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41화 (141/150)

141화

141화

“하준아, 하준아? 이제 일어나. 바닥에서 너무 오래 자면 허리 아파.”

최선희가 작업실 바닥에서 웅크린 채 자고 있는 하준을 흔들어 깨웠다.

하준이 최선희의 말을 들었는지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눈을 번쩍 떴다.

“으아, 여기가 어디······?”

하준이 정신이 없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네 작업실이잖아. 너 어제 집에 와서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다면서 피아노치고 기타치고 난리였어. 그러더니 어느 순간 여기서 자더구나.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그냥 뒀어.”

“아······ 그랬어요?”

“너 술 세다더니, 겉은 멀쩡해 보여도 그게 아닌가 봐. 기억도 못 하고······.”

최선희가 걱정스럽게 하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하준은 기억이 돌아왔다.

“아아! 생각났어요. 제가 한창 막 꿈을 정신없이 꾸고 있다가 깨서 생각이 안 난 거예요. 어제 술 좀 많이 마시긴 했는데, 그래도 다 기억나요. 제가 막 곡을 썼던 것 같은데······.”

하준은 어제 노래를 작곡한 뒤 행복하게 웃으며 잠이 든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갑자기 최선희가 가슴 아픈 표정을 지으며 하준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하준아, 너 혹시 이별했니?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 네가 이 종이를 안고 자고 있어서 내가 치워주려다가 봤어.”

“네? 제가 이별이요? 여자친구도 없는데요?”

하준은 최선희에게서 종이를 건네받아 거기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다.

“돌아간다?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멈춰있는데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 아, 이거 제 얘기가 아니라 친구 얘기예요.”

하준은 어제 술자리에서 한 친구의 이별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며칠 전 이별했다며 슬픔을 고백했는데, 전 여자친구의 집이 같은 방향이라 일부러 안 마주치려고 길을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하준은 영감을 받아 노래를 작곡하게 된 것이다.

“아, 그래? 친구가 힘들겠구나······.”

“네, 그 친구가 너무 슬퍼해서 저도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리고 그 친구가 저한테 위로가 될 만한 노래를 좀 불러달라고 했거든요. 근데 제 노래는 전부 사랑 노래밖에 없어서 ‘소주 한잔’을 불러줬어요.”

“음, 근데 이별한 친구한테 이별 노래 불러주면 더 슬퍼하지 않니?”

“그렇긴 한데 공감이 돼서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이별을 경험한다, 뭐 이런 위로요.”

“아하. 그럴 수 있겠구나. 난 슬프면 신나는 노래만 들었거든. 슬픔에 더 빠지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그 친구를 위로해주고 싶어서 작사를 한 거니?”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아! 작곡도 했어요.”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한번 풀더니 작곡 프로그램을 열어 저장된 파일을 확인했다.

역시 작곡된 곡이 하나 있었다.

“어머, 진짜 작곡도 한 거야? 취한 와중에?”

최선희가 놀라며 물었다.

“에이, 저 안 취했다니까요.”

“그래, 알았어. 곡 들어보면 알겠지. 어디 한 번 들어보자.”

사실 어젯밤 하준은 얼굴만 빨갰고 휘청거리거나 혀가 꼬부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작곡을 해야 한다고 작업실에 들어가서 뭔가를 하다가 바닥에서 잠이 들어버렸으니 최선희는 하준이 조금은 취했을 거라 생각했다.

안 취했다면 이렇게 작업실 바닥에서 자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준은 작곡한 파일을 재생했다.

반주가 나오기 시작하자, 하준은 술기운에 가려져 있던 멜로디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종이에 써둔 가사를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멈춰있는데~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

최선희는 노래를 듣고는 입을 쩍 벌렸다.

술에 취해서 작곡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던 것이다.

“어머······!”

작업실의 조금 열린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노래를 듣고, 김복녀와 윤기철도 작업실로 달려왔다.

문 앞에 선 두 사람은 눈이 동그래져서 일단 노래를 감상했다.

그리고 하준의 노래가 끝나자 작업실 문을 열어젖히며 윤기철이 물었다.

“뭐야, 이거 누구 노래야?”

“여보, 이거 우리 하준이가 어제 작곡한 노래야. 엄청 좋지?”

하준 대신 최선희가 박수를 치며 대답했다.

