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114화
다음 날, 하준은 <투머로우쇼>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향했다.
방송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최 대표가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아, 컨디션 어때? 어제 너무 놀았나?”
“푹 자서 괜찮아요. 어제 파크만 가길 잘한 것 같아요. 어드벤처까지 갔으면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김유나의 말대로 파크는 하루를 다 써야 할만큼 볼거리가 많았고, 하준 일행은 결국 어제는 파크에서만 놀기로 했다.
어드벤처는 내일이나 모레 시간이 되면 가보기로 했다.
“맞아, 디즈리랜드 엄청 넓더라. 그래도 파크에서 계속 있어서 밤에 퍼레이드랑 불꽃놀이도 보고 좋았어. 그치?”
최선희가 하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엄청 멋있었어. 아, 나 꿈에서도 디즈리랜드 갔었다! 꿈속에서도 막 불꽃놀이 구경했어.”
“우리 하준이 그게 엄청 좋았나 보네. 꿈에도 나온 거 보니.”
“응, 너무 아름다웠어.”
어제 파크에서 재밌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사이 하준 일행이 탄 차는 방송국에 도착했다.
하준은 대금과 기타를 챙겨 곧바로 리허설에 들어갔고, 잠시 후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투머로우쇼>의 MC인 미셸은 무대에서 오프닝 멘트를 했고, 첫 출연자인 하준은 바로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준은 외국 방송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했다.
그래도 외국 관객들을 상대로 했던 <비긴버스킹>의 경험과 바로 엊그제 출연한 <제이미쇼>의 경험이 있으니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하준은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고, 곧 미셸이 자신을 소개하는 목소리에 눈을 반짝 떴다.
“한국판 해리포러 <신비종>의 주인공, 한국의 아역 배우이자 가수인 하준 군을 소개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방청석에서 터져 나왔고, 하준은 등에는 기타를 메고 대금을 불며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대금 소리가 울려 퍼지자, 방청객들은 삽시간에 침묵하고는 귀를 기울였다.
방송국 측에서는 옅은 드라이아이스 연기와 조명을 활용해 아련한 하준의 대금 소리에 어울리는 무대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고, 방청객들은 한층 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오프닝을 대금 연주로 연 하준은 잠깐 미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와우! 한국의 대금 소리는 정말 아름답네요. 하준 군의 연주 실력도 굉장하고요.”
“감사합니다. 대금은 은은한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악기예요. 색으로 비유한다면 쨍한 원색이 아니라 파스텔톤 같달까요. 전 그런 느낌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하준은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고 출연했기에, 직접 미셸에게 영어로 답했다.
“오, 맞네요. 은은한 파스텔톤의 분위기! 대금 연주를 듣고 느낀 제 감정을 설명한 것 같아요. 하준 군은 영어도 잘하고 설명도 잘하네요.”
미셸이 박수를 치며 하준을 칭찬했고, 방청객들 역시 하준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근데 <신비종>에서는 이 대금으로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액션도 하잖아요? 그거 한 번 보여줄 수 있어요?”
“아, 봉술이요? 네!”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다.
대금을 양손으로 옮겨가며 휙휙 돌리며 워밍업을 하던 하준은, 대금으로 찌르고, 내려치는 동작 등을 보여준 뒤 빙그르르 돌며 멋지게 봉술 시범을 마무리했다.
“와우! 정말 멋지네요.”
미셸은 기립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방청객들 역시 감탄에 마지않았다.
미셸은 이어 하준에게 <신비종> 캐스팅 과정과 CG에 대한 이야기, 촬영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등을 질문했다.
그리고 <신비종>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하준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하준 군은 아직 어린데 벌써 굉장히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더군요. 배우는 기본이고, 뮤지컬도 해봤고, 앨범도 냈고, 디즈리 애니메이션 더빙까지 했더라고요. 맞죠?”
“네, 제가 도전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요.”
