예비 열쇠가 있을 거야!”

그때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번뜩였다.

과거 고문관이었던 후임이 총기함 열쇠를 소지한 채 휴가를 가버렸던 기억.

당시에는 소란이 있긴 했지만 결국 해결했던 것은 예비 열쇠.

자물쇠를 절단시키거나 휴가를 복귀시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예비 열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X도 분명 예비 열쇠가 있을 텐데…….”

문제는 열쇠를 어디에 보관 중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

하지만, 예상되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행정반 아니면 지휘 통제실에 있겠지.”

이곳에서 더 가까운 곳은 행정반. 행정반이야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지만 역시 문제는 돌아다니는 고블린들이었다.

탄약이 많이 있었기에 그들을 사살하는 것쯤이야 자신 있었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무기는 K2.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울려 퍼지는 폭음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소리에 민감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고블린들은 그 소리에 반응해 더욱 몰려들었고, 도망칠 곳도 없는 이곳에서 그들이 몰린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젠장, 소음기라도 있었으면…….”

[K2 전용 소음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요구 코인 1개.]

“뭐?”

그때 이제는 익숙해진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것을 이해하자마자 오른쪽 가슴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반짝이는 황금빛의 코인.

고블린을 사살하자 나온 것을 혹시 몰라 챙겨둔 것이다.

“혹시, 이게 코인……? K2 소음기 제작!”

[K2 전용 소음기를 제작합니다.]

손안의 무기고에 코인을 집어넣자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기계음이 들려왔다.

놀라기도 잠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행정반까지의 이동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기 시작했다.

* * *

“끼긱끽끼.”

“꾸끽끽끼.”

소음기가 장착된 묵직한 K2 손에 든 채 바깥 상황을 살펴보았다.

행정반까지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엎어지면 코 닿을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그 사이에는 총 열 마리의 고블린이 돌아다니고 있다.

어디에서 얻은 것인지 하나같이 군용 나이프를 손에 들고 있었으며, 인간의 피가 튄 것으로 유추되는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 한 방에 죽여야 한다.’

소음기를 장착하긴 하였으나, 그 효과가 완전하진 않을 것이다.

야간 훈련을 통해 우연히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소음기.

영화처럼 ‘푸슉’ 하는 은밀한 소리가 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꽤 큰 소리가 났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임은 분명했다.

‘절반 정도의 소리가 줄었지만, 근처에 있다면 소리를 듣고 올 수 있을 거야…… 최대한 단발로 쓰러뜨려야 한다.’

“후…….”

짧은 한숨을 내 쉰 후 재빠르게 문을 나섰다.

어깨에 소총을 견착하여 반동을 줄인 후. 순간 호흡을 멈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블린을 조준, 그리고 방아쇠 위의 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당겼다.

텅! 텅! 텅! 텅! 텅!

총구는 빠르고 정확하게 그들의 머리통을 조준했고.

순식간에 하나둘 녹색의 피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끼긱? 끽!!”

“후…… 하…… 이미 늦었다 새끼들아!”

기습으로 다섯 마리를 사살했으나, 아직 다섯 마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쓰러지는 고블린들을 보며 뒤늦게 나를 인지한 듯 당황스러운 음성을 내뱉었고 흥분하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구는 이미 그들을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텅! 텅! 텅!

턱!

“턱? 탄이 걸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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