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128화
“엄마, 아빠, 나 확인한다?”
하준이 컴퓨터 앞에서 양옆의 엄마 아빠를 돌아보며 물었다.
하준의 컴퓨터 화면에는 한국대 ‘정시모집 합격자 발표’ 페이지가 떠 있었다.
“자, 잠깐만! 후아!”
최선희가 하준을 잠시 말리더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옆에 있던 윤기철은 손에 땀이 나는지 연신 바지에 손을 문지르고 있었다.
최선희는 심호흡을 하고도 너무 떨리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왜 내가 더 떨리지? 나 대학 합격 확인했을 때보다 더 떨려. 어떡해!!!”
“진정해, 여보. 진정, 진정. 릴랙스.”
윤기철은 최선희의 양손을 꼭 잡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하준은 그 사이 성명과 생년월일,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조회’ 버튼에 커서를 가져다 대 놓은 상태.
“엄마, 누른다?”
“으응!”
최선희는 차마 화면을 보지는 못하겠는지 두 눈을 가렸다.
하준 역시 떨리는 마음으로 ‘조회’ 버튼을 클릭했다.
“합격 여부······ 와아! 합격!!!”
하준이 합격을 부르짖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최선희와 윤기철은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며 하준을 끌어안았다.
“으아악! 한국대 합격이라니! 장하다, 우리 아들!!”
“우리 하준이가 한국대, 한국대에······! 으흐흑.”
최선희와 윤기철은 하준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준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 나 뒷바라지 해주느라 고생 많았어. 고마워.”
“고생은 무슨. 네가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지. 내가 더 고마워.”
“그래, 우린 뭐 해준 것도 없지. 네가 다 알아서 했으니까. 우리처럼 편한 부모가 어딨니? 하하. 아이구, 이쁜 내 새끼.”
최선희와 윤기철은 울다가 웃다가 난리였다.
“아, 하준아, 할머니께 전화 드려. 지금 엄청 기다리고 계실 거야. 당신은 최 대표님한테 알려드려요.”
“그렇지, 그렇지.”
하준과 윤기철은 최선희의 지시에 따라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할머니, 저 하준이에요.”
-아이고, 내 강아지, 점심은 먹었니?
“그럼요. 할머니, 저 대학 발표 났어요.”
-어머, 그래? 어, 어떻게 됐니?
김복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한국대 붙었어요!!”
-어머, 어머! 정말?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이시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복녀는 울먹거리며 온 신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러고는 하준에게도 축하인사를 건넸다.
-우리 하준이 장하다, 장해! 축하한다, 이쁜 우리 강아지. 오호호.
“감사합니다. 할머니께서 잘 되라고 많이 빌어주신 덕분이에요. 아빠한테 다 들었어요. 매일 저 대학 붙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는 얘기요.”
김복녀는 사실 종교가 없었지만, 이번 하준의 합격을 위해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했다. 하루는 하느님, 하루는 부처님, 하루는 천지신명께 돌아가면서 말이다.
-호호호, 우리 하준이는 어쩜 이렇게 이쁜 말만 골라서 할까! 보기만 해도 이쁜데, 하는 말은 더 이쁘고, 또 하는 짓은 더 더 이뻐! 아, 할머니가 내일 당장 축하해주러 갈게.
“어······ 아니에요. 제가 엄마 아빠랑 상의해서 며칠 내에 찾아뵐게요. 할머니 힘드시잖아요.”
-그래, 그러렴. 그럼 언제 올지 연락해줘.
“네, 할머니. 그럼 쉬세요.”
-응, 다시 한번 축하한다. 호호호.
“감사합니다.”
하준이 할머니와 통화하는 사이, 윤기철은 최 대표와 통화 중이었다.
“으하하하. 그렇다니까. 지금 방금 확인한 따끈따끈한 빅뉴스야.”
-와, 하준이가 또 일을 내는구나. 한국대 신문방송학과라고 했지?
“응, 내 아들이 한국대를 가다니, 진짜 너무 자랑스럽다.”
-나도 그래! 우리 소속사 대표 연예인이 한국대에 가다니! 아, 우리 사옥에 크게 플래카드 걸까? ‘축 하준 한국대 정시합격!’ 이렇게?
