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110화
“자, 다들 모이셨죠?”
월드 엔터의 최원상 대표가 공항에서 인원을 체크했다.
오늘 뉴욕행 비행기를 타게 될 인원은 꽤 많았다.
월드 엔터에서는 최 대표와 매니저 김유택, 스타일리스트, 통역사가 동행했고, 서희수와 공정환은 각자 엄마와 함께, 하준은 최선희와 윤기철과 함께했다.
“네, 11명 맞습니다.”
김유택이 빠르게 사람들 숫자를 세어 알려주었고, 곧 최 대표는 이들을 이끌고 탑승 수속을 밟았다.
“우와, 나 비행기 처음 타봐!”
“난 제주도 가 봤어. 근데 미국은 처음이야. 진짜 내가 미국을 가는구나!”
“이제 곧 디즈리랜드도 가볼 수 있겠다! 너무 떨려. 엄청 크고 엄청 재밌댔는데!”
비행기에 탄 서희수와 공정환은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준은 <비긴버스킹> 때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타 봤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탄 것 자체는 별로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 간다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그냥 가는 것도 아니고 방송 출연도 하고 디즈리랜드에도 갈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엔 아빠, 엄마와 함께 가는 가족 여행 같아서 행복했다.
거기다 하준은 뉴욕에 사는 고모 윤기옥도 만나기로 해서 더욱 들떴다.
“하준아, 너 전에 <비긴버스킹> 때 이탈리아 갔었잖아? 그때 가는 데 얼마나 걸렸어?”
공정환과 미국의 볼거리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던 옆자리의 서희수가 갑자기 하준에게 물었다.
“12시간 정도?”
“오, 그럼 그동안 뭐했어? 도착까지 14시간이나 걸린다는데, 심심할까 봐 너무 걱정이거든.”
활발한 서희수는 심심한 건 못 참는 성격이었다.
“기내식도 2번이나 먹고, 여기 화면으로 영화도 실컷 보고, 졸리면 잤어. 그러니까 금방 내릴 때 됐던데?”
“정말? 근데 나 의자에 앉아서는 잠 잘 못 자는데······. 영화도 지겹게 보고 기내식도 다 먹었는데도 잠도 안 오면 어떡하지?”
“음, 그럼 내가 책 좀 빌려줄까? 관광 영어책이랑 소설책도 좀 가져왔는데.”
“오, 그래, 책 읽으면 시간이 빨리 가지. 음, 소설보다는 간단한 영어라도 알고 있으면 좋으니까 관광 영어책이 좋겠다!”
하준은 이미 다 읽고 기억해둬서 관광 영어책이 필요 없었지만, 혹시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까 싶어 챙겨 온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필요할 때 보라고 이륙하자마자 바로 서희수에게 관광 영어책을 건네주었다.
1차 기내식을 먹은 후, 서희수는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며 하준이 준 관광 영어책을 펼쳤다.
사락 사락.
하준은 서희수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잠깐 들었는데, 갑자기 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툭.
“으응?”
하준이 깜짝 놀라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서희수가 자기 어깨에 기대서 잠이 들어 있었다.
‘큭. 의자에 앉아서는 잠 못 잔다더니······.’
하준은 서희수가 웃겼지만, 혹시라도 깰까 봐 가만히 어깨를 빌려준 채로 있었다.
다행히 서희수는 금방 몸을 뒤척이더니 그녀의 오른쪽에 앉은 공정환의 어깨로 머리를 이동했다.
“어어······ 읍!”
공정환은 흠칫 놀라 소리를 내려다가 서희수가 깰까 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공정환의 얼굴이 빠르게 붉어졌다.
공정환은 한참을 붉은 얼굴과 경직된 상태로 서희수에게 어깨를 내어주었다.
하준은 공정환이 무척 불편해 보여서 슬쩍 서희수의 고개를 자기 쪽으로 조심히 넘기라는 사인을 주었는데, 공정환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정환 역시 서희수의 머리에 기대 잠이 들었다.
***
14시간 후 뉴욕에 도착한 하준 일행은 최 대표가 미리 예약해둔 호텔에 묵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하준 일행 전부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부모님들은 거기 스태프들이 방청석으로 안내해줄 거예요. 아이들이랑 저희는 대기실로 갈 거고요.”
방송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최 대표가 간단히 설명했다.
삼총사의 부모님들은 자기 자식들이 미국 방송에 나오는 걸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과 기쁨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삼총사에게 잘하고 오라며 응원의 말을 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미국 방송에 출연하다니, 정말 대견하구나. 잘하고 와. 떨지 말고, 당당하게.”
