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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47화 (147/150)

147화

147화

“지앤하는 지킬 앤 하이드 줄임말 아닐까?”

“오, 그래, 그거네! 근데 그럼 대레전은?”

“대레전은······ 잠깐만.”

최선희는 곧바로 ‘대레전’을 검색해보았다.

“아하!! 레전드에 큰 대자를 붙인 거래. 그러니까 엄청난 레전드 공연이라는 뜻이야.”

“오, 그럼 하준이가 엄청 잘했다는 뜻이네?”

“맞네, 맞아.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오호호.”

대레전의 뜻을 알게 된 김복녀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역시 글의 내용은 하준에 대한 찬양이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지킬 다 본 골수팬인데, 하지킬이 세 손가락 안에 듦! 외모면 외모,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진짜 완벼크 ㅠㅠ 특히 컨프롱 진짜 잘해 ㄷㄷㄷ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그런 표현이 나오는지 존경스러웠음. 목소리 변화도 진짜 깜놀! 감미로운 목소리라 걱정했는데, 전혀 다른 목소리 나옴. 하지킬 강추!! 꼭 보라고 해주고 싶지만, 전부 매진이라······ 난 다음에 하지킬 또 하면 무조건 보러갈 거임]

세 사람은 뿌듯한 표정으로 글을 읽었고, 마지막엔 입이 귀에 걸렸다.

“으하하. 이 사람 뮤덕인가 본데, 덕후한테 한방에 인정받은 거면 얼마나 잘했다는 거야?”

“호호, 그러게. 우리 하준이는 원래 못하는 게 없지.”

“암, 그렇고말고!”

뮤지컬 덕후의 후기에 이어 오늘 하준의 공연에 대한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하지킬 감동 ㅠㅠ]

[하지킬 꼭 보삼~ 두 번 보삼~ 역대급임]

[대레전 대만족!!]

[하지킬 후기 한줄 요약 : 미쳤다 ㄷㄷㄷ]

역시나 모두 극찬.

커뮤니티 글들을 훑어보다 보니 곧 기사도 뜨기 시작했다.

[<지킬 앤 하이드> 열광의 도가니! 하준, 성공적인 첫공]

[<지킬 앤 하이드> 골수팬들조차 인정한 하지킬의 실력]

[<지킬 앤 하이드> 하준, 단 한번의 공연으로 우려 불식. 관객들 대만족]

[명불허전 하준, <지킬 앤 하이드> 관객들 홀리다]

[<지킬 앤 하이드> 하준 첫공 커튼콜에 기립박수 쏟아져]

[하준의 완벽한 1인 2역 연기, 이게 진짜 <지킬 앤 ‘하’이드>]

[대세남 하준, 뮤지컬계도 접수 완료 <지킬 앤 하이드> 완벽 소화]

하준은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고, 그 뒤로는 연장 공연 요청이 쇄도해서 한달 간 앵콜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

앵콜 공연에서도 하준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기자들은 <지킬 앤 하이드>의 새로운 젊은 주인공의 탄생을 연일 보도했고, 하준은 연기와 노래, 거기에 뮤지컬까지 휩쓴, 전무후무한 톱스타로 자리매김했다.

***

몇 달 후.

“하준 선배, 오늘 오후 수업 있으시죠? 저랑 같이 점심 드실래요?”

같은 오전 수업을 듣는 후배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물었다.

“아, 미안. 점심은 다음에 먹자. 나 오늘 휴강이라 바로 집에 가려고 하거든.”

“아, 네······. 그럼 다음 주에는 같이 먹을 수 있죠?”

“응, 그러자. 점심 맛있게 먹어. 수업도 잘 듣고.”

하준은 후배에게 손을 흔들며 강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하준이 집으로 들어서자, 김복녀가 반갑게 하준을 맞았다.

“우리 강아지, 오늘 일찍 왔네? 점심은 먹었어?”

“아뇨. 집에서 먹으려고 안 먹고 왔어요.”

“오, 그래? 그럼 오랜만에 우리 둘이 오붓하게 점심 먹으면 되겠다. 점심 뭐 해줄까?”

“아무거나 먹어도 돼요. 근데 어머니랑 아버지는요? 어디 가셨어요?”

“응, 둘이 일 있다고 나갔어. 새로운 영화 준비한다고 제작사 알아보러 간댔던가?”

“아하. 할머니, 그럼 저 옷 갈아입고 내려올게요.”

“그래, 그래. 아줌마한테 밥 차리라고 할게. 아, 내려오라고 하면 내려와. 밥 준비하려면 좀 걸리니까.”

“네, 할머니.”

하준은 2층으로 올라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최선희의 작업실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갑자기 호기심이 확 일었다.

