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148화
김유택이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아, 이제 가야 돼.”
“아, 네. 감독님, 저 다녀올게요.”
윤기철은 이미 하준의 스케줄을 알고 있었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다녀와. 우리도 오늘 촬영은 여기서 끝냅시다.”
윤기철의 말에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하준을 응원해주었다.
“하준 씨, 파이팅이요!”
“수상하길 빌어요!”
“우리도 집에 가서 볼게요. 아, 오늘 공연도 하죠?”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하준의 오늘 스케줄은 바로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이었다.
하준은 이번에 작년 여름에 공연한 <지킬 앤 하이드>로 뮤지컬계의 신성으로 인정받았고, 공연의 성공과 인기에 힘입어 남우인기상 후보와 남우신인상 후보에 올라 있었다.
그 당시 하지킬에 대한 극찬이 대단했던 터라, 99.9%의 사람들이 이번 남우신인상 수상자는 하준일 거라고 예상했다.
또한 주최측에서는 당연히 대세남인 하준에게 일찌감치 축하무대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준이 승낙하자, 주최측에서는 하준이 축하무대를 꾸민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한국뮤지컬대상은 온라인 생중계로 방송됐는데,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직접 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축하무대로라도 하지킬을 보려고 온라인에 접속했다.
이날 하준은 <지킬 앤 하이드> 넘버를 2곡이나 불렀고, 사람들은 하준의 무대를 보고 왜 레전드라고 불렸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와, 다음에 공연하면 꼭 보러가야겠어.. 진짜 잘하는구나..]
[일반 노래 부를 때랑 느낌이 확 다르네! 잘한다~]
[하준은 노래 진짜 다양하게 잘 부른다 대박ㄷㄷㄷ]
그리고 이변 없이, 하준은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신인상과 남우인기상을 수상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기에 시상식에 참석한 뮤지컬 배우들은 물론 온라인으로 시청하던 대중들 역시 하준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
***
<솔로> 영화 촬영은 순조로웠다.
매서운 추위만 빼면.
“에취!!”
“컷! 누구야?”
촬영 중에 어디선가 들려온 재채기 소리에 윤기철이 컷을 외쳤다.
재채기를 한 스태프는 얼른 자진납세하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감기야?”
윤기철이 시크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감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갑자기 좀 추워져서······.”
“그래, 나도 좀 춥긴 하다. 밤 되니까 진짜 더 춥네. 다들 몸 좀 녹이고 하자구. 여기 불로 모여.”
지금 촬영하는 곳은 폐건물이었는데, 마침 촬영 때 사용하는 불이 있었다.
윤기철의 말에 스태프들이 우르르 불 곁으로 몰려와 손을 녹이기 시작했다.
“롱패딩 안 타게 조심해.”
“그럼, 그럼. 하준 씨가 사준 건데, 당연하지.”
“이거라도 있어서 진짜 다행이에요.”
“근데 밤에는 이거 입어도 춥네. 으으.”
스태프들은 불에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패딩을 조심했다.
하준이 겨울 촬영이라고 전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돌린 롱패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차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하준이 가장 먼저 밖으로 뛰어나갔다.
“뭐지? 하준 씨 오늘 인터뷰 있나?”
“이 밤에? 지금 자정인데?”
“아, 그렇네. 그럼 누구지? 아는 사람 왔나?”
스태프들은 여전히 손을 불에 쬐며 입구 쪽으로 고개만 돌린 채 중얼거렸다.
밖에서는 떠드는 소리가 잠시 들렸고, 잠시 후 하준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하준이 박수를 치며 주목을 끌더니 외쳤다.
“여러분, 춥고 출출하시죠? 야식 드시고 하시죠!”
“야식이요? 오! 설마 간식차 온 거였어요?”
“네, 맞아요. 제 팬카페에서 감사하게도, 저희 추운데 고생한다고 야식차를 보내줬네요. 얼른 와서 속도 좀 따뜻하게 채우세요.”
“또요? 얼마 전에 밥차랑 커피차도 보내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요?”
“그때는 다른 팬사이트에서 보내주신 거예요. 오늘은 제 공식팬카페에서 보내주신 거고요.”
