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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96화 (96/150)

96화

96화

“언니, 하준이는 요즘 신입 도사 그거 찍느라 바쁘지?”

김복녀의 친구인 박정자가 김복녀에게 물었다.

“그렇지. 6월에 벌써 이렇게 더운데 한여름에 촬영은 어떡하나 걱정이네.”

김복녀가 선풍기를 틀며 대꾸했다.

그러자 박정자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친구 이애숙이 말했다.

“배우들도 참 고생이야. 애들은 더 힘들 텐데······ 그러고 보면 하준이는 참 애가 어른스러운가 봐. 봄, 여름, 가을, 겨울, 쉬지도 않고 드라마랑 영화 찍잖아.”

“맞아, 요전에 <너와 나의 연결고리> 끝나고 바로 신입 도사 찍는 거지, 언니?”

“응, 애가 연기하는 거 엄청 좋아한대. 뭐, 워낙 작품도 많이 들어오고 말이야.”

김복녀가 자랑스럽게 말하며 TV를 켰다.

세 사람은 항상 함께 저녁을 먹고 일일드라마를 시청했고, 지금도 일일드라마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드라마는 아직 시작하지 않아서 광고가 나오는 중이었다.

“근데 이거 좀 재미없지 않아?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참 재밌었는데 말이야.”

박정자가 김복녀와 이애숙을 돌아보며 의견을 물었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준이 또 얼른 드라마하면 좋겠다. 요즘 TV에서 못 보니까 왠지 서운해. 보고 싶은데.”

“맞아, 우리 하준이 나온 게 훨씬 더 재밌었지.”

<너와 나의 연결고리> 후속으로 방송되는 일일드라마는 확실히 <너와 나의 연결고리>보다 시청률도 낮게 나오고 재미도 덜했다.

물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심심했던 세 사람은 이 드라마도 챙겨보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화면에 하준이 등장했다.

“어? 저 애, 하준이 아니야?”

박정자가 TV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박정자의 말에 다른 두 사람도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쳐다보았다.

화면에서는 ‘리얼망고빙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광고에서 하준은 금색 실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검정 의상을 입고 피겨선수들처럼 빙판 위에서 우아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세 사람은 광고에 하준이 등장한 것도 깜짝 놀랐지만, 스케이트를 너무 잘 타서 한 번 더 놀랐다.

“어머머머! 하준이 스케이트 왜 이렇게 잘 타? 언제 피겨 배웠어?”

“아니, 광고는 언제 찍은 거야? 와······ 하준이 진짜 고급스럽다!”

박정자와 이애숙은 감탄했고, 김복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하준의 광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준의 멋진 스케이팅에 이어 하준이 ‘리얼망고빙수’를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왔고, 성우의 멘트가 이어졌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 과일의 황제 망고를 그대로 담았다! 빙수의 황제 세계 ‘리얼망고빙수’!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는 하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또 먹고 싶다!”

광고가 끝나자, 세 사람은 동시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와, 우리 하준이 광고도 엄청 잘 찍네! 하준이 이미지랑 딱 어울려.”

“맞아, 너무 고급져. 저거 먹고 싶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이라잖아.”

“우리 강아지가 언제 저런 걸 또 찍었데······. 오호호.”

김복녀는 하준이 자랑스럽고, 귀여워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근데, 하준이 피겨 배웠어? 의상도 그렇고, 스핀도 돌던데! 진짜 피겨 선수 같았어.”

이애숙이 물었다.

하지만 김복녀는 하준이 스케이트를 잘 타는지 어떤지는 몰랐다.

“피겨 배웠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이 광고 찍으려고 좀 배웠나?”

“조금 배운 실력이 아니던데?”

“호호호, 우리 하준이가 원래 재능이 많은 애거든. 못하는 게 없어.”

“아휴, 언니는 참 복도 많아. 아들이 영화감독으로 대박 나, 손자는 배우로 승승장구해서 광고도 막 찍어, 부럽다, 부러워.”

“내 말이. 얘 진짜 늘그막에 복 터졌다니까. 난 언제 복 터지나······ 에휴, 로또나 사 봐야겠다.”

이애숙은 부러움에 한숨을 쉬었지만, 김복녀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오랜만에 하준이도 볼 수 있어서 기뻤고, 또 이렇게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도 기분이 좋았다.

“아, 우리 저거 사다 먹을까? 우리 하준이가 광고한 기념으로 내가 살게!”

기분이 날아갈 듯 좋은 김복녀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친구들은 안 그래도 디저트도 먹고 싶고, 덥기도 하던 차였기에 얼른 찬성했다.

“드라마 보고 갈까? 아니면 바로 갈까?”

“이거 요즘 별 진도 안 나가. 그리고 예고 보니까 고구마 구간이라 앞부분 안 봐도 돼. 바로 사러 가자.”

