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122화
“포토타임부터 갖겠습니다. <우리들의 학교> 감독님, 배우님들 무대 위로 입장해주세요.”
MC의 안내에 따라 황 PD부터 무대에 올랐다.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고, MC는 시선의 방향과 포즈 등을 간단히 요구했다.
황 PD 다음으로는 주연배우들이 순서대로 입장했는데, 선생님 역할의 전이영, 김동국이 먼저 포토타임을 가졌고, 드디어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이제 <우리들의 학교>에서 전학생 김지한 역할을 맡은 하준 군입니다.”
하준은 성큼성큼 무대 위로 올라가 무대 한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포즈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기자들이 뭐라고 웅성거렸다.
여러 명이 함께 말해서 무슨 소리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하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MC를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MC는 기자들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하준에게 기자들의 요구를 전달했다.
“아, 하준 군, 다시 나와달래요. 모델 워킹으로 천천히요.”
“아하. 네.”
하준은 멋쩍게 웃으며 무대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MC는 다시 한번 하준을 호명했다.
“얼마 전 패션쇼에서 멋진 워킹을 보여주었던 분이죠. 이번에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서 <우리들의 학교>에서 전학생 김지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준 군,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천, 천, 히요.”
교복을 입은 하준은 기자들을 위해 천천히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왔고, 기자들은 신나게 플래시를 터뜨려댔다.
“역시 하준 군의 워킹, 멋지네요. 다들 이번엔 잘 찍으셨죠?”
MC는 기자들에게 확인했고,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들어 올려 만족감을 표시했다.
MC는 계속해서 기자들의 요구를 잘 듣고 하준에게 다양한 포즈를 지시해주었다.
역시 하준을 향한 플래시와 포즈 요구가 가장 많아서 하준의 포토타임이 가장 길었다.
“자, 마지막으로 모델 포즈 한번만 해주세요.”
“모델 포즈요?”
“그, 모델들이 맨 앞에 나왔다가 돌아 들어가기 직전에 포즈 잡잖아요. 그 포즈요.”
“아, 그거요······.”
MC는 탑포즈를 요구했고, 하준은 한강윤 패션쇼에서 취했던 포즈 중 하나인,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사선으로 선 포즈를 잡았다.
“오, 교복 모델 같습니다! 자, 거기서 그대로 턴 돌아서 모델 워킹으로 내려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준은 민망한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MC의 요구에 그대로 응해주었다.
하준이 다시 무대에서 내려가는 그 순간까지 기자들은 셔터를 누르느라 무척 바빴다.
하준에 이어 다른 고등학생 역할을 맡은 이현제, 유민채가 포토타임을 이어갔고, 마지막으로 단체 포토타임을 가진 뒤 하이라이트 영상부터 공개되었다.
약 5분간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나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먼저 각자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MC는 무대 위 일자 테이블에 앉은 황 PD와 배우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를 부탁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들의 학교> 연출을 맡은 황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들의 학교>에서 우리고 2학년 1반 담임 안선영 역을 맡은 전이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우리고 2학년 1반 교생 유강국 역을 맡은 김동국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고 2학년 1반에 전학 온 전학생 김지한 역을 맡은 하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고 2학년 1반이고, 일진 장현석 역을 맡은 이현제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고 2학년 1반 반장 이민채 역할을 맡은 유민채입니다.”
각자의 소개 후에는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들의 학교>는 거의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학교 시리즈인데요, 이전의 학교 시리즈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황 PD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실 이전 학교 시리즈들처럼 고등학생들의 현실, 고민, 우정, 그리고 선생님들의 고뇌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주변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 전 학창시절, 선생님한테 사랑의 매를 많이 맞았었는데, 요즘은 때리면 큰일 나잖아요. 이런 달라진 현실 속에서 학생들 간의 우정,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화해의 과정은 이전의 학교 시리즈들과 차별점을 느끼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큰 틀은 같지만, 과정이 달라졌다는 말씀이시군요. 과정이 무척 궁금해지는데요, 그럼 배우님들,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먼저 전이영 배우님.”
