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117화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먼저 이번 경매에 많이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준의 인사에 경매참가자들이 환호했고, 하준은 계속 말을 이었다.
“어, 사실 전 이 그림들이 이렇게 높은 가격에 팔릴 줄 몰랐어요. 믿기지 않아서 얼떨떨한데요, 제가 이 경매의 수익금을 기부할 거라고 해서 좋은 뜻으로 높은 가격에 사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리 공지한 대로 오늘 팔린 그림들의 수익금은 전부 아이들을 위한 단체들에 기부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준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경매참가자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참가자들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며 큰 목소리로 질문했다.
“다른 작품들은 경매 안 하는 건가요?”
“아, <영재>에 나온 그림들 말고요?”
하준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다른 그림들도 사고 싶은 것들 많았거든요.”
“죄송해요. 전시회 중에 판 그림들 외에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그림들이어서 판매는 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아쉽네요······.”
질문자뿐만 아니라 다른 경매참가자들도 탄식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사람이 손을 들며 물었다.
“근데 그럼 다음 전시회는 언제인가요?”
“아······ 그건 아직 예정에 없어요. 제가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그게 많이 모이면 그때 전시회를 하려고요.”
“그림 많이 모이면 꼭 전시회 해줘요. 하준 군 그림 많이 보고 싶거든요.”
“감사합니다!”
하준은 다음 전시회를 기다릴 정도로 자기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뿌듯하고 행복했다.
우미정을 비롯한 낙찰자들은 1억 가까이를 하준의 그림을 낙찰받는 데 썼지만,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하준의 멋진 그림을 한동안 볼 수 있어서 좋고, 그림에 지불할 돈은 기부될 테니 좋은 일도 했고, 하준이 더 유명해질수록 이 그림들의 가치가 높아질 것 또한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 모두들 조심히 돌아가시고······.”
하준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려는데, 기자들 중 하나가 물었다.
“하준 군, <영재>도 그렇고, 전시회도 이렇게 잘 끝났는데요, 이제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아, 조만간 <신비종> 시즌 3 촬영에 들어가요. 그래서 몇 달간은 <신비종> 촬영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신비종>은 시즌 3~7까지 계약되어 있다고 하던데, 시즌 7까지 찍으면 6~7년은 걸리겠네요?”
“네, 아마도 그렇겠죠?”
“그래도 그 틈틈이 다른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도 찍을 거죠?”
“그럼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신비종> 말고도 다양한 활동 많이 할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들 조심히 돌아가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하준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팬서비스로 악수를 해주며 전시회를 마무리했다.
***
7년 후, 어느 고등학교 교실.
“와, 너 장현석 맞지? 우리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기억나냐?”
하준이 자기 바로 뒤에 앉은 친구를 보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화들짝 놀라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장현석이라는 친구는 잠시 당황해하더니 곧 험상궂은 표정으로 하준을 노려보았다.
“뭔 개소리야? 나 너 처음 보는데?”
“으응? 너 장현석 맞잖아? 나 몰라? 김지한!”
하준이 장현석의 이름표를 확인하더니 여전히 순진한 얼굴로 외쳤다.
“컷! 오케이.”
<우리들의 학교>의 연출을 맡은 황 PD가 만족스럽게 ‘컷’을 외쳤다.
장현석 역할을 맡은 이현제는 방금까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었는데, 황 PD가 컷을 외치니 금방 눈에 힘을 풀고 하준에게 씽긋 웃어 보였다.
“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게요.”
황 PD는 손짓했고,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들의 학교> 메이킹 촬영 카메라를 든 스태프가 하준과 이현제에게 다가왔다.
“오늘 첫 촬영인데 두 분 호흡이 어떠신가요?”
“너무 좋아요. 하준이랑 <신비종> 시즌 6에서 같이 촬영했었거든요.”
“저도요. 동갑이라 편하기도 하고요.”
이현제와 하준이 웃으며 답했다.
“근데 <신비종> 때는 두 분이 키가 비슷하지 않았던가요? 대립하는 장면에서 서로 눈 맞추던 게 인상 깊었는데.”
“하아. 하준이가 갑자기 너무 커버려가지고. 흑흑. 살짝 자존심 상해요.”