“우리 딸은 잘할 거라 믿어. 아빠도 한국에서 생방송으로 지켜 보고 있을 거래.”
공정환과 서희수의 아빠들은 회사에 가야 했기에 엄마들만 따라왔다.
물론 서희수의 엄마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리 소속사에서 따라간다지만 11살짜리 딸을 혼자 보내기가 내키지 않았던 그녀는 연차와 월차 등을 모두 끌어와 일주일의 휴가를 내고 이곳에 함께 오게 되었다.
아빠들은 생애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자식의 미국 토크쇼 출연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생방송으로라도 시청하려고 미국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이트를 찾아 한국에서 방송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윤기철은 영화 촬영도 다 끝나고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최선희와 함께 이번 여행에 함께 올 수 있었다.
“하준아, 방청객들이나 스태프들 전부 외국인들이어서 낯설겠지만, 우리가 방청석에서 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말고, 한국에서처럼 편하게 얘기하면 돼. 알겠지?”
“맞아, 그냥 편안하게 해. 파이팅!”
“응, 나 외국인들만 가득한 데서 노래도 불러봤잖아. 걱정 마.”
하준은 최선희와 윤기철의 조언과 응원에 걱정하지 말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잠시 후, 삼총사가 방송국에 도착하자, 방송국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삼총사에게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총사는 지금 <신비종>에 나올 때 입었던 복장 그대로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Oh, my god!”
“Wow!”
“K-Wizard trio!(K-마법사 트리오!)”
미국인들은 삼총사를 딱 알아보고 이들에게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오늘 방청을 위해 온 부모와 아이들도 있었다.
삼총사를 직접 본 아이들은 방방 뛰며 너무 좋아했다.
“우와, 진짜 도사 삼총사다!”
“옷 너무 멋있어!”
“팬이에요! 사인 해주세요!”
아이들이 삼총사에게 사인을 해달라며 팬과 다양한 물품을 내밀었다.
어떤 아이는 부채를, 어떤 아이는 자기 옷을, 어떤 아이는 삼총사 피규어 박스를, 어떤 아이는 <신비종> OST CD 앨범을.
삼총사들은 이렇게 많은 외국 팬들을 처음 만나는 것이라 얼떨떨하면서도 행복했다.
그들은 잠시 컨셉으로 들고 있던 부채, 대금, 구슬 주머니를 김유택에게 맡기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사인을 해준 후에는 포즈도 취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어 주었다.
“자자, 실례할게요. 이제 들어가 봐야 해요.”
통역사가 영어로 주변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곧 방청을 할 팬들은 손을 흔들며 삼총사를 보내주었다.
“와, 우리 진짜 미국에서도 인기 있나 봐!”
대기실에 도착한 공정환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흥분해서 외쳤다.
“우리가 인기 있으니까 미국 토크쇼에서도 불렀겠지. 호호. 근데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신기하다. 외국은 인종차별 있댔는데 아닌가 봐. 우리 엄청 좋아하던데?”
“그러게. 아무튼, 이렇게 환대해주니까 기분 진짜 좋다! 나 되게 자신감 업 됐어! 으하하.”
“내가 봐도 너 지금까지 내가 본 모습 중에 제일 흥분돼 보인다. 조금 침착할 필요가 있어. 물론 나도 쉽지 않지만.”
서희수가 빙긋 웃으며 공정환을 진정시켰다.
그때, 최 대표가 손의 땀을 닦으며 삼총사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 음, 이제 곧 리허설 할 텐데, 너희들 등장할 때 연습한 거, 포즈 말이야, 그, 그거 잊으면 안 돼. 어, 아, 지금 한 번 해볼래?”
최 대표가 말을 더듬으며 정신없이 말했다.
“대표님, 왜 그러세요? 이마에 땀도 막 나시는데······ 괜찮으세요?”
하준이 평소와는 다른 최 대표의 모습에 걱정이 되어 물었다.
“후우, 괜찮아······. 아니, 너희가 생방 하는데, 왜 내가 다 떨리고 난리냐······.”
최 대표가 김유택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어머, 대표님이 더 떠시는 거예요? 우린 괜찮은데.”
“대표님, 걱정 마세요. 저희 잘 할 수 있어요.”
서희수와 하준이 오히려 최 대표를 안심시켰다.
그러자 공정환도 두 사람을 거들며 한마디 했다.