“으하하, 야, 나도 우리 집 벽면에 걸고 싶은데, 하준이가 싫어할걸?”
-으음, 오반가? 하하하. 아무튼 그럼 보도자료 돌려야겠다. 신난다, 신나!
최 대표는 윤기철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하준의 합격 소식을 온 사방에 다 알렸다.
사옥 내 모든 직원과 소속 연예인들, 그리고 기자들에게도.
소식을 들은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하준의 합격 소식을 보도했다.
그래서 하준이 팬카페에 알리기도 전에 벌써 팬들은 기사를 카페에 퍼다 나르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
[<속보>월드 스타 하준, 한국대 신문방송학과 정시합격]
[꺄아, 다들 기사 보셨어요? 하준님 한국대 합격했대요!!]
[와,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한국대라니! 하준 오빠는 진짜 완벽남 그 잡채!!]
[공부할 시간도 별로 없이 활동하신 것 같은데, 언제 그렇게 공부를 하시고 한국대에.. 넘 대단ㅜㅜ]
[뭐든 열심히 하고, 잘하시는 하준 배가수님!!]
[역시 하준 오빠는 천재였어요 ㅠㅠ 오빠,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대 갈 거예요! 기다려 주세요~]
하준은 팬들의 글을 쭉 훑어본 후 감사인사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우리 팬 여러분의 정보력이 너무 빨라서 제가 한발 늦었네요. 한국대 붙었다고 직접 글 쓰려고 했는데 말이에요. 하하.
뒷북이지만 제가 직접 얘기할게요.
저, 한국대 신문방송학과 합격했어요^^
벌써 축하글 많이 올려주셨던데,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여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던 곳이라 제 마음의 고향 같아요. 팬 여러분, 꼬꼬마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항상 이곳에 계셔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팬 여러분의 사랑 잊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다음 날 저녁, 하준은 최 대표의 호출로 월드 엔터 사옥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준이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후배 아이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어엇! 뭐, 뭐야?!”
하준이 놀라 멈춰 섰는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플래카드를 하준 앞에 쫙 펼치더니 큰소리로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한국대 합격을 축하합니다~”
아이돌들의 노래가 끝나자, 직원들까지 우르르 몰려오더니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와아아!!”
“축하드려요, 선배님!”
“축하한다, 하준아!”
아이돌들 중 한 명은 하준에게 꽃 목걸이를 걸어주기까지 했다.
“아하하. 이거 쑥스럽네. 어쨌든 감사합니다!”
하준이 자신을 축하해준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러고는 대표실로 올라가려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선배님, 이쪽으로 가시죠.”
“얼른요.”
후배 아이돌들은 하준을 뒤에서 밀며 지하로 내려갔다.
하준은 얼떨결에 그들에게 밀러 지하 구내식당으로 가게 됐다.
그런데 구내식당은 무슨 파티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아니, 여기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최 대표가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하준에게 반짝이는 고깔모자를 씌워주었다.
“오늘 우리 파티하는 거야! 네 합격 축하 파티! 내가 아주 최고급 뷔페로 준비했다. 하준아, 진짜, 너무 축하한다!”
“아휴, 대표님도 참. 뭘 이렇게까지 준비하셨어요······.”
하준은 최 대표의 축하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성대한 파티까지 열어주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다 이런 일 핑계 대고 파티 한번 하는 거야. 여기 봐, 얘들 얼마나 좋아하니! 하하.”
“맞아요. 이런 파티 너무 좋아요!”
“선배님이 계속 승승장구하셨으면 좋겠어요. 맨날 파티하게. 흐흐.”
월드 엔터 소속 연예인들과 직원들은 무척 행복한 표정이었다.
하준은 파티가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실에 부담을 덜 느끼고 그제야 그들을 따라 활짝 웃었다.
“하하.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오늘 다 같이 즐겁게 놀아요.”
“그러췌! 자, 일단 좀 먹고 놀자. 비싼 거부터 먹어, 얘들아.”
최 대표의 말에 사람들은 각자 음식을 접시에 담아 긴 테이블에 줄줄이 앉았다.