이현제가 장난스럽게 우는 시늉을 했다.
“하하. 제가 이번 여름방학 때 갑자기 키가 훅 커져서······ 야, 너도 아직 다 자란 거 아니잖아. 그리고 겨우 4-5센치밖에 차이 안 날걸?”
“너 키 몇인데?”
“180 정도?”
“에이, 나 174거든?”
“5센티나 6센티나, 그게 그거지, 뭐.”
하준이 빙긋 웃었고, 이현제는 훌쩍 큰 하준이 부러운지 입을 쭉 내밀었다.
스태프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곧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지금 촬영은 어떤 장면 촬영인가요?”
“장현석이랑 김지한이랑 중학교 2학년 때 절친이었거든요. 근데 김지한이 중3 때 전학을 갔다가 고2 때 장현석네 반으로 다시 전학을 온 거예요. 그래서 알은 척하는데, 장현석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상황이에요.”
“두 사람의 상황이 그때와는 엄청 달라졌거든요.”
“하준 군은 고등학교 교복은 처음 입어보죠? 고등학교도 처음이고요. 느낌이 어때요?”
하준은 현재 18살로 고등학교를 다녔으면 2학년에 재학 중일 것이다.
하지만 하준은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보기로 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도 인기가 많아서 학교에 팬들이 워낙 많이 찾아왔고, 이 때문에 하준은 학교에 피해가 간다고 생각했다. 또한 하준 스스로도 불편한 점들이 많아서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네, 고등학교 교복은 처음인데, 전 너무 신나요. 솔직히 제가 <우리들의 학교>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함도 조금 있었거든요. 하하. 이렇게나마 고등학교 생활을 느껴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아, 특히 여기는 세트가 아니라 진짜 고등학교잖아요. 그래서 더 실감 나고 좋은 것 같아요.”
“근데 얘 벌써 고등학교 졸업한 거나 다름없어요. 검정고시 시험 벌써 통과했대요! 대단하죠? 완전 부러워요.”
이현제가 끼어들어 부러움을 표출했다.
“와, 벌써요?”
스태프가 놀라워하는데, 황 PD가 다시 촬영 시작을 알렸다.
하준과 이현제는 후다닥 다음 촬영을 준비했다.
먼저 이현제가 교실 뒷문을 발로 쾅 차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부터 촬영한 다음, 하준의 촬영이 이어졌다.
“야, 김지한, 너 장현석이랑 아는 사이야?”
“그럼 설마 너도 일진······?”
“아니, 저런 애랑 왜?”
반 친구들이 잘생긴 전학생인 김지한에게 관심을 보이며 우르르 몰려오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응? 쟤가 일진이라고? 쟤 중학교 때 엄청 착했는데······?”
하준이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쟤가? 그럴 리가······. 쟤 엄청 무서워. 맨날 애들 삥 뜯고, 장난 아니야.”
“싸움도 엄청 잘해.”
“아무튼 옛날 생각은 버려. 쟤랑 친해지려고도 하지 마. 괜히 친한 척하다가 맞는 수가 있어.”
하준은 또래 애들과 진짜 학교 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첫 촬영부터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난 뒤, 하준은 곧바로 소속사 사무실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하준이 경쾌하게 인사하며 사무실로 들어서자, 다들 하준을 친근하게 맞았다.
“안녕, 하준아.”
“어, 하준아, 저녁 먹었어?”
“안녕! 어? 근데 너 왜 교복 차림이야?”
“촬영 갔다가 그대로 입고 온 거야?”
사무실 직원들의 인사를 포함한 질문에 하준이 웃으며 일일이 대답했다.
“네, 저녁은 먹었고, 저 교복 입는 게 좋아서 그냥 입고 왔어요. 어때요? 잘 어울려요?”
하준이 두 팔을 벌린 채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며 물었다.
“응, 진짜 잘 어울려. 역시 핏이 장난 없네!”
“남자는 제복이라더니, 우리 하준이도 엄청 멋있네.”
“교복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나중에 슈트 입으면 그것도 볼만하겠어. 하하.”
“근데 귀엽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니······. 옛날에 요만했는데.”