하준은 대세남이 된 후로 공식팬카페 외에도 여러 팬사이트가 생겼고, 팬카페만 있었던 때보다 서포트가 더 많이 들어왔다.
“와아······!”
“역시 대세남!”
“하준 씨랑 일하는 거 너무 좋아! 아하하.”
하준의 말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곧바로 건물 앞 공터로 나왔고, 간식차를 발견했다.
야식차에는 떡볶이와 토스트, 어묵, 만두, 튀김 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간이 식탁과 의자가 세팅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시면 담아드릴게요.”
간식차 사장님은 사람들을 보자마자 손짓했다.
사람들은 뜨끈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묵을 보더니 일단 그쪽으로 달려갔다.
“와, 어묵!”
“뜨끈한 어묵 국물부터 마셔야겠다!”
“크, 맛있겠다.”
마침 출출하기도 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은 무척 반가워하며 줄을 섰다.
“감사합니다!”
“하준 씨, 잘 먹을게요!”
“하준 씨 팬분들 센스 너무 좋으시다. 오늘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하던데, 딱 맞춰서 야식차도 보내주시고.”
“하준 씨 닮아서 센스가 넘치시네. 잘 먹을게요.”
인사를 받은 하준은 간식차 사장님과 함께 온 팬들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전했다.
“진짜 고마워요. 야식차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챙겨주고······.”
“에이, 열일하는 오빠한테 저희가 고맙죠. 하준 오빠가 이렇게 추운 데서 고생하는데, 이 정도 서포트는 기본입니다!”
“맞아요. 저희 군백기 이후에 오빠가 계속 열일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원래 배우 팬질은 인내가 기본인데, 오빠는 활동을 많이 해줘서 떡밥이 넘쳐나니까 진짜 매일 매일 행복해요.”
팬들은 누가 봐도 행복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고, 하준은 자신을 이렇게 좋아해주는 팬들에게 감동해서 아직 어묵 국물을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준은 자신의 모든 활동이 팬들에게 행복이 된다는 말에 자기가 하는 일이 뭔가 대단한 일 같아 뿌듯해졌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약 2달 후, 영화 <솔로>의 촬영은 끝이 났다.
<솔로>의 경우 특수효과나 후반 작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윤기철은 올여름 개봉을 목표로 빠르게 편집에 들어갔다.
하준은 두 달 간 작품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집에서 푹 쉴 계획이었다.
잠도 좀 왕창 자고.
그런데 며칠 후, 최선희가 하준의 방에 갔다가 하준이 두꺼운 책을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도 그냥 소설책이 아니라 전공서적 같은 책이었다.
“하준아, 너 푹 쉰다더니 공부하는 거야?”
최선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 쉬는 것도 벌써 심심하더라고요. 이틀은 완전 뻗어서 잤어요. 근데 이틀 잤더니 이제 잠도 더 안 오더라고요. 하하.”
“너도 참,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 봐. 호호. 근데 그거 무슨 공부 하는 거야?”
“아, 다음 학기에 들을 거 미리 예습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안 했었잖아?”
“그랬죠. 근데 혹시 학기 중에 뭔가 갑작스런 스케줄이 생길까봐서요. <지킬 앤 하이드>를 갑자기 하게 되니까, 뭐든 시간 있을 때 미리 준비해 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행히 <지킬 앤 하이드>는 방학 때라서 참여할 수 있었지만, 학기 중에 뭔가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잖아요.”
“아하. 그래, 그럴 수 있어. 우리 아들은 준비성도 철저하네. 호호. 그럼 계속해.”
“네.”
최선희는 어릴 때부터 공부든, 연기든, 노래든 알아서 척척 하는 하준이 기특했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하준의 방을 나오려다가 갑자기 하준을 돌아보며 물었다.
“공부하는데 엄마가 과일이라도 깎아다 줄까?”
“그럼 감사하죠.”
하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씽긋 웃었다.
“좋아, 금방 갖다줄게.”
자식의 나이가 몇이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들은 무조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최선희는 곧 사과와 귤을 가져와 하준의 책상에 놓아주고 다시 방을 나갔다.
하준은 최선희가 가져다준 과일을 먹으며 전공 서적을 계속 공부했다.