황 PD의 바로 옆에 앉은 전이영부터 마이크를 들고 캐릭터 설명을 시작했다.
“음, 저는 2학년 1반의 담임을 맡았지만, 학생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캐릭터예요. 체벌이라도 할 수 있으면 아이들이 두려워라도 할 텐데,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권위가 사라진 지 오래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을 포기한 캐릭터예요.”
“유강국은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열혈 교생입니다. 그래서 2학년 1반 담임인 안선영 선생님이 이해가 가지 않고요. 하지만 점차 분위기를 깨닫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안선영 선생님처럼 학생들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학생들을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노력할 것인가, 고뇌하는 캐릭터입니다.”
다음 차례는 하준이었다.
“제가 맡은 김지한은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우리고로 전학을 온 학생입니다. 김지한은 우리고에서 중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장현석을 다시 만나게 돼서 무척 반가워해요. 김지한은 그 사이 진정한 친구가 없어서 항상 장현석을 그리워했거든요. 하지만 착했던 장현석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김지한은 장현석을 되돌리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한테 도움도 청하고요.”
“장현석은 제가 봐도 정말 안타까운 인물이에요.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로 결국 막 살게 된 인물이거든요. 하지만 중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김지한을 다시 만나 갈등하게 됩니다.”
“제가 맡은 이민채는 2학년 1반 반장이고요, 일진 같은 애들을 혐오하는 데도 김지한을 좋아해서 그를 도와 장현석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캐릭터예요.”
캐릭터 소개가 끝나자, 개별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감독님, 캐스팅 비화 같은 거 있을까요?”
“음, 사실 하준 군 같은 경우에는 캐스팅 제안할 때 기대를 안 했어요. 워낙 바쁘고, <신비종>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잖아요. 근데 작가님이 꼭 하준 군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제안이라도 해봐달라고 하셔서 한번 연락해본 거였거든요.”
“오, 근데 하준 군이 바로 하겠다고 연락이 온 건가요?”
“바로는 아니고요, 하하. 하준 군이 작품을 안 하고 있어도 원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와서 다 훑어는 본대요. 그러다가 진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들의 학교> 였군요?”
“그렇죠! 하하. 며칠 후에 감명 깊게 봤다면서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 작가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소리 지르시고 난리였습니다. 물론 저도 하준 군이 하겠다는 연락 받자마자, 잘 되겠구나 싶어서 엄청 기뻤고요.”
“그렇겠어요. 하준 군이 흥행보증수표 아닙니까! 게다가 거의 2년 만의 드라마 복귀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 시리즈물 빼고 현대물은 진짜 오랜만이잖아요.”
여기서 그 시리즈물이라 함은 <신비종>을 가리켰다.
하준은 2년간 <신비종> 촬영과 검정고시 준비로 다른 드라마는 찍지 않았었다.
“하준 군, 하준 군은 어떻게 출연 결정을 하게 된 거예요?”
“일단 고등학생 역이라서 관심이 갔어요. 저 고등학교 생활을 못 해봐서 드라마로라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럼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아, 그건 아니에요. 하하. 고등학교에 다녔어도 이 작품은 선택했을 것 같아요. 대본이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돈, 사회, 우정, 이런 것들에 대한 갈등과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거든요.”
“대본이 하준 군의 마음에 쏙 들었군요. 저희도 하이라이트 영상 보니까 무척 기대가 됩니다. 참, 극중에서 유민채 양이 하준 군과 러브라인이 있는데요, 두 분 첫인상은 어땠나요?”
MC의 질문에 하준과 유민채가 서로 먼저 말하라며 웃었다.
결국 오빠인 하준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민채는 사실 이번에 처음 만난 게 아니에요. 민채가 7살이고 제가 8살 때 같이 광고 촬영 한번 한 적이 있거든요.”