“그래, 그럼 바로 가자.”

세 사람은 주섬주섬 옷을 입고 ‘리얼망고빙수’를 사러 집을 나섰다.

***

다음 날 오전, 하준이 학교에 간 사이 최선희가 김복녀의 문자를 받고 너튜브에서 하준의 광고를 찾아보았다.

역시 하준의 망고 빙수 광고는 올라와 있었고, 최선희는 흥분해서 윤기철을 불렀다.

“여보, 여보! 우리 하준이 광고 나왔어! 너튜브에 올라왔네!”

“정말? 어디, 어떻게 나왔나 보자.”

윤기철이 서재에서 달려 나와 최선희 옆으로 와 앉았다.

최선희는 광고를 재생해 주었고, 윤기철과 광고를 구경했다.

“와우! 우리 하준이 피겨를 시킬 걸 그랬나? 아하하.”

이건 하준에 대한 윤기철의 농담 레퍼토리였다.

하준이 하도 이것저것 잘하다 보니 윤기철은 그런 하준을 볼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최선희는 여기에 한술 더 떴다.

“호호, 세계적인 피겨스타가 될 뻔했는데, 괜히 배우 시켰나?”

“이 팔불출 아빠를 말려야지, 당신까지 그럼 어떡해? 하하. 그나저나 우리 하준이 진짜 잘 탄다. 너무 우아해.”

“맞아. 춤을 잘 춰서 그런가? 선이 예뻐.”

“댓글은 뭐래?”

“한번 볼까?”

두 사람은 아무래도 객관적이지는 못하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모야모야~ 이제 하다하다 피겨까지 잘하는 거야? 대애박!!]

[스핀을 저렇게 잘 돈다고? 하준이 원래 피겨 배웠던 거야? 너무 이쁘게 돈다 ㅎㅎ]

[하준이 피겨 안 배웠는데, 몇 번 따라해보더니 그냥 하더래 ㄷㄷㄷ 운동신경 개쩜;;]

[이거 메이킹 영상도 올라왔는데, 진짜 한 번 스케이트 타보고 찍은 거라고 나옴ㅋㅋㅋ 미친 운동신경······!]

[와 이 정도 재능이면 피겨 시켰어야 하는 거 아니냐 ㄷㄷ]

[피겨계가 인재를 놓친 건가!!]

[하준이가 잘하는 게 한둘이 아닌데 그걸 다 어케 해 ㅋㅋㅋ 배우하면서 다양한 역할 맡으면 개꿀일 듯~ 물론 보는 우리가 개꿀 ㅋㅋ]

[근데 저 망고 빙수 개맛있겠다~~ 엄청 고급스런 맛일 거 같음ㅎㅎ 광고 분위기도 쩔고~ 망고빙수 디자인도 개고급스러움]

[지금 사러 갑니다~~]

[그래, 올 여름은 이거닷!!]

“오, 우리랑 생각이 비슷하네! 피겨계가 인재를 놓친 것 같다잖아. 아하하.”

윤기철이 싱글벙글 웃었다.

최선희 역시 입이 귀에 걸린 채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한 댓글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어? 여보, <담을 넘어서> 더빙 예고편이 좀 전에 공개됐다는데?”

“진짜? 가만 있어봐.”

윤기철은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와 너튜브에 검색을 해보았다.

“진짜네? 원래 더빙 예고편은 잘 공개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최 대표님이 아마 개봉한 뒤에나 하준이가 더빙한 거 알려질 거랬는데!”

“일단 한번 보자.”

예고편은 약 2분 정도였는데, 그 정도로도 하준의 연기력과 노래 실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너무 귀엽다!”

“노래도 정말 잘하고!”

역시나 댓글들도 놀라움과 호평 일색이었다.

[이게 하준이 목소리라고?! 우와······ 너무 잘하는데? 첨에 성우가 애기 목소리 내서 연기한 줄 ㄷㄷ]

[진짜 하준이가 글렌임[email protected]@ 대박 잘한다!!]

[이건 또 언제 더빙했대~ 너무 잘해서 칭찬하기도 입 아프다~ 노래도 완전 디즈리 성우가 부른 것 같아 진짜 조앙ㅠㅠ]

[노래 전곡 빨리 듣고 싶다~~ 노래만이라도 먼저 공개해 주세여 현기증난단 말이에여!!]

[근데 디즈리 더빙 오디션 개빡세다던데~ 하긴 이 정도 실력이면 나 같아도 바로 발탁했을 듯]

[개잘함ㄷㄷㄷ 성우 뺨 후려치게 잘함 ㄷㄷ]

[방금 자막판 예고편도 보고 왔는데 심지어 하준이가 노래 더 잘함!!]

하준이 디즈리 애니메이션의 더빙을 맡았다는 사실이 예고편으로 공개되자, 기사도 쏟아졌다.

