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138화
이번엔 자동차 광고였다.
블랙 슈트를 입고 멋지게 걸어가는 하준.
그를 보고 반한 표정의 주위 사람들.
그리고 한 여자가 말한다.
-저런 남자는 어떤 차를 탈까?
이에 하준은 씽긋 웃으며 R자동차에 오른다.
“크, 하준이 진짜 멋진데?”
윤기철이 감탄했다.
최선희와 김복녀는 감탄사를 내뱉는 대신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준이 차에 타서 운전하는 모습을 두 손을 모으고 시청했다.
-파워풀하게.
-부드럽게.
-섬세하게.
하준의 목소리로 멘트가 나올 때마다 화면 가득 액셀을 밟고, 핸들을 돌리는 하준의 모습이 차례로 보여졌다.
R자동차 광고가 끝나자, 최선희와 김복녀는 또 한번 난리가 났다.
“아까는 다정다감한 남자더니, 이번엔 엄청 터프해보여. 역시 우리 하준이는 광고에서도 연기를 잘하는구나!”
“그럼, 그럼. 팔색조네, 팔색조. 아휴, 멋있어!”
윤기철도 광고가 아주 잘 뽑혔다면서 만족스럽게 말했다.
“이번 자동차 광고는 실장님 포스였어. 이 광고 보고 실장님 역할 많이 들어오겠는데?”
“근데 우리 하준이가 아직 실장님 할 나이는 아니잖아?”
“왜 그런 거 있잖아. 사장 아들이어서 젊은 실장님. 뭐, 지금 안 되면 몇 년 후에 하면 되지. 하하.”
“그거야, 그렇지. 호호. 근데 우리 TV에서 눈을 떼면 안 되겠어. 하준이 광고가 언제 또 나올지 모르잖아.”
최선희는 윤기철과 대화를 하면서도 시선은 TV에 고정하고 있었다.
“아직 안 나온 광고 뭐 있지?”
“소주랑 화장품이랑 은행 광고요.”
하준은 <암행연인>이 끝나고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TV광고를 5개나 촬영했다.
물론 그 외에 수십 번의 인터뷰와 화보 촬영도 진행했다.
덕분에 팬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준 님 소주 광고 나왔습니다!]
[캬~ 오늘은 ‘맑은 소주’로 한 잔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하준 님 포스터를 곁들인······]
[방금 TV에서 화장품 광고 나왔어요! 넘넘 이쁨 ㅠㅠ]
[피부 무엇 ㅠㅠ 화장품 광고 사진 넘 이쁘게 나왔네요~~]
[‘로인’ 인터뷰 보셨어요? 와, 오늘 떡밥에 깔려 죽겠네요ㅋㅋㅋ]
[넘나 행복~ TFG 화보도 나왔음요~]
[오늘 제이큐 받았습니다~ 사진이랑 인터뷰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네요 ㅎㅎㅎ]
[하준 님 광고는 다 너무 좋네요! 팔색조 매력 쩔어요 ㅜㅜ]
[광고마다 어쩜 이렇게 다 다른데, 다 멋있는 건가요?? 멋짐 그 잡채..]
[커피 광고 보고 심쿵사할 뻔······ 저런 남친 있었으면 ㅜㅜ]
하준을 광고 모델로 캐스팅한 회사들 역시 광고가 나간 뒤 대중의 반응이 좋자, 무척 만족하며 앞으로의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
며칠 후, 하준은 백산예술대상에 참석하기에 앞서 헤어샵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하준이 왔구나. 오늘 백산 간다면서?”
하준의 메이크업을 담당해주는 박미진 실장이 하준에게 자리를 안내해주며 물었다.
“네, 처음 가보는 거라 좀 긴장되네요.”
“뭐, 시상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 아, 시상식도 가 본지 좀 됐겠구나?”
하준은 18살 때 <우리들의 학교>로 K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은 후, 입시와 군대로 활동을 못했기 때문에 거의 3년 정도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네. 그리고 이번엔 성인 배우로서는 처음 참석하니까 뭔가 느낌이 다르네요.”
“그럴 수 있겠구나. 오늘 무슨 후보에 올랐어?”
“최우수연기상이랑 인기상이요.”