“맞아요. 하준이가 있잖아요. 전, 전 안 믿어도 하준이는 믿거든요. 헤헤.”
“응, 그래.”
세 사람의 말에 최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골랐다.
“대표님은 내가 잘 케어해드릴 테니까, 너희들은 걱정 말고 방송에만 신경 써. 자, 등장 포즈 한 번 해봐.”
김유택은 하준과 함께 이탈리아에 갔던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최 대표와는 달리 침착하게 삼총사를 이끌어주었다.
곧 삼총사는 리허설에 들어갔고, 리허설에서 토크쇼의 진행자인 제이미를 만났다.
제이미는 삼총사를 귀여워하며 친근하게 대해주었기에, 덕분에 삼총사의 긴장감이 꽤 해소되었다.
마침내 떨리면서도 기대되는 본 방송이 시작되었다.
제이미는 오프닝 멘트 후 삼총사를 소개했다.
“다들 깜짝 놀랄 준비하시죠. 사랑스러운 한국의 마법사 삼총사가 이곳에 왔거든요! 신비한 동양 마법으로 전 세계를 홀린,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의 도사 삼총사, 하준, 서희수, 공정환입니다!”
제이미의 소개에 방청객들이 큰 박수로 환영했고, 무대 한쪽의 커다란 문이 열리며 삼총사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무대 가운데에 도착한 세 사람은 각자 포즈를 취했다.
공정환은 부채를 촤라락 펼쳤고, 서희수는 구슬을 날리려는 것처럼 팔을 뻗었다.
가운데에 선 하준은 대금을 들고 불기 시작했다.
하준이 <신비종>의 OST ‘그리운 그림자’를 연주하자, 공정환과 서희수가 각자의 손에 들고 있던 꽃잎을 재빨리 공중에 던졌고, 공정환이 부채를 휘둘러 공중에서 꽃잎이 흩날리게 했다.
이에 방청객들은 더 크게 환호하며 좋아했다.
“와우, 멋진 퍼포먼스네요!”
제이미가 박수를 치며 이들에게 다가오더니 악수를 한 뒤 자리를 권했다.
삼총사는 제이미 곁의 소파로 가서 나란히 앉았고, 통역사도 나와서 그들의 옆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신비종>의 삼총사가 우리 쇼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왔습니다. 아, 설마 구름을 타고 온 건 아니겠죠?”
제이미의 농담을 알아들은 하준은 씽긋 웃으며 영어로 답했다.
“그럴지도요. 비행기가 구름에 걸쳐져 있었거든요.”
하준의 센스 있는 답변에 제이미와 방청객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현실에서도 구름을 타고 다니시는군요. 하하. 자, 그럼 먼저 한 사람씩 미국 팬분들에게 소개와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신비종>에서 박민후 역을 맡은 한국의 배우 하준이라고 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비종> 인기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여기 와보니까 실감이 나네요. 반갑습니다!”
하준은 직접 영어로 인사했다.
서희수와 공정환은 한국말로 인사한 뒤, 통역사가 통역을 해주었다.
세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제이미가 하준의 영어 실력을 칭찬했다.
“하준 군은 영어를 굉장히 잘하네요. 혹시 한국 도술로 익힌 겁니까?”
“아, 그게 되면 참 좋았을 텐데, 언어는 도술로는 안 돼요. 그냥 열심히 공부해야 됩니다. 하하.”
“그렇군요. 도술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나 봐요. 음, 그럼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보죠. 먼저 맨 처음 <신비종>에 어떻게 캐스팅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삼총사는 자신들이 오디션을 본 얘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제이미를 비롯한 미국의 팬들은 처음 듣는 자세한 오디션 이야기를 재미있어 했다.
“와, 근데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정말 <신비종> 캐릭터와 실제가 굉장히 비슷한데요? 성격들이 딱 맞나봐요.”
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제이미가 웃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저희 성격이 극중 캐릭터들이랑 거의 똑같아요.”
삼총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극중 캐릭터들이 하는 것 중에 자기도 이건 할 수 있다 하는 건 뭐가 있을까요?”
“저희가 봉술이랑 수영은 다들 배워서 할 줄 알아요. 그리고 약간의 도술도 할 줄 아는데, 보여드릴까요?”
“와우, 정말요? 눈앞에서 도술을 볼 수 있다니, 여러분, 오늘 정말 잘 오신 거예요. 그럼 박수로 부탁합시다!”
제이미의 말에 방청객들이 박수를 보냈고, 삼총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오른쪽 무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