사람들이 거의 다 착석하자, 최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음료가 담긴 잔을 포크로 땡땡 쳤다.
“자, 주목. 우리 첫 잔은 다 같이 건배하자. 우리 월드 엔터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하준이를 위하여!”
“위하여!”
사람들은 최 대표의 선창을 따라 하며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하준은 최 대표의 건배사가 민망했지만, 최 대표가 이런 건배사를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최 대표는 촉촉해진 눈망울로 하준에게 속삭였다.
“하준아, 오늘 파티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인사 겸 연 파티야. 그동안 진짜 고마웠어. 너무 고생 많았고. ······몸 건강히 잘 다녀와야 된다. 알겠지?”
“네, 그럼요.”
하준이 빙긋 웃었다.
이날 파티는 맛있는 음식만 먹고 끝난 것이 아니라 월드 엔터 소속 가수들의 신나는 무대도 펼쳐졌다.
월드 엔터의 식구들은 새 사옥에서의 첫 파티를 열광적으로 즐겼고, 하준의 ‘날아올라’ 무대를 마지막으로 파티는 끝이 났다.
***
“할머니! 저예요. 하준이요!”
하준이 할머니 댁 초인종을 누르며 김복녀를 불렀다.
김복녀는 얼른 문을 열었고, 하준은 김복녀를 꼭 안았다.
“할머니!”
“아이구, 내 새끼.”
이제는 하준이 김복녀보다 훨씬 커져서 김복녀가 하준의 품에 쏙 들어갔다.
“아이구, 못 본 새에 더 커진 것 같네. 우리 강아지.”
“헤헤, 어떻게 아셨어요? 저 이제 키 186이에요.”
하준이 웃으면서 대답했고, 따라 들어온 윤기철도 김복녀에게 한마디 했다.
“엄마, 이제 하준이 우리 ‘강아지’ 아니고 ‘개’예요, 개. 엄마보다도 크잖아요. 하하.”
“아니야, 덩치만 컸지 나한테는 아직도 귀여운 강아지야. 이쁜 우리 강아지.”
김복녀는 하준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팔을 뻗었고, 하준은 김복녀의 손에 얼굴이 닿도록 얼른 몸을 숙여주었다.
“헤헤, 맞아요, 할머니. 전 영원한 우리 할머니 강아지!”
김복녀는 하준의 여기저기를 쓰다듬으며 애정을 표시했다.
“다들 점심 안 먹고 왔지? 내가 고깃국이랑 불고기 좀 해놨어. 얼른 와.”
김복녀는 이번에는 꼭 하준에게 직접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고 했고, 윤기철과 최선희는 김복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 힘드신데 뭘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식탁으로 향한 하준이 놀라서 김복녀에게 물었다.
김복녀가 말로는 고깃국이랑 불고기만 좀 해놨다고 했지만, 각종 나물 무침과 잡채, 전, 낙지볶음 등 식탁이 미어터질 정도로 음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네가 맛있게만 먹어주면 하나도 안 힘들어. 어여 먹어 봐.”
“알겠어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금만 해주세요. 할머니 힘드시니까요.”
“그래, 그래. 알았어.”
하준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김복녀의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들을 복스럽게 잘 먹었다.
김복녀는 그런 하준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김복녀와 하준 가족은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거실에 모여 앉아 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내 친구들한테 자랑했더니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어. 걔들 손주들은 한국대 간 애들 없거든. 이웃들은 내가 말 안 했는데도 다들 기사 보고 알아서 먼저 축하 인사를 그렇게 하더라고. 오호호.”
“우리 엄마 어깨가 으쓱하다 못해 귀까지 닿았겠네. 하하.”
“맞아, 맞아. 오호호. 내가 요 며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도 안 오더라니까.”
김복녀는 뿌듯했던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았다.
하준 가족은 김복녀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다가 슬쩍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윤기철이 먼저 운을 띄웠다.
“엄마, 하준이가 드릴 말씀이 있대요.”
“응? 뭔데? 말해봐.”
김복녀가 따뜻한 눈길로 하준을 바라보았다.
하준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할머니, 저, 3월에 군대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