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111화
삼총사는 미국 토크쇼에 첫 출연을 하는 거니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하던 중 하준이 간단한 마술을 이용해 도술을 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건 어떠냐며 아이디어를 냈다.
하준은 산타 할아버지에게 첫 선물로 마술 도구들을 받은 이후 틈날 때마다 마술을 조금씩 연습했기에 꽤 다양한 마술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공정환과 서희수는 마술을 할 줄 몰랐지만, 하준의 아이디어에 동의했고, 하준에게 간단한 마술을 배웠다.
“<신비종>에서 사용하는 구슬로 신비한 도술을 보여드릴게요.”
가장 먼저 서희수가 <신비종>에서 사용하는 구슬을 가지고 앞으로 나섰다.
서희수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구슬이 이동하는 마술과 구슬이 공중에 떠 있게 하는 마술을 선보였다.
물론 이건 마술이 아니라 도술이라는 컨셉이기에, <신비종>에서처럼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세운 상태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는 퍼포먼스도 잊지 않았다.
“와우! 굉장하네요!”
진행자인 제이미를 비롯한 방청객들이 환호하며 놀라워했다.
특히 방청객들 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너무 신기해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희수는 열렬한 반응에 역시 이걸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벅찬 미소로 방청객들에게 인사했다.
다음 차례는 공정환이었다.
“저는 부채 도술을 보여······드릴게요.”
공정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준이 보니 공정환은 무척 긴장한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혹시나 실수를 할까 봐 옆에서 유심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정환이 준비한 마술은 부채 그림 마술이었는데, 이건 하준이 직접 부채에 산수화 그림도 그리고 제작까지 해준 것이었다.
일단 처음에 아무 그림도 없는 빈 부채를 펼쳐 보여준 공정환은, 다음에 먹으로 그린 산수화 그림이 나타나는 것까지는 무사히 해냈다.
그런데 먹으로만 그린 산수화 그림이 색칠한 산수화로 변하는 부분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림이 색칠한 그림이 나오지 않고 몇 번을 펼쳐도 계속 먹으로만 그려진 산수화가 나왔던 것이다.
사실 이 마술은 부채를 이쪽저쪽으로 잘 펼치기만 하면 되는 거라 별로 어려운 마술은 아니었는데, 공정환이 확실히 긴장을 너무 한 모양이었다.
공정환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재빨리 하준이 나섰다.
“아, 여기 부적이 떨어져서 도술이 제대로 안 먹혔네요.”
하준은 자기가 소품으로 사용하려던 부적 하나를 들고 바닥에서 주운 양 허리를 숙였다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고는 부적을 잡은 손으로 공정환의 부채를 함께 잡아 아래쪽으로 촤라락 펼쳤다.
원래 색칠한 그림이 나오게 하려면 이렇게 부채를 아래로 향하게 둔 상태에서 펼쳐야 했는데, 공정환이 긴장한 나머지 그걸 깜빡했던 것이다.
그제야 부채에 그려진 산수화에는 색이 입혀졌고, 방청객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와아! 멋있다!”
“대박!”
다행히 방청객들은 하준이 끼어든 것까지도 퍼포먼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준의 기지 덕분에 무사히 마술을 마친 공정환은 슬쩍 엄지를 들어 올려 보이며 고마워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저는 대금 연주를 들려드릴게요.”
그런데 대금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한 하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준은 아까 서희수가 구슬을 공중에 띄우기 전에 했던 대로 검지와 중지를 세운 채 주문을 외우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아까 공정환을 구했던 부적을 꺼내 방청객들에게 한번 보여준 후 부적을 구겨 오른손에 쥐었다.
하준이 부적을 구겨 쥔 오른손을 한번 옆으로 뻗자, 순식간에 대금이 하준의 손에 생겨났다.
방청객들은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리고 서로를 쳐다보더니 곧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와아!”
“신기해!”
다음으로 하준은 대금을 연주해야 했다.
그런데 사실 하준의 손에서 생겨난 대금은 진짜 대금은 아니었다. 마술에서 지팡이를 만드는 마술 도구를 응용해서 제작한 대금 모양의 지팡이였다.
