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105화
“이탈리아에서도 영어만 할 줄 알면 다 통하겠죠?”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김유택이 최선희에게 슬쩍 물었다.
“그렇지 않을까? 나도 영어밖에 못해. 그것도 막 잘하는 건 아니고 의사소통만 좀 할 줄 아는 정도야. 근데 뭐, 제작진에서 통역사도 다 준비했을 거잖아? 문제 생기면 도움받으면 되지.”
“네, 그럼 되겠죠? 후우, 그래도 은근 떨리네요. 저 해외는 필리핀만 가봤거든요. 어학연수로요. 그 이후로 처음 가 보는 거예요. 하준이 덕에 이탈리아 구경도 가고, 신나네요.”
“난 해외여행이 처음이야. 신혼여행도 제주도 갔었거든. 나도 하준이 덕에 호강한다. 호호.”
두 사람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들의 옆에 앉아 있던 하준도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 난 비행기도 처음 타봐.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 우와, 저기 봐, 구름이랑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
조금 전까지 앞좌석에 설치된 TV와 비행기 내부를 흥미롭게 구경했던 하준은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감상하며 즐거워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레오나르도다빈치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12시간 동안 비행을 했기에 중간에 기내식이 2번이나 제공되었다.
하준은 비행기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게 소풍 나와서 먹는 것 같다면서 첫 번째 먹은 비빔밥도, 두 번째 먹은 치킨 카레도 맛있게 먹었다.
스튜어디스는 하준을 알아보고 너무 귀엽다면서 간식을 더 챙겨주기도 했다.
드디어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하준과 제작진들은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들은 모두 함께 이동해야 했기에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의 대합실 한쪽에 모여 있었다.
“하준아, 12시간이나 비행기 타느라 힘들었지?”
<비긴버스킹>의 박 PD가 하준을 걱정하며 물었다.
첫 비행인데다가 어린 아이니 12시간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준은 뜻밖에 쌩쌩하게 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영화 보고, 밥 먹고, 자고, 또 영화 보고, 밥 먹으니까 금방 도착해 있던데요? 헤헤.”
“오, 그래? 안 힘들었다니 다행이네. 젊어서 그런가? 하하.”
박 PD의 말에 옆에 있던 한범우가 몸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며 끼어들었다.
“역시, 하준이는 젊어서 안 힘든가봐요. 전 아주 몸이 찌뿌둥해 죽겠는데. 부럽다, 부러워.”
박 PD는 하준을 섭외한 후, 한범우도 섭외했다.
하준이 간다는 소식을 들은 한범우는 당연히 흔쾌히 섭외에 응했다.
하준은 한범우도 같이 가게 되어 너무 든든하고 마음이 편했다.
아무래도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해서 부담감과 긴장감이 클텐데, 같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친한 사람들이면 훨씬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 박 PD는 이번 <비긴버스킹>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가수들이 모두 유명한 발라더, 로커, R&B 가수, 그리고 기타 싱어송라이터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발라드 전문인 한범우, 로커인 김도현, R&B 디바인 박정윤, 최연소 싱어송라이터 하준, 이 조합은 각자의 유니크한 노래를 들려줄 수 있으면서도 서로의 신선한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였다.
“자, 다들 모이셨죠? 차량 준비돼서 숙소로 이동하실게요!”
스태프 하나가 큰 소리로 외치고는 제작진과 출연진 일행을 이끌고 공항 밖으로 이동했다.
하준은 다른 출연진 일행들과 한 차에 탔고, 근처 숙소로 향했다.
“하준아, 그 기타, 좀 봐도 돼? 아동용 기타는 얼마나 작은가 궁금해서. 소리도 그렇고.”
로커인 김도현이 하준의 기타가 담긴 케이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럼요. 저도 삼촌 기타 구경해도 돼요?”
“그럼!”
하준과 김도현은 서로 자기 기타를 바꿔 구경했다.
“오, 귀엽다, 이거. 쪼끄만데 소리는 좋네.”