사무실 직원들 중에 절반 이상이 하준이 어릴 때부터 근무한 직원들이라 훌쩍 큰 하준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직원들도 있었다.
“저 그래도 아직 좀 귀엽지 않아요?”
하준이 환한 미소와 더불어 눈웃음을 치며 애교를 부렸고,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호호, 그래, 웃는 건 아직도 애기 같네! 귀여워라.”
“아무래도 크니까 귀여움보다는 잘생김이 더 강해졌다는 소리야. 아직 우리한테 하준이는 애기지, 애기.”
“영원히 애기지, 어릴 때 봤으니까.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직원들은 하준을 무척 아끼고 예뻐했다.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안 치고, 그 흔한 사춘기도 없었으며, 항상 모든 일에 열심히였으니 안 이뻐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하준 역시 자신을 자식처럼 아껴주는 소속사 직원들을 잘 따르고 좋아했다.
그래서 이렇게 스스럼없이 애교도 부리는 것이다.
“아, 대표님 안에 계시죠?”
“응, 들어가 봐.”
하준은 직원들에게 인사를 한 후, 대표실로 들어갔다.
“역시 하준이였구나! 전화하는데 밖이 시끌시끌해서 너 왔나보다 했어. 하하. 오늘 촬영은 잘했고?”
“네, 유택이 형은 커피랑 아이스초코 사온대요.”
“응, 알아. 우리 하준이 소원 풀었네?”
최 대표가 하준이 입고 온 교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최 대표는 하준이 고등학교 생활을 해보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하, 네!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친구들한테 학교 생활 얘기도 듣고요.”
“애들이 뭐래?”
“제가 부럽대요. 학교 다니기 싫다고요. 하하······.”
“학교 다니면, 안 다니는 애들이 부럽고, 학교 안 다니면, 다니는 애들이 부럽지. 원래 자기가 가지 않은 길을 더 갈망하게 되는 법이거든.”
“그런가 봐요. 저는 그래서 이번 작품으로 만족하려고요.”
하준이 빙긋 웃었다.
“그래. 아참, <신비종> 시즌 7 방영 날짜 나왔어. 12월이래. <우리들의 학교> 방영 중에 방영하겠다. 잘 됐어. 서로 시너지 효과 좀 있겠지.”
“아하. 네, 잘됐네요! 시즌 8 얘기는 아직 없죠?”
“응, 시즌 7에서 졸업하니까······. 만약 성인 도사들 이야기를 하게 돼도 제목이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말고 다른 이름으로 가지 않을까? 이제 졸업했으면 신입 도사는 아니니까.”
“그렇네요. 나중에 성인 도사 이야기도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시즌 7 잘 마무리되면 얘기 나올 거야. 전 세계적으로 네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신비종>은 시즌 6까지 방영하는 동안 점점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하준은 세계 여러 나라도 방문했고, 광고도 많이 찍었으며, 돈도 엄청 많이 벌었다.
더불어 소속사인 월드 엔터테인먼트도 돈을 많이 벌어서 조만간 사옥을 이전할 계획이었다.
“사옥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리모델링 잘 되고 있어. 내년에는 이전할 수 있을 거야.”
사옥 이야기가 나오자 최 대표의 입이 귀에 걸렸다.
월드 엔터는 드디어 건물 하나를 통으로 샀고,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우리 그럼 내년에는 구내식당에서 밥 먹을 수 있어요?”
하준이 환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구내 식당 바로 옆에 카페도 하나 낼 거야. 흐흐.”
“와, 너무 기대돼요!”
하준이 신나 하는데, 김유택이 음료를 사들고 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기대돼?”
김유택이 음료를 나눠주며 물었다.
“우리 사옥 구내식당이랑 카페요! 이전하면 구내식당이랑 카페 생긴대요.”
“오, 나도 훨씬 편해지겠네. 카페 진짜 좋다. 물론 구내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자주 커피를 사다 날라야 했던 김유택은 카페가 생긴다니 무척 좋아했다.
“자, 그럼 마시면서 얘기를 좀 해볼까?”
최 대표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더니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아, 패션쇼 무대 한 번 서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