“어린 나이에 열정이 대단하네요. 저도 본받고 싶을 정도로요. 앞으로 또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음, 기본적으로 전 연기가 좋아요.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극 안에서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해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전 연기 자체가 저에게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와, 연기 안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다는 말이군요?”
“네, 사실 다른 것들은 연기와 관계가 있어서 하게 된 것이니까요.”
“아하, 그럼 질문을 바꿀게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싶은가요?”
“전 그냥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많은 다양한 역할들을 다 해보고 싶어요. 안 해본 역할들은 뭐든지요.”
“안 해본 역할은 다 해보고 싶다? 호기심이 정말 많군요. 마치 <신비종>의 박민후처럼요. 호호.”
미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그렇네요. 하하.”
“음, 근데 그럼 노래도 연기와 어떤 관련성이 있어서 하게 됐나요?”
“네, 전 노래도 하나의 연기라고 생각해요. 노래에는 감정과 스토리가 있잖아요. 극에서 배우가 어떤 역할을 연기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는 것처럼 노래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와우! 하준 군과 대화하면서 여러 번 놀라네요. 정말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네요. 영어도 정말 잘하고요!”
“감사합니다.”
미셸은 하준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하준을 바라보았다.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이제 하준 군의 노래를 들어야겠어요. 아쉽지만, 그럼 하준 군의 아름다운 이야기, 노래로 들어보겠습니다. 하준 군, 어떤 노래 준비하셨죠?”
“네, 이번 곡은 <신비종> 시즌 2 OST 중 하나인 ‘하늘을 날아서’입니다. 제가 직접 작사작곡한 삼총사의 캐릭터송이에요.”
“저 그 노래 엄청 좋아하는데,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니 벌써 감동이네요. 그럼 박수로 청해 듣겠습니다!”
하준은 이번 <신비종> 시즌 2에서는 OST를 부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한 곡을 작사, 작곡했다.
삼총사가 함께 어디론가 갈 때 구름을 타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모습을 촬영하면서 잘 어울릴 것 같은 멜로디가 떠올라서 즉흥적으로 작곡한 곡이었다.
하준은 이걸 음악감독에게 들려주었고, 음악감독은 발랄하고 경쾌한 게 너무 좋다며 가사도 붙여오라고 했다.
그래서 탄생한 ‘하늘을 날아서’는 <신비종> 시즌 2의 OST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준은 아까 아련한 대금 연주와는 전혀 다른 파워풀한 기타 연주로 반주를 시작했다.
방청객들은 신나게 박수를 치며 호응했고, 하준은 경쾌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구름을 타고~ 바람에 기대~”
한국말 가사였는데, 의외로 후렴구에서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일부 외국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부르기까지 했다.
“하늘을 날아서~ 어디든 갈 거야~ 내 마음이 닿는 그 곳으로~”
“하늘을 날아서~ 어디든 갈 거야~ 내 마음이 닿는 그 곳으로~”
이에 하준은 더 흥이 나서 ‘하늘을 날아서’를 열창했고, 마지막에는 흥에 심취해서 원곡에는 없는 화려한 애드리브 기타연주까지 선보였다.
“와아아!”
“감사합니다!”
멋진 무대를 마친 하준은 큰 호응을 해준 방청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고, 무대를 내려왔다.
“이야, 우리 하준이 최고!”
“와, 하준아, 오늘 기타 연주 장난 아니던데?”
“너무 잘했어!”
최 대표와 소속사 직원들, 하준의 부모님은 박수를 치며 하준을 칭찬했다.
얼마 후 하준의 이 라이브는 너튜브에 올라왔고,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이슈가 되었다.
덕분에 하준은 한국의 가요 프로그램과 다수의 라디오에도 출연해 한동안 ‘하늘을 날아서’를 많이 부르고 다녔다.
또한 마침 영화 <영재>의 개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하준은 라디오에서 <영재>의 홍보도 함께 하게 되었다.
“하준 군, 이번엔 스크린에서 다른 역할로 관객들과 만난다고 하던데, 그 얘기 좀 해주세요.”