김도현은 하준의 기타로 시범 삼아 연주를 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은 김도현의 기타 줄을 잡아보려고 했으나 손이 작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삼촌 기타는 제 손에는 너무 커요.”
“나도 네 기타는 좀 작아서 줄 하나씩 잡기는 어려워. 그래도 못 누르는 건 아니라서 연주가 되긴 하네. 음, 근데 하준아, 기타 스트랩 폭이 좀 좁다. 안 불편해?”
기타 스트랩은 기타를 어깨에 메는 끈을 말하는 것인데, 하준의 기타 스트랩의 폭은 약 3~4센티 정도로 좁았다.
“그래요? 전 별로 불편한 거 모르겠던데······.”
하준은 김도현의 기타 스트랩을 살펴보았다.
김도현의 스트랩은 폭이 6~7센티 정도는 되어 보일 정도로 두꺼웠다.
“너 보통 앉아서 기타 쳤지?”
“네, 맞아요.”
“그럼 안 불편할 수 있지. 난 항상 일어서서 기타 치니까 스트랩이 기타를 잘 받쳐줘야 하거든. 폭이 좀 두꺼워야 어깨도 안 아프고 편해. 우리 버스킹할 때 서서도 많이 할 텐데······. 잠시만.”
김도현은 자신의 기타 케이스에 달린 주머니에서 폭이 넓은 기타 스트랩 하나를 꺼내 하준의 기타에 달아주었다.
“자, 이거 내가 좀 쓰던 건데, 너 써. 제일 짧게 조절하면 맞을 거야.”
“와, 진짜요? 진짜 감사합니다!”
하준은 너무 기뻤다.
김도현은 엄청 유명한 로커인데, 그가 사용하던 기타 스트랩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게다가 스트랩에는 김도현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한 번 메 봐. 편한가.”
하준은 김도현과 다시 기타를 바꿨고, 자신의 기타를 바로 메 보았다.
“네, 편해요! 스트랩도 엄청 멋있고요.”
하준은 김도현이 달아 준 기타 스트랩을 쓰다듬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하준의 옆에 있던 최선희와 김유택 역시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함께 기타 스트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도현은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로커였기에, 최선희와 김유택도 무척 팬이었던 것이다.
“와, 우리 하준이 너무 좋겠네!”
“진짜 좋겠다!”
하준은 뜻밖의 득템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때, 한범우가 웃으며 말했다.
“도현 형이랑 하준이랑 그렇게 기타 메고 나란히 서서 노래 부르면 그림이 진짜 멋지겠어요. 하하.”
“맞아, 그렇겠다. 지금 기타 멘 김에 둘이 노래 한 번 해봐.”
박정윤도 한범우를 거들었다.
그러자 차 안에 있던 매니저와 일행들이 일제히 박수를 쏟아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된 이상, 김도현은 노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준아, 뭐 부를래? 다들 이렇게 원하니까 한 곡 불러주자,”
“삼촌 노래 중에 ‘나는 나비’ 좋아해요.”
“오케이. 그럼 그거 불러보자.”
차 안의 사람들은 환호했고, 김도현과 하준은 몇 소절씩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후렴 부분이 되자, 하준이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날개를 활짝 펴고~”
하준의 맑은 고음의 화음에 다들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준의 목소리는 아름다웠지만, 힘찬 노래에 맞게 파워도 느껴졌다.
김도현도 하준이 화음을 넣을 줄은 몰랐기에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신나는 노래가 끝나고 나자, 차 안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와, 오빠, 목소리 조합 정말 좋은데요?”
“하준이는 나랑 같이 노래했을 때보다 실력이 더 는 것 같아. 화음 엄청 잘 넣네.”
“기타 소리도 너무 좋았어.”
“이거 버스킹 때도 불러요! 진짜 좋다.”
“하준이 노래 라이브로는 처음 들어보는데, 정말 잘하는구나.”
하준이 이렇게 즉흥적으로 화음을 넣는 건 처음 본 모습이라 다들 무척 흥분해서 좋아했다.
처음 호흡을 맞춰본 김도현 역시 하준의 실력에 놀랐다면서 기대감을 표출했다.
