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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27화 (127/150)

127화

127화

하준은 당황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맞인사를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희 거의 하준 선배님 팬입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리더로 보이는 멤버가 하준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번 주에 1위 하신 거 축하드려요.”

하준은 특별히 뉴클리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1위 수상 축하 인사를 건넸다.

뉴클리어는 저번 주뿐만 아니라 그 전 주에도 <뮤직탱크> 1위를 했었다.

“감사합니다. 참, 저희 멤버 중에 하준 선배님이랑 인연이 있다는 애가 있는데요, 쟤요. 데이, 너 하준 선배님 안다고 했지?”

뉴클리어의 리더가 맨 끝에 서 있던 멤버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준은 데이라는 멤버의 얼굴을 봤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희 만난 적이 있나요? 죄송해요.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거의 다 기억하는 편인데, 기억이 잘······.”

하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데이가 왠지 모를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나 모르겠어? 왜, 우리 같은 보육원에 있었잖아.”

“보육원? 보육원이라면 너무 어릴 때라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하준은 여전히 그가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멤버가 설명했다.

“데이 형네 엄마가 보육원 해요.”

그 말에 하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설마······?’

데이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이름을 밝혔다.

“응, 맞아. 내 이름은 김대욱. 기억 안 나? 우리 같이 놀고 그랬는데.”

데이의 본명을 들은 순간, 하준은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하기도 싫은 그 이름, 김대욱.

파양 후에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바로 김대욱의 괴롭힘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대욱은 너무 어릴 때 일이라서 자기가 하준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잊은 건지 당당하게 하준에게 그 사실을 밝히고 있었다.

하준은 혼란스러워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 진짜 생각 안 나?”

김대욱이 하준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하준은 일단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음, 너무 어릴 적 일이라 그런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아, 아쉽네. 난 다 기억나는데.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니까 반갑다. 흐흐.”

김대욱이 능글맞게 웃었다.

하지만 하준은 도저히 웃어지지가 않았다.

눈치 빠른 김유택은 하준이 뭔가 불편하다는 걸 감지하고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아, 목 좀 풀어야 되지? 시간이 별로 없네.”

그러고는 뉴클리어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나가 달라는 무언의 압박.

“아, 선배님 실례했습니다. 그럼 멋진 무대 기대할게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뉴클리어 멤버들은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하준의 대기실을 나갔다.

그들이 나간 후 하준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김유택이 곧바로 물었다.

“뉴클리어 멤버 중에 너랑 같은 보육원 친구가 있을 줄은 몰랐네. 보육원 친구는 아무래도 좀 껄끄럽지?”

김유택은 하준이 당연히 보육원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게 불편할 거라고 짐작하고 물었다.

“그냥 보육원 친구면 별로 안 껄끄러운데, 저 형은 저 괴롭히던 형이에요. 어릴 적 일이라 저 형은 기억이 안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전 더 어렸어도 당한 사람이라 기억이 나네요.”

“뭐어?”

“뭐라고?”

하준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김유택과 박세은이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설마 쟤가 옛날 인터뷰에서 네가 말한 걔야? 괴롭히는 애 있어서 보육원으로 안 돌아갔다고 했던 인터뷰에서의 그 괴롭히던 애?”

“네, 맞아요.”

“헐······ 지가 괴롭혔는데 먼저 와서 알은 척을 했단 말이야? 와, 철판이네.”

“기억이 안 나나 보죠.”

“안 나는 척하는 걸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이러나저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어릴 때 일을 똑같이 복수해 줄 수도 없고······.”

어릴 때 괴롭힘을 받았던 것에 대한 피해보상은 어차피 받을 수 없었다.

특히 하준의 경우 서너 살이었고, 김대욱은 대여섯 살이었으니, 애들이 뭘 알아서 그랬겠냐고 넘어갈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면 쟤 인성 개차반일 텐데, 저런 애가 인기 아이돌로 사랑을 받고 있다니! 세상 불공평하네, 진짜.”

김유택이 답답하다는 듯 한탄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세은이 불쑥 방안을 제시했다.