“와, 최우수? 그럼 더 힘주고 가야지! 오늘은 올린 머리로 깔끔하고 남자답게 해줄게.”
“감사합니다. 근데 못 받을 확률이 높아요.”
“왜?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지.”
“제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다른 쟁쟁한 후보 분들이 많아서요.”
“그래도 <암행연인>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니? 우리 헤어샵 애들도 다 봤어. 거기다 연기는 또 얼마나 잘했어? 충분히 받을 수 있어.”
박미진 실장이 마치 연설을 하듯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준은 자신이 받을 확률이 20%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은 좋았다.
잠시 후, 하준의 머리와 메이크업이 완성되었고, 박미진 실장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와우, 내가 했지만, 퍼펙트야, 퍼펙트.”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하준이 거울로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이리저리 확인해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 사이 다른 직원들도 슬그머니 하준의 곁으로 다가와 한 마디씩 했다.
“하준 님, 너무 멋지세요!”
“오, 하준이 오늘 장난 아니네. 백산에서 상 꼭 타.”
“멋있다! 하준 님,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준은 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헤어샵을 나섰다.
***
“하준아, 준비 됐지?”
백산예술대상 시상식장 앞에 차를 세운 김유택이 하준에게 물었다.
“네, 준비 됐어요.”
“그럼 잘 갔다 와. 파이팅!”
“하준아, 파이팅!”
김유택과 스타일리스트 박세은이 하준에게 파이팅을 외쳤고,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꺄아!”
“와, 하준이다!”
“오빠아, 팬이에요!”
“너무 멋있어요!”
하준의 밴 문이 열리자마자, 양 옆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하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멋지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하준은 차 앞에 길게 펼쳐진 레드카펫을 모델 워킹으로 걸으며 주변의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기자들은 대세남 하준의 등장에 신나게 플래시를 터뜨려댔다.
하준은 성큼성큼 레드카펫을 걸어 포토월에 도착했다.
포토월에서는 기자들의 본격적인 사진 촬영이 진행되었고, 하준은 기자들의 요구대로 손도 흔들어주고 하트도 만들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하준은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상식장에는 수많은 선후배 배우들이 가득했다.
하준이 <암행연인> 팀들이 앉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하준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오, 우리 대세남!”
하준이 돌아보니, 그는 바로 <월야>의 남자주인공이었던 서재혁이었다.
서재혁은 <월야>를 찍을 당시 탑스타였는데,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탑스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 형!”
“와, 우리 하준이 진짜 잘 컸네! 그 쪼끄맸던 애기가 이제 나보다 키가 더 커졌어. 아하하.”
서재혁이 하준의 옆에서 키를 비교하며 웃었다.
서재혁과 하준은 하준이 중학교 때쯤까지는 가끔 안부도 주고받았었는데, 그 이후로는 서로 바쁘다보니 연락을 거의 못한 상태였다.
“감사합니다. 참, 형 전화 안 되던데······.”
“맞다! 나 번호 바뀌었어. 휴대폰 고장 나서 전화번호부도 못 옮겨서 연락 못 했고. 여기 번호 찍어 주라.”
서재혁은 하준과 다시 연락처를 교환했다.
“아, 오늘 너 최우수 연기상 후보더라. 나돈데. 우리 같이 받으면 뭔가 재밌겠다. <월야>의 아역이랑 주인공이었던 두 배우가 10여년 뒤에 각각 TV부문이랑 영화부문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는 거잖아.”
오늘 서재혁은 영화 부문 최우수 연기상 후보로 시상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하준은 TV부문이라 서재혁과 안 겹쳐서 다행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형이 이번에 드라마 안 찍어서 다행이에요. 하하. 근데 사실 전 이번에 최우수 연기상은 기대 안 하고 와서······. 형은 꼭 최우수 연기상 타시길 빌어요. 형 영화 재밌더라고요. 전 제대해서 봤어요.”
서재혁의 영화는 하준이 군대에 있을 때 개봉해서 하준은 시사회에 가보지 못했고, 제대한 후에 찾아서 봤다.
“오, 그래? 하하. 고맙다. 나도 <암행연인> 재밌게 봤어. 작년이랑 올해 통틀어서 <암행연인>만큼 잘 된 작품도 없지, 아마? 네 연기 변신도 대단했고. 이제 뭐, 아역 티 하나도 안 나더라. 키스신도 장난 아니었고. 하하.”
