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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18화 (118/150)

118화

118화

최 대표의 말에 하준이 아이스 초코를 마시다가 깜짝 놀라 입을 뗐다.

“패션쇼요? 제가요?”

“응, 너. 제안이 들어왔거든. 그것도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로부터.”

최 대표는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유택이 더 궁금한지 하준보다 먼저 물었다.

“누군데요? 그 유명한 디자이너가?”

“한강윤이라고 들어봤어?”

“어? 들어봤어요! 요전에 기사 났던데, ‘한’이라는 브랜드 만들어서 외국에서도 유명하다고······. 이름에 ‘한강’이 들어가서 기억해요.”

“맞아! 바로 그 사람이야. 유럽에도 진출했는데, 국제적으로도 알아주는 디자이너래.”

“와, 근데 모델도 아닌 하준이한테 요청이 왔다고요?”

김유택이 신기해하며 하준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었다.

그러더니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하준이 정도면 러브콜이 올만도 하긴 하죠. 지금 딱 모델 포스니까. 길쭉길쭉하고 슬림하고.”

“맞아. 하준이 지금 피지컬이 딱 좋대. 성인 되면 다들 운동해서 막 몸 키우잖아. 근데 모델들은 자기 몸이 아니라 옷을 보여줘야 해서 몸이 너무 근육질이면 안 된다더라고. 근데 또 핏은 이쁘게 나와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라인이 이뻐야지. 우리 하준이 교복 핏 봐. 얼마나 멋있어?”

최 대표가 맞장구를 쳤다.

하준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자신의 칭찬을 멋쩍게 듣고 있다가 슬쩍 끼어들었다.

“근데요, 패션쇼 무대에 서려면 워킹을 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전 워킹 같은 거 한번도 안 해봤는데······.”

“그렇지, 우리 하준이가 뭘 좀 아네! 내가 너 패션쇼를 해보라고 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그거야. 워킹.”

“네?”

하준은 자기가 워킹을 안 해봤다고 했는데, 최 대표가 워킹 때문에 해보라고 하는 거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도 이제 곧 성인 되면 멋진 남자 역할 많이 하게 될 텐데, 그러면 막 슈트 입고 걸어오는 거 무조건 여러 번 나오거든. 특히 실장님, 본부장님, 뭐 이런 역할들은 꼭 이런 장면 있다? 근데 보니까 모델 했던 애들이 이런 장면이 진짜 기가 막히게 잘 나오더라고.”

“아하!”

하준은 그제야 최 대표의 의도를 이해했다.

이번 기회에 워킹을 배우라는 깊은 뜻을.

그때, 김유택이 박수를 짝 치면서 모델 출신 배우들을 읊었다.

“아! 그 이중석, 김유빈 같은 배우들 말씀하시는 거죠? 크, 둘 다 드라마에서 걸어오는 장면 나오면 막 런웨이네 뭐네 그런 말 나오잖아요. 딱히 팬은 아닌 우리 엄마도 그 두 사람 나오는 드라마 보면서 옷빨도 좋은데 걸음걸이도 멋있다고 엄청 칭찬하거든요.”

“그렇지, 그렇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워킹도 좀 배우고, 덤으로 새로운 모델 경험도 좀 해보고 그럼 좋을 것 같다, 이 말이야.”

“크, 우리 대표님은 역시!! 걸음걸이까지 신경 써 주시다니, 섬세 그 잡채!”

김유택이 엄지를 치켜들며 감탄했다.

하준 역시 최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니 한번 해보면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었다.

“네, 해볼게요. 여러 가지로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저, 근데······.”

“근데, 뭐?”

“제 걸음걸이가 이상해요?”

하준은 최 대표가 모델 워킹을 배우는 게 좋겠다고 한 것이 자신의 걸음걸이가 이상해서 그런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휴, 아니야. 네 걸음걸이가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냥 평범하달까? 근데 확실히 모델 출신 배우들 워킹이 눈에 띄게 멋진 건 맞으니까, 하준이도 더 멋지게 걸으면 좋겠다 싶었던 거야.”

“아, 다행이네요. 전 지금 걸음걸이가 이상한가 싶어서······.”

“아하하. 진짜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귀여운 녀석.”

최 대표는 하준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귀여워 웃음을 터뜨렸다.

“네, 근데 패션쇼는 어떤 패션쇼예요? 날짜는 언제······?”

