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31화 (131/150)

131화

131화

하준은 그동안 워낙 많은 시나리오와 대본을 봐서 그런지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때, 예전에 퇴짜를 맞은 최선희의 옛 원고를 어떻게 고치면 될지 구상이 되었다.

그래서 틈틈이 대본을 고쳤고, 입대 전에 완성을 한 뒤 최선희에게 한번 봐달라고 했던 것이다.

“아! 내가 왜 그 시나리오 생각을 못 했지?”

하준은 그때 그 시나리오가 다시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극중 남자 주인공은 성인 배우로의 변신을 보여주기에 딱 맞는 캐릭터였다.

하준이 수정할 때 멋있을 법한 온갖 내용들을 다 집어넣었으니까.

하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최선희가 이 대본을 보라고 준 것은 아마도 최선희도 이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괜찮으셨어요?”

“응, 흥미롭게 너무 잘 고쳤던데? 주인공도 그냥 양반이 아닌 세자로 하니까 훨씬 강렬한 느낌이었어. 솔직히 깜짝 놀랐다니까. 어떻게 이렇게 글도 잘 쓰는지! 날 닮아서 그런가? 호호.”

최선희가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하,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부모님이 두 분 다 글을 쓰시니까 저도 영향을 받았나 봐요.”

“그래, 우리가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서 뿌듯하다. 아, 일단 원고부터 봐. 많이는 안 고쳤어. 그냥 사극 대사 조금 손 보고 자잘한 디테일만 좀 고친 정도? 고친 부분 표시되어 있으니까 훑어보면 될 거야.”

“네, 한번 볼게요.”

하준은 곧바로 대본을 펼쳐 최선희가 고친 부분만 빠르게 확인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머니! 저 이거 해야겠어요! 내일 당장 최 대표님께 이 대본 보여드리고 말씀드릴래요.”

“그래, 나도 이게 괜찮을 것 같아서 추천한 거야. 근데 이거 제작사랑 연출자도 알아봐야 하는데······.”

이 작품을 하겠다는 연출자와 제작사가 있어야 드라마를 촬영할 수 있었다.

“음, 사극이니까 오지훈 감독님한테 부탁드려보는 건 어떨까요?”

오지훈 감독은 하준이 아역으로 처음 출연했던 드라마 <월야>의 연출을 맡았던 감독이었다.

“그럼 너무 좋지. 네가 오 감독님 만나 볼래?”

“어머니도 같이 가요. 이 작품 작가님이시잖아요.”

“에이, 사실 네가 중요한 부분을 재밌게 잘 고쳐서, 네가 거의 다 쓴 거나 다름없지.”

“아니에요. 뼈대에 제가 살만 좀 붙인 거죠.”

“음, 그럼 공동집필로 하자. 엄마와 아들이 함께 쓴 작품. 좋네, 좋아. 우리 둘이 작가로서 오 감독님 만나러 가보자.”

“네, 좋아요.”

하준은 마침내 차기작으로 할 만한 작품이 생겨서 한껏 마음이 들떴다.

다음 날, 하준은 최선희와 함께 일단 최 대표부터 찾아갔다.

“대표님, 이 시나리오 어떤지 좀 봐주세요.”

하준은 최선희나 자기가 쓴 대본이라고는 밝히지 않고 최 대표에게 시놉시스와 1, 2화 대본을 내밀었다.

“<암행연인>? 이런 게 있었어? 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일단 어떤지 한번 읽어보세요.”

하준은 무턱대고 대본을 읽어보라고 최 대표를 졸랐다.

최 대표는 하준을 믿기에 의아함을 거두고 시놉시스부터 읽기 시작했다.

하준과 최선희는 최 대표가 시나리오를 읽는 동안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사극 로맨스 드라마라······ 밤이면 의적이 되는 세자와 역적의 딸의 사랑이야기······ 오······!”

최 대표는 시놉시스부터 눈을 반짝이며 읽더니, 대본도 술술 읽히는지 빠르게 휙휙 넘기며 내용을 훑었다.

그리고 곧 하준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박! 이거 누구 작가님 작품이야?”

“어때요? 재밌어요?”

“응, 너무 재밌는데? 내 촉으로 이건 대박 날 거 같아! 일단 기본 설정부터가 구미가 확 당겨.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필인데, 거기다 생각지도 못하게 세자가 의적 활동을 한다니! 캐릭터들도 너무 좋아. 특히 주인공 세자는 앞에만 봐도 진짜 멋있다!”