그리고 4월 말, 하준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할 일이 일어났다.
<솔로>가 국내 개봉을 하기도 전에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이다.
[하준 父 윤기철 감독의 <솔로>, 칸 영화제 공식 초청]
[윤기철 감독 X 최선희 작가 X 하준 주연 <솔로>, 칸 영화제 초청]
[영화 <솔로>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윤기철 감독상 영예 안기나]
[하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
[영화 <솔로>, 칸 영화제 공식 초청,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후보]
[<솔로>, 3년 만에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유일한 한국 영화]
최 대표는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하준의 집을 찾았다.
“윤 감독! 최 작가님! 하준아! 경사 났다, 경사 났어! 와하하하!”
최 대표는 윤기철과 하준을 양팔로 끌어안으며 흥겹게 웃었다.
“최 대표, 내 귀 찢어지겠어. 아하하.”
“아, 미안, 미안. 근데 칸 영화제라니! 내가 이렇게 흥분할 만도 하잖아? 기사들도 난리잖아. 오랜만에 칸 영화제에 초청됐다고 말이야.”
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들이 자주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곤 했었는데, 근 3년간은 한국 영화가 초청됐다는 소식이 없었다.
“이건 순전히 우리 하준이 덕이지. 알지? 우리 이거 포기하려고 했던 거.”
“알지, 알지. 주인공 캐스팅 못 해서 그렇게 개고생을 하더니, 그러니까 진작 하준이한테 보여주지.”
“하준이 힘들까 봐 그런 거지.”
“하준이 이제 애 아니야. 속도 꽉 차고, 겉도 단단한 잘 자란 어른이라구. 하하.”
“맞아, 하준이랑 오랜만에 같이 촬영해 보니까 알겠더라. 우리 하준이 진짜 베테랑 배우더라고.”
최 대표와 윤기철은 이번엔 하준 앞에서 서로 하준을 칭찬해댔다.
“아휴,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대표님,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응, 그럼 좋지. 아무거나 아이스로만 줘.”
하준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뭘 마실 건지 물어서 음료를 내왔다.
최 대표는 윤기철, 최선희와 웃고 떠들다가 하준이 건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으며 대뜸 물었다.
“하준아, 근데 너 학기 중인데 칸 갈 수 있어? 5월 10일부터 12일 동안 한다던데.”
그러자 하준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네, 칸에서 부르는데 가야죠. 공부도 미리 좀 해놨고요.”
***
얼마 후, 하준 가족은 칸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하준의 매니저인 김유택과 스타일리스트 박세은도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
한국에서도 <솔로>의 수상에 관해 무척 관심이 많았기에 많은 기자들이 칸으로 향했다.
하준은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는 공항에서도 엄청난 팬들을 몰고 다녔는데, 프랑스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솔로> 공식상영회날에는 레드카펫 행사에 수많은 다양한 국적의 팬들이 몰려와서, 하준은 특별히 양해를 구하고 그들에게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공식상영회 사흘 후, 시상식이 진행되는 칸 영화제 폐막식 날이 되었다.
박세은은 하준은 물론이거니와 최선희, 윤기철의 의상도 준비해주고, 메이크업을 해주었다.
윤기철과 최선희는 적당히 고급스러운 슈트와 드레스를 준비했지만, 하준은 따로 협찬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그 중에서 골랐는데, 이탈리아 최고 명품 브랜드의 정장이었다.
“여기 금실로 장식된 부분이 정말 럭셔리해 보이는 것 같아요.”
하준이 마음에 든다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응, 너무 멋지다! 내가 여기 협찬 연락받고 너무 기뻐서 날뛰었잖아. 다른 명품들에서도 연락 많이 왔었는데, 내가 이 슈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걸로 했어. 뭐, 꼭 이게 제일 비싼 옷이라서는 아니야. 호호.”
“네, 저도 마음에 들어요.”
윤기철과 최선희도 하준의 슈트를 보고 너무 잘 어울린다며 좋아했다.
“우리 하준이 정말 멋지네!”
“항상 멋있지만, 이 슈트는 진짜 너한테 딱이다!”
“어머니도 아름답고, 아버지도 멋있으세요.”
하준 가족은 서로 칭찬을 주고받고는 시상식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