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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97화 (97/150)

97화

97화

정혁구 감독은 이어 주인공 캐릭터와 기획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인공 영재는 이름처럼 영재입니다. 암기력과 이해력이 뛰어나 공부를 잘하고, 그래서 초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10세에 중학교를 들어가죠. 하지만 영재는 공부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근데 부모님이 보기에 영재의 그림은 좀 난해합니다. 그다지 재능이 없어 보여요. 그래서 그림은 못 그리게 하고 공부만 시키죠. 이건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성공과 행복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만 봐도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하준이와도 잘 어울리는 역할 같고요.”

최원상 대표가 시나리오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 역시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공부에는 재능이 뛰어나지만 그림에는 재능이 없는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성공의 길로 이끌고 싶은 아이의 부모님. 하지만 아이는 아직 성공보다는 즐거움이 중요했고, 갈등이 빚어진다.

“잘하는 건 공부인데, 좋아하는 건 그림이면 스스로도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궁금해서 빨리 대본을 다 읽어보고 싶어요.”

하준과 최 대표의 좋은 반응에 정 감독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기쁘네요. 사실 이거, 하준 군을 보고 떠오른 시나리오예요. 하준이가 이것저것 다 잘하잖아요. 근데 그런 천재가 잘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뭐, 이런 생각에서 시작된 시나리오입니다.”

“와, 감사합니다. 하준이를 보고 영감이 떠오르셨다니 영광이네요. 그치, 하준아?”

“네, 그 말씀을 들으니 저에 대한 영화도 되는 것 같아서 더 궁금해져요.”

하준이 대본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감독이 하준이를 보고 영감이 떠올라 시나리오를 썼고, 그걸 영화로 만들기 위해 하준에게 주인공 역할을 제안했다니, 두 사람은 무척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하준 군이 꼭 이 역할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하준 군, 그림 잘 그린다고 하던데,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요?”

정 감독이 대뜸 물었다.

“네,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요. 악기 연주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림도 좋아요.”

“잘 그려서 좋은 거예요, 아니면 잘 못 그려도 좋아할 것 같아요?”

“어······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은데······.”

“그럼 맨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거예요? 그냥 처음 그려봤는데 잘 그려졌다, 뭐 그런?”

“네······. 맨 처음에 뭔가를 보고 그렸는데 비슷하게 그려졌어요.”

“와, 하준 군은 그림 쪽으로도 천재였나 보네? 허허.”

정 감독이 신기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 사이 하준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 저 생각해 봤는데요, 그림을 잘 못 그려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그림은, 어떤 걸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면, 잘 그리는 것과 못 그리는 것의 판단 기준이 주관적이니까요. 자기가 그려낸 그림에 스스로 만족한다면 누구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할 수 있어요.”

하준의 어른스러운 말에 최 대표와 정 감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하준을 쳐다보았다.

정 감독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아니, 10살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준 군은 정말 대단하네요. 그게 바로 내가 주인공 영재가 그림을 좋아하게 만든 이유거든요. 아하하.”

정 감독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하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 만나 보니, 이 역할, 하준 군만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더 확고하게 드네요.”

“감사합니다.”

하준이 씽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유명한 감독의 러브콜, 거기에 더해 자신을 주인공으로 점찍어 놓고 만든 영화라니, 하준도 대본이 제발 재밌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럼 대본 천천히 훑어보시고 연락 주세요. 아, 대본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연락 주시고요.”

정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자 최 대표도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네, 참, 촬영 일정은 대략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하준이가 9월까지는 스케줄이 있어서······.”

“하준 군이 <신비종> 촬영 중이라는 건 다 알고 있죠. 하준 군이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하준 군의 스케줄 맞춰서 진행할 겁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대본 읽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직접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하준 군을 실제로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작품은 하준 군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라서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준 군, 오늘 정말 반가웠어요.”

정 감독은 최 대표, 하준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사무실을 나갔다.

정 감독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최 대표는 하준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이구, 우리 이쁜 하준이! 정 감독님 픽을 받다니, 기특해 죽겠네!”

“으윽! 숨 막혀요······!”

“엇, 미안,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지? 너무 좋아서 그랬어. 미안.”

최 대표가 하준을 놔주며 사과했다.

하준은 최 대표의 고의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기에 괜찮다며 웃었다.

“괜찮아요.”

사실 하준은 정 감독의 작품이나 명성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오는 길에 최 대표로부터 전화로 간단한 설명을 들은 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 대표가 이 정도로 흥분하는 걸 보면 정 감독이 대단한 감독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준아, 정 감독님 작품들, 천만 영화도 있고, 작품상 받은 영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부 영상미랑 색감이 뛰어나.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그림 그리는 소년의 이야기니까 더 멋지게 나올 것 같아.”

최 대표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구나······. 대표님, 저 정 감독님 작품들도 좀 찾아보고 대본도 봐야 해서 바빠요. 이만 가볼게요!”

“어, 그래, 그래. 얼른 가봐. 나도 대본 한번 읽어 봐야겠다.”

하준은 곧 대본을 챙겨 사무실을 나갔고, 최 대표는 곧바로 대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

얼마 후, 하준이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집에 김복녀가 와 있었다.

“어? 할머니이!!”

하준은 김복녀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겼다.

“아이구, 내 강아지. 어디 보자······ 어머, 얼굴이 반쪽이 됐네. 요즘 촬영하느라 힘들어서 그러지. 응?”

김복녀는 오랜만에 하준을 보더니 살이 빠졌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사실 하준은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할머니인 김복녀의 마음의 눈에만 그래 보일 뿐.

“네? 제 얼굴 그대론 것 같은데······. 엄마, 나 살 빠졌어?”

“엄마는 매일 봐서 잘 모르겠는데, 할머니가 오랜만에 보시는 거니까 할머니가 보신 게 맞을지도 몰라.”