최 대표의 좋은 평가에 하준과 최선희는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최 대표는 뭔가 깨달았는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외쳤다.

“아아!! 이거 작가님 작품이군요? 맞죠? 그쵸? 와······!”

“네, 근데 뼈대는 제가 잡았지만, 하준이가 많이 고친 거예요. 이거 제가 한 10년 전에 드라마 작가 초창기에 퇴짜 맞았던 작품인데, 이걸 하준이가 이렇게 재밌게 고쳐왔더라고요.”

“으잉? 하준이가 이제 글도 써요?!”

최 대표는 놀랐는지 눈과 입이 크게 벌어진 채 하준을 쳐다보았다.

“에이, 그냥 어머니 원고가 아까워서 조금씩 고쳐보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와, 그래도 수정할 실력이 된다는 거잖아? 하준이 넌 정말 매번 나를 놀래키는 구나. 아하하.”

최 대표가 호탕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하준은 쑥스러운 듯 슬쩍 미소를 지었고, 이어 최 대표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저 이 작품으로 차기작 결정할게요?”

“응, 근데 이거 연출은 누가 맡았어?”

“아직 몰라요. 이제 연출 구해야죠. 제작사도 구해야 되고요.”

“뭐?”

“제가 어머니랑 구해올게요.”

하준이 최선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최 대표도 그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급히 물었다.

“네가 직접? 어디 가서 구하려고?”

“오지훈 감독님께 부탁드려보려고요.”

“아, <월야> 오 감독님?”

“네.”

“오 감독님이 해주시면 정말 좋을 텐데! 아, 대본 보시면 하겠다고 하실 거야. 얼른 가봐.”

“네, 그럼 만나 뵙고 연락드릴게요. 다녀오겠습니다.”

하준은 후다닥 대본을 챙겨 최선희와 함께 대표실을 나갔다.

***

“하준아, 오랜만이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먼저 연락해 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오지훈 감독은 하준을 보자마자 달려와 반가움의 포옹을 나눴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감독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셨죠?”

“그럼, 잘 지냈지. 아, 최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 감독은 최선희와도 인사를 나누고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세 사람은 음료를 시킨 후 서로의 근황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감독님,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작품 준비 중이신 거예요?”

“보고 있는 작품이 있긴 한데, 고민 중이야. 너는 차기작 결정했어? 작품 엄청 많이 들어왔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네, 오늘 결정했어요. 전역하고 첫 작품이라 고민이 진짜 많았는데, 딱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거든요.”

“오, 그래? 다행이다. 자기 마음에 딱 드는 작품 발견하는 거 그거 은근 쉽지 않은데. 나도 지금 들어온 작품이 괜찮긴 한데, 완벽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라서 망설이고 있거든.”

하준은 잘됐다고 생각하고 얼른 <암행연인> 시나리오를 꺼내 오 감독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제가 차기작으로 하려는 작품인데요, 사실 감독님께 이 작품 연출을 부탁드리려고 뵙자고 했습니다.”

“그래? <암행연인>이면······ 사극이겠네?”

“네, 맞습니다.”

“네가 마음에 쏙 드는 차기작이라니 엄청 기대되는데? 어디 보자······.”

오 감독은 안경을 꺼내 쓰더니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훑어본 오 감독은 아까 최 대표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거 누구 작품이야? 설마, 최 작가님 작품이에요? 아닌가? 최 작가님 스타일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긴 한데······.”

최선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초안을 썼는데, 하준이가 많이 고쳤어요. 그러니까, 저랑 하준이의 공동집필 작품입니다.”

“네에? 허허······ 하준아, 하다하다 이제 아예 직접 글도 쓰는 거야?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직접 썼어?”

오 감독이 놀란 눈으로 하준에게 물었다.

“그건 아니고요, 이건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쓴 건데, 다시 살펴보니까 제 차기작으로 딱일 것 같아서요. 근데 사극은 오 감독님이 최고시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부탁드리는 거예요.”

하준이 오 감독을 띄워주며 간절한 눈빛을 발사했다.

그러자 오 감독은 피식 웃더니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현구야, 김 작가한테 그 작품 안 한다고 연락해. ······ 어, 다른 거 할 거 생겼어. 그거보다 훨씬 좋은 작품. ······ 그래, 끊어.”

하준과 최선희는 오 감독의 통화 내용을 듣고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오 감독을 쳐다보았다.