서재혁이 하준의 키스신을 언급하며 웃자, 하준은 쑥스러워하며 그를 따라 미소지었다.
“아무튼, 우리 둘 다 상 받으면 좋겠다. 아, 사진 같이 찍을래?”
“네, 너무 좋죠!”
서재혁과 하준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내 SNS에 올려도 되지?”
“그럼요.”
“고마워. 그럼 이따 또 보자!”
서재혁은 하준에게 고맙다며 손을 잡고 흔들더니 자기 영화 팀들이 앉은 자리로 사라졌다.
하준이 서재혁과 인사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이번엔 중견 배우들에게 둘러싸였다.
“어머, 하준아!”
“하준이 진짜 멋있어졌다!”
“하준아, 엄마 기억나지?”
“아빠 기억나? 너 옛날에 나한테 바로 아빠라고 불렀었는데.”
<죽지 않는 백화점>에서 엄마 역할을 했던 김지숙, 드라마 <메모리즈>에서 엄마 역할이었던 한주경, <너와 나의 연결고리>에서 아버지 역할을 했던 한강필 등 하준이 아역시절 함께 연기를 했던 배우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럼요. 다 기억나요. 엄마, 아빠, 잘 지내셨죠?”
“그럼, 우리는 잘 지냈지. 요즘 너 너무 잘 돼서 나 너무 뿌듯했어. 옛날에 잠깐동안 엄마였지만, 우리 하준이는 같이 작품했던 애들 중에서도 제일 착하고 예뻐서 잘 되길 기도했는데, 잘 돼서 정말 기뻐.”
김지숙의 말에 한강필이 끼어들었다.
“선배, 하준이는 요즘 잘 된 게 아니라, 계속 너무 잘 됐죠.”
“아, 그렇네! 그래도 요즘은 아예 대세남 됐잖아. 아휴, 기특해라.”
김지숙은 하준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준은 자기 일처럼 하준의 성공을 기뻐해주는 김지숙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엄마.”
“어머, 엄마 소리 너무 듣기 좋다.”
김지숙은 오랜만에 듣는 엄마 소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하준의 등을 쓰다듬었다.
“옛날에는 작아서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볼도 만지고 그랬는데, 이제는 나보다 훨씬 커서 머리에 손도 안 닿아. 그래도 멋있는 남자로 자라서 좋다.”
“맞아, 너무 잘 컸어. 여전히 연기는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하준은 중견배우들에게 한껏 이쁨을 받은 후 <암행연인> 팀이 모여 앉은 자리로 향했다.
하준은 <암행연인>의 연출을 맡은 오지훈 감독과 여주인공인 심가은과 간단히 인사하고 그 옆에 착석했다.
“하준아, 소감은 좀 준비했니?”
오 감독이 하준에게 슬그머니 귓속말로 물었다.
오 감독은 인기상은 무조건 하준이 탈 테니까 소감을 준비하라고 했었다.
하준도 인기 투표로 선정되는 인기상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소감은 준비해왔다.
“네.”
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물었다.
“감독님은요?”
“나?”
“TV 대상 후보로 <암행연인> 올라 있잖아요.”
“아······ 난 준비 안 했지.”
“왜요?”
“안 줄 것 같아서? 하하.”
오 감독은 크게 욕심이 없는 듯 웃었다.
잠시 후, 백산예술대상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예술상, 신인상 등이 TV부문, 영화부문으로 나누어 시상되었고, 중반쯤 인기상 시상이 이어졌다.
“백산예술대상 인기상 발표하겠습니다. 남녀 두 분입니다. 총 275만 6591표 중 152만 7777표를 얻은 하준 님, 총 123만 2319표 중 45만 3208표를 얻은 박선유 님, 축하드립니다!”
인기상이 발표되자마자, 관객석의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하준을 짧게 연호했다.
“하준! 하준!”
그 사이 카메라가 하준을 클로즈업했고, 오 감독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하준을 꼭 껴안으며 축하해주었다.
주변의 배우들도 올해 인기상은 하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하준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무대로 올라갔다.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은 하준은 마이크 앞에 섰고, 소감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