“서울패션위크라고 들어봤어?”

“네, 그건 들어봤어요. 유명하잖아요. 근데 거기서 해요?”

“응, 날짜는 10월 20일.”

“10월 20일이면 거의 한 달밖에 안 남았잖아요?!”

하준이 촉박한 날짜에 당황하며 외쳤다.

“응, 그래서 좀 바쁘지만, 우리 하준이는 할 수 있을 거야. 너 뭐든 금방 배우잖아.”

“그거야······.”

하준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다급하게 물었다.

“저 워킹 언제부터 배울 수 있어요?”

***

하준은 바로 다음 날부터 최 대표가 소개해준 모델 학원에서 워킹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준아, 진짜 영광이다. 내가 세계적인 스타의 워킹을 가르친다니!”

한때 유명한 모델이었던 강사 고일학은 하준을 만나자마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저도 영광이에요. 선생님 무대 본 적 있는데, 정말 걸음걸이가 시원시원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멋지게 걷고 싶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그럼! 하준이가 말도 이쁘게 한다더니 진짜 그렇네. 으하하.”

고일학은 원래도 하준에게 호감이었는데, 첫인상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자, 일단 기본 걸음걸이부터 한번 보자. 여기서 저기 끝까지 걸어갔다가 와 볼래?”

고일학은 하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일단 워킹을 시켜보았다.

“네, 근데 선생님 앞에서 걸으려니 은근 긴장되네요. 하하······.”

“괜찮아. 평소처럼 편하게 걸어. 어차피 웬만한 사람들은 걸음걸이 다 새로 배워야 하니까. 이건 그냥 통과의례 같은 거야.”

“네.”

하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발걸음을 뗐다.

고일학은 매서운 눈길로 하준의 다리를 주시하며 하준의 워킹을 지켜보았다.

하준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고일학이 하준의 걸음걸이에 대한 평가를 해주었다.

“음, 일단 일반 사람들치고는 괜찮은 걸음걸이야.”

“감사합니다.”

“근데 내가 자세히 보니까 왼발은 일자로 잘 가는데, 오른발이 약간 팔자걸음이야. 자꾸 발끝이 오른쪽으로 빠지더라고.”

“정말요? 전 전혀 몰랐는데······.”

“다시 걸어볼래?”

하준이 고일학의 지시에 따라 몇 발자국 다시 걸어봤다.

“어? 진짜 그렇네요. 전 그래도 일자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경우 많아. 한쪽은 일자인데 다른 쪽은 팔자인 경우. 사람들 다리 길이가 원래 조금 차이가 있기도 하고, 한번 잘못 걷기 시작하면 거기에 몸이 익숙해져서 그렇게 걷는 게 편해지고, 결국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걷게 되지. 근데 너 같은 경우는 그렇게 심하진 않아. 조금만 신경 쓰면 금방 고쳐질 거야.”

고일학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며 하준을 위로했다.

“아하, 저 같은 경우가 많군요. 그래도 심하지 않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응, 그리고 보폭이 좁은데, 그건 뭐 모델이 아니면 99프로가 그러니까 괜찮아. 하지만 무대에서는 보폭을 넓혀야 시원시원하게 보여. 자, 비교해봐.”

고일학은 먼저 평소 워킹과 무대에서의 워킹을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와, 정말 차이가 크네요. 보폭이 크니까 훨씬 당당하고 멋있어 보여요.”

“그렇지? 자, 그럼 일단 11자 워킹부터 배워보자. 발은 흔들리거나 팔자로 빠지면 안 되고, 무릎을 스치듯이 걷는데······.”

고일학이 11자 워킹에 대해 설명했고, 곧 슬로우 모션으로 시범도 보여주었다.

“걸을 때 한쪽 다리는 무릎을 펴고 쭉 뻗어 줘야 돼. 이렇게. 그리고 뒤에 있는 다리를 무릎은 스치듯 앞으로 뻗고, 발을 바닥에 디딜 때는 흔들리지 않고 일자로 떨어지게. 당연히 뒤꿈치부터 땅에 닿도록 하고······.”

하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슬로우 모션을 따라했다.

천천히 온 신경을 집중해 걸으려니 엄청난 에너지가 들었다.

“와, 이거 쉽지 않네요.”