‘음, 잠깐 가서 볼까?’

하준은 슬그머니 최선희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노트북은 최선희가 들고 나갔는지 없었고, 책상 위에는 대본더미가 쌓여있었다.

하준은 대본더미를 들춰 원하던 대본을 찾아냈다.

‘솔로.’

이게 바로 하준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1년 넘게 캐스팅만 하다가 결국 엎어진 최선희와 윤기철의 작품이었다.

하준은 얼른 대본을 자기 방으로 가져왔다.

그는 일단 옷을 갈아입고 나서 곧바로 <솔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안 보여주셨던 거구나······.’

하준은 대본의 앞부분만 읽고도 왜 최선희와 윤기철이 대본도 보여주지 않으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주인공 설정이 하준의 어린 시절과 흡사했던 것이다.

<솔로>에서는 하준처럼 파양을 당한 건 아니지만, 보육원에서 스스로 뛰쳐나온 아이가 주인공이었다.

물론 이유는 조금 달랐다.

‘보육원에서 도둑 누명을 쓰고 도망쳐 나온다······.’

또한 하준은 좋은 부모님을 만나 배우도 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솔로>의 주인공은 나쁜 사람들을 만나 조직폭력배로 키워진다.

그러니까 이건 하준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고아의 이야기였다.

조직폭력배로 자라난 주인공은 제목처럼 언제나 혼자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간다.

그러다 사랑에 빠지고, 그때부터는 자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하준이 보기에 이 영화는 혼자 살아가는 고독한 삶과 절망적인 삶의 끝에서 피어난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대본을 끝까지 다 훑어본 하준은 눈가가 촉촉해졌다.

줄거리야 단순하다면 단순했지만, 결코 대본 속에 녹여진 깊은 의미는 단순하지 않았다.

또한 전체적인 시나리오의 분위기는 어둡지만, 그래서 희망이 더 밝게 빛났다.

하준이 코를 훌쩍대는데, 김복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하준아! 왜 그래? 울었어? 누가 그랬어? 응?”

“아, 아니에요. 시나리오 보고 슬퍼서 눈물이 났어요.”

“휴,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식겁했네. 불러도 안 내려오길래 내가 와봤어. 밥 식는다, 얼른 가자.”

“네. 잠깐만요. 할머니 먼저 내려가세요. 전 잠깐 화장실 갔다가 갈게요.”

“응, 그래.”

김복녀가 먼저 내려간 뒤, 하준은 <솔로> 시나리오를 다시 최선희의 작업실로 가져다 놓고 1층으로 내려갔다.

***

그날 밤, 최선희와 윤기철이 집으로 돌아오자, 하준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솔로>에 출연하고 싶어요. 절 주연으로 써 주세요.”

“응? 갑자기 왜 또?”

“그거 안 만든다니까.”

최선희와 윤기철은 이미 포기한 작품이라면서 하준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하준은 이번엔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저 어머니 작업실에 있던 대본 읽어봤어요. 내용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뭐? 그 대본을 읽어봤다고?”

“그걸 왜 읽어봤어······.”

하준이 대본을 봤다는 말에 두 사람은 하준의 눈치부터 살폈다.

혹시 하준의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한 건 아닌가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준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 괜찮아요. 벌써 상처는 다 아물었고, 새살까지 돋아나서 이제 상처는 흔적도 없어요. 전 배우로서 이 역할이 정말 하고 싶은 거고요. <솔로>는 분명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될 거예요. 우리 이거 같이 찍어요, 네?”

하준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그들을 설득했다.

“정말 괜찮겠어? 이건 너랑은 상처의 깊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가 겨우 희망을 본 사람을 연기해야 되는데······.”

“저, 자신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 저 한 번만 믿어주세요.”

하준이 확신을 담아 말하자, 최선희와 윤기철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떡할까 묻는 눈빛의 교환.

사실 윤기철과 최선희는 이 작품을 못 찍게 되어서 너무 아쉬웠다.

이 작품은 작품성도 있지만, 액션 비중도 꽤 돼서 흥행 가능성도 있었다.

윤기철과 최선희가 아무 말 없이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복녀가 윤기철의 등을 떠밀며 흥겹게 말했다.

“아이고, 잘됐네, 잘됐어! 내가 이번에 소원을 이루게 되는구나. 너희 셋이 영화 하나 같이 찍으면 좋겠다 했는데! 망설이지 말고 그냥 해. 말 그대로 ‘가족영화’ 찍는 거잖아? 이런 기회 흔치 않다? 다른 집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험이야. 아빠는 감독, 엄마는 작가, 아들은 배우니까 할 수 있는 거지! 안 그러니, 하준아?”