“오, 정말?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다. 하준아, 이거로 앨범 낼 거니?”

“이렇게 좋은데, 내야지!”

옆에 있던 김복녀도 노래가 좋다면서 앨범을 내라고 부추겼다.

“앨범에 넣을 거예요. 근데 정규 앨범으로 내야 해서 다른 곡들 더 작곡해야 돼요.”

“맞다, 너 정규 1집 내고 싶댔지. 이 곡 너무 좋으니까 꼭 정규 앨범에 넣어.”

“네, 하하.”

하준은 방학 때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한 달 후.

“오, 하준아, 너 이번 학기에 올 A 받았다면서?”

하준이 대표실에 들어오자 최 대표가 인사는 생략하고 대뜸 물었다.

“네. 아버지가 벌써 말씀하셨어요?”

“어. 마음 편히 자랑할 사람 나밖에 없다고 전화로 네 칭찬을 한 바가지 했지.”

“아버지도 참······. 죄송해요.”

하준이 민망해하며 대신 사과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죄송은 무슨. 나도 편히 네 자랑할 사람 윤 감독밖에 없어서 같이 했어. 아하하. 자기 자식 자랑 남들한테 하면 배 아파할 거 아냐? 우리끼리 해야지. 참, 근데 상의할 거 있다며?”

“네, 근데 박 PD님도 같이 얘기하면 좋겠어요.”

“앨범 얘기구나? 그래, 잠깐만.”

최 대표는 월드 엔터의 전속 작곡가인 박성배 PD를 호출했고, 잠시 후 박 PD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하준은 곧바로 두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다.

“사실 제가 이번에 준비하는 정규 앨범 타이틀곡을 하나 마련해 둔 게 있는데요, 발라드곡이거든요.”

“발라드곡 좋지. 네 특기잖아.”

“네, 근데 이번에는 댄스곡을 타이틀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뭔가 퍼포먼스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오오!!”

하준의 의견을 듣자마자, 최 대표와 박 PD는 좋아하더니 흥분해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맞아! 변신이 필요해. 하준이가 춤도 잘 추잖아? 남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거야!”

“춤을 잘 추면 진짜 섹시해 보이죠. <암행연인>에서 남자로 제대로 변신했으니까, 댄스곡으로 쐐기를 박는 거예요! 음, 곡을 약간 그루브한 느낌으로 가면서 섹시하게······.”

“우리 전 선생한테 안무 멋있게 짜달라고 해야지.”

“곡도 안 나왔는데요?”

“당연히 곡 나오고 말이야. 곡은 박 PD가 만들어야지. 아, 하준이가 댄스곡에 대한 의견이 있을라나? 혹시 댄스곡도 작곡했니?”

최 대표가 하준에게 물었다.

“제가 댄스곡은 작곡해본 적이 없어서 박 PD님이 도와주셨으면 해요.”

“그래, 좋아. 우리 같이 한번 만들어보자.”

박 PD가 하준에게 손을 내밀었고, 하준은 그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 대표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아, 그럼 앨범 발매는 대충 언제로 예상하고 있어?”

“음, 생각해봤는데요, 방학 동안 앨범 작업은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활동을 2학기 개강 후에 하게 돼요.”

“음악방송이랑 라디오 정도면 개강해서도 스케줄 소화할 수 있잖아?”

“그건 그런데, 제가 이번에 앨범 내면서 단독 콘서트를 해볼까 싶기도 하고······.”

“와, 단독 콘서트?”

최 대표는 뜻밖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네, 정규 앨범 낸 김에 콘서트를 할까 싶어요. 저번에 축제 때 영상 댓글에 콘서트 원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준이 한국대 축제에서 보여준 무대는 팬들이 직캠으로 찍어서 너튜브에 올라왔고,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은 하준의 콘서트를 원했다.

“아! 맞아, 그랬지. 그때 메들리 미쳤었어. 다른 축제 와달라는 댓글도 많고, 단독 콘서트 해달라는 댓글도 많았었지.”

“네, 그래서 정규 앨범 내면서 콘서트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음, 그럼 지금부터 앨범 준비해서 미리 만들어놨다가 이번 겨울방학 하면 바로 앨범 내고 겨울 콘서트 하는 건 어때? 학기 중에 콘서트 준비는 아무리 네가 천재여도 힘들 테니까.”