“확 폭로를 하는 건 어때요? 요즘은 학교 폭력 걸리면 가차 없잖아요.”

“아이고, 그건 그래도 학교 때 일이니까 어느 정도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대여섯 살 때 일은 그냥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다고 퉁칠 수 있어. 당한 사람만 억울한 거지. 후우.”

“에이씨, 그럼 할 수 없죠. 실력으로 압살하는 수밖에. 지금도 하준이가 더 잘 나가지만, 더더 성공해버리는 거예요. 오늘 1위도 해서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요!”

“그래, 그 방법밖에는 없겠다. 하준아, 뉴클리어인지 뭔지 실력으로 확 눌러버리자!”

김유택과 박세은이 하준의 과거 일로 더 흥분하면서 열을 내자, 하준은 괜히 기분이 풀어졌다.

“형이랑 누나가 막 대신 화내 주니까 저 좀 기분 좋아진 거 같아요.”

하준이 빙긋 웃었다.

“야, 당연히 열나지! 내가 지금까지 본 연예인 중에 너처럼 착하고 멋진 애는 없었어. 그런 널 괴롭혔다니, 내가 진짜 확 회귀해서 저놈 귀싸대기를 날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저도, 저도요! 전 확 꼬집어주고 싶어요!”

“맞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널 아는 팬들, 우리 대표님, 너희 부모님, 지인들 전부 그런 심정일 거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경호원까지 김유택과 박세은을 거들었고, 하준은 그들 덕분에 문득 깨달았다.

“감사해요. 아!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우리 부모님을 만나게 된 건 저 형 덕분이기도 하네요. 저 형이 안 괴롭혔으면 보육원으로 그냥 다시 돌아갔을 거고, 그럼 제가 햄버거집에서 우리 아빠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낫겠다. 다 좋은 일이 있기 위한 약간의 시련이었다고 생각하자.”

“맞아, 작은 시련 후에 엄청난 행복이 왔잖아.”

어차피 일어났던 일을 되돌릴 수 없고, 현재 그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따질 수도 없는 거라면, 상처를 잘 아물게 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맞아요. 사실 그동안 행복해서 그 일은 잊고 살았는데, 앞으로도 그냥 잊으려고 노력할래요.”

“그래, 우리 하준이 다 컸다, 다 컸어. 아, 근데 그래도 오늘 1위는 꼭 네가 하자! 걔네는 또 립싱크할 모양이던데, 넌 라이브로 ‘진짜 가수는 이런 거다’하고 보여줘!”

“맞아, 보여줘, 보여줘!”

김유택과 박세은은 일부러 더 오버해서 하준을 응원했다.

“네! 다 죽었어어!”

하준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이날 하준은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멋진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자 이제 날개를 펼치고 한번 해보는 거야~ 세상을 향해 날아올라~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Fly!”

하준의 팬들은 방청석에서 플래카드와 응원봉을 흔들며 하준을 응원했고, 하준은 팬들 덕분에 더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자, 이제 1위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뮤직탱크> MC들의 말에 출연했던 가수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왔고, 1위 후보인 하준과 뉴클리어는 가수들 중에서도 맨 앞에 나란히 섰다.

“뉴클리어가 3주 연속 1위를 차지할 것인지, 하준이 새롭게 1위를 차지할 것인지, 정말 궁금한데요, 그럼 점수 보여주세요!”

MC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준과 뉴클리어의 음원, 방송 점수 등이 표시되는 와중에 방청석에서는 팬들의 기싸움이 치열했다.

“하준! 하준! 하준!”

“뉴클리어! 뉴클리어! 뉴클리어!”

거의 붙어 앉은 두 팬덤은 서로 목소리가 터져라 각자가 응원하는 가수들의 이름을 외쳐댔다.

하준은 다른 때 같았으면 1위에 대한 욕심이 없었겠지만, 김대욱의 그룹인 뉴클리어를 상대로 지고 싶진 않았다.

뉴클리어 역시 3주 연속 1위를 놓치기는 싫었다.