“네, 그럼요! 역시 우리 할머니 최고!”

김복녀는 하준의 편을 들었고, 하준 역시 든든한 지원군인 할머니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으음. 하준아, 진짜 괜찮아?”

“괜찮다니까요! 이젠 연기는 연기로 할 수 있어요. <솔로>는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고요.”

“······그래,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윤기철과 최선희는 결국 허락했고, 하준은 두 사람을 껴안으며 만세를 불렀다.

“고마워요, 아버지, 어머니! 아, 할머니도 감사합니다!”

하준은 자신의 편을 들어준 할머니도 꼬옥 껴안으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런데 그때, 윤기철이 조건을 달았다.

“대신, 찍다가 혹시 네가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두는 걸로 하자. 괜히 너 힘든 데도 숨기고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약속해.”

“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자, 새끼손가락 걸자.”

“에이, 다 커서 무슨 새끼손가락이에요?”

“어허, 그냥 하라면 해. 이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알겠어요.”

윤기철과 하준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도 맞대어 도장을 찍은 후 손바닥을 스치며 복사까지 했다.

“도장, 복사까지 했으니까, 절대 속이기 없기야.”

“네!”

하준과 윤기철의 약속이 모두 끝나자, 최선희가 입을 열었다.

“여보, 그럼 이번 영화는 우리 돈으로 찍어요. 제작사 하나 차려서. 그래야 언제든 그만둘 수 있죠. 제작사랑 계약하면 우리 마음대로 그만 못 두잖아요.”

“오, 말 잘했어, 여보. 이번 작품은 우리 돈 투자해서 해보자. 사실 특수효과나 특별한 세트 같은 것도 별로 필요 없으니까 7-80억 정도면 되겠지.”

이리하여 하준네 ‘가족영화’는 제작도 직접하고 투자도 직접 하기로 결정이 났다.

윤기철과 최선희는 하준의 학교에 다닐 동안 제작사를 인수하고 캐스팅도 마쳐 놓기로 했다.

***

그 해 겨울, 드디어 <솔로>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주인공 이석현의 어린이 시절은 아역배우가 했지만, 17세 때부터는 하준이 연기했다.

아역시절은 짧게 촬영을 마쳤고, 이제 하준이 17세 이후 이석현을 연기할 차례가 되었다.

이석현은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였지만, 돈을 대줄 사람도 없고, 또 공부보다는 돈이 중요했기에 조직폭력배 삼촌 밑에 들어가 떼인 돈을 받아주는 일을 하고 다녔다.

“하준아, 자 봐봐. 엘리베이터 문이 딱 열리자마자 내려서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는데, 이거 모델 워킹 나오면 안 된다? 건달처럼 걸어야 돼. 나 봐봐. 이런 느낌으로.”

윤기철이 시범을 보이며 하준에게 디렉팅을 해주었다.

“오, 아버지, 아니 감독님, 진짜 조폭 같았어요.”

“그래? 내가 소싯적에 껌 좀 씹······을려다가 말았어. 하하.”

“진짜요? 아버지 그럼 양아치였어요?”

“에이, 농담이야. 아버지는 모범생이었지. 모범생.”

“에이, 거짓말. 껄렁껄렁한 걸음걸이 보니까 진짜였을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난 그냥 관찰을 잘했어. 흉내 엄청 잘 내는 개그맨 같은 애였달까.”

“오, 그래서 이런 디테일을 잘 아시는 거군요!”

“그렇지, 그렇지. 아무튼 빨리 따라해 봐.”

하준은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지 윤기철의 껄렁한 걸음걸이를 거의 복사 수준으로 따라할 수 있었다.

“오, 역시 내 아들! 잘 따라하네. 근데 음······.”

윤기철은 하준의 바뀐 걸음걸이를 칭찬하면서도 뭔가 고민이 있어 보였다.

“이게 내가 할 때는 잘 어울렸는데, 또 너처럼 잘생긴 애가 껄렁하게 걸으니까 좀 어색하다. 그냥 멋있게 걸어야 하나?”

“그럼 제가 좀 절충해서 적당히 껄렁대면서 적당히 멋있게 걸어볼까요?”

“오, 가능하겠어?”

“네, 여러 가지로 걸어보고 모니터로 확인해서 골라보죠.”

“좋아, 좋아. 해보자.”

감독과 주연이 사이좋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보니까 서로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낼 수 있어서 작품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무척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걸었던 걸음걸이가 좋다. 이걸로 가자.”

“네, 감독님.”

“자, 레디, 액션!”

하준은 주인공 이석현만의 걸음걸이를 완벽 마스터한 뒤 촬영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하준의 매니저 김유택이 시계를 보더니 하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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