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123화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하준을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우리들의 학교>의 첫방송을 손꼽아 기다렸고, 이틀 후, 드디어 <우리들의 학교>는 첫방송이 되었다.
하준은 ‘국민아들’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다양한 연령층에 인기가 있었기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임에도 첫방송은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으하하. 다들 우리 시청률 봤지?”
첫방송 다음 날, 황 PD가 촬영을 위해 모인 배우들을 향해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요! 10.2프로!”
“10.2! 예에!!”
이현제가 선창했고, 다른 배우들이 그를 따라 외치며 환호했다.
한바탕 서로 축하하며 좋아하던 배우들이 잠잠해지자, 황 PD가 다시 입을 열었다.
“10.2프로라니. 이건 진짜 최근에 본 적 없는 스코어야. 스타트가 좋아도 너무 좋다!”
공중파 3사 외에 많은 케이블 채널들이 생겨난 이후, 공중파 드라마의 시청률은 평균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공중파 3사만 있을 때는 최고 시청률이 40프로, 50프로에 육박하는 드라마들도 있었지만, 케이블 채널들이 점점 많아지고는 20프로만 돼도 대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첫방송 같은 경우 시청률이 5-6프로만 되어도 시작이 좋다고 할 정도였는데, <우리들의 학교>는 이에 거의 2배가 되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맞아요! 그리고 시청자들 평도 엄청 좋아요.”
“하준이랑 이현제 브로맨스가 벌써 기대된다고 기사도 났던데요?”
“맞아요! 좋은 기사들 많이 났더라고요!”
“특히 하준이 기사 엄청 많이 났어요.”
배우들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역시 이번 <우리들의 학교>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하준이었다.
첫 드라마 주연인 데다가, 오랜만의 공중파 복귀작이기도 하고, 고등학생인 하준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그래, 알지, 알지. 앞으로 이렇게 쭉쭉 잘 나가면 좋겠다. 다들 계속 열심히 해줘. 작품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다 잡는 드라마가 되자구!”
“네에!”
황 PD의 말이 끝나고 배우들은 곧 촬영에 들어갔다.
오늘 첫 촬영은 김지한이 장현석이 친구들 삥 뜯는 장면을 목격하고 끼어드는 장면이었다.
학교 뒤편의 구석진 곳에서 약한 애들의 머리를 때리고 있는 장현석과 양아치 무리들.
이를 본 김지한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야!”
다들 김지한을 쳐다보는데, 김지한은 성큼성큼 걸어가 장현석이 약한 애들에게 빼앗은 돈을 도로 빼앗아 약한 애들에게 돌려주고 말한다.
“야, 너네 가.”
약한 애들이 장현석의 눈치를 보며 도망치고, 장현석은 김지한의 멱살을 잡는다.
“이 새끼야, 니가 뭔데 끼어들어?”
“너 돈 필요하면 친구들 돈 뺏지 말고 나한테 말해. 내가 줄 테니까. 자, 여기.”
김지한은 돈을 꺼내 장현석 손에 쥐여 준다.
그러자 장현석은 돈을 내팽개치더니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불같이 화를 낸다.
“이 새끼가, 어디서 돈 가지고 잘난 체야? 내가 그지냐? 너한테 적선 받게? 니 돈 안 받아, 새끼야. 꺼져!”
“다른 애들 돈은 되고, 왜 내 돈은 안 되는데?”
김지한의 말에 장현석은 잠시 입술만 깨물고 김지한을 노려보더니 돌아선다.
그러자 김지한이 장현석을 붙잡고 애원한다.
“현석아, 제발. 너 중학교 때 이런 애 아니었잖아.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야? 그때 너랑 나랑 같이······.”
“그땐 우리가 비슷했으니까. 지금은 너랑 난 사는 레벨이 달라. 너희 엄마도 나한테 그러시더라. 너한테 엉겨 붙을 생각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놔.”
“뭐? 우리 엄마가? 너 우리 엄마 만났어?”
“궁금하면 니네 엄마한테 가서 물어봐. 그리고 이거 좀 놔, 이 새끼야.”
김지한은 충격과 미안함으로 장현석을 붙잡았던 손을 놓는다.
“컷! 오케이. 현제는 이제 좀 거친 말투 익숙해졌나 보네. 하준이는 표정 연기 아주 좋았어.”