“네, 그게 좋겠어요.”

“오케이, 그럼 콘서트장 관련해서는 내가 다 준비할 테니까, 넌 곡에만 신경 써.”

“네, 감사해요.”

“감사하긴, 내가 당연히 해야 될 일이지.”

“아, 그럼 전 앨범 준비 다 하고 나면 공연 아이디어 짤게요.”

“그렇지! 좋아, 좋아. 첫 콘서트에는 특히 더 정성을 들여야지. 음, 근데 얼마나 크게 해야 될까나······. 네 인기로 봐서는 종합운동장 정도는 돼야······.”

최 대표는 단독 콘서트 규모를 어떻게 해야 하나 벌써부터 고민에 빠졌다.

***

하준은 여름방학 내내 정규 앨범 준비에 매진했다.

앨범 녹음도 하고 타이틀곡으로 뽑은 댄스곡 안무도 연습했다.

그리고 2학기 때는 학교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콘서트 컨셉과 아이디어를 짰다.

2학기 기말 시험이 끝나자마자, 하준은 가장 먼저 타이틀곡인 ‘Come back to me’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시작했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이라서 최 대표는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을 섭외했고, 세트 하나하나도 최고로 제작했다.

“안녕하세요, 천 감독님. 제 뮤직비디오를 맡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블랙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하준은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천 감독을 만나자마자 감사 인사부터 했다.

“하하, 나도 맡겨줘서 고마워. 우리 하준 씨같은 톱스타랑 같이 작업하는 나도 영광이지.”

“감사합니다!”

“그래, 같이 진짜 멋진 뮤비 만들어보자.”

“네!”

하준은 오늘 함께 촬영할 백댄서 형들에게도 잘 부탁한다며 인사했다.

“형들, 오늘 힘들겠지만, 잘 부탁드려요!”

“응, 그럼! 걱정 마.”

하준의 뮤직비디오는 절반은 파워풀한 댄스를 보여주고, 절반은 하준의 연기를 보여주는 식으로 제작하기로 되어 있어서 댄스 세트 2개와 방으로 꾸며진 세트가 여러 개 준비되어 있었다.

먼저 하준과 백댄서들은 파란색과 보라색으로 꾸며진 세트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자, 갈게요. 뮤직 큐!”

천 감독의 사인에 따라 ‘Come back to me’ 노래가 세트장에 울려퍼졌고, 하준과 백댄서들은 V자 대형으로 서서 힘차게 춤을 췄다.

천 감독은 국내 최고로 인정받는 뮤비 감독이니만큼 꼼꼼하고 날카로웠다.

“스톱! 거기 맨 뒤에 백댄서! 머리 너무 흔들지 마. 혼자 튀어. 그리고 하준 씨는 턴 돌고 바로 카메라 다가가니까 카메라 찾아서 쳐다 봐야 돼. 방금은 좀 늦었어. 이 부분 다시 갈게요.”

“네!”

천 감독은 전체 화면에서 자기 눈에 걸리는 게 없도록 백댄서들과 하준에게 디테일한 요구를 계속했고 완성된 세트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뮤비 촬영은 시간이 오래 걸렸고, 며칠에 걸쳐 촬영이 이뤄졌다.

반복적으로 파워풀한 춤을 춰야 하는 백댄서들과 하준은 무척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완성된 뮤비는 굉장한 퀄리티를 자랑했기에 만족스럽게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 역시 천 감독님 실력! 뮤비 때깔 쥑이네!”

최 대표는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보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너무 멋지게 찍어 주셨죠? 백댄서 형들이 이 칼군무 완벽하게 맞출 때까지 계속 춤추느라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뮤비 촬영 내내 한우로 저녁 사드렸고요.”

“그래, 그래, 잘했다. 자, 이번 앨범은 활동 좀 해야 하니까 스케줄 이것저것 잡아 놨는데, 한 번 봐봐. 이 중에 골라서 나가도 되고.”

“네.”

하준이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대표실 문이 벌컥 열리며 마케팅 팀장이 뛰어 들어왔다.

“어? 서 팀장, 무슨 일이야?”

최 대표가 깜짝 놀라 묻자, 서 팀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표님, 대박이에요! 하준이 정규 앨범, 선주문이 벌써 100만 장을 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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