그래서 하준은 한 번 더 방청객들의 눈을 속이며 옷 속에 감춰둔 대금과 이 마술 도구 대금을 순식간에 바꿔치기했다.
한국 도복의 장점은 긴 옷자락이 있어 액션을 할 때 훨씬 멋져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이 긴 옷자락은 마술을 할 때도 장점이었던 것이다.
하준은 이제 진짜 대금을 가지고 구슬프고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에 방청객들은 대금 소리에 집중했는데, 그러다 서서히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손가락에 집중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준의 연주하는 손가락에서 종이 꽃가루가 쉴 새 없이 생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우! 여러분, 대금에서 꽃가루가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하준 군의 연주에 반응하는 것일까요? 멋집니다!”
제이미가 즐거워하며 외쳤다.
하준은 꽃가루를 흩날리며 대금 연주를 이어가다가 연주가 끝나자 대금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대금 안에서 수많은 종이꽃가루들이 마치 폭죽처럼 터져 나와 사방으로 아름답게 흩어졌다.
방청객들은 삼총사의 환상적인 도술 퍼포먼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내며 환호했고, 무사히 마술을 마친 삼총사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기쁨에 흥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제이미는 다시 삼총사를 자리로 안내했다.
“와, 세 사람의 도술이 전부 너무 신기했어요. 다 도술학교에서 배운 건가요?”
“음, 사실은 여기 하준이한테 배운 거예요. 하하.”
공정환이 솔직히 대답했다.
“오, 그럼 하준 군은 어디서 배웠나요?”
“저는 도술학교에서요.”
하준은 센스 있게 농담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삼총사의 퍼포먼스 후, 제이미는 <신비종> 촬영에 관련된 질문을 이어갔다.
“촬영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어떤 게 있나요?”
하준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시즌 1 때 물속에 잠수해서 보물 가지고 나오는 장면 찍을 때가 기억나요. 희수가 물속에서 숨을 더 못 참아서 버둥거리다가 정신을 잃는 장면이었거든요? 그걸 제가 발견하고 구해주는 건데, 그래서 버둥거릴 때는 그냥 지켜보고 있어야 됐어요. 근데 한 번은 희수가 뭔가 다른 때랑 다르게 버둥대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냥 얘 손 잡고 바로 물 위로 올라갔어요.”
“진짜 위험한 상황이었던 건가요?”
“네, 희수가 그때 물 좀 먹어서 안전요원분들이 응급처치도 해주고 그랬거든요.”
“와, 하준 군이 서희수 양 생명의 은인이네요.”
제이미의 말에 하준 대신 서희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너무 고마웠어요. 저 그때 하준이가 끌고 안 올라갔으면 물 정말 많이 먹었을 거예요.”
“근데 그런 사고 있으면 물이 무서워서 다음에는 그런 촬영 하기 어렵지 않나요?”
“음, 저는 괜찮았어요.”
서희수가 아무렇지 않게 답하자, 공정환이 덧붙여 설명했다.
“얘 원래 겁 없어요. <신비종> 장홍연 그 자체예요.”
“와, 이렇게 어린 숙녀가 겁이 없기 쉽지 않은데, 대단한 강심장인가 봐요. 우리 딸은 이 나이 때 ‘무섭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 같은데.”
“얘는 그때 물 먹은 후에 감독님이 며칠 쉬라고 했는데도 괜찮다고 다음 날 바로 수중 촬영했어요.”
“진짜 대단하네요!”
제이미가 감탄하는데, 서희수가 멋쩍게 웃더니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아참, 근데 하준이가 저만 구해준 게 아니라 여럿 구했어요. 정환이도 액션하다가 위험했던 적 있었는데, 하준이가 먼저 봐서 대금으로 막아주기도 했고요.”
“오, 정말요?”
“네, 아마 돌이 튀었던가 그랬는데, 하준이가 야구하듯이 대금으로 그 돌을 정확히 쳐서 막아줬죠. 아, 그리고 붐 마이크 담당 형이 담에 올라가 있다가 떨어질 뻔한 걸 하준이가 구해준 적도 있었어요.”
공정환은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의 사고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러자 제이미가 또 한번 감탄하며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 군은 굉장히 순발력이 뛰어난가 봐요. 관찰력도 뛰어나고요. 그쵸?”