소속사인 스타우드에서도 하준에게만은 절대 지는 꼴을 볼 수 없다며 뉴클리어 멤버들의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했다. 또한 이를 위해 뉴클리어는 앨범 발매 이후 거의 3주간 하루에 한두 시간 자가며 쉴 새 없이 홍보활동을 돌았다.

그러니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아까도 라이벌인 하준을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인사를 간 것이었다.

이렇듯 뉴클리어와 하준, 양쪽 모두 이번 1위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긴장된 순간이 지나고, MC가 마침내 1위를 발표했다.

“영광의 1위는······ 네, 1위는 하준의 ‘날아올라’! 축하드립니다!”

1위가 발표되자, 뉴클리어는 표정은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억지로 하준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하준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하준은 이어 다른 출연가수들에게 둘러싸여 축하인사를 받고, 트로피도 받았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음, 진짜 오랜만에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해보는 건데요,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더 기쁘네요. 사실 앨범 낼 생각이 없었는데, 팬분들이 많이 요청을 해주셔서 내게 됐어요. 그러니까 이건 다 팬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하준이 되겠습니다.”

하준은 트로피를 흔들며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고, 방청석의 팬들도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했다.

무대 아래에서는 김유택과 박세은이 방방 뛰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준이 실력으로 김대욱에게 어퍼컷을 날려준 것이 통쾌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김대욱이 거의 KO 당할 정도의 어퍼컷을 맞는 사건이 터졌다.

“하준아! 너 그거 봤어? 아직 기사 안 났나?”

하준이 월드 엔터의 구내 식당에서 김유택, 최 대표와 밥을 먹고 있는데, 박세은이 후다닥 뛰어와 하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네? 무슨 기사요?”

“왜, 뭔 일 났어? 우리 하준이 일이야?”

최 대표는 하준과 관련된 기사가 난 줄 알고 바로 경계 태세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직 기사는 안 났나? 내가 커뮤니티에서 봤는데, 뉴클리어의 데이 말이야, 김대욱. 걔 학폭 터졌어!”

“진짜요? 진짜래요?”

“진짜 같던데? 엄청 상황도 구체적이고, 증인도 많은가 봐. 중학교 때 양아치였대. 글 올린 애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때리고 괴롭혔다더라?”

“헉······!”

충격적인 이야기에 하준과 김유택이 눈이 동그래졌다.

“걔는 애초에 인성이 글러 먹었던 거지.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싹수가 노랬잖아. 그런 애들은 아주 싹을 잘라버려야 돼. 자기 괴롭히고 그랬던 애가 TV에 나와서 막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해봐. 진짜 속 뒤집어질 노릇이지. 근데 학폭한 애들은 진짜 뻔뻔해. 알려질 걸 몰랐나? 어떻게 TV에 나올 생각을 하지?”

박세은이 학교 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이렇게 나중에라도 불이익을 꼭 받아야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거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최 대표도 김대욱의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기에 박세은의 이야기에 동의하며 한마디 했다.

“잘됐네. 그게 사실이면 하준이랑 마주칠 일도 없어지겠고, 대중들한테 손가락질도 받겠고. 그러니까 착하게 좀 살지.”

“우리 하준이처럼요. 그쵸, 대표님?”

김유택도 통쾌한 듯 활짝 웃으며 최 대표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 그렇지. 우리 모범적인 하준이처럼. 하하. 아, 스타우드 남 대표님 또 골치 좀 아프시겠다. 우린 밥이나 계속 먹자. 오늘 제육볶음이 진짜 맛있네! 세은아, 너도 얼른 밥 받아와.”

“아, 그럴까요? 오늘 기분이 좋아서 밥맛이 절로 날 것 같아요. 호호.”

박세은은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받으러 갔다.

김대욱의 학교폭력 사건은 커뮤니티에서 일파만파 퍼졌고, 금방 기사화되었다.

역시 김대욱 측에서는 ‘사실 무근’이라며 게시자를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겠다고 했으나, 곧이어 여러 학폭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나서며 일이 더 크게 번졌다.

결국 모든 학폭 사실이 사실로 밝혀지며 김대욱은 뉴클리어에서 탈퇴하게 되었고, 스타우드에서도 퇴출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김대욱은 연예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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