최선희는 김복녀의 비위를 맞춰 적당히 답했다.

“그렇지! 맨날 보는 사람은 잘 모른다니까. 우구, 이 할머니가 우리 하준이 몸보신하라고 삼계탕 끓여 왔어. 가서 먹자.”

김복녀는 하준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데려갔다.

최선희와 윤기철도 식탁으로 가서 앉았고, 각자의 앞에 닭이 한 마리씩 든 삼계탕이 놓였다.

“와, 맛있겠다!”

하준이 삼계탕을 보자마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자 김복녀가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얼른 먹어.”

“네, 할머니 먼저 드시면 먹을게요.”

김복녀는 자신이 먼저 수저를 들길 기다리는 하준을 위해 얼른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먹었고, 하준은 그제야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다.

하준은 연신 맛있다며 삼계탕을 신나게 먹었고, 김복녀는 그런 하준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하준이 삼계탕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김복녀는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강아지, 정혁구 감독 영화에 캐스팅됐다며?”

“네, 헤헤.”

“정혁구면 엄청 유명한 감독이잖니. 할머니가 기사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하준은 정혁구 감독의 작품을 읽어보고 3일 만에 답을 주었다.

대본이 무척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 감독의 이전작들의 영상미도 최 대표의 말처럼 뛰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윤기철은 정혁구 감독의 작품이라는 소리에 대본이 좀 안 좋아도 해보라고 조언했었다.

“좋은 감독과 작업을 해본다는 건 앞으로 연기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여러모로 배울 점도 많을 거고.”

하지만 대본까지 좋자, 윤기철은 무척 기뻐하며 하준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하준이 정혁구 감독의 작품을 하겠다고 통보한 뒤, 며칠 만에 캐스팅 기사가 쏟아졌다.

[아역 배우 하준, 정혁구 감독 신작 캐스팅]

[아역 배우 하준, 정혁구 감독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캐스팅, 10살 영재 소년 역할]

[아역 스타 하준과 세계적인 정혁구 감독의 만남, 벌써부터 기대되는 두 사람의 조합]

[정혁구 감독, “하준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쓴 작품, 캐스팅 수락 행복”]

[아역 배우 하준, “정혁구 감독님의 러브콜, 영광이다”]

김복녀는 요즘 아침마다 하준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는 것이 루틴 중 하나였고, 어제 이 기사들을 보고 기쁜 마음에 삼계탕을 만들어 달려온 것이었다.

“기사마다 우리 하준이 캐스팅 잘 됐다고 칭찬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 행복했어. 내 친구들도 엄청 부러워했고. 거기다 영재 역할이라니 우리 하준이한테도 딱 맞는 역할이고, 전체관람가니까 더 좋아. <죽지 않는 백화점> 그건 내가 볼 수가 없어서 얼마나 아쉬웠다고.”

김복녀는 이렇게 말하며 윤기철을 힐끗 째려보았다.

김복녀가 윤기철을 탓하듯 째려보는 걸 캐치한 하준은 슬그머니 말했다.

“저도 아직 어려서 그거 못 봤는데, 나중에 크면 꼭 볼 거예요.”

“우리 하준이는 좀빈가 뭔가 그거 안 무서워?”

“지금은 좀 무섭지만, 다 크면 안 무섭지 않을까요? 근데 좀 무서워도 아빠 영화니까 꼭 볼 거예요. 되게 재밌댔어요. 그래서 엄청 잘 됐잖아요.”

하준의 말에 윤기철이 하준을 기특해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우리 아들밖에 없네. 아하하.”

김복녀도 은근히 아빠 편을 들어주는 하준이 이쁜지 빙긋 웃었다.

그러더니 윤기철에게 물었다.

“하준 애비는 다음 작품 준비하고 있니?”

“네, 이번엔 액션 영화 준비하고 있어요.”

“시나리오 쓰는 거야?”

“네, 직접 쓰고 있어요.”

“에미도 시나리오 쓴다며? 둘이 같이는 안 해?”

“이 사람은 드라마 시나리오 써요. 저는 영화. 에미도 지금 드라마 시나리오 작업 중이고요.”

“그래? 그럼 언제 드라마로 나오는데?”

“그건 아직 미정이에요.”

최선희는 지금 6화 정도의 로맨스 드라마 대본을 완성했고, 조만간 제작사들과 접촉해볼 예정이었다.

“아들은 영화감독이고, 며느리는 드라마 작가고, 손자는 배우고. 호호, 아주 좋은 조합이야. 나중에 셋이 같이 영화 하나 만들어. 그럼 너무 좋을 거 같아.”

김복녀가 뿌듯해하며 말했고, 세 사람은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괜찮겠다! 가족 영화네, 가족 영화.”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여보, 나중에 꼭 같이 해보자.”

“나도 좋아!”

하준 가족은 다 함께 영화를 만들 미래를 그리며 행복하게 웃었다.

***

“컷! 자, 오늘 촬영은 여기서 마치고······.”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시즌 1에 이어 시즌 2의 연출을 맡은 김 감독이 오후 5시 무렵 갑자기 일찍 촬영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보통은 6시에 저녁 식사를 한 후, 촬영을 2시간가량 더 하고 끝이 나는데, 너무 일찍 촬영을 끝내주니 배우들은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그때, 조감독이 나서서 배우들에게 공지했다.

“오늘은 이른 저녁을 먹고, 단체로 영화 관람을 갑시다! 제작사에서 복지 차원으로 영화 티켓을 제공해줬어요.”

“와아! 무슨 영환데요?”

서희수가 대표로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조감독이 하준을 한번 슬쩍 쳐다본 후 웃으며 대답했다.

“하준이가 더빙한 <담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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