[아역 배우 하준, 이번엔 디즈리 애니메이션 주인공 더빙 맡아]

[성우 뺨치는 실력, 아역 배우 하준의 디즈리 애니메이션 더빙 호평 일색]

[아역 배우 하준, 연기, 노래, 뮤지컬에 이어 애니메이션 더빙까지, 그야말로 팔방미인]

[디즈리 컴퍼니 코리아 대표 “하준이 아닌 글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 극찬]

[디즈리의 러브콜을 받은 아역 배우 하준, <담을 넘어서>의 주인공 글렌 더빙 완벽]

윤기철과 최선희는 칭찬이 가득한 기사들을 보며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아휴, 우리 하준이는 어쩜 이렇게 맨날 우릴 기쁘게 해주지?”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아들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히게 뒀어. 아하하.”

“아! 어머님께도 링크 보내드려야겠다!”

하준의 광고에 대한 정보를 김복녀에게 들었으니, 최선희도 애니메이션 더빙 정보를 전해드렸다.

그러자 잠시 후, 김복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머님, 보내드린 영상 보셨어요?”

-응, 이게 정말 하준이가 더빙한 거라고?

“네, 맞아요. 너무 잘하죠?”

-어, 엄청 잘하네. 오호호. 친구들한테도 보내서 자랑해야겠어. 참, 근데 하준이는 그 신입 도사 드라마 아직 찍고 있는 거지?

“네, 4월에 촬영 시작해서 아직 적어도 세 달은 더 찍어야 할 거예요.”

-그렇구나······.

김복녀가 시무룩하게 읊조렸다.

“왜요, 어머님?”

-요즘 하준이 나오는 드라마가 없으니까 영 심심해서. 거의 매일 보다가 갑자기 안 나오니까, 더 보고 싶네. 또 일일드라마 찍으면 좋겠는데······ 신입 도사 그것도 한참 있다가 나오지?

“네, 그럼 아범 영화라도······ 아, 그런 건 싫어하시죠?”

김복녀는 공포 영화는 무섭다고 싫어했다. 그게 아무리 아들인 윤기철이 만들고, 손자인 하준이 나온다고 해도 무서워서 볼 수가 없었다.

-나 공포 영화 원래 싫어하잖니. 아범은 하필이면 공포 영화를 찍어서······ 하준이 다음 영화는 공포 아닌 거, 전체 관람가로 좀 찍으라고 해라. 나도 좀 보게.

“호호, 네, 어머님. 그럴게요.”

그때, 옆에서 귀를 바짝 대고 엿듣던 윤기철이 불쑥 끼어들어 김복녀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엄마, 그럼 나는 공포 영화 또 찍어도 돼? 요?”

그러자 김복녀가 시크하게 답했다.

-넌 니 마음대로 해! 언제 니가 내 말 들었다고. 에미야, 하준이는 학교에서 언제 오니?

“엄마, 이러면 나 서운해요!”

-나 지금 에미랑 통화 중인데 왜 자꾸 끼어들어? 하준이는 학교에서 언제 와?

윤기철이 그러거나 말거나 김복녀의 관심은 온통 하준이에게 쏠려 있었다.

윤기철은 멀어진 관심에 말로는 서운하다고 했지만, 손자를 이뻐라 하는 것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윤기철은 빙긋 웃으며 최선희에게 계속 통화하라고 손짓했고, 최선희는 김복녀에게 하준의 하교 시간을 알려주었다.

김복녀는 그 외 하준의 스케줄도 물어보더니 전화를 끊었다.

***

그날 오후,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최원상 대표에게 한 영화감독이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정혁구.

정혁구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흥행한 천만 영화도 있고, 유명한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도 있었다.

원래 최 대표는 웬만한 작품들은 시나리오만 받고 따로 감독을 미팅하지 않는데, 정혁구 감독이기에 이렇게 미팅까지 잡았다.

“안녕하세요! 직접 와 주시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영광입니다.”

최 대표가 정 감독과 악수를 하며 인사했다.

“간절한 쪽이 와야죠. 하하. 반갑습니다. 그런데 하준 군은 아직 안 왔나요?”

정 감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준이 대표실로 뛰어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 하준이 왔구나! 정말 반갑다!”

정 감독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하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흔들었다.

“감독님,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최 대표가 자리를 권했고, 하준과 최 대표는 나란히, 정 감독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게 시나리오니까, 시나리오부터 드릴게요.”

정 감독은 가방에서 시나리오를 꺼내더니 하준과 최 대표의 앞에 놓았다.

두 사람은 곧바로 시나리오를 함께 펼쳐보았다.

그런데 맨 첫 장에 나온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거, 10살 소년이 주인공인 거예요?”

“하준이가 맡을 역할이 이 주인공 역할이고요?”

두 사람의 물음에 정 감독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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