유민채는 하준이 8살 때 함께 의류광고를 촬영한 적이 있었다. 유민채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아역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 정말요? 이건 모르는 얘긴데요?”
“그때 민채가 낯을 가려서 울고 그랬는데, 저한테만 낯을 안 가렸어요. 하하.”
하준의 말에 유민채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하준 군이 너무 잘생겨서 반했었던 거 아니에요? 이거 민채 양 얘기도 들어봐야겠는데요? 민채 양?”
MC가 유민채를 부르자, 유민채가 하는 수 없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게,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아, 조금 나긴 나는데, 엄마 말로는 그때 제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좀 애기 진상이었다고······.”
유민채가 스스로를 디스하며 웃었고, ‘애기 진상’이라는 말에 제작발표회에 모인 사람들도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애기 진상이요? 어쨌길래요?”
“툭하면 울었대요. 일단 처음 본 사람이다, 하면 울고 시작했다고······.”
“근데 하준 군을 보고는 안 울었다는 거군요?”
“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사실 하준 오빠 얼굴 보고 울기는 쉽지 않잖아요? 웃음이 나오죠. 지금 생각해봐도 안 울었을 것 같아요.”
유민채의 말에 이번엔 하준이 민망한 웃음을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빠 왜 웃어요? 진짠데. 호호.”
“하준 군, 다들 인정하는 분위긴데 민망해하지 말아요. 아무튼, 그럼 민채 양의 하준 군에 대한 첫인상은 웃음이 나왔다, 이거고, 하준 군은요?”
MC의 정리에 하준이 한번 더 웃음을 터뜨리더니 겨우 마이크를 잡고 대답했다.
“전 깜짝 놀랐어요. 어릴 때랑 너무 달라서요. 낯을 하나도 안 가리더라고요. 지금은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예요.”
유민채는 이제 낯을 가리지 않았다. 낯을 가리기는커녕 먼저 와서 인사하고 무척 활발했다.
<우리들의 학교> 대본 리딩 때도 먼저 하준을 알은척하며 어릴 때 일을 사과하기까지 했고, 힘든 촬영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밝은 에너지를 뿜어냈던 것이다.
“그렇군요. 촬영장 분위기가 참 좋은가 봐요. 이현제 군, 촬영장 분위기 어땠나요?”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엄청 좋습니다. 저희가 진짜 고등학생들이잖아요. 게다가 다들 또래고요. 서로 정말 편하고 좋아요. 저는 <신비종> 시즌 6 때 하준이랑 같이 촬영했어서 편했고, 하준이랑 민채도 서로 알고 그래서 더 편하게 촬영하고 있어요.”
이현제가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답했다.
“NG 많이 나고 그래도 다들 잘 이해해주나요? 성질 안 내고요?”
“음, 서로 놀리죠. NG 냈다고. 근데 하준이는 NG 진짜 안 내요. 남 대사까지 다 외우는 수준이라 대사 NG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소품 때문에 나는 NG만 몇 번 있었고요.”
“하준 군은 대사 잘 외우기로 소문났죠. 아, 그럼 NG 왕은 누군가요?”
MC의 질문에 배우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결국 이현제가 자진납세했다.
“접니다. 하하. 제가 대사는 안 틀리는데, 느낌을 잘 못 살려서요.”
“현제가 일진 역할이라서 말투가 좀 거칠고 그래야 하는데, 가끔 현실 말투가 나오거든요. 저도 일진 말투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하준이 이현제를 감싸주었고, 이현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지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고, 마지막으로 MC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우리들의 학교> 팀 분위기가 정말 좋네요. 호흡도 잘 맞고요. 잘 될 것 같습니다. KBC 월화드라마 <우리들의 학교> 내일모레 월요일 밤 10시 방송 잊지 말아주시고요. 본방 사수 부탁드립니다. 이것으로 <우리들의 학교> 제작발표회를 마치겠습니다.”
MC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 PD와 배우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지막으로 다함께 외쳤다.
“<우리들의 학교>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