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46화 (146/150)

146화

146화

“밤 검은 어둠~”

하준은 슬픔에 가득 찬 표정과 처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나갔다.

신 감독과 출연 배우들은 스타트가 마음에 들어서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The confrontation’은 지킬과 하이드가 번갈아 가면서 노래하는 <지킬 앤 하이드>의 클라이맥스 곡이었는데, 하준은 사실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 넘버 중에서도 이 곡을 많이 연습했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1인 2역의 연기와 노래가 동시에 이뤄지는 곡이라서 감정이입의 빠른 변환과 연기 연습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준은 첫 소절은 차분히 부르며 감정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표정과 목소리를 바꾸며 하이드로 변신했다.

“시끄러워 죽겠구만 뭐라 지껄여~”

다른 인격인 하이드의 목소리를 듣고 신 감독은 물론 출연 배우들 전체가 입을 떡 벌렸다.

하준의 원래 목소리는 부드러운 쪽이었는데, 정말 내면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하준은 락 스타일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심심할 때 목소리를 바꿔가며 인형극을 했기 때문에 꽤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특별히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다른 연예인들의 성대모사를 연습해 보기도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준이 1인 2역의 노래를 부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준은 지킬과 하이드의 다른 인격을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 듯이 노래했고, 점점 감정을 끌어올리다가 마지막에 울부짖듯 노래를 끝마쳤다.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노래를 끝마친 하준은 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준의 노래가 끝나자, 연습실에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감탄과 감동, 충격의 여운이 몇 초간 지속되었고, 가장 먼저 남은호가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아······!”

남은호의 외침에 정신이 든 다른 배우들은 그제야 환호하며 좋아했다.

“와······ 미쳤다······.”

“진짜 너무 잘하시는데요?”

“맞아요, 발음도 정확하시고, 표정도, 목소리도, 성량도 굉장해요!”

“박자도요. 반주 없이 어떻게 이렇게 박자가 딱딱 맞죠? 이 노래는 반주 있어도 점점 빨라지기 쉬운데······.”

이 곡은 점점 감정이 고조되는 곡이라서 뒤로 갈수록 자기도 모르게 감정에 휩쓸려 템포가 빨라지는 경우가 많은 곡이었다.

“하준 씨, 절대박자감인 거 아니에요?”

“어릴 때 절대음감이라는 소문 있지 않았었나?”

“어머, 그랬던 거 같아요!”

사실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하준이 노래를 잘한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음감이라는 얘기는 없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천재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다 보니 사람들의 과거 기억에 조작이 일어났다.

그때, 출연 배우들이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도 조용히 있던 신 감독이 하준에게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

“휴, 진짜······ 잘하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내가 보는 눈이 있었어. 처음부터 이번 공연 함께 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래도 구원투수로 남아 있어줘서 진짜 고마워요. 지킬 역 맡아줘요.”

“감사합니다. 근데 다른 곡은 더 안 보여드려도 될까요?”

하준은 노파심에 이 한 곡만 들어봐도 되겠냐고 신 감독에게 물었다.

“네, 한 곡만 들어도 알 수 있어요. 하준 씨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아, 근데 연습 기간은 얼마나 주면 될까요? 일주일?”

하준이 대사를 천재적으로 잘 외운다는 사실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국민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만 들어보고도 주인공 역할을 맡기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일주일이면 될 것 같아요. 하다 보면 더 빨리 할 수도 있고요.”

남은호는 하준의 말에 경악하며 되물었다.

“일주일도 빠듯할 것 같은데, 더 빨리 될 수도 있다고?”

“네, 저 <지킬 앤 하이드> 여러 번 봤거든요. 내용이나 대사 거의 기억하고 있어요. 넘버는 원래 외우고 있고요. 다른 배우들과 호흡만 맞추면 될 것 같아요.”

하준의 말에 다른 배우들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와······ 천재라더니 진짜였어.”

“하준 씨 한국대잖아.”

“크, 완전 준비된 스타네. 저러니까 대세남이지.”

“이러다 뮤지컬계에서도 대세남 되겠는데?”

신 감독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하준의 손을 잡았다.

“잘 부탁해요. 하준 씨만 믿을게요.”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신 감독은 이어 남은호에게도 부탁했다.

“은호 씨도 이번 주만 좀 고생해줘요. 목 관리 잘 하고요.”

“네, 지금부터 묵언수행 들어가야겠어요. 음음.”

남은호가 입을 꾹 닫으며 장난스럽게 말했고, 다른 배우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신 감독도 피식 웃더니 남은호를 거들며 다른 배우들에게 말했다.

“다들 들었죠? 은호 씨한테 말 걸지 말아요. 하준 씨 많이 도와주고요. 그럼 하준 씨, 연습은 언제부터······?”

“지금 당장 시작하죠, 뭐. 다들 모이셨으니까, 바로 하면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그럼 내가 바로 대본 갖다 줄게요. 부탁해요.”

“네!”

이리하여 하준은 <지킬 앤 하이드> 공연에 급하게 투입되었다.

***

하준이 <지킬 앤 하이드>에 노성찬 대신 투입된다는 사실은 곧 기사로 대서특필 되었다.

하준은 작년 한 해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배우이자 가수였으니 대서특필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노성찬 부상으로 하차 -> 하준으로 교체 투입]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하준 합류]

[<지킬 앤 하이드> 하준, “작품에 폐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 각오 밝혀]

[<지킬 앤 하이드> 측, “하준에 기대, 충분한 역량 확인 후 교체한 것”]

[<지킬 앤 하이드> 첫 출연 하준, 골수 팬들 우려 섞인 목소리]

[대세남 하준, <지킬 앤 하이드> 주인공 교체 투입에 팬들 환영의 목소리]

[빌보드 1위 + 연기대상 하준, 이번엔 뮤지컬까지 접수? <지킬 앤 하이드>에 노성찬 대신 투입]

사실만을 그대로 전하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교체된 하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나 부정적인 반응을 전하는 기사도 있었다.