“오, 하준이 음악적 필이 상당한데? 이번 버스킹 진짜 재밌겠어.”
“나도 하준이랑 같이 불러보고 싶다!”
박정윤도 하준과 듀엣을 해보고 싶다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준을 쳐다보았다.
하준 역시 다양한 사람들과 노래하는 게 재밌었기에 기대가 되었다.
잠시 후, 가수들이 탄 차는 촬영을 위해 렌트한 단독 주택에 도착했다.
<비긴버스킹> 일행들은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스태프들은 단독주택의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 사이 가수들은 가장 먼저 카메라가 설치된 부엌에서 친목 도모를 위해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여기서 대화의 중심은 역시 하준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가요계 선후배 사이라 서로 잘 알았지만, 하준은 배우 활동을 더 많이 하기에 그들과 잘 아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하준아, 노래 뭐 좋아해? 락도 좋아해?”
“R&B는 불러 봤어? 내 노래 알아?”
김도현과 박정윤은 하준에게 음악과 관련된 질문을 해댔다.
“전 노래 장르 안 가리고 다양하게 들어요. 락은 김도현 삼촌 노래 특히 좋아하고요. 박정윤 이모 노래도 많이 들어봤는데, 불러보진 않았어요. 그래도 다 알긴 알아요.”
“오, 그래? 그럼 이모 노래도 같이 부르면 부를 수 있겠네?”
“네, 멜로디랑 가사 다 알아서 부를 수 있어요.”
“그럼 하준이는 기타 말고 연주할 줄 아는 악기 또 뭐 있어?”
“음, 피아노랑 리코더랑······ 리코더는 3학년 때 학교에서 배우거든요. 실기 시험도 보고요. 그래서 리코더도 불 줄 알고, 대금도 불 줄 알아요.”
“대금? 아! 맞다, 하준이 <신입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에서 대금 부는 거 봤어.”
박정윤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도현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쉽네. 대금 가져와서 버스킹 때 연주하면 좋았을걸. 외국 사람들한테 한국 악기 소리도 들려주면 좋잖아.”
“그러게요. 대금 소리 구슬프고 엄청 좋은데.”
한범우도 김도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에 하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대금 가져왔어요.”
하준은 박 PD의 요청으로 대금을 챙겨왔다.
박 PD 역시 외국에서 대금 연주가 꽤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가수들 중에 대금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거니와, <신비종>이 외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만큼 하준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신비종>에서 나온 대금 음악을 연주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정말? 대금 가져왔어?”
“진짜 잘했다!”
“어디 꺼내 봐. 우리도 들어보고 싶어.”
하준은 가수 선배들의 요청으로 대금을 꺼내 간단히 <신비종> OST를 연주해주었다.
“와, 좋다······!”
“하준이 재주꾼이네. 너무 잘해.”
“이 대금 소리는 구슬픈 발라드에 반주로 섞어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한범우가 번뜩 아이디어를 냈다.
“근데, 하준이가 그걸 할 수 있어?”
김도현이 걱정스럽게 묻자, 한범우가 하준에게 확인했다.
“하준아, 발라드 악보 보면 대금으로 반주할 수 있지?”
“할 수 있을······ 걸요? 근데 한번도 안 해봤어요.”
“해보면 되지! 안 되면 말고.”
한범우는 자신의 발라드 노래 중에 접목시킬 만한 노래가 없는지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가수들의 친목 도모를 위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버스킹 공연을 위한 회의로 이어졌다.
한범우는 피아노, 김도현은 기타, 하준은 대금, 박정윤은 마이크를 잡고 간단히 서로 합을 맞추며 버스킹에서 부를 노래들을 골랐다.
이들은 이날 당장 선곡을 마쳤고, 다음 날은 이른 아침부터 연습에 돌입했다.
각자의 솔로곡, 듀엣곡, 단체곡 등을 발라드, R&B, 락 등의 다채로운 장르로 구성했고, 서로 의논도 해가며 버스킹 공연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네 사람의 버스킹 공연이 로마의 한 거리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