전화를 끊은 오 감독은 하준에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런 눈빛으로 부탁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하니?”

“정말요? 정말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 근데 솔직히 네가 부탁한 게 아니었어도 한다고 했을 거야. 클리셰적이면서도 신선해. 이런 작품들이 대박 나는 거거든. 너무 신선해도 안 되고, 너무 클리셰 범벅이어도 안 되는데, 밸런스가 좋네. 거기다 여기 주인공은 너로 확정이잖아? 그럼 뭐 생각할 것도 없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준과 최선희는 벌떡 일어나 오 감독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에헤이, 고마워할 사람은 나지. 아하하. 이거, 대박날 거야. 이건 비밀인데 말야, 내가 어젯밤에 꿈을 꿨거든.”

“무슨 꿈이요?”

“내가 커다란 박을 갈랐는데, 거기서 호랑이가 튀어나와서 나한테 안기더라고. 난 당연히 깜짝 놀라서 그 순간 깨버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 대박 작품을 만날 꿈이었나 봐. 아하하.”

“와, 꿈 정말 좋네요. 감독님 꿈처럼 이 작품 대박 났으면 좋겠어요.”

“시나리오도 좋고, 남주가 너면 뭐, 이건 기본 중박은 따 놓은 당상이지! 근데 이거 제작이랑 편성도 따야 되는 거지?”

“네, 그것도 알아봐야 하는데······.”

“오케이. 그건 나한테 맡겨. 내가 일주일 내로 제작사 구해서 바로 편성도 딸게.”

아무래도 연출 경력도 많고 유명한 오 감독이 최선희나 하준보다 제작사를 더 잘 구할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일주일 만에 제작사와 편성까지 해결하겠다는 건 조금 무리인 듯했다.

“일주일 만에요? 너무 촉박한 것 같은데, 가능하시겠어요?”

“최 작가님도 어느 정도 인지도 있고, 거기다 네가 남주로 확정이고, 거기다 내가 연출하는데, 이건 시나리오 안 보여주고도 제작 따낼 수 있어.”

오 감독은 자신 있게 말하고는 곧바로 여러 제작사들에 연락을 돌려 약속을 잡았다.

하준과 최선희는 오 감독이 연출도 맡아주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나도 고마워. 나한테 이 시나리오 가져와줘서. 하하. 우리 잘해보자. 작가님, 우리 잘해봐요.”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

며칠 후, 오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준아, 그거 제작사 더블유스튜디오로 결정됐고, 방송사는 SBC고, 내년 2월쯤 자리 만들어 주겠대.

“와, 감독님, 진짜 빠르시네요! 너무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뭘. 네 복귀작이라니까 다들 하겠다고 난리들이었어.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은 데로 선정했고. 아, 이제 그럼 캐스팅 오디션 봐야지? 너 혹시 원하는 여자 주인공 있어?

“아뇨. 없어요.”

사실 하준이 생각한 이미지에 맞는 배우는 있었으나, 그 배우는 연기가 좀 부족했다.

그래서 하준은 그냥 없다고 대답했다.

-음, 그럼 시간이 좀 촉박하긴 하지만, 여주인공은 오디션 보자. 조연들은 내가 대충 라인업 짜서 너랑 최 작가님한테 보여줄게.

“네, 좋아요.”

-아, 내일 네 기사 나갈 거야. 최 대표랑 보도자료 돌리기로 했거든.

오 감독의 말대로 다음 날 연예 뉴스란은 하준의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배우 하준, 자신이 직접 쓴 작품에 남자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 결정]

[하준, 모(母) 최선희 작가와 공동집필한 <암행연인> 출연 결정]

[월드 스타 하준, 전역 후 첫 작품은 직접 집필한 <암행연인>]

[만능배우 하준, 이번엔 직접 시나리오까지 집필, 다재다능의 끝판왕]

[하준, 직접 시나리오 쓰고, 직접 연기한다]

[사극 전문 오지훈 감독, <암행연인>으로 하준과 10년 만에 재회]

[하준, <암행연인> 첫 성인 연기 도전]

[<암행연인>, 남주는 하준, 그럼 여자주인공은 누구?]

대중들은 하준이 직접 집필에 참여했다는 것과 첫 성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사실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큰 기대감을 표출했다.

또한 <암행연인>의 여주가 누가 될 것인지에도 관심이 쏠렸다.

약 2주 후, <암행연인>의 여자 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이 진행되었고, 최선희와 하준은 그 자리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