“감사합니다!”
“자, 이제 교실로 이동!”
황 PD의 지시에 따라 하준이 교실로 이동하려는데, 학교 담장 너머에서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하준 오빠!!”
하준이 돌아보니 웬 여자애들이 고개만 겨우 내밀고 하준을 부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준이 놀란 눈으로 담장 쪽으로 다가갔다.
담장은 하준의 눈만 보일 정도의 높이였기에 여자애들 키가 자기보다 월등히 크지 않은 이상 고개가 담 위로 올라올 수가 없었다.
하준이 발뒤꿈치를 들어 담 너머를 보니 여자애들은 웬 박스 위에 올라 서 있었다.
“아휴, 위험해요.”
“괜찮아요. 오빠, 팬이에요!”
“어제 드라마 진짜 재밌게 봤어요. 대박이에요.”
“정말요? 재밌었어요?”
“네, 제 친구들도 다 그거 봤대요. 너무 재밌고, 오빠가 너무 멋있게 나온대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재밌을 거니까, 계속 봐주세요.”
“그럼요. 당연하죠! 아, 이거 선물이요. 받아주세요!”
여자애들은 낑낑대며 팔을 뻗어 하준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뭐예요?”
“간식거리랑 모자요!”
“아, 잘 먹을게요. 모자는 잘 쓰고요.”
하준은 보답으로 여자애들과 악수를 해주었고, 그들은 너무 좋아했다.
“근데 학교는 안 갔어요?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일 텐데······ 설마 나 보러 오려고 짼 거예요? 그럼 안 되는데······!”
“아니에요! 저희 오늘 개교기념일이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그때, 김유택이 하준에게 이제 들어가야 한다며 끼어들었고, 하준은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저 이제 들어가 볼게요. 집에 조심해서 가시고, 선물 감사해요.”
“네에! 오빠, 사랑해요!!”
“저도요!”
팬들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한다고 외쳤고, 하준은 답례로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보내주었다.
하준은 팬들에게 드라마 시청 소감도 직접 듣고, 선물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오, 이거 네가 좋아하는 두부과자다! 바삭의 극치! 음료도 네가 좋아하는 거야. 벨기에 초코우유.”
김유택이 하준의 쇼핑백을 들여다보더니 외쳤다.
“와, 역시, 내 팬 맞네.”
하준은 약간은 딱딱하다 싶을 정도로 바삭한 걸 좋아했고, 음료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초코우유 취향이었다.
“차에 얼음 있으니까, 내가 아이스초코 제조해올게.”
김유택은 하준과 함께 한 시간이 벌써 거의 10년이 다 돼 가서 하준의 취향을 알아서 척척 맞춰주었다.
“네, 형. 감사합니다.”
하준이 만족스럽게 씽긋 웃었다.
그러자 하준의 스타일리스트인 박세은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실장님, 전 오실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럼, 당연하지. 하준이는 아초, 우리 껀 아아야. 근데 하준이는 언제 어른 돼서 아아 마시나?”
김유택의 말에 하준이 의문을 제기했다.
“어른 되면 무조건 아아 마셔야 돼요? 전 커서도 아초 마실 건데.”
“나도 어릴 땐 아초만 먹었어. 근데 성인 되면 슬슬 단 거 싫어진다? 아메리카노가 시원하고 구수하고 맛있다니까. 거기다 각성 효과도 있어서 모든 직장인들의 합법적 마약이지.”
“흠, 그래요? 난 안 그럴 거 같은데. 벌써 10년째 아초 취향이잖아요.”
“어디 두고 보자. 너 어른 되면 아아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김유택이 실실 웃으며 말했고, 하준의 선물이 든 쇼핑백을 들고 차로 향했다.
***
<우리들의 학교>는 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시청률이 쭉쭉 우상향했다.
또한 2주차부터는 드라마 TV 화제성 1위에 등극했고,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1위부터 5위까지 <우리들의 학교>의 주연 배우들인 하준, 이현제, 유민채, 전이영, 김동국이 순서대로 줄을 세웠다.
하준은 여러 CF와 패션잡지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는데, 그 중에는 교복 CF도 있었다.
하준의 교복핏은 드라마가 방송되는 내내 이슈가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모델 워킹까지 화제가 됐기에, 교복 외에도 다양한 옷 브랜드들에서 광고 제안이 많이 왔다.