“아, 네. 9월 15일에 드디어 <영재>가 개봉합니다. 저는 여기서 주인공인 영재 역할을 맡았고요.”
“영화 제목이 <영재>고, 하준 군이 맡은 역할 이름도 ‘영재’, 극중 하준 군이 맡은 ‘영재’라는 소년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영재. 영재인 ‘영재’가 주인공인 영화 <영재>. 맞죠?”
“하하, 네, ‘영재’가 영재인, 영화 <영재>입니다.”
“와, 하준 군에게 딱 맞는 역할인 것 같네요. 그래서 정혁구 감독님이 직접 캐스팅 제안하러 만나러 오셨다고 하던데, 맞나요?”
“네, 맞아요. 정혁구 감독님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신 감독님이잖아요. 근데 절 캐스팅하고 싶다고 직접 오셔서 시나리오도 보여주시고, 설명도 해주시고 해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근데 저 같아도 이 역할에 제일 먼저 하준 군이 떠올랐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라디오 DJ는 자연스럽게 영화 <영재>에 대해 질문하며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주인공인 영재는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데, 영재의 엄마는 영재가 공부해서 돈을 많이 벌길 바라요. 하지만, 영재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요. 그래서 갈등을 겪고, 그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예요.”
“오, 그럼 하준 군이 그림 그리는 모습도 볼 수 있나요?”
“네,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영재’가 그리는 그림은 전부 제가 직접 그렸어요.”
“와, 정말요? 그림 엄청 잘 그리나 봐요!”
“영재가 그리는 그림은 추상화라서 평가가 좀 주관적이라 잘 모르겠어요.”
“근데 어떻게 직접 그리게 된 거예요?”
하준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림을 직접 그리게 된 건지 그 경위를 설명했고, 이어 전시회 소개도 잊지 않았다.
“아, 그리고 개봉 기간 동안 극중 영재의 그림과 제가 틈틈이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가 열려요. 영화를 관람하시고 궁금하신 분들은 전시회도 보러 오시면 좋겠어요.”
“오, 이거 굉장히 색다른 이벤트네요. 영화 속 캐릭터가 그린 그림들을 우리가 직접 가서 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거기 가면 하준 군도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무대 인사를 다녀야 해서 매일 있지는 않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가 있을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정혁구 감독님과 하준 군의 조합이라니, 이 영화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 개봉이 9월 15일이래요. 며칠 안 남았네요. 미리미리 예매하시고, ‘영재&하준 콜라보 전시회’도 놓치지 마세요.”
“영화 <영재>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라디오에서 알찬 홍보를 마친 하준은 안 작가의 화실로 향했다.
오늘이 하준의 그림들을 전시회가 진행될 서울의 어느 갤러리로 운반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준의 그림들을 화실에 잘 보관해 두었던 안 작가는 그림들을 갤러리로 운반하는 것도 도와주었고, 오픈하기 직전까지 그림들을 설치하고 전시장의 조명이나 구조 등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하준은 생애 첫 전시회를 수월히 준비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 이 정도 가지고. 내 애제자가 전시회를 한다는데 이 정도 신경은 써줘야지. 아, 제자라고 하긴 좀 그렇긴 하다. 내가 뭘 가르쳐 준 게 없으니.”
“아니에요, 선생님이 맨 처음 유화 그리는 법도 알려주시고, 중간에 조언도 많이 해주셨잖아요.”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아, 내일 개봉하면 계속 바빠서 하준이 얼굴 보기 힘들겠다, 그치?”
“네, 당분간은 그럴 거예요.”
“그래, 아무튼, 이번 영화 대박 나고, 전시회도 잘 되길 빌게. 나도 영화 꼭 보러 갈게.”
안 작가는 하준을 안아주며 응원해주었다.
다음 날, 드디어 하준의 첫 단독 주연작인 영화 <영재>가 개봉했다.
그리고 동시에 하준의 ‘영재&하준 콜라보 전시회’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