“그래도 너 정도면 금방 따라 하는 거야. 내가 말해줘도 못하는 애들 천지거든. 자, 그럼 보폭이랑 속도에 대해서도 알려줄게.”

고일학은 계속해서 시범을 보이며 하준에게 워킹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설명을 마치자, 하준에게 다시 한번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워킹을 시켰다.

“내가 가르쳐준 거 생각하면서 저기까지 다시 한 번 걸어갔다 와.”

“네.”

하준은 발을 내딛기 전에 고일학의 설명들을 다시 머릿속에 쭉 떠올려 본 다음 마침내 보폭을 크게 해 발을 내디뎠다.

성큼성큼 반대쪽 벽까지 걸어간 하준은 다시 고일학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일학의 표정이 경악 그 자체였다.

“쌤, 왜 그러세요?”

하준의 물음에 고일학은 뜬금없이 물개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 어떻게 이걸 한 번에 완벽하게 하지? 너 지금 완벽했어!”

“정말요?”

하준도 스스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니까! 오른발도 단 한번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고, 다리 움직임도 완벽했어. 거기다 보폭도 일정하면서 넓고, 템포도 여유 있고······ 지금 바로 무대에 서도 될 정도야!”

“와, 감사합니다! 쌤이 너무 잘 가르쳐주셔서 그대로 걸으니까 됐나 봐요.”

“하하, 내가 잘 가르치긴 하지만, 너처럼 바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애는 처음 봤다. 천재라는 소문이 진짠가 보네!”

고일학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

“아, 하준아, 일주일 있다가 한강윤 선생님 만난다고 했지?”

“네, 워킹 좀 배워서 가야 하거든요. 워킹이 너무 아니면 뺄 수도 있대요.”

“너도 그 얘기 아는구나?”

“네. 대표님이 열심히 준비하라고 하시면서 말씀해 주셨어요.”

몇 년 전, 한 인기 남자 연예인에게 한강윤의 패션쇼에 서게 됐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패션쇼 며칠 전, 그 남자 연예인 출연이 개인사정으로 무산됐다는 기사가 떴다.

이 속사정은 업계에만 잠깐 소문이 돌았는데, 그 내막은 이러했다.

그 남자 연예인이 바쁘다는 핑계로 워킹 연습을 안 하고 왔는데, 그 워킹이 못 봐줄 지경이었고, 다시 연습을 하고 오라고 했는데도 안 해와서, 결국 화가 난 한강윤이 그 연예인을 빼 버렸다는 것이다.

그 뒤로 한강윤은 연예인에게 모델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래, 한 선생님이 연예인을 다시 모델로 세우겠다고 요청한 건 그 사건 이후 네가 처음이야. 네가 진짜 마음에 드셨나봐. 하긴, 나도 네가 마음에 쏙 든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 내가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닌데, 참. 너 일주일 묵힐 필요 없이 당장에 한 선생님 만나도 될 거 같다는 얘길 하려고 했어.”

“진짜요?”

“응, 일주일이나 기다리지 말고 내일 하루만 더 연습하고 만나 뵈러 가. 한 선생님이 네 워킹 보고 엄청 좋아하실 거야.”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럼! 내 말 믿어. 최 대표님한테도 내가 말씀드릴게.”

이리하여 하준은 며칠 뒤 한강윤 디자이너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하준은 <우리들의 학교> 촬영이 끝나자마자 곧장 한강윤 디자이너의 회사로 직접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하준이 회사에 들어서자, 사무실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머, 어머! 하준이······!”

“허어······!”

“와, 남자가 봐도 장난 아니게 잘생겼네.”

“진짜 잘생겼다······ 하준아, 누나가 팬이야!”

하준은 생긋 웃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저 한 선생님 뵈러 왔는데······.”

“어어, 이쪽으로 따라와요.”

한 직원이 하준을 한강윤 디자이너의 집무실로 안내해주었고, 하준은 안으로 들어갔다.

한강윤의 집무실에는 다양한 옷이 입혀진 마네킹들이 한쪽에 서 있었고, 옷이 잔뜩 걸린 행거도 여러 개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준입니다.”

“오, 하준이 왔구나!”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던 한강윤이 안경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하준에게 다가와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잘생겼네. 어릴 때부터 봤는데, 너무 잘 자라서 내가 다 흐뭇해.”

“감사합니다. 어릴 때부터 저 보셨어요?”

“하하, 그럼! 너 ‘국민아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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