“하준아, 너도 베스트스쿨 광고 모델 제안받았지?”
촬영장에 오자마자 이현제가 하준에게 물었다.
“응, 너랑 민채도 받았다며?”
“어, 너 그거 할 거지?”
“음, 글쎄······. 생각 중이야.”
하준은 사실 대표적인 교복 브랜드 4곳의 제안을 모두 받았던 터였다.
그 중 베스트스쿨만 이현제와 유민채에게 함께 제안을 한 상태.
“같이 하자, 응? 우리 우리고 애들이 같이 하면 좋잖아.”
하준도 만약 교복 광고를 찍는다면 베스트스쿨을 찍을 생각이긴 했다.
“응, 그럼 당연히 좋지. 근데 내가 고등학교를 안 다니니까 교복 광고를 찍어도 될까 좀 고민이 돼서.”
“아······ 그런 고민이었구나······.”
그때, 유민채가 끼어들었다.
“오빠, 뭐 어때? 성인들도 교복 모델 다들 하는데. 그리고 오빠가 학교 안 다녀도 우리 드라마 보는 사람들은 오빠를 우리고 2학년 1반 학생으로 기억할걸?”
“그래, 그건 민채 말이 맞다! 넌 진짜 학교도 안 다니니까 영원한 우리고 학생으로만 기억될 거야. 크, 뭔가 멋지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원래 베스트스쿨 교복 말고 다른 교복 입었던 성인 모델들도 많을 텐데, 오히려 오빠는 아무 교복도 안 입은 사람이니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 그것도 그렇다. 근데 난 다행히 베스트스쿨 꺼 입어. 아무튼, 하준아, 같이 찍자, 응?”
이현제가 자기는 베스트스쿨 교복이라 베스트스쿨 광고를 꼭 찍을 거라며 하준에게 함께 찍자고 졸랐다.
“음, 대표님이랑 긍정적으로 상의해볼게.”
하준은 신중한 성격이라 확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 난 이미 한다고 했거든. 아, 근데 PD님은 어디가셨지?”
이현제가 한참 떠들고 있는데도 촬영하자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황 PD를 찾으며 두리번거렸다.
그때, 황 PD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배우들에게 대뜸 물었다.
“자자, 얘들아, 우리 엊그제 11화 시청률 20프로 넘긴 거 알지?”
“네에!”
“그래서 말인데, 마지막화 끝나고 특집방송 편성하자고 하시네?”
“특집방송이면 뭐하는 건데요?”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우리 드라마 비하인드도 얘기하고, 비공개 영상도 보여주고, 뭐 그런 거야. 하준아, 스케줄 되겠니? 마지막 방송 일주일 내로 녹화할 것 같은데.”
황 PD는 가장 바쁠 것 같은 하준에게 스케줄을 물었다.
“네, 아마 될 거예요. 저 원래 혹시 몰라서 드라마 촬영 기간은 넉넉하게 잡아 두거든요.”
하준은 예전에 드라마 인기가 많아서 스케줄이 연장된 적도 있었던 터라 그 이후로는 드라마 촬영 기간을 항상 넉넉하게 잡았다.
“오, 그래, 좋아. 조만간 확실한 날짜 나오면 알려줄 테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들 스케줄 확인해보고 확답 주세요. 그럼 오늘 촬영도 힘차게 시작해봅시다!”
***
“하준아, 교복 4곳 중에서 어디로 골랐어?”
최 대표가 촬영 직전 사무실에 들른 하준에게 물었다.
“아, 베스트스쿨로 하려고요.”
“<우리들의 학교> 친구들이랑 같이 찍으니까?”
“음, 그것도 그렇고, 제가 검색해보니까, 거기가 제일 교복 가격이 저렴하더라고요.”
“그래서 CF 출연료도 제일 적잖아?”
“네, 근데 그래도 제가 광고해서 사고 싶은 팬들이 있을 텐데, 너무 비싸면 부담될 거잖아요.”
“역시 우리 하준이는 생각이 깊네. 하하. 그래, 베스트스쿨로 하자.”
최 대표는 하준을 기특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준은 여기에 더해 더 기특한 생각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번에 광고하게 되면 제가 교복 사기 어려운 학생들한테 베스트스쿨 교복을 기부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