하준의 팬들은 당연히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지킬 앤 하이드> 골수 팬들은 반반이었다.

새로운 지킬의 탄생에 기대하는 사람들과 하준이 지킬 역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연습 없이 급히 투입되었다는 점에서 작품을 망치는 게 아닌지 우려를 표했다.

물론 어느 쪽의 기사든 크게 화제가 되었다.

노이즈 마케팅도 홍보 효과가 있었으니까.

노성찬의 공연의 앞부분 회차는 주인공 미확정 상태로, 일주일 이후 회차는 하준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런 기사들 덕분인지 하준의 공연은 곧바로 전석 매진이 되었다.

“오, 하준 씨, 들었죠? 하준 씨로 바뀌고 전석 매진 떴어요.”

신 감독이 연습 중인 하준에게 찾아와 소식을 전했다.

“휴, 다행이네요. 이제 저만 잘 해내면 되는 거네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긴장만 하지 말고, 연습처럼만 해요.”

“네.”

“연습은 얼마나 했어요?”

“대사는 다 외웠고, 다른 분들이랑 호흡도 맞춰 봤어요. 내일 무대에서 연습해보면 될 것 같아요.”

“아니, 이틀 만에 벌써요?”

신 감독이 경악했다.

그러자 주변 배우들이 하준을 극찬했다.

“하준이 진짜 장난 아니에요. 원래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잖아요. 거기다 대사 잘 외우니까, 저희는 동선만 가르쳐줬어요.”

“하준이는 진짜 천재라니까요.”

“내일 한번 보세요. 깜짝 놀라실 거예요.”

“오, 내일 오전에 바로 보죠. 보고 괜찮으면 바로 모레부터 투입되는 걸로 할게요.”

신 감독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하준의 첫 공연을 지켜본 신 감독은 바로 그 다음 날 공연부터 하준으로 확정 공지를 올렸다.

***

드디어 하준의 첫 공연 날이 되었다.

하준은 안 그래도 성인이 된 후 첫 뮤지컬인 데다가 중간에 교체 투입되어서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게 되어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물론 어제 하준의 무대 리허설을 본 신 감독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이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하준아, 떨려?”

자기 공연이 없는데도 하준을 응원해주기 위해 공연장에 와준 남은호가 공연 직전 하준에게 물었다.

“떨린다기보다는 좀 부담이 되네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요.”

“나도 첫 주연 맡았을 때 그랬는데, 그럴 때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좋아. 난 오히려 완벽히 해야지라는 마음보다 틀려도 된다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때 더 잘 되더라고.”

“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 봐야겠어요.”

“근데 말야, 넌 그냥 평소처럼만 하면 다들 너무 잘한다고 할 거야. 사실이 그렇거든. 그러니까 부담 느낄 필요 없어. 넌 원래 잘하니까.”

남은호가 하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을 해주었다.

베테랑 남은호의 확신에 찬 말은 하준에게 큰 힘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형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믿음이 가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그래, 잘 하고 와.”

“네!”

하준은 남은호의 응원 덕분에 한결 편한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막 오르자마자는 약간 긴장이 됐지만, 하준은 금세 지킬 역할에 몰입해 혼연일체로 연기를 펼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할에 몰입해 연기와 노래를 하다 보니 어느새 공연은 끝이 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커튼콜 시간이 되었고, 배우들이 한 명씩 무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운데, 드디어 주인공인 하준이 마지막으로 무대로 나갔다.

하준이 무대에 등장하자, 박수를 치던 관객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더 열렬히 박수를 치며 외쳤다.

“브라보!!”

하준은 관객들의 이 반응을 보고 그들이 자신의 연기에 만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준은 부담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들었다.

하준은 벅찬 표정으로 마지막 앵콜곡 ‘지금 이 순간’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열창했다.

“신이여 허락하소서~~~~~~~~”

기분이 한껏 좋아진 하준은 마지막 음을 엄청 길게 이어갔고, 그동안 관객들은 점점 더 환호성을 크게 지르며 좋아했다.

음을 길게 끌던 하준은 노래를 끝냄과 동시에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주먹을 말아 쥐며 멋진 엔딩 포즈를 취했다.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 무대의 커튼이 닫히며 공연은 끝이 났다.

“하준 씨, 진짜 너무 잘했어!!”

신 감독은 공연이 끝나자 하준에게 달려와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감사합니다.”

“내가 잘할 줄 알았다니까! 하준 씨 때문에 살았다, 살았어. 관객들 반응 봤지? 최고였어!”

신 감독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도 하준을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한편, 하준의 첫 공연은 떨려서 못 보러 가겠다며 집에서 대기 중이던 하준의 가족들은 함께 모여 뮤지컬 커뮤니티를 살피고 있었다.

“공연 끝났을 시간 됐는데······.”

“후기 언제 올라오지?”

“잘했을까? 후기 안 좋으면 어떡하지?”

“우리 하준이가 당연히 잘했겠지······.”

최선희, 윤기철, 김복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지 확인 중이었다.

그때, 드디어 새 글이 하나 올라왔다.

[오늘 지앤하 대레전!!!]

“지앤하? 대레전? 이게 무슨 말이지?”

최선희, 윤기철, 김복녀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의 향연에 눈을 깜빡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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