“음, 눈치가 좀 빠른 편이긴 한 것 같아요.”
하준은 어릴 때 눈칫밥을 많이 먹어서 주변 관찰력과 눈치가 자연스럽게 빨라졌던 것이다.
하준은 그 눈칫밥이 이런 식으로 좋게 작용할 줄은 몰랐는데, 배우를 하면서 눈치가 빠른 건 꽤 많은 도움이 됐다.
그래서 지금은 어릴 적 눈칫밥을 먹던 시절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건 다행히도 지금 이렇게 일이 잘 풀렸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자, 그럼 서희수 양과 공정환 군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들어볼까요?”
제이미는 질문을 이어갔고, 서희수와 공정환은 미리 생각해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후 제이미는 삼총사의 호흡은 어떤지, 앞으로 세 사람의 관계와 전개는 어떻게 될는지, 한국과 외국의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 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삼총사는 스포가 될 만한 내용들은 적당히 피해가면서 슬기롭게 답변을 해나갔다.
“자, 아쉽게도 벌써 헤어질 시간이네요. 마지막으로 전 세계 팬들에게 한 마디씩 해주세요.”
“<신비종>을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앞으로 시즌 7까지는 이미 예정되어 있으니까, 계속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시즌 7까지 찍으면 아마 저희가 거의 성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희가 성장하는 모습 함께 지켜봐 주세요!”
“저희 열심히 촬영해서 점점 더 멋진 모습으로 여러분 찾아뵐 테니까 꼭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삼총사의 인사로 토크쇼는 끝이 났다.
방송이 끝난 후, 삼총사는 방청석으로 가서 인사를 했는데, 방청객들은 삼총사에게 각자 준비한 선물들을 가득 안겨주었다.
“우와, 나 선물 엄청 받았어!”
공정환이 선물을 한아름 안고 뒤뚱거리며 차에 오르더니 신나서 외쳤다.
신나기는 서희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나도! 우와, 이거 나 그린 거네! 진짜 똑같네. 오, 이 빵 맛있겠다!”
이미 인기 아역스타였던 하준은 선물을 많이 받아봤지만, 공정환과 서희수는 오로지 <신비종>에만 출연해서 특별히 팬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준도 두 사람만큼 방방 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외국 팬들이 주는 것이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다들 너무 잘했어! 특히 하준이가 정환이 마술 수습한 거 진짜 기가 막혔다.”
최 대표가 무사히 방송을 마친 삼총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했다.
“아, 맞다! 나 그때 완전 멘붕이었는데, 너 때문에 살았어. 고맙다, 진짜! 역시 우리 구세주야.”
“하준아, 너무 잘했고, 고마워.”
공정환과 공정환의 엄마는 특히 더 하준에게 고마워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성공적으로 마친 첫 미국 방송 출연을 축하해주었다.
삼총사는 무사히 방송 출연을 마쳤다는 홀가분함과 뿌듯함으로 기분이 무척 좋았는데, 무엇보다 가장 신나는 건 곧 디즈리랜드를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내일모레면 디즈리랜드로 가는 거죠?”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공정환이 최 대표에게 물었다.
“응, 내일 하준이는 고모님 만나러 가니까, 정환이랑 희수는 우리랑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뉴욕 관광 다니자. 그리고 모레 다 같이 LA로 가는 거지.”
“예스!”
“신난다!”
공정환과 서희수는 디즈리랜드에 갈 생각에 벌써부터 한껏 들 떠 있었다.
“근데 하준이는 LA 가서도 방송 하나 있는 거 알지?”
“네, 알죠.”
하준은 <투머로우쇼>에 출연해 대금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불러야 했다.
“그래, 그래도 뭐, 놀 때는 신나게 놀아. 하준이는 워낙 방송 체질이라 걱정할 것도 없지. 오늘도 잘했잖아.”
“네, 헤헤.”
하준도 디즈리랜드가 기대되는지 방긋 웃었다.
다음 날, 뉴욕에 온 삼총사 일행은 두 무리로 갈라졌다.
하준 가족을 뺀 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출발했고, 하준은 최선희, 윤기철과 함께 고모인 윤기옥을 